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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앞으로, 배상문 [People : 1710]

조금씩 앞으로, 배상문
NEW START, NEW GOALS

배상문이 돌아왔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보름 뒤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냈다. 2년여의 시간을 보낸 후 프로 골퍼로 복귀한 그의 눈빛은 여전히 단호했고 카리스마가 넘쳤으며 자신감이 가득해 보였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아직 70점대 프로라고 말하는 배상문. 이 말의 의미는 아직 보여줄 게 많다는 뜻이 아닐까. 군 제대 후 필드에 복귀해 이제 막 프로 골퍼 인생의 2막을 연 그를 만나 다양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글_전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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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건디 컬러 셔츠는 코스, 스웨이드 블루종은 브룩스 브라더스.

“처음에는 2년간 골프와 담을 쌓고 지내야 한다는 것이 불안했고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 2년 동안 지나간 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년은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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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멀 컬러의 터틀넥은 제이리움, 네이비 치노 팬츠는 브룩스 브라더스, 왁스트 트렌치코트는 바버, 스니커즈는 락포트.

골프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 그리고 투어를 뛰느라 온전한 내 시간을 갖지 못해서 골프에 싫증이 난 적은 있다. 하지만 항상 얼마 가지 못했다. 그게 배상문이다. 하물며 잘나가던 톱 배우라도 개봉한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 그의 명성에 흠집이 생기고 인기마저 추락했을 경우 다시 만회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든 일로 여긴다. 절정의 샷 감각을 보이며 상승세를 탄 프로 골퍼 배상문에게 군대에서 보낼 2년여의 시간은 무섭고 두려웠을 거란 거다. 비유하자면 그렇다. 물론 정상 궤도를 잠깐 벗어났다고 해서 모두 추락하는 건 아니지만.
어찌 됐든 ‘한국 간판스타’라는 타이틀과 함께 정상의 자리까지 힘차게 뻗어나갔지만 화려한 불꽃을 터뜨리기 전에 그는 골프계 궤도를 잠시 떠났다가 얼마 전 돌아왔다. 돌아온 그는 의외로 담대했다. 다시 마음껏 골프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무척이나 즐거워했고 앞으로 쭉 골프를 할 수 있는 것에 행복할 뿐이었다. 더욱 성숙해져 돌아온 그의 모습은 그렇듯 힘차고 안정돼 보였다.

21개월 만에 민간인이 되었다. 소감은?
군 제대 후 사소한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가족과 친구, 지인을 만나 함께 식사하는 것 등 사소한 매 순간순간이 즐겁고 감사하다.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몸무게가 4kg 정도 빠졌다. 지방이 빠져나간 듯하다.(웃음) 군대에서는 정해진 일과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규칙적인 운동과 식습관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건강해졌다.

군대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이 보약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처음에는 2년간 골프와 담을 쌓고 지내야 한다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고 걱정이 됐다. 하지만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지나간 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년은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골프 선수로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군대에 다녀온 후 특별히 무엇이 달라졌나?
통제된 단체 생활에서 인내를 많이 배웠다. 군대에 가기 전, 투어 생활이 힘들다고 불평하던 그 시절조차 그리울 만큼. 그때가 매우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앞으로 투어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병역 문제를 둘러싼 잡음이 있었는데, 그때 내린 내적 결론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미국프로골프투어 활동을 더 하기 위해 군 입대 시기를 늦추길 원했다. 아마도 국내 투어를 뛰는 20대 남자 선수면 누구나 군 입대 시기에 대해 항상 고민을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골프가 뜻대로 되지 않거나 골프가 정말 싫어 골프채를 손에서 놓고 지내고 싶을 때 과감하게 접고 군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운이 좋았는지 해마다 성적이 좋아졌고 덩달아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2011년에 대한골프협회 선정 최우수 선수가 됐고, 일본프로골프투어 상금왕에 올랐고, 2013년과 2014년 미국프로골프투어에서 각각 1승씩 올렸다. 그러는 사이 30대가 됐다. 군 입대 연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여전히 조심스럽다. 확실한 건 다녀온 지금, 잘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다녀올 걸 그랬다.

그 당시 인터넷 기사 댓글 등 골프 팬들의 반응을 찾아보기도 했나?
물론이다. 어떤 말을 하든 내 뜻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더라. 악성 댓글과 루머로 뒤통수 쪽에 원형 탈모를 앓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군 복무 기간에 공개된 소식이 거의 없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강원도 원주에서 소총수로 군 생활을 했다. 6개월가량 토요일에는 부대 근처 고등학교에서 요청이 와 재능 기부로 2~3시간 학생들에게 골프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 외는 다른 부대와 마찬가지로 작업과 훈련으로 이어지는 일과를 소화했다. 전우들과 추억도 함께 쌓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휴가 때 말고는 골프채를 잡지 못했겠다. 골프채를 들고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흉기로 간주되기 때문에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과 후 2~3시간의 개인 정비 시간에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빈 스윙을 했고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조깅을 하면서 체력을 단련했다. 몸이 가벼워졌다. 덕분에 헤드 스피드가 빨라져 입대 전보다 비거리가 늘어났다.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오면 항상 골프채를 잡았다고 들었는데. 휴가 때마다 골프 연습장에서 연습을 했고 골프 코스에 나가 샷을 점검했다. 군대에서 빈 스윙을 하긴 했지만 훈련도 있고 추운 겨울에는 그마저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예 골프채를 잡지 않은 게 3~4개월 정도 되는 것 같다. 솔직히 빈 스윙 연습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게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해졌기 때문에 그간 못했던 훈련과 연습을 통해 예전보다 더 나은 기량을 되찾을 것이다.

전역일부터 연습장으로 달려갔다는 소문을 접했다.
2년 가까이 제대로 잡지 못했던 골프 클럽을 마음껏 휘두르고 싶었다. 골프가 정말 하고 싶었으니까. 제대를 앞두고 말년 휴가를 나왔을 때부터 그간 못했던 샷 훈련을 하면서 복귀전을 준비했다. 마음이 조급했기 때문이다.

전역 후 필드는 몇 번이나 나갔나? 베스트 스코어는?
2주 동안 일곱 번 정도 라운드를 나갔다. 베스트 스코어? 노코멘트 하겠다.(웃음) 이븐도 겨우 한다. 버디 찬스는 없고 보기가 많다. 샷 감각을 되찾기까진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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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네크라인으로 어드레스와
스윙 시 목에 걸리는 불편함이 없는 재킷, 신축성이 좋아 착용감이 우수한 팬츠는 모두 데상트골프.

2015년 프레지던츠컵 이후 약 2년 공백 끝에 대회에 출전했다. 감회가 새로웠겠다.
입대 4~5개월 뒤 휴가를 나와 처음 골프를 했을 때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신한동해오픈 출전을 앞두고 연습 라운드, 프로암 대회를 하면서 행복을 느꼈다. 이 기분이 앞으로 프로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복귀전이라 부담감도 컸을 것 같다.
성적이 나쁘면 ‘2년 동안의 공백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망가졌다’라고 생각할 테고 잘하면 ‘군대에서 공만 쳤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스스로 떳떳했기 때문에 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아쉽게도 컷을 통과하진 못했다. 제대 후 한 달 정도밖에 시간이 없었다. 떨어진 실전 감각을 회복하기에는 쉽지 않은 시간이다. 솔직히 한 달 동안 죽어라 대회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설마 컷을 통과하지 못하겠느냐고 자만하기도 했다. 생각이 짧았다. 복귀전을 앞두고 설레지만 부담감도 있었고 잘하고 싶어 조급함을 가지고 연습한 것이 아쉽긴 하다. 대신 다음 대회는 이런 심리적 부담감 없이 치를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가장 부족했나?
드라이버는 예전과 다름없었다. 아이언 샷이 문제였다. 뒤땅이나 토핑 같은 어이없는 실수가 쏟아졌다. 한 달을 준비했는데 미들, 롱 아이언 샷 자체가 제대로 안됐다. 감각이나 기교를 쓰려니 부자연스러웠다. 아이언 샷은 완전히 볼 끝이 살아 있지 않았다. 이틀 동안 7오버파를 기록하려고 그렇게 많은 연습을 했나 싶었다. 제대한 날이라도 7오버파는 쳤을 것 같았다.

기량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운동을 하고 있나?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9시 전에 무조건 골프 연습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오후 4시까지 연습한다. 오후에는 재활 훈련이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저녁에는 90분씩 영어 회화 수업을 한다.

현재 골프 선수로서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운이 좋은 사람. 18~20세 때 프로 테스트를 치를 수 있는데 그 시기를 잘 정해야 한다. 나는 열여덟 살 때 세미프로가 됐고, 열아홉 살 때 코리안투어 멤버가 되어 스무 살 때 정규투어에 나섰다. 그때가 2005년이다. 2008년과 2010년에 PGA투어 Q스쿨에 응시했다. 두 번째 도전이었던 2010년에 파이널에서 떨어졌다. 그땐 일본투어 시드가 있을 때였기 때문에 2011년엔 일본투어를 뛰었다. 후반기 들어서 3승을 기록하고 상금왕에 올랐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PGA투어 Q스쿨에 통과했더라면 그 당시 실력으로는 미국 무대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해 세 번째 도전 끝에 최종전에서 공동 11위에 올라 시드권을 따내 2012년부터 PGA투어를 뛰었다. 2010년에 Q스쿨에서 떨어진 것도 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골프 선수로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주겠나?
100점 만점에 75점 정도 된다. 열정만큼은 100점 만점이다. 군대에 가서야 ‘내가 골프를 이렇게 좋아하는구나’, ‘이렇게 골프에 열정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깨달았다. 열정으로 따지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겠다 싶다.

최근 자신을 자극하는 선수가 있나?
너무 많다. 조던 스피스, 더스틴 존슨 등. 타이거 우즈의 공백을 메워주고 있다. 나를 자극하는 특정 선수는 없다. 다만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 그들이 어떤 훈련을 하고 얼마나 열심히 하기에 톱클래스에 올랐는지 궁금하다.

단기 목표와 계획은?
10월부터 대여섯 개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다. 10월6일 열리는 세이프웨이오픈에서 PGA투어 복귀전에 나설 예정이다. 좀 더 프로답게, 질 높은 훈련을 해서 PGA투어 복귀전에선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우승을 목표로 두지 않을 수 없지만 마음만 앞서기보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겠다.

앞으로의 목표는?
골프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앞만 보고 달려갈 거다. 일단 우승이 목표다. 그리고 2년마다 개최되는 2019년 프레지던츠컵에 자력으로 나가 우승을 이끌겠다.

 

” 좀 더 프로답게, 질 높은 훈련을 해서 PGA투어 복귀전에서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우승을 목표로 두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마음만 앞서기보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겠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노력하면 부명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Mini Interview
생년월일 | 1986년 6월 21일
투어 입문 | 2004년 10월
주요 이력 | 통산 14승(국내 투어 9승, 일본 투어 3승, 미국 투어 2승)
스트레스 해소법 | 친구나 지인을 만나 한없이 웃고 떠든다.
문제 대처법 | 지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 고집은 센 편인데 귀가 얇다. 결정 장애가 있는 것 같다.
멋진 남자의 조건 | 결단력, 열정, 냉철함.
좋아하는 음식 | 닭고기, 돼지고기.
나만의 보양식 | 육식을 즐긴다.
추천 서적 | <나에게 고맙다>.
좌우명 | 간절한 마음을 담아 노력하면 좋은 결과로 나타난다.
인생의 롤모델 | 롤모델은 없다.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
골프 잘하는 비법 | 노력과 연구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프로 데뷔 후 가장 좋은 기억 | 2015 프레지던츠컵. 골프는 개인 종목인데, 열두 명이 한 팀이 되어 상대 팀과 대결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 당시 우리 팀은 아주 끈끈했다. 저녁마다 대화하며 작전을 세우고 모두 함께 ‘으샤으샤’ 하는 분위기였다.
프로 데뷔 후 가장 좋지 않은 기억 | 2015 프레지던츠컵. 18번홀에서 샷 미스를 범한 일보다 상대 팀을 축하해줄 때 최악이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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