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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과 골프장의 관계 [Feature : 1708]

 조선 왕릉과 골프장의 관계

일제강점기의 몇몇 골프장이 모두 조선왕조의 무덤가에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왕릉’과 ‘골프장’의 관계를 조상우 교수가 살펴보았다.

글_조상우 / 정리_인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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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원골프장 
(자료 출처 : 대한골프협회)

조선왕조의 무덤은 종류에 따라 능(陵), 원(園), 묘(墓)로 분류된다. 능은 왕과 왕비 그리고 황제와 황후의 무덤이다.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그리고 왕의 사친(부모) 무덤이며 묘는 나머지 왕족(대군, 군, 공주, 옹주, 후궁)과 폐왕의 무덤이다. 조선왕조의 무덤은 능이 42기, 원이 13기, 묘가 64기로 총 119기에 이른다. 이 중에서 골프장으로 개발된 곳은 일제강점기의 효창원(孝昌園), 의릉(懿陵), 유릉(裕陵) 터와 광복 이후 서삼릉(西三陵), 태강릉(泰康陵)이 있던 곳이다. 효창원에는 효창원골프장(1921년), 의릉에는 청량리골프장(1924년), 유릉 터에는 군자리골프장(1929년), 서삼릉에는 한양골프장(1964년)과 뉴코리아골프장(1966년), 태강릉에는 태릉골프장(1966년)이 자리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곳을 제외하면 지금도 명문 골프장으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필자가 어린 시절 소풍을 갔던 능동 어린이대공원의 넓은 잔디공원과 축구를 하던 효창운동장이 모두 오랜 과거에는 골프장이었다고 생각하니 당시의 골프장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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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창원 정조의 장자였던 문효세자의 무덤
  • 의릉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
  • 유릉 순종과 순명효황후 민씨와 순정효황후 윤씨의 능터
  • 서삼릉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희릉(禧陵),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효릉(孝陵),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예릉(睿陵) 그리고 역대의 후궁•대군•군•공주•옹주의 묘 집장
  • 태강릉 중종(中宗)의 왕비인 문정왕후 윤씨의 능(태릉)과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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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지도>에 나타난 의릉과 태강릉
(자료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해동지도>)

대부분 조선 왕릉은 도성을 중심으로 10리(4km)밖에서 100리(40km)이내 풍수 사상에 기초를 두고 부지를 선정했다. 왕릉터는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뒤에는 주산이 펼쳐져 있고 그 허리에는 봉분이 자리하며 좌우에는 청룡과 백호로 둘러싸여 있다. 왕릉 앞에는 하천이 흐르며 남쪽으로는 낮고 작은 안산(案山)이 자리한다.
 
왕릉 주변의 숲을 ‘능원림(陵園林)’이라 하여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목재 채취를 금지하는 금산(禁山)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조선 후기에 이러한 묘역의 소나무 숲에서 큰소나무 열 그루 이상을 베어 도적질한 자는 사형, 아홉 그루 이하는 유배, 한 그루를 벤 자는 곤장 60대의 형벌을 내렸을 정도라 하니 감히 나무를 훼손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금산 주변의 숲은 경작,화전,장묘,건축 등을 금지했다. 오늘날의 그린벨트와 같은 자연보호지역을 만들어 보호한 것. 18세기 이후 조선에 온돌이 널리 보급돼 나무를 땔감으로 쓰기 위해 민둥산이 된 주변 산과는 대조를 이뤘을 것이다.
 
옛 지도에서 보듯이 능 주변 지형은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그 앞은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근처는 하천이 흘러 골프장을 건설하기에 입지 조건이 뛰어나 보인다. 그러나 왕가 무덤의 터에 골프장을 건설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구한말에는 유교 사상이 지배적이었고 현대에는 문화재 보호구역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되었던 효창원골프장은 일본의 국책 철도 회사인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조선철도국 산하 조선호텔의 부속 시설로 건설하기 위해 효창원의 5만8000여 평 부지를 사용했다. 효창원골프장이 만들어지던 1917년은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에 피탈됐다. 왕실의 무덤마저도 보호할 수 없이 국권이 상실됐다. 이 시기에 일본의 궁내성 소속의 이왕직이라는 기구가 조선 황실의 재산을 운영, 관리해 효창원을 비롯한 의릉과 유릉 터에도 일본인들이 원하면 쉽게 골프장을 만들 수 있는 배경이됐다.
 
1919년 일제강점기에 던트(H. E. Daunt)가 효창원골프장을 설계했다. 던트의 수기에는 효창원에 송림이 울창하고 잡초가 무성하며, 묘가 듬성듬성 있어 들판으로 만들기 어렵다고 기록돼 있다. 또 2번홀 그린 주변에 고분이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위 사진에서 보이는 흰색 원형의 말뚝 안에 고분이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예나 지금이나 골프장에 저렇게 큰 말뚝이 원형을 이루며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지만 저곳에 봉분이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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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리골프장 7번홀
(자료 출처 : 필자 소장)

효창원골프장을 개장하고 얼마 후, 이곳이 다시 공원으로 계획되면서 새로운 골프장을 물색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지금의 성북구 석관동 의릉이 있는 곳이다. 철도국은 효창원에 이어 의릉에도 관(官)에서 골프장을 건설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따라서 사단법인 경성골프구락부를 만들어 민간이 주도해 청량리골프장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려 했다. 그렇지만 구락부의 임원들은 철도국, 이왕직(조선 왕실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 관리 등이 당시 고위층이었기 때문에 형식적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경성골프구락부의 임원 11명 중 이왕직 예식과장 이항구는 유일한 조선인이었다. 조선 말 이완용의 차남으로 효창원골프장에서 1924년에 골프를 했다고 알려진 최초의 조선인이다. 이항구는 일제강점기에 이왕직 차관을 거쳐 1940년에 장관까지 역임하며 조선골프구락부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청량리골프장 시대를 거치며 국제 규모의 새로운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경성골프구락부의 이사이자 이왕직의 차관이었던 시노다(篠田治策)가 선택한 곳은 바로 유릉 터가 있던 어린이대공원 자리인 군자리였다. 군자리골프장은 시노다의 간청에 영친왕이 30만 평에 이르는 넓은 유릉 터를 무상으로 임대하고 건설 자금과 운영비까지 지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영친왕은 일본에 거주했고, 조선 황실 재산은 이왕직이 운영•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친왕이 골프장 건설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것은 진실성에 의문이 생긴다. 이 내용은 다음 호 ‘영친왕과 골프’에서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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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리골프장 클럽하우스
(자료 출처 : 필자 소장)

골프장 건설에 일본인 고관들이 전면에 있었다는 사실에 개발 의도가 의심스럽다. 당시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망국의 설움에 민족혼까지 빼앗기는 슬픈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어 유감스럽다.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의 묘가 있던 곳에 만들어진 골프장은 모두 풍수지리에 따라 주변 지형이 산으로 둘러싸인 구릉지였다. 주변의 울창한 산림과 하천이 있어 골프장의 입지 조건은 최적이었다. 그러나 골프장 건설에 일본인 고관들이 전면에 있었다는 사실에 개발 의도가 의심스럽다. 그 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망국의 설움에 민족혼까지 빼앗기는 슬픈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광복 이후에 개장한 서삼릉 일대의 한양골프장(1964년)과 뉴코리아 골프장(1966년)은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용지를 매입해 골프장을 건설했다. 한양골프장은 23만 평을 평당 40원에 매입하여 6개월만에 골프장을 개장했고, 뉴코리아골프장은 26만6000평을 평당 130원에 매입해 8개월 만에 개장했다. 지금으로서는 부지 매입금이나 공사 기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이다. 오른쪽 상단의 사진에서 보듯이 이 지역은 세 개의 왕릉이 모여 있는 지역이라 다른 왕릉보다 구릉지가 넓어 두 개의 골프장이 차례로 짧은 기간에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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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지도>에 나타난 서삼릉
(자료 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해동지도>)

태릉골프장(1966년)은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과 강릉 일대 육군사관학교 뒷산에 만들어진 군 골프장이다. 이곳은 사관생도들의 교련장 용도로 개간되던 곳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9홀을 개장했다가 18홀로 증설된 서울 시내에 자리한 유일한 골프장이다. 태릉골프장의 설계를 맡았던 연덕춘은 잔디를 심어놓은 부지와 개간되지 않은 땅의 듬성듬성 우거진 나무들과 완만한 산허리를 보며 골프장으로 훌륭한 곳이라고 전했다. 태릉골프장도 왕릉 주변의 구릉지로 숲이 우거지고 경사가 완만해 골프장 부지로 최적의 입지를 자랑한다. 이 골프장에 1년에 한두 번 정도 다니다 보니 주변 풍경을 눈여겨보지 않고 플레이만 즐겼다. 그러던 몇 해 전, 골프장 중턱에 있는 그늘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내려다본 골프장 풍경에는 좌청룡과 우백호 그리고 그 사이로 멀리 안산이 보이는 것이었다. 마치 18개의 코스가 모두 그 안에 들어가 있어 골프장을 품에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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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Sang – Woo 조상우
호서대 스포츠과 학부 골프 전공 교수이며, 한국 골프사 연구와 함께 골프 골동품을 수집하고 있다.
슈페리어에서 운영하는 세계골프 역사박물관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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