사람 밥 보키의 이야기 [People: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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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공영규

명장 밥 보키(Bob Vokey), 그의 웨지는 단지 제품이 아닌 훌륭한 작품이다.

그 안에는 열정, 사랑 그리고 인생이 담겨 있다. 글_한원석

“웨지의 룩 그 자체를 사랑한다.” 보키는 그게 웨지의 아름다움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어졌다.

“웨지를 내려놓고 봤을 때 그리고 실제로 최고의 선수들이 웨지를 가지고 어떤 퍼포먼스를 내는지 볼 때가 가장 설렌다.” 웨지라는 단어를, 아니 직접 디자인한 보키 웨지를 떠올리는 모습에서 행복함이 가득 묻어났다.

 

웨지의 시작

밥 보키가 본격적으로 골프 클럽을 다루기 시작한 건 서른 살 때다.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의 커스텀 골프숍에서 퍼시먼 우드를 접했다. 우드에 대한 리피니시 작업을 했으며 다양한 인서트와 샤프트를 삽입하면서 클럽에 대해 배웠다. 그는 캘리포니아 비스타에 개인 골프숍을 열었고, 처음 메탈 드라이버를 접하게 됐다. 보키는 메탈 우드를 드라이빙레인지 클럽으로 불렀다. 그리고 잘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예상은 빗나갔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메이저 브랜드에서 메탈 우드를 다루기 시작했다. 골프 클럽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이 시작인 셈이다. 타이틀리스트 연구 개발 헤드인 테리 매케이브(Terry Macabe)가 드라이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그동안 드라이버 쪽에서 경력을 쌓아왔고 좋아하던 일이었기에 흔쾌히 승낙했고 첫 프로젝트인 타이틀리스트 975D 드라이버가 탄생됐다. 이 드라이버를 통해 타이틀리스트는 골프 클럽 제조업체로 시장에 진입했다. 매케이브는 밥 보키에게 “타이틀리스트에서 웨지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보키는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보키는 “골프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웨지를 자주 사용했다”고 했다. 쇼트 게임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보키는 취미로 웨지를 수집했다. 투어에서 드라이버 담당자로 있을 때 웨지 플레이를 잘하는 선수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메모하는 게 또 하나의 작은 취미기도 했다. 운 좋게도 보키는 드라이버를 통해 투어에서 웨지를 제일 잘 치는 선수들과 친분을 두터이 하며 신뢰를 쌓았다. 그게 바탕이 되어 웨지를 만들 때도 도움이 됐다. 보키는 리 트레비노(Lee Trevino)와 그의 작은 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트레비노가 원하는 특정 바운스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라인드에 대해 점점 알아갔다. 결국 바운스, 솔, 그리고 웨지가 어떻게 작용하고 반응하는지 배웠고 이렇게 해서 웨지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996년과 1997년 수많은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시작해 시리즈 200, 300이 만들어졌다.

시리즈 400시리즈를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 그 이유는 PGA투어에서 처음 사용된 보키 웨지이기 때문이다. 보키는 세 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보키는 이때까지만 해도 투어에서는 드라이버 담당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드라이버 때문에 선수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었다. 그게 연결 고리가 되어 웨지 제작에도 도움을 받았다. 앤디 빔(Andy Beam)은 보키가 새로운 웨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보크(보키의 별명), 도대체 뭘 들고 있는 거야”라고 물었다. 보키는 앤디에게 웨지를 설명했다. 앤디는 바로 들고 나가서 첫 두 개의 샷을 칩인시켰다. 그는 “이게 필요하다. 내가 이거 바로 들고 대회에 출전해도 되지”라고 말했다. 결국 그 클럽을 들고 대회에 나갔다. 이게 보키 웨지의 시작이다.

보키는 웨지의 초창기를 회상하면 이렇게 말했다. “원맨쇼.” 처음엔 혼자 다 했다. 모든 웨지를 혼자 다 만들고 그라인드도 다 했다. 그는 “목•금•토요일을 그렇게 보내고 일요일에 투어장소로 떠났다. 선수들에게 웨지를 건네고 피드백을 듣고, 주문을 받아 다시 돌아와서 그라인드하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49일을 그렇게 하고 하루 쉬고, 또 29일을 그렇게 하고 하루 쉬고 그랬다”고 전했다. “물론 힘들기도 했지만 불평하진 않았다. 나는 이 일이 매우 즐거웠고 매 순간 행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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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밀드의 탄생

2002~2003년 사이의 일이다. 당시 타이틀리스트 선수였던 필 미컬슨이 보키를 찾아가 “볼에 스핀을 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알다시피 보키 웨지는 캐스팅 웨지다. 페이스도 당연히 캐스팅된 것이다. 매우 공격적인 그루브였음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였다. 보키는 “생각해둔 아이디어가 있었다. 작은 톱니를 사용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기기를 만들 시설과 자원이 따로 없어 기기공을 찾아가 톱니의 스펙을 알려주며 제작을 의뢰했다. 클럽 페이스에 톱니를 사용해 그루브를 넣은 웨지를 미컬슨에게 전달했다. 미컬슨은 대회에 바로 가지고 나갔고, 이를 본 선수들이 웨지의 스핀양을 보고 전부 요청했다. 결국 톱니바퀴를 통해 그루브를 넣은 웨지가 탄생하게 됐다. SM, 즉 스핀밀드(Spin Milled)라는 이름이 붙었고 시장에 출시된 것이다.

보키는 스스로를 클래식한 웨지 디자이너라고 말했다. 항상 매우 클래식한 헤드 형상의 웨지를 고집한다. 스퀘어에서도, 열었을 때도 눈에 편하고 좋아 보이도록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시리즈 200에서 높은 토 그리고 얇은 힐의 물방울 모양을 사용했다. 이유는 스퀘어와 열었을 때 두 가지 포지션에서 모두 좋은 룩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클래식한 눈방울 모양을 고집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수들이 다양한 바운스를 원했고 다양한 그라인드를 원했다. 한 선수를 위해 특별한 그라인드를 갈아주면 다른 선수가 그것을 보고 빌려 사용한 다음 같은 그라인드의 웨지를 만들어달라고 한다. 그렇게 계속 반복되면 특정 그라인드를 찍어낼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출시하게 된다. 선수들이 원하는 그라인드 이고 그들에게 호평을 받으면 분명 좋은 웨지다. 타이틀리스트의 청사진은 ‘전 세계 베스트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클럽’이다. 이건 웨지에도 해당한다.

타이틀리스트와 보키

보키는 인터뷰를 하면서 보키 웨지를 브랜드로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심지어 보키 웨지라는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항상 타이틀리스트라는 브랜드가 최우선이였다. 이쯤 되면 보키 브랜드를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매우 겸손하다. 보키 웨지의 철학을 물었을 때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타이틀리스트의 청사진과 똑같다. 뛰어난 선수, 최고급 품질의 제품을 만든다. 타이틀리스트 골프볼에서 이미 높은 기준을 세웠다. 웨지에서도 그 발자취를 따라 똑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최고급 품질의 웨지를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보키는 “나와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과 믿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전부 열정 가득하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매번 최고의 제품을 출시할 것이다”라고 진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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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키의 위엄
품질, 품질, 품질. 밥 보키가 내세운 단어다. 그리고 그는 “웨지의 품질과 룩이 선수들에게 스며들어 있어 신뢰를 준다”고 했다. 정말로 재미있는 것은 투어에서 한동안 알고 지낸 선수들이 보키에게 다가가 “이번에 새로운 웨지 출시됐다면서. 내가 뭘 원하는지 알지. 믿고 쓰는 것이니까 하나 만들어주지 않을래”라는 말을 던지고 간다는 것이다. 이미 그를 믿고 있는 골퍼들이 많다는 것이다. 투어 사용률 1위 웨지인 이유는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들 이렇게 이야기한다. “보키 웨지면 좋은 웨지다. 당연히 좋을 것이다”라고. 자칫 잘못하면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있는 건 맞다. 보키는 “참 멋진 것은 골프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키 웨지는 좋은 웨지라고 인정한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보키는 “이렇게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게 정말로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팀은 선수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여기엔 변함이 없다”고 확신했다. 또 하나의 일화를 소개하자면 저스틴 토머스가 이번에 광고 찍을 때였다. 토머스에게 던진 질문은 “왜 56도 F 그라인드를 사용하는가”였다. “질문이라고 나한테 물은 거야”라며 솔직히 말했다. 보키와 후계자인 에런 딜(Aaron Dill)이 사용하라고 해서 사용한다며. 그는 “내게 가장 뛰어난 퍼포먼스를 주는 웨지다”라고 말했다.
밥 보키는 “최고의 선수들의 메이저 우승을 돕는 것만큼 기분 좋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마스터스 깃발에 ‘밥, 내가 우승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맙다’는 문구의 기념 선물도 선수들한테 받기도 했다. 보키는 “조던 스피스는 아직도 나를 미스터 보키라고 부른다”고 했다. 알겠지만 이건 존중의 의미다. 보키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기분이 매우 좋다고 말했다. 이런 대우를 받은 것이 매우 좋다. 항상 남들을 뒷받침해 줬는데 이제는 그것에 대한 알아주고 인정해주니까 기쁘다.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다. 보키는 “매우 겸손하다. 보키라는 사람을 클럽 디자이너 보키보다 더 자랑스럽게 여긴다. 내겐 그게 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보키는 선수들에게 이렇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게 물론 기분 좋다. 그는 “하지만 이보다 더 나를 흥분시키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투어 대회장이나 다른 어디에서라도 보키를 알아보고 다가와서 “감사하다. 내 골프 게임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그래서 골프가 더 재미있다”는 말 한마디가 최고의 극찬이다. 매우 감동적이어서 그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보키를 보키로 만든 건?
보키가 그동안 배운 게 한 가지 있다고 했다. 만약 해줄 수 없다면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상대방에게 알려줘야 한다. 투어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신뢰, 존중 그리고 관계. 이 세 가지 단어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언급했다. 보키가 투어와 선수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성공한 이유다. 보키는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게 축복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반문했다. 왜 내가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지? 무엇보다도 보키를 이렇게 만든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보키가 아버지를 회상하면서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40년 세월이 지난 지금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비관하지 말고 일어나서 다시 도전하라”는 교훈이다. 타이틀리스트에 들어오기 전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잘되리라 생각했던 회사도 그리 잘되지 않아 아비에라에 집을 사겠다는 꿈도 이루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그 집을 사진 않았다. 하지만 계속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좇았다.
브랜드 보키에 대해서 보키는 “품질로 따지면 우리는 수준을 높여 놨다. 그리고 기준치가 낮아질 일은 분명 없다고 확신한다. 이 브랜드를 넘겨줄 때는 내가 지금 멘토링하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기준과 열정을 갖고 이 브랜드에 대해 존중하며 일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리고 겸손하게도 여전히 보키 브랜드라기보다는 타이틀리스트를 앞세운다.
보키가 사무실로 출근할 때 신호등이 계속 파란불이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행여라도 이 일이 재미없어지고 다 했다고 할 때는, 그래서 빨간불이 켜지길 원하면 바로 유턴해서 집으로 다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지 제품을 내놓으려고 만든 보키 웨지가 아니다. 그만의 열정, 사랑 그리고 인생이 담긴 작품이 보키 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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