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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타에서 다시 실감하는 아널드 파머의 빈자리 [Feature :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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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다이제스트] 63년 만에 처음으로 아널드 파머 없이 치르게 된 마스터스.

Copyright ⓒ 2017 톰 캘러핸(Tom Callahan) 하퍼콜린스 퍼블리셔스의 출판사인 하퍼의 허락을 받아 전재.

[편집자 주] 다음은 <아니 : 아널드 파머의 인생>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마스터스 4승 챔피언이었던 아널드 파머의 발자취를 골프계 주요 인물들의 입을 통해 다시 돌아보기 위해 마련했다.

필 미컬슨(Phil Mickelson)

“아마추어 시절에 내 첫 마스터스 연습 라운드 상대는 아널드였는데 그의 초청이었다. 아널드는 구경하는 사람들 쪽을 연신 쳐다보며 모두를 향해 미소를 지었고 양손의 엄지를 추켜세우면서 진심으로 눈을 맞췄다. ‘마치 저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돼.’ 그는 내게 말했다.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들이니까.’”

“1996년에 투어는 사인 구역을 따로 설정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결국 자리를 잡지 못했고 이듬해에 바로 없어졌다. 하지만 나한테는 효과가 있었고, 연습 일정을 잡는 데 도움이 됐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알다시피 연습이 플레이보다 더 버겁다. 집중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샷을 하는 횟수는 세 배쯤 더 많다. 연습하다 보면 사람들을 피하게 되는데 그러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므로 사인 지역을 따로 설정하는 건 내게 도움이 됐다. 그리고 아널드의 권유로 사인을 좀 더 알아보기 쉽게 하려고 노력했다. ‘가끔은 자네가 그 사람에게는 유일한 인상을 심어줄 시간이 몇 초에 불과하다네. 그 시간을 온전히 활용하도록 해. 우리가 골프를 하면서 생계를 이을 수 있는 건 바로 그 사람들 덕분이니까.’”

“우리는 늘 그를 따라 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가식이 전혀 없었다.”

벤 크렌쇼(Ben Crenshaw)

“한 번은 베이힐의 연습장에서 데이브 마와 나란히 샷을 하고 있었다. 아널드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워밍업을 하던 벤은 드라이버가 잘 맞지 않아 고전했고 스윙에 맞춰 드라이버를 조정하고 싶었다.) ‘데이브, 혹시 납 테이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을까?’ 내가 데이브 마에게 물었다. ‘농담하는 거야?’ 그는 대뜸 이렇게 대답했다. ‘저기 저 친구는 아침으로 납 테이프를 먹는다네!’ 아널드는 톱과 가위까지 완비된 도구 세트를 꺼냈고 순식간에 내 클럽의 헤드 무게를 새롭게 설정해줬다.”(파머가 벤에게, “수선비는 1달러 50센트야.”)

낸시 로페스(Nancy Lopez)

“나는 어려서부터 역사에 대한 감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구보다 아널드에게 관심이 많았다. 물론 당시에는 TV에서 여자 선수를 많이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조앤 카너는 내 우상이었다. 여자 선수가 TV에 나오면 아버지는 늘 ‘오늘은 저 선수들을 지켜보자’고 했다. 그리고 조앤은 단연 돋보였다.”(조앤 건더슨 카너의 전설을 다룬 <더 그레이트 건디>를 보면 그녀가 파머와의 드라이버 샷 대결에서 이겼던 일화가 나온다. 어떤 행사에서였다. 둘 다 1번홀의 티 박스에서 페어웨이를 가르는 장타를 날렸다. 아널드는 거들먹 거리는 걸음으로 앞에 있는 볼을 지나쳤고 멀리 있던 볼을 확인하려고 몸을 숙였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누가 요청했다면 그는 책상에서 일어서며 민망했던 순간을 기꺼이 재연했을 것이다. “나는 그 홀에서 버디를 했다. 파5홀이었다. 그녀는 이글을 했다.”)

“2016년 마스터스에 갔다.” 로페스는 말했다. “잭과 게리 옆에서 시타를 하지도 못할 만큼 몸이 안 좋은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속상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를 안아주려고 다가갔는데 그가 나를 포옹하려고 일어서지 않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거기서 나는 알았던 것 같다. 그는 팬들의 얘기를 하면서 목이 멨다. 그 생각을 하니 울고 싶어진다. 그가 언제나 팬들에게 모든 걸 내준 이유는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조던 스피스(Jordan Spieth)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해의 크리스마스를 몇 주 앞두고 나는 아버지와 플레이하기 위해 이틀 일정으로 오거스타내셔널을 다시 찾았다. 알다시피, 그린 재킷은 1년 동안만 간직하고 있다가 반납해야 한다. 그걸 간직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와 함께 챔피언스 라커룸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간 나는 그 기분을 만끽하며 평생 기억하려 했다. 오거스타내셔널의 챔피언스 라커룸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처음 보는 게 자주 있는 일이겠는가? 나는 전혀 몰랐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는데 나와 라커룸을 함께 쓰는 사람이 누구였을까? 아널드 파머였다.”

닉 프라이스(Nick Price)

“아내와 나는 영주권을 신청한 상태였는데 나는 미국 대통령을 몰랐기 때문에 아널드에게 추천서를 부탁하러 갔다. 정말이지, 그는 더없이 눈부신 추천서를 써줬다. 이민귀화국 담당자가 아래 적힌 아널드 파머의 이름을 보더니 곧바로 도장을 찍어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후로 몇 년동안 아널드는 나를 볼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닉을 이 나라에 들여온 사람이 바로 나야.’”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오거스타에서였다. 오두막에 앉아 있던 그가 나를 불렀다. 그는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닉, 자네를 보니 참 좋네.’ 그러면서 온종일 늙은이들에 둘러싸여 지냈다고 말했는데 나도 이른바 영계는 아니었지만 그를 보러 온 사람 중에는 가장 젊은 축에 속했다. ‘어린 친구들에게 나를 잊지 말라고 말해주게.’ 그가 말했다.”

톰 왓슨(Tom Watson)

“열다섯 살 때 캔자스시티에서 다발성 경화증 치료를 위한 행사가 열렸는데 거기서 그와 플레이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무척 신이 났다. 코치였던 스탠 서스크도 함께했고 나는 한동안 상당히 괜찮은 플레이를 펼쳤다. 실제로 전반 9홀에서 아널드와 똑같이 34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후반에는 그가 34타를 기록했지만 나는 40타였다. 그는 적당히 칭찬을 해줬고 더없이 너그럽게 나를 치켜세웠지만 어려서 봐준다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를 진짜 골퍼로 대접해준 것이다. 나는 그날 많은 것을 배웠다.”

“마스터스 주간에 열린 마지막 챔피언스 만찬에서 그는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몸이 그런 상태에 처했다는 사실을 못마땅해하는 티가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그 상황에 당당히 맞섰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는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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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매킬로이(Rory McIlroy)

“유럽 출신에게는 조금 다르다. 우리에겐 세베가 아널드였다. 모두가 그렇게 얘기하는데 그게 사실이다. 아널드가 골프를 대중적으로 만들었고 세베는 우리에게 골프를 안겨줬다. 어릴 때는 아널드를 잘 몰랐지만 미국에 와서 그가 게임에 공헌한 점과 투어에 미친 영향을 알고 나자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토너먼트에 참가해서 그와 그의 공헌을 기리는 건 큰 영광이었다. 아널드가 없었다면 세베가 있었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똑같은 세베는 아니었을 게다. 우리도 전부 지금의 우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골프계 전체가 달랐을 거다.”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이게 내 전화번호니까 전화하게.” 파머는 매킬로이에게 말했다. “파머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제게 필요한 걸 이미 다 주셨어요.” 로리는 그에게 말했다.)

제프 오길비(Geoff Ogilvy)

“그게 뭐가 됐든 자신이 하는 일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그걸 보는 사람들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게임의 성격 탓인지 골퍼 중에는 플레이를 전혀 즐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다. 골프 코스에서 그는 늘 재미있게 노는 아이 같았다. 그는 플레이를 좋아했고 뭘 하든 마찬가지였다. 그에 따른 성공은 골프를 하면서 누리는 즐거움의 행복한 부산물일 뿐이었다. 그는 골퍼였다.”

“골프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던 초창기에는 타이거를 지켜보는 게 무척 즐거웠다. 하지만 모든 게 악화하기 전에도, 그에게서는 이미 즐거움이 사라지고 없었다. 여전히 실력은 좋았고 우승도 했지만 예전과 같지 않았다. 그는 골프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싫어한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지만, 즐거워서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냥 그걸 하기 위해 하는 것뿐이었다. 파머는 실력을 잃은 후에도 끝끝내 즐거움은 잃지 않았다.”

타이거 우즈(Tiger Woods)

“그에게는 골프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해 언제든 얘기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기꺼이 시간을 내서 귀를 기울이고 솔직하게 대화를 한 다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상대방의 긴장을 풀어주고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아널드는 ‘아널드 파머’로 사는 것을 즐겼다. 그걸 그보다 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타이거는 아버지를 여의었을 때 자기 자신을 잃었던 것 같다. 나는 그가 선수로서 재기하기보다 인간으로서 재기하길 바란다.” 파머는 말했다.)

버바 왓슨(Bubba Watson)

“허리가 조금 뭉친 느낌이었고 올림픽을 앞두고 할 일이 천지였던 터라 베이힐에는 출전하지 않는 것이 책임 있는 태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널드를 존경하는 마음이 아주 강해서 차마 전화로는 통보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사무실로 직접 찾아갔고 케일럽을 데려가면 좀 나을까 싶어서 아이를 데려갔다(왓슨의 아들인 케일럽은 당시 네 살이었다). 하지만 아널드는 언제나처럼 모든 걸 편하게 받아들였다. 베이힐이나 토너먼트, 골프에 관해서는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그는 케일럽과 인생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쳐 보였다. 나는 그에게 에너지를 주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응원해주려고 했다. 그가 내게서 그걸 필요로 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케일럽을 들어서 무릎에 앉힌 건 그였다. 내가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연출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물었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그리고 나중에 전화를 걸어서 ‘소셜 미디어에 사진을 올려도 괜찮냐’고 물어봤다.” 케일럽과 왕.

피터 앨리스(Peter Alliss)

“다들 그가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엔 그냥 그들을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고 나처럼 심술궂은 사람조차 조금은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행복이란 잔으로 인생을 마셨다.”

제임스 가너(James Garner, 2014년에 사망)

“우리는 단순한 지인이 아닌 친구였다. 물론 다들 그렇게 말할 테지만. 아니가 나를 좋아한 건 내가 TV에 나오는 카우보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는 TV 드라마 속 카우보이들을 좋아했고 그도 비슷한 부류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하지만 정작 클린트는 아널드 파머가 되고 싶었을 것 같다.”

더글러스 노위키(Douglas Nowicki, 러트로브의 교구 신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할 기회가 있었다. 자리를 마련한 대주교가 나를 펜실베이니아 주 러트로브의 대수도원장이라고 소개하자 교황은 곧바로 이런 반응을 보였다. ‘아-널드 파-머.’”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내가 그에게 자유 훈장을 수여한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미국 스포츠에 미친 영향력뿐만 아니라 미국인의 심성에도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었다.” 파머는 의회의 금메달도 받았는데 이 메달의 최초 수상자는 1776년의 조지 워싱턴이었다.
(“떠도는 얘기와는 달리 나는 조지 워싱턴을 몰랐다. 하지만 그를 만났다면 악수를 하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당신이 처음이었고 내가 끝은 아닐 겁니다.’”)

글_톰 캘러핸(Tom Calla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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