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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석스 여사 [Feature: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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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대런 캐롤(Darren Carroll)

 

LPGA의 ‘기센 할망구’를 기리며.
글_론 시락(Ron Sirak)

 

나는 루이스 석스(Louise Suggs)가 스윙하는 것을 직접 본 적은 없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약해진 무릎과 어깨, 그리고 기능이 떨어진 심장으로 인해 더 이상 플레이하지 못하게 된 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만의 골프, 여자들의 경기인 LPGA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것만큼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92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둔 지난 8월7일 흑색종으로 그녀가 세상을 떠나면서 영원히 끝나고 말았다.
생애 통산 61승(캐시 휘트워스, 미키 라이트와 아니카 소렌스탐에 이은 최다승 부문 4위 기록), 메이저 대회 11승(패티 버그, 라이트에 이은 3위)에 빛나는 석스는 여자골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지 몰라도 동료 프로들로부터는 충분히 인정을 받은 골퍼였다.
세계골프명예의 전당 회원인 그녀는 1946, 1947, 1949년 웨스턴오픈 우승, 1946년 타이틀홀더스 우승, 1949년 US여자오픈 우승으로 1950년 LPGA가 창설되기도 전에 이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베테랑이다. 그녀는 또한 1947년 US여자아마추어, 1948년 브리티시여자아마추어에서도 우승을 기록한 바 있다.
LPGA 초창기 때 석스의 놀라운 기술은 라이벌 베이브 자하리아스의 쇼맨십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베이브가 여자골프대회에서 대중과 능수능란하게 교류를 가졌던 것도 루이스가 평생 그녀를 싫어했던 이유의 하나였다.
몇 년 전 루이스는 내게 “베이브는 골퍼가 아니었어”라고 말했다. “그 여자는 마케팅 담당자였지.”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자하리아스가 얼마나 볼을 멀리 쳤느냐는 질문을 받은 그녀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그 여자는 싸구려 텍사스 훅을 가지고 있어서 딱딱한 페어웨이에서는 볼깨나 굴렸지. 하지만 젖은 코스에서는 내가 온 종일 그 여자보다 훨씬 더 멀리 날리곤 했지.”
조지아 출신의 보비 존스가 질병으로 인해 플레이를 그만 두기 전 마지막으로 그와 함께 라운드를 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한 루이스는 작년까지만 해도 매년 빠짐없이 마스터스를 찾았고 클럽하우스의 뒷문 앞에 가져다 놓은 의자에 앉아 관전을 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한 번은 벤 크렌쇼가 제리 페이트를 데리고 와 루이스에게 소개했다. 그러더니 다른 어느 누구보다 그녀의 골프경력에 대해 잘 알고 있던 크렌쇼는 “루이스, 그 친구에게 그립 좀 보여줘요”라고 말했다.
석스는 한참 동안 크렌쇼와 페이트를 번갈아 보더니 자신의 지팡이를 들고는 교과서적인 완벽한 골프그립을 보여주었다. “세상에” 벤의 감탄사는 5초 동안이나 길게 이어졌다.
2007년 리코위민스브리티시오픈이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리는 최초의 여자프로경기가 되었을 때 루이스는 당시까지만 해도 여성출입이 금지되었던 클럽하우스의 빅 룸 퇴창 앞에 앉아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여자골퍼들이 티 샷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이것을 R&A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제 때가 된 거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나는 명예의 전당에 관한 구전역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명예의 전당 여성회원들의 인터뷰를 녹화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그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했던 질문의 하나는 ‘자신의 플레이 가운데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었나?’였다.
낸시 로페즈는 퍼팅이라고 대답했다. 캐시 휘트워스는 심리적 압박감이 심할 때 티 샷을 커트해서 페어웨이에 떨어뜨리는 법을 배웠던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루이스에게 그녀의 경기에서 가장 큰 강점에 관해 질문하자 그녀가 대꾸했다. “내가 누군가를 꺾어야 할 때면 발로 그 사람의 목줄기를 밟았어.”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라고는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루이스는 언제나처럼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루이스가 가장 즐겨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플로리다의 이그제큐티브 코스(일반적이 코스보다 덜 힘들거나 더 짧은 코스)에서 남녀 혼성경기로 플레이했던 시절에 관한 것이다. 필드에 나선 남자들 가운데에는 샘 스니드도 있었다. 루이스는 승리를 차지했고 이 위대한 골퍼에게 있어 여자에게 패했다는 사실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는 클럽하우스에서 큰소리로 오랫동안 불평을 털어놓았다. 여성골퍼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가 많이 나온 다음 더 이상 참고 견딜 수 없었던 루이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샘, 도대체 뭐가 그리 불만이죠? 당신은 2등도 못했잖아요.”
화장을 한 유해는 조지아에 있는 그녀 부모의 무덤 위에 뿌려졌다. 부모와 함께 안식할 루이스는 품질이 좋은 스카치위스키를 좋아했고 골프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 했다.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린 2007 위민스브리티시오픈이 끝난 뒤 에딘버러 공항 인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스카치 몇 잔을 마신 그녀는 내게 말했다. “론, 내 평생 작가는 아무짝에도 필요 없었는데 당신은 괜찮은 것 같아요.”

 

 

“이 친구는 내 아이예요” 루이스는 투어에서의

신인 선수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니 망치지 말아요.”

내가 이 이야기를 그녀의 오랜 친구 중 한 명에게 들려주었더니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해줬다. “그건 ‘난 당신을 사랑해요’의 루이스식 표현이에요. 그 친구가 할 수 있는 가장 애정 어린 말인 거지.”
연전에 <골프월드>의 ‘현명한 이들로부터 듣는 이야기’라는 글을 쓰기 위해 루이스를 인터뷰했을 때 나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나 공개하겠다며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미스 석스(봅 호프가 항상 존경의 의미를 담아 불렀던 호칭이다)는 베이브에 관한 말을 쏟아내더니 그 다음에는 모든 여자골퍼들은 레즈비언이라며 LPGA를 폄하하려고 했던 남자들에 관한 말을 터뜨렸다.
“레즈비언들에 관해 그토록 심각하게 걱정하는 남자라면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마지막으로 나는 그녀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루이스는 한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입을 열었다. “난 기센 할망구(Tough Old Broad)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은걸.”
하지만 이야말로 루이스를 가장 정확히 설명해주는 표현이다. ‘기센 할망구’. 그녀는 여자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었고(미키 라이트는 그녀의 스윙을 벤 호건, 진 리틀러, 스니드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LPGA를 위한 투쟁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이 친구는 내 아이예요” 루이스는 투어에서의 신인 선수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니 망치지 말아요.”
나는 역사적인 기록을 읽은 것 외에 골프선수로서의 루이스 석스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개인적으로 그녀를 알 수 있었다. 그 기센 할망구를 사랑했다. 골프계는 가장 뛰어난 후원자 중 한 명이자 가장 훌륭했던 선수 한 명을 잃었다. 나는 소중한 친구 하나를 떠나 보냈고.
굿바이 미스 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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