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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능가할 수는 없다 [Feature :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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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다이제스트] 에린힐스가 마침내 US오픈을 유치했다. 처음부터 빠짐없이 그 과정을 지켜본 론 휘튼의 입을 통해 놀아운 여정을 직접 들어보자.

6월이면 위스콘신의 조그만 에린이라는 고장에 주름 잡힌 거대한 담요처럼 펼쳐진 에린힐스라는 골프 코스에서 처음으로 US오픈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이번을 시작으로 US오픈은 앞으로 계속해서 이곳을 찾게 될 것이다. 내가 이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건, 이곳이 제때에 제자리를 찾은 제대로 된 코스이기 때문이다.

에린힐스는 개인이 소유한 퍼블릭 골프 코스인 만큼,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시장에서 저변 확대를 추구하는 USGA의 대중주의적 입장과도 맞아떨어진다. 코스는 챔피언십 골프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약 264만m2의 광활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개인 관람석이나 홍보용 임시 건물, 용품 텐트를 설치할 공간도 넉넉하다. 갤러리도 10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지만 USGA에서는 그렇게 많은 인원을 원치 않는다. 원활한 이동을 확보하기 위해 입장권 판매는 3만5000장으로 제한했다. 이 코스는 진정한 테스트 무대가 될 것이다. 물론 백 티에서의 길이가 8348야드로 어처구니없을 만큼 길지만, 그 길이에서 플레이할 의도로 만든 코스는 아니다. US오픈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셋업의 길이는 7693야드이지만, 홀마다 융통성이 크기 때문에 요일에 따라 더 짧아질 수도 있다. 1992년의 페블비치 이후 파72로 치러지는 첫 번째 US오픈이며, 최소한 두 곳의 파5홀에서는 제아무리 장타자라도 투온을 하려면 페어웨이 우드를 사용해야 할 수도 있다.

모든 샷을 굴려서 그린에 올릴 수 있는 진정한 링크스가 아니라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높이 솟은 페어웨이와 높이 솟은 그린도 있는데 그건 의도한 바다. 에린힐스에서는 바람이 불 때가 많고, 그 바람 속에 하늘로 날아가는 샷을 잘 다루는 것이 플레이의 관건이다. 페어웨이는 곤두박질쳤다가 솟아오르고, 푹 꺼졌다가 뚝 떨어지며, 평평한 라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벙커는 상황의 만회보다 탈출을 우선시하게 하는 진정한 해저드다. 그린은 오로지 벤트그라스인데, 이런 적이 언제 있었나 싶을 만큼 유일하며, 반질반질하고 매끄러운 표면에서는 수많은 버디 퍼팅이 나올 것이다.

맞다. 나는 에린힐스의 거침없는 치어리더이고, 나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는데 이곳의 창조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아니, 발굴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에린힐스는 위스콘신의 구혈-빙퇴석 지형 속에 영겁의 시간 동안 묻혀 있었고 우리는 단지 그걸 파냈을 뿐이니까.

내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계기

일단 이건 제대로 하고 시작하자. 나는 허잔, 프라이와 함께 에린힐스를 디자인한 공동 설계가다. 우리는 2000년에 함께 이 프로젝트에 입찰해서, 잭 니클라우스와 아널드 파머 그리고 톰 도크의 디자인 회사를 제치고 일을 따냈다. 나중에야 어깨너머로 대충 살펴보며 듣기 좋은 말이나 하라고 마이크와 데이나가 영입한 것도 아니고, 한두 번 현장에 들러 팔을 휘두르는 사진이나 찍는 설계 자문으로 고용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언젠가 도크가 한 말을 빌리자면, 단순히 “마이크 박사의 부족한 재능을 채우기 위해” 함께 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톰이 누군가의 등을 토닥이고, 또 다른 누군가의 뺨을 후려치게 될지는 두고 보자.)

마이크와 데이나에게 보조역은 필요 없었다. 그들은 내가 아는 최고의 재능과 상상력, 지식과 열정을 두루 갖춘 골프 설계가들이다. 그들의 작품이 그걸 말해준다. 골프다이제스트 코스 순위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한 칼루사파인스와 네이플스내셔널은 둘 다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에 있지만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마찬가지로, 골프다이제스트가 1990년대 초에 처음으로 선정한 최고의 신설 캐나다 코스로 뽑힌 데블스풀핏과 데블스페인트브러시도 나란히 자리 잡고 있지만 서로 닮은 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골프 설계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가 대체로 인기 위주이기 때문에 마이크와 데이나는 미국에서 실력에 상응하는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인기를 독차지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인터넷에는 인기 높은 설계가가 맡았다면 에린힐스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을 거라는 자칭 평론가들이 넘쳐난다. 이걸 조금만 짚고 넘어가자. 마이크와 데이나는 2015년 US오픈의 개최지였던 체임버스베이의 최종 다섯 후보군에 포함됐다. 만약 상황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지금 그들은 3년 사이에 US오픈을 개최한 코스를 두 곳이나 이력에 올린 설계가가 됐을 것이다.

우리가 에린힐스 입찰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한 건 마이크와 내가 1970년대 중반부터 친구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에 쉰 살을 바라보며 인생이 저물어가는 기분에 시달리던 나는 코스 설계를 시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이크와 데이나는 주저 없이 나를 믿어줬다. 우리가 함께 추진하기로 한 프로젝트가 결국 US오픈의 개최지가 된 건 순전히 운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운도 결국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시시콜콜 늘어놓는 이유는 에린힐스를 거론할 때 내가 객관적일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나는 현장을 100번도 넘게 방문했다. 모든 홀에 공을 들였다. 내 손으로 벙커를 파고, 몇몇 그린은 내가 직접 표면을 다졌다. 큰 문제와 세부사항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니 에린힐스에 대해서는 편향되고 감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 디자인에 내 유전자가 들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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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철학

“예산이 얼마인지는 관심 없어요.” 데이나가 말했다. “신을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에린힐스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이보다 더 정확히 설명해줄 말은 없다. 좋든 나쁘든, 태고 이래 최고의 골프 코스 설계가는 자연이라는 걸 보여주자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마이크와 내가 부지를 처음 봤던 2000년 6월에는(데이나는 2001년 가을에 현장을 처음 찾았다) 풀이 수북하게 자라난 언덕진 초원이었고 군데군데 나무들이 빽빽했다. 하지만 그때조차 우리는 그곳이 자연적으로 지닌 찬란한 윤곽을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로서는 빌 쿠어와 벤 크렌쇼가 네브래스카 중부에 완성한 미니멀리즘의 걸작이자, 미국에서 가장 자연적인 레이아웃으로 손꼽기에 손색이 없는 샌드힐스골프클럽에 필적할 작품을 만들어볼 기회였다. 우리는 최소한의 흙만 옮겨서 기억에 오래 남고 걸어서 플레이할 수 있으며, 이제껏 그 누구도 본 적 없고 플레이해본 적도 없는 홀을 만들고 싶었다. (혹자는 우리가 마지막 사항에 지나치게 집착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또 우리는 고효율, 저비용을 추구하기로 했고 그렇게 했다. 에린힐스를 짓는 데 사용한 돈은 300만 달러에도 못 미치며, 그중 3분의 1 정도는 관개시설에 들어갔다. 그 이후에 에린힐스의 다른 시설에 상당한 돈이 쓰였지만 코스 자체는 298만 달러였다.

레이아웃(18홀과 내기 결정을 위한 파3의 보너스 홀)이 결정되자, 마이크는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코스를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기존의 잔디를 깎은 후에 제초제를 뿌리고, 관개시설을 위한 홈을 파고, 말라 죽은 풀 더미에 바로 씨앗을 뿌렸다. 능선이며 주름, 언덕과 도랑은 거의 그대로 보존했다. 그린을 만들 자리를 파낸 다음 순수한 모래로만 구축했고, 거기서 나온 흙은 다른 곳, 주로 티잉 그라운드를 만드는 데 활용했다. 불도저도 네 홀의 일정 부분만 다듬는 등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모두의 협력으로 이뤄진 결과

나는 이때의 경험을 통해 골프 설계가가 사실상 너무 많은 공을 독차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계가가 개념을 잡는 건 틀림없지만, 골프 코스를 짓는데는 수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에린힐스는 빌 큐블리가 시공을 맡았는데, 위스콘신 토박이인 그의 회사는 이 분야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연하게도, 근처에 있던 그의 증조모 소유의 농장에서 헛간을 가져다가 연습장 옆에 재조립해서 현재 캐디 오두막으로 사용하고 있다.) 큐블리의 팀에는 프로젝트 매니저인 커트 그리저, 건설 감독인 스티브 포슬러(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그는 안타깝게도 2014년에 마흔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폴 키케이퍼, 크리스 화이트, 수습인 브렌던 돌런 그리고 과테말라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열두어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었다. 물론 허잔 / 프라이의 직원인 제이슨 스트라카도 빼놓을 수 없는데 초반 레이아웃 작업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원래의 코스 감독이었던 제프 로티어와 그의 후배(현재의 수석 감독)인 잭 라인킹은 모두 세계적인 휘슬링스트레이츠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적은 예산으로 페스큐 위주의 골프 코스를 조성하기 위해 영입했다.

그리고 로드 휘트먼는 수석 셰이퍼였다. 로드는 뛰어난 골프 설계가인데 2005년에는 잠시 일을 쉬는 중이었다(노바스코샤에 있는 캐벗링크스가 그의 대표작이다). 불도저 위의 예술가였던 그는 그린과 주변의 경사지를 매끈하게 연결하고 인공적으로 조성한 티잉 그라운드도 빙하기에 형성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설비 팀의 내근 직원이었던 로버트 오테가를 실력 있는 불도저 기사로 만들기도 했다. 조그만 증기 삽 같은 기구로 대부분의 벙커를 판 크리스 헌트도 빼놓을 수 없다.

총지배인으로 내정됐던 사람은 영화에서 흔히 교활한 회계사로 나오는 인물 같은 인상이었다. 골프 코스를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위해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를 그만뒀다. 그가 땅을 알아보고 사업가를 물색해서 땅을 매입하도록 설득했으며 도크에게 설계를 맡으라고 설득하다가 우리가 그 프로젝트를 맡은 후에는 우리의 대변인이 되었다. 모든 인허가 업무를 맡아서 성공적으로 처리했으며, 설계와 관련된 대부분의 회의에 참여했고, 모두가 제때 보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는 총지배인으로서 클럽을 운영할 꿈에 부풀었지만 완공을 눈앞에 둔 어느 날 집에 갔다가 알려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자신의 아내를 살해했다. 그는 결국 살인죄를 시인했고 현재 위스콘신 형무소에서 장기수로 복역 중이다. 내가 여기서 그를 언급한 건 에린힐스의 탄생에 그가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지만 이제 성인이 된 그의 자녀를 고려해서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우리를 고용한 밥랭(Bob Lang)인데, 그는 축하 카드와 달력과 각종 기념품을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는 준재벌이었다. 그의 랭컴퍼니는 에린에서 남쪽으로 36km 떨어진 델라필드에 본사가 있다. 밥은 그곳의 도심을 매력적인 19세기 스타일의 휴양지로 재건했는데, 이를테면 위스콘신판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라고 보면 된다. 그의 사무실에서는 귀중한 남북전쟁의 유물이 눈에 띄었는데, 에이브러햄 링컨의 초상화 컬렉션과 건국 이후 12대 대통령까지의 사인 액자도 벽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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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과 타협

밥은 그렇게 열정적인 골퍼는 아니었다. 푸르고 울창하고 나무들이 도열한 밀워키의 브라운디어골프코스를 염두에 두고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브라운디어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 부지와는 맞지 않았다. 마이크와 데이나는 밥의 안목을 키우는 임무를 내게 넘겼다. 나는 그를 데리고 캔자스의 프레리듄스에 갔다가 샌드힐스에 보냈다. 밥은 그곳의 풍경을 좋아하지 않았다. 샌드힐스에는 나무가 없고 두 코스 모두 녹색보다는 갈색에 가까웠다. “내가 원하는 건 아일랜드예요. 에메랄드그린을 원한다고요.”

“아일랜드는 녹색의 색조만 마흔 가지에 달해요.”

내가 말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은 이해했다. 밥은 나중에 에린힐스의 미디어 광고에 마흔 가지 색조의 그린이라는 카피를 활용했다. 밥은 엉성하게 알아서 위험한 사람의 전형이었다. 그는 여섯 개의 파5홀을 갖춘 파73의 코스를 원했다. 우리는 파는 부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만, 라운드가 여섯 시간씩 걸리기를 원치 않는다면 파5홀 여섯 개 중 두 개는 덜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15분 간격의 티 타임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우리는 한 시간에 네 팀의 포섬으로는 돈을 벌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긴 골프 코스를 갖고 싶어 했다. 그런 건 남근숭배의 일종이라는 내 말에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비공식적으로 거리를 측정해봤더니 우리의 의도대로 챔피언십용 ‘블랙 티’를 구축할 경우 7911야드가 나왔다. 밥은 그 이상을 원했다. 그는 자신의 목표인 8800야드를 채우기 위해 ‘백 블랙’ 티를 설치하자고 했다. 우리는 결국 항복했고 몇 군데의 위치를 설정한 후 관개시설을 연결했지만 앞으로 30년쯤 후에나 사용될 거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곳에 마커를 설치하거나 스코어카드에 표시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코스를 오픈한 후에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현지의 프로와 아마추어 골퍼들을 대상으로 하는 백 블랙 챌린지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이었다. 대회를 위해 셋업한 코스의 길이는 8300야드가 넘었고 파는 75(내기용 보너스 홀까지 포함해서)였으며 우승자의 스코어는 81타였다. 나는 신설 퍼블릭 골프 코스의 홍보 전략으로는 최악이라고 그에게 말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얼마 후에는 ‘에린힐스, 겁쟁이는 사절’이라는 문구를 새긴 모자를 클럽하우스에서 팔기 시작했다.

밥은 설계에도 적잖은 기여를 했다. 그는 오르막을 따라 평평한 그린에 도달하는 파3의 6번홀을 찾아냈고 그 덕분에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넓지만 야트막하게 움푹 파인 그린으로 내려가는 또 다른 파3을 플레이할 수 있게 됐다. 원래는 우리의 7번홀이었다. 델 홀(아일랜드 라힌치에 있는 델의 이름을 따서 붙인)이라고 불린 그곳은 커다란 흰색 바위(밥은 그 위에 페인트로 휘튼이라고 썼다)를 겨냥해야 하는 블라인드 파3홀이었는데, 보이지 않는 깃대를 향해 정확한 라인을 알 수 있도록 바위를 매일 옮겨야했다. 브래드 클라인이라는 평론가는 우리의 코스가 ‘에러’ 힐스라면서, 이 홀을 ‘거대한 타코 빵’이라고 조롱했다. 그건 정말 완벽한 묘사라고 나는 늘 생각했다.

밥은 또 16번홀이 클럽하우스에서 너무 멀다며 지나치게 긴 파5홀을 두 개 연이어 놓지 않고서는 되돌아오기 힘든 지점에 놓자고 열심히 우리를 설득했다. (밥은 파6홀을 하나 만들면 된다는 해결책을 진지하게 제시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그의 기분을 맞춰주면서 함께 풀밭으로 나갔다. 그리고 최근에 나무를 베어낸 언덕 위에서 독특한 구혈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짧은 파4홀인 15번홀의 그린이 놓였다. 후반 나인 초반의 파3홀을 포기하고, 자연이 조성해준 멋진 우묵한 그린 덕분에(펀치볼보다는 배 모양의 그레이비소스 그릇을 닮은) 새로 파3인 16번 홀을 만들면서 연이은 파5홀로 라운드를 마무리하는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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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문제

밥은 예산을 틀어쥐고 실무를 진두지휘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건설 예산의 승인을 연거푸 거부했다. “골프 코스 하나 짓자고 회사의 절반을 팔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파트너를 찾아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는 회원제 애틀랜틱골프클럽의 설립자인 로웰 슐먼(Lowell Schulman), 위스콘신에 블랙울프런과 휘슬링스트레이츠를 소유하고 있는 허브 콜러(Herb Kohler)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는 두 사람을 각각 방문해서 소액 투자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들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2002년 5월28일에 쓴 이메일을 보면 당시에 내가 느꼈던 좌절감이 역력하다. “밥, 이런 말을 해야 하는 나를 용서해주세요. 당신이 현장에서 나무를 베어 넘기면서 골프 홀을 만드는 동안, 나는 코스를 지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서 의중을 떠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처지가 바뀐 것 같네요.”

그해 여름에는 선박 화물 노동자들의 시위로 인해 그의 회사 제품 운송에 차질이 생겼고, 밥은 아무래도 코스를 포기해야겠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허잔을 만나 밥에게 US오픈의 운을 떼보자고 제안했다.

“USGA가 위스콘신 중부의 외딴 퍼블릭 코스에 US 오픈을 유치할 리 없어.” 마이크는 말했다.

“그거야 자네도 알고 나도 알지.” 내가 말했다. “하지만 밥은 그걸 모르잖아.”

마이크의 묵인하에 나는 밥을 만났고 에린힐스를 짓도록 허락만 해준다면 US오픈을 개최하기에 탁월한 코스가 될 거라고 말했다. 나중에 밥은 우리가 자신의 의중을 정확히 꿰뚫었다고 말했는데, 그가 클럽의 부지를 처음 본 1997년부터 US오픈은 그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크와 데이나 그리고 나는 그가 그런 꿈을 우리에게 피력한 기억이 없지만, 밥은 2001년부터 그 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라는 그의 허락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예산은 지원되지 않았다. 코스 건설을 위해 필요한 마지막 인허가를 확보한 건 2003년 6월이었지만 밥은 확실한 보장을 원했다. 그래서 2003년 7월24일에 나는 당시 US오픈의 담당 이사였고 지금은 USGA의 경영 이사이자 CEO인 마이크 데이비스에게 편지를 써서 “에린힐스가 언젠가는 휘슬링스트레이츠의 스트레이츠 코스보다 대회를 개최하기에 더 나은 코스가 될 것”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유일한 함정은 무심하게 덧붙였다. “…우리 코스는 아직 건설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데이비스에게 우리와 함께 부지를 돌아보고 에린힐스를 챔피언십급으로 만들기 위한 제안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현장 사진을 몇 장 동봉했다.

데이비스는 9월30일에야 답을 했다. “가능하다면 기쁜 마음으로 방문하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일간 휘슬링스트레이츠에 갈 일이 있으므로 어쩌면 일정을 조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05년 워커컵의 셋업을 위해 시카고골프클럽에도 잠시 들를 예정입니다.” 나는 밥이 10월이나 11월에 그에게 현장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답신을 보냈다. 방문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11월 초에 밥은 우리에게 사업 계약을 한 건 마무리 지었고 이제 에린힐스 부지의 소유권을 모두 획득했다고 말했다. (그가 부지를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그러나 여전히 건설을 위한 재원은 부족했다. 2004년의 봄과 여름은 최종 레이아웃에 대해 논의하고 최종 예산에 대해 논쟁하느라 속절없이 흘러갔다.

마이크와 데이나는 쿠어 & 크렌쇼의 벙커 권위자인 제프 브래들리(Jeff Bradley)를 데려와서 에린힐스에 그의 독특한 벙커 스타일을 가미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내가 반대를 한 까닭은 브래들리를 영입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쿠어 & 크렌쇼와의 인연이 워낙 깊어 평론가들이 우리더러 그들의 벙커 스타일을 따라 했다고 비난할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나는 에린힐스는 독특하고 이곳만의 벙커 스타일을 추구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 해 뒤에 마침내 벙커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세 가지 변화를 주었다. 작은 항아리 벙커에는 케틀홀(구혈) 벙커라는 이름을 붙였다. 블로-아웃 벙커는 대부분 데이나가 만들었는데, 높은 모래언덕에서 바람이 파낸 것처럼 보였다. (14번홀의 페어웨이 왼쪽에 있는 커다란 벙커를 비롯한 몇 군데는 실제로 자생한 것이며 그 밖에 다른 곳을 팠을 때 빙하석이 나오면 모래를 실어다 채웠다.) 캔자스플린트힐스의 침식 패턴을 연구한 후에 내가 스케치한 ‘침식 벙커’는 가느다란 손가락 같은 형태가 내리막으로 뻗어나가다가 서로 다른 깊이의 불규칙한 바닥으로 면적을 넓히는 형태다. 현재 코스에는 이 종류의 벙커가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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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다

2004년 7월에 데이비스로부터 휘슬링스트레이츠에서 열리는 PGA챔피언십 기간에 에린힐스에 잠시 들르겠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의 방문을 앞두고 밥과 나는 번갈아 트랙터를 몰며 각 홀의 티와 페어웨이와 그린을 표시하기 위해 길게 자란 대초원의 잔디를 깎았다. 그런 다음 끝에 깃발을 묶은 빗자루를 그린 중앙에 꽂았다. 그랬더니 흙을 한 삽도 푸지 않았건만 어엿한 골프 코스처럼 보였다.

데이비스는 당시 USGA의 농경 책임자였던 팀 모라한(Tim Moraghan)과 함께 8월10일에 현장을 찾았다. 그들은 네 시간 반에 걸쳐 우리와 함께 18홀을 모두 살펴봤고 우리의 질문에 대답하며 의견을 제시했다. 그린은 작게 유지하고 홀의 위치 선정을 방해하는 가파른 경사는 피하고 티를 확장할 공간을 확보할 것. 그리고 서비스 차량을 위한 동선을 고려하고 빠르고 단단한 플레이 조건을 보장할 잔디를 사용할 것.

언덕 위에 있는 10번홀 그린에 도착했을 때 데이비스는 그 뒤의 가파른 구렁과 그 너머의 평평한 고원을 눈여겨봤다. “저길 좀 봐요. 자연적으로 조성된 비아리츠 그린처럼 보이는군요.” 나는 다음 날 다시 10번홀에 나가서 자세히 살펴봤다. 왜 그때까지 이걸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건 실제로 자연적인 비아리츠였고, 풀을 깎고 모양을 잡았더니 마이크와 데이나도 마음에 들어 했다. 결국 그곳은 672야드의 파5홀 끝의 언덕 위로, 가운데에 깊은 도랑이 지나가는 길이 77야드의 그린이 됐다. 우리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USGA 사람들이 다녀가고 일주일이 조금 지났을 때 밥은 우리 모두에게 건설 비용을 마련했다는 편지를 보냈다. “에린힐스를 짓기 위한 여정의 다음 단계를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9월15일에 공사를 시작했다. 데이비스는 다음 달에 다시 찾아왔는데, 이번에는 당시 USGA의 경영 이사였던 데이비드 페이(David Fay)와 동행했다. 곳곳을 구석구석 살펴본 후에 페이는 밥에게 말했다. “이곳이 6월에 어떤 플레이 조건을 갖추는지 지켜봅시다.” 그러면서 2007년 US여자아마추어퍼 블릭링크스챔피언십의 개최를 제안했다. 밥은 그 자리에서 제안을 수락했고 기쁜 마음으로 우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당황했다. 시간이 채 3년도 남지 않았다. 본격적인 공사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중간에 악천후로 인해 공사가 한동안 지연되기라도 하면 제때에 준비를 마치는 건 불가능했다.

다행히 페이는 얼마 후에 전화를 걸어서 말을 잘못했다고 정정했다. 2007년 대회는 이미 켄터키주 렉싱턴에 있는 키어니힐로 정했으니 우리 코스에서는 2008년 대회를 개최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밥은 동의했고 우리는 모두 한숨을 돌렸다. 아주 조금이지만.

2005년 봄에 다시 돌아갔더니 공사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관개용 연못 조성에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더 심각한 건 착정이 지연된 탓에 연못을 채울 물이 없다는 것이었다. 잔디 씨앗을 뿌릴 시한이 지나갔고 결국 그 작업은 2006년 봄으로 넘겼다.

다른 문제도 복잡했다. 2년 전에는 밥이 비탈을 깔끔하게 다듬기 위해 현지의 일꾼들을 고용했지만, 이제는 더는 나무를 베어낼 수 없다고 버텼다. 데이나는 ‘완전한 일소’를 천명했지만, 밥은 몇몇 페어웨이 중간에 나무의 군집을 조성하는 건 전략적으로 탁월한 요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결국 몇 달에 걸쳐 한 홀에서 나무를 제거하는 대가로 다른 홀에 몇 그루를 남겨놓자는 식으로 그와 지루한 타협을 벌였다.

에린힐스는 2006년 8월에 공식적으로 개장했는데, 잔디의 상태를 감안하면 너무 일렀지만 밥은 수입을 거두고 싶어 했다. 평가는 엇갈렸다. 골프 매거진은 이곳을 그해 최고의 신설 코스로 꼽았지만 위스콘신 골퍼는 이곳에 USGA 대회를 유치하는 건 “신생아에게 미스 아메리카 왕관을 씌우는 격”이라고 했다.

그런데 왕관이 두 개가 됐다. 2008년 2월에 USGA는 2011년 US아마추어를 에린힐스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밥은 US오픈도 계약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에 대한 발표는 2년 후에 할 거라고 내게 귀띔했다. 기자로서 그런 특종을 뭉개려니 힘들었지만 그렇게 하길 잘했다 싶은데 밥의 말이 정확한 사실이었는지 더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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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의 반전

위민스퍼블링크스는 2008년 6월에 열렸다. 토너먼트를 앞두고 15일 동안 내리 비가 내렸다. 코스의 배수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지하수의 수위가 너무 높아진 나머지 저지대는 그야말로 연못이 되어버렸다. 블라인드 파3홀인 7번홀은 제외되었고 내리막인 보너스 홀을 9번으로 대체했다. 몇몇 골프 기자들은 페어웨이의 성긴 잔디를 보며 혀를 찼다. 잔디가 온전히 자랄 수 있었던 기간은 1년밖에 없었다.

페스큐 잔디가 완전히 자라려면 몇 년이 걸린다. 나는 현장에서 대회를 지켜봤지만, 집에 돌아와서야 밥이 그해 가을에 USGA의 US아마추어 기준에 맞춰 코스를 ‘개선’하기 위해 적잖은 설계 변경을 계획 중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2년밖에 안 된 코스의 성형수술’은 들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나는 데이비스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는 아마추어는 시험 운행이니만큼 코스 변경 논의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미루는 게 옳다는 말을 밥에게 하겠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데이비스는 그 증거로 밥의 이메일 타래를 내게 보내줬다. 그걸 보니 밥이 마이크와 데이나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변경안을 보여줬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나는 거기서 배제되어 있었다.

허잔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곧 리모델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시인했다. “밥이 자네한테는 개입하지 말라고 말해달라더군. 자네가 변화라면 무조건 반대하면서 일을 지연시키려 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나는 발끈했다. 나는 기자다. 항상 편집을 당한다. 그건 아무렇지 않다. 하지만 실전에서 제외되는 건 기껍지 않았다. 나중에 데이나와 얘기를 하는데 그는 US오픈을 확정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US오픈을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뭐든지 할 거야.” 그는 말했다.

내가 동의하지 않은 한 가지 변화는 델 홀의 제거였다. 밥이 나중에 그걸 없앤 이유는 USGA에서 그걸 US오픈에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심지어 지금도 데이비스는 자신이 블라인드 파3홀에 아무런 편견이 없으며, 아마추어 대회에서 선수들이 그 홀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밥은 허잔이나 프라이와 상의도 없이 델 앞쪽의 비탈을 불도저로 밀고 기존의 파4였던 8번홀을 새로운 7번홀로 바꾸면서 백티를 새로 조성해 파5홀로 만들었다. 밥은 기어이 파73의 코스를 갖게 됐다.

기존의 9번홀은 8번홀이 되었다. 고약한 침식 벙커에 둘러싸인 길쭉한 그린을 향해 내리막을 그리는 짧은 파3의 보너스 홀은 9번홀이 되었다. 아마 코스를 찾은 사람들이 가장 사진을 많이 찍는 홀이 바로 이곳일 것이다.

리모델링이 진행되는 사이에 에린힐스의 웹사이트에서 내 이름과 약력이 사라졌다. 그러더니 에린힐스의 대변인이 내 상사인 제리 타디에게 론 휘튼은 더는 에린힐스와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나는 단순히 실전에서 제외된 게 아니라 팀에서 방출됐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처음 그 프로젝트를 위해 면접을 할 때 나는 밥에게 골프다이제스트의 100대 코스 선정 작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내가 만약 이곳의 설계에 참여한다면 에린힐스는 골프다이제스트의 리스트에 포함될 수 없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때만 해도 밥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2008년이 되자 그는 느닷없이 100대 코스 열병에 시달렸다. 타디는 첫 번째 제안을 거절했지만, 에린힐스가 US오픈을 유치하자 2013년에는 이익의 충돌이라는 모양새를 극복하고 마음을 바꿨다. 2015년에 에린힐스는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올해는 미국 100대 코스 44위 그리고 미국 100대 퍼블릭 코스 순위에서는 9위에 랭크됐다.

마이크와 데이나는 2008년 늦가을에 리모델링 작업을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2009년 봄에 새로 손을 보는 바람에 시즌 개장을 7월까지 미뤘다. 에린힐스는 그해 봄에 오랜 가뭄에 시달렸다. 페스큐 페어웨이에는 풀이 돋지 않았고, 에린힐스가 불황을 이겨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마지막 방문 이후 1년을 조금 넘긴 2009년 7월에 나는 그곳을 직접 보기 위해 차를 몰고 에린힐스로 향했다. 밥은 그곳에 없었다. 코스를 걷자니 우울해졌다. 퍼팅 면은 괜찮았지만 페어웨이는 심하게 방치된 인상이었다. 밥이 늘 ‘페스큐의 바다’라고 불렀던 러프는 잡초와 엉겅퀴투성이였다. 인부들은 코스를 내버려둔 채 더 많은 벙커를 파고 새로운 카트 도로를 추가하느라 분주했다.

밥이 독자적으로 100개 이상의 벙커를 추가한 게 분명했는데 아마추어 티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열 두 개는 마이크와 데이나가 메웠고 나머지는 다시 조성했다.) 그곳을 다녀온 다음 날 아침에 밥으로부터 짧은 이메일이 도착했다. “몇몇 풍경에 가슴이 아팠을 겁니다.” 그는 말했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환상적이라고 평합니다. 그가 척도예요.”

나는 밥에게 통렬한 답장을 보냈다. “당신의 마구잡이 행동이 에린힐스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은 마이크 허잔과 데이나 프라이의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대부분의 벙커를 그들의 지식이나 지시 없이 만들었어요. 그 코스는 엉망이에요. 개장을 준비하기 1년 전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애처로운 변명을 덧붙여가며 할인된 가격으로 티 타임을 받고 있어요. 당신은 관리 예산이나 필요한 인력은 무시한 채 관리의 두통거리만 더 만들어냈어요. 지속해서 코스를 헤집고 바꾸는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2011년도 US아마추어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해법은 하나뿐이에요. 밥, 파트너를 영입해서 그 파트너에게 전권을 넘기세요.”

3개월 후인 2009년 10월24일에 밥 랭은 에린힐스를 밀워키의 성공한 투자금융 매니저인 앤디 지글러(Andy Ziegler)에게 전격 매각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나는 그 소식을 밥에게서 듣지 않았고 인터넷 보도로 접했다. 밥은 나중에 골프다이제스트의 다른 동료에게 자세한 내용을 털어놓으면서 코스를 개선하느라 돈이 바닥났다고 말했다.

지금은 밥과 다시 친구가 됐다. 그가 코스를 잃은 건 가슴 아프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인다. 지글러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곧바로 에린힐스가 ‘좋은 첫인상을 줄 두 번째 기회’를 얻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마추어 대회의 유치가 취소되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글러는 마이크와 데이나에게 10번홀의 그린을 새로 만들어서 그 홀을 파4로 줄이고, 파73이라는 꼬리표와 이상한 비아리츠 그린을 레이아웃에서 떼어내게 했다. 그리고 데이비스의 제안에 따라 지글러는 3번 그린의 위치를 변경했다. 첨단 관리시설을 짓고(밥은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철제 건물로도 만족했다), 관리 예산을 크게 늘렸다. 연습 시설도 미국에서 가장 정교한 곳으로 손꼽힐 만큼 확장했고, 새 클럽하우스를 지었으며, 나중에는 파인밸리와 오거스타내셔널을 참고해서 숙박을 위한 오두막도 몇 채 추가했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글러가 에린힐스에 안정감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곳을 매입한 직후 데이비스는 지글러의 지도력에 대중의 신뢰감을 실어줬다. 2010년에 페블비치에서 US오픈이 열렸을 때 에린힐스는 2017년 US오픈의 개최지로 공식 발표됐다. 허잔과 프라이가 그 자리에 참석했다. 지글러는 내게도 참석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밥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문틈으로 USGA의 발표를 들었다. 허잔이 그날 그와 얘기를 나눴는데 밥이 빚을 털어낸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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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서없는 생각

휘튼이 에린힐스를 엉망으로 망쳐서 허잔과 프라이가 그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코스를 완전히 뒤엎어야 했다는 의구심을 결코 씻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곳은 지금도 우리가 만든 코스 그대로이고 다만 세 홀의 그린이 달라졌고 벙커가 잔뜩 추가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곳의 역사를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2012년에 허잔과 프라이는 서로 갈라서서 각자의 회사를 차렸다. 나는 에린힐스 이후 두 건의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누구도 경제 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마이크와 데이나는 지금도 에린힐스의 설계 자문이다. 그리고 최근의 변화에 대해 내게 알려준다. 우리는 모두 친구로 지내며 US오픈을 앞두고 함께 에린힐스의 홍보에도 참여했다. 나는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기여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즐거웠다.

마이크도 그렇지만 나 역시 몇몇 비탈을 따라 아름드리나무들이 있었던 때의 에린힐스가 더 좋았다. 지금은 15번홀의 웅장한 붉은색 참나무 한 그루를 제외하고는 데이나의 지시에 따라 전부 베어버려서 온통 창백한 녹색의 유령이 되고 말았다. 나무들을 제거해야 시야가 넓게 확보된다는 그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나무가 없으니까 3차원의 느낌이 사라져버렸다. 한때 그 나무들은 가장 높은 모래언덕보다 훨씬 높이 자랐고 거의 30m에 육박했다. 지금은 그 천장이 없어져버렸다.

내 코스 설계의 신탁과 같은 허버트 워런 윈드(Herbert Warren Wind)라는 골프 기자는 반세기전에 이런 글을 썼다. “그린과 벙커 배치 그리고 페어웨이의 윤곽이 마치 불도저가 아닌 자연이 만든 것처럼 보인다면, 그 설계가는 성공적인 코스를 창조한 것이다.” 그 기준을 적용했을 때 나는 에린힐스가 절대적인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적절한 비용으로 자연스러운 코스를 짓겠다는 애초의 목표를 달성했다. 그곳에서 US오픈이 열리는 건 그저 보너스일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대회가 그 곳에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 편지함에는 2006년 6월3일에 밥 랭이 보낸 이메일이 저장되어 있다. “2017년 US오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겠어.” 그리고 정말 엄밀한 의미에서 그렇게 됐다.

글_론 휘튼(Ron Whi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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