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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둘이서 [Feature :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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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다이제스트] 성공적인 골퍼 뒤에는 언제나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캐디가 있다. 그중 골프 역사상 최고로 꼽을 만한 서른여섯 명을 소개한다.

매드 맥이라는 이름으로 통했던 스코틀랜드의 한 캐디가 있었다. 로열포트러시에서 열린 1951년 디오픈챔피언십에서 맥스 포크너의 가방을 맡게 된 매드 맥은 셔츠도 없이 긴 우비를 입었다. 목에 둘러맨 가느다란 끈에는 렌즈도 없는 쌍안경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그걸 이용해서 포크너의 퍼팅 라인을 읽었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에게 이렇게 조언을 했다.

“이번 퍼팅은 약간 직선입니다.” 이런 조언에 힘입어 포크너는 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우리가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캐디 36명에는 들지 못했지만 매드 맥이라는 캐디에게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물론 결점도 있겠지만 단지 어깨에 가방을 짊어지는 수준을 넘어선 장점도 보인다. 매드 맥은 지리학자이자 본의 아닌 코미디언이었고 코치이며 짐 싣는 노새인 동시에 친구였다. 그리고 그의 도구 상자는 조금 더 깊어서 이번 목록에 포함된 캐디들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이 담겨 있었으며 혹자의 눈에는 그가 수학자와 스포츠 심리학자, 스윙 코치, 집사, 운전사와 경찰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캐디들이 골프라는 큰 무대의 중앙에 서는 일은 드물지만 무대 밖에서 대사를 읽어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는 건 틀림없다. 메이저 대회와 총 승수, 긴 선수 생활과 선수들의 폭이 그걸 증명해준다.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선수들이 더 정확한 얘기를 들려줄 것이다. 오랜 캐디이자 친구였던 브루스 에드워즈가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톰 왓슨은 작가인 존 파인스타인과 함께 재단을 설립했다. 리 트레비노는 자신의 캐디였던 허먼 미첼이 숨을 거둘 때까지 그를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게리 플레이어는 1978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후에 캐디인 에디 매코이에게 집을 사줬다. 윌리 피터슨은 여러 해 동안 마스터스에서 함께한 잭 니클라우스에게서 서슴없이 도움을 청했다. 클럽을 건네주는 것과 별도로 위대한 선수들이 보여준 이런 진심 어린 태도야말로 그들의 가치를 말해주는 궁극적인 척도일 것이다.

윌리 (공동묘지) 포티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재임기간과 그 이후로 오거스타내셔널에서 플레이할 때 캐디를 도맡았다. 포티트가 공동묘지라는 별명을 갖게 된 건 그를 시샘한 라이벌에게 목이 찔리고도 살아남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킵 대니얼스
1932년 디오픈챔피언십에서 고령이 된 그가 진 사라젠의 가방을 짊어졌을 때 사라젠은 ‘사자 우리에서 대니얼스와 함께’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건 캐디에게 바친 가장 아름다운 헌사였다.

윌리 리 (패피) 스토크스
네 명의 선수와 함께 다섯 번의 마스터스 우승을 누렸다. 1920년에 향후 오거스타내셔널이 될 부지에서 태어난 그는 앨리스터 매켄지의 탁월한 설계를 그곳에 옮길 때 나무를 제거하는 일에도 힘을 보탰다.

윌리 피터슨
잭 니클라우스의 마스터스 6승 가운데 다섯 번을 함께했다. 니클라우스가 1975년에 파3인 16번홀에서 12m 버디 퍼팅을 성공했을 때 허공으로 펄쩍 뛰어오른 피터슨의 모습은 마스터스의 영원한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손꼽힌다.

허먼 미첼
리 트레비노의 통통한 짝패는 19년 동안 옆을 지키며 그의 메이저 대회 6승을 모두 함께했다. 무표정한 그의 태도는 동작이 화려한 트레비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데이브 머스그로브
머스그로브의 캐디 생활 반백 년의 하이라이트에는 샌디 라일의 마스터스와 디오픈챔피언십, 리 잰즌의 US오픈 그리고 세베 바예스테로스와 함께 한 디오픈챔피언십이 포함되어 있다.

토니 나바로
백상어의 1993년 디오픈챔피언십 우승을 포함해 그레그 노먼과 모두 12년을 함께했다. 그 밖에 눈길을 끄는 선수로는 애덤 스콧, 벤 크렌쇼 그리고 제프 슬러먼 등이 있다.

윌리 맥레이
1943년에 열 번째 생일날 파인허스트에서 캐디를 처음 시작했다. 그리고 74년 후인 지난 10월에 은퇴했지만 지금도 특별한 요청을 받곤 한다. 보비 존스와 다섯 명의 미국 대통령의 캐디를 했으며 1951년 라이더컵에도 참가했다.

제임스 (팁) 앤더슨
아널드 파머가 참가한 모든 디오픈챔피언십에서 그의 가방을 책임졌다. 아널드가 1964년 디오픈에 불참했을 때는 토니 레마의 옆을 지키면서 그를 우승으로 인도했다.

마이크 (플러프) 카원
해마 같은 콧수염의 40년 베테랑이 처음 맡은 ‘이름 있는’ 선수는 피터 제이컵슨으로 18년을 함께했다. 타이거 우즈의 첫 번째 PGA투어 정식 캐디로 3년을 일한 후 1999년에 짐 퓨릭에게 옮겨 갔고 그 후로 계속 함께하고 있다.

앤디 마르티네스
마르티네스는 조니 밀러가 전성기를 구가한 12년 동안 그의 옆을 지켰고 톰 레먼과도 20년을 함께했다. 마르티네스와 함께 우승을 경험한 PGA투어 선수는 모두 여덟 명에 달한다.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빌리 포스터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말하자면 산전수전 다 겪은 이 캐디는 세베 바예스테로스와도 5년을 함께했다. 그 후에는 리 웨스트우드와 세르히오 가르시아, 대런 클라크 그리고 잠깐에 그쳤지만 타이거 우즈도 그의 이력서에 추가했다. 그는 열세 번의 라이더컵에 참가했다.

에디 라워리
왜소한 열 살짜리 소년은 위멧이 1913년 US오픈에서 예상을 뒤엎고 깜짝 우승을 차지했을 때 그의 캐디를 맡았다. 후에 부유한 자동차 딜러가 된 그는 켄 벤투리와 토니 레마 그리고 하비 워드를 후원했다.

어니스트 (크리미) 캐롤란
거의 50년 가까이 투어 캐디로 일한 그는 아널드가 가장 활발하던 시기에 그의 옆을 지켰다. 그와 함께한 다른 선수로는 벤 호건, 샘 스니드, 레이먼드 플로이드 그리고 돈 재뉴어리 등이 있다.

앤절로 아르게아
캐디가 선수 못지않은 유명 인사의 이미지를 갖게 된 시초가 바로 앤절로였다. 덥수룩한 은색 수염, 금 사슬목걸이 그리고 당당한 태도는 잭 니클라우스 옆에서 빛을 발했다.

스티브 윌리엄스
허튼짓은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그는 뛰어난 실력과 갤러리를 통제하는 능력으로 유명하다. 탁월한 선수들과 연이어 성공을 구가했다. 그가 맡은 선수로는 피터 톰슨, 그레그 노먼, 레이먼드 플로이드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1999년부터 2011년까지 함께한 타이거 우즈가 있다. 애덤 스콧과 몇 년을 함께하다가 2017년에 헤어졌다.

브루스 에드워즈
에드워즈와 톰 왓슨은 1973년부터 1989년까지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였다. 2년간 그레그 노먼의 캐디를 하다가 왓슨과 재결합한 후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2004년까지 함께했다. 투병 중에 보여준 에드워즈의 당당한 모습은 골퍼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 팬에게 귀감이 되었다.

앨피 파일스
왓슨의 디오픈챔피언십 5승을 모두 함께한 캐디. 유명한 태양의 전투가 펼쳐진 턴베리의 마지막 홀에서 왓슨은 6번 아이언으로 어프로치 샷을 하고 싶어 했다. 파일스는 그를 설득해서 7번 아이언을 쥐게 했고 친구의 말을 믿은 왓슨은 홀 60cm 앞까지 송곳 같은 샷을 구사했다.

패니 서네슨
최초의 탁월한 여성 캐디인 패니는 닉 팔도가 거둔 네 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영리하고 권위적인 그녀는 프레드 펑크, 세르히오 가르시아와 잠깐씩 함께하다가 헨리크 스텐손을 끝으로 캐디 생활을 마무리했다.

앨프리드 (토끼) 다이어
다이어는 18년 동안 게리 플레이어의 주된 캐디였다. 하지만 다이어는 벤 호건과 토니 레마, 데이브 스톡턴 그리고 이따금 아널드 파머의 캐디도 하는 등 수많은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했다.

칼 잭슨
1976년부터 2014년까지 벤 크렌쇼의 마스터스 캐디를 도맡았다. 크렌쇼의 마지막 마스터스인 2015년에는 몸이 아파 캐디를 할 수 없었지만, 대회가 끝났을 때 현장에 나왔고 그와 크렌쇼가 포옹하는 장면은 골프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손꼽힌다.

제프 (스퀴키) 메들렌
만화영화 주인공 같은 목소리를 지닌 제프는 닉 프라이스가 메이저 대회 3승을 거두는 동안 늘 옆에 있었다. 프라이스가 크루키드스틱에서 열린 1991년 PGA챔피언십에서 플레이할 수 없게 되자 메들렌은 대타로 참가한 존 댈리의 가방을 맡았고, 그를 잘 이끌어서 믿기지 않는 우승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짐 (본스) 매키
필 미컬슨과 25년을 함께하면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선수와 캐디가 됐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은 캐디의 섬세한 기여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였다.

피트 벤더
그가 투어 캐디로 활동한 45년 동안의 하이라이트로는 그레그 노먼과 함께한 1986년 디오픈챔피언십, 이언 베이커-핀치와 함께한 1991년 디오픈을 꼽을 수 있다. 그 밖에도 벤더는 레이먼드 플로이드와 래니 왓킨스의 가방을 책임졌고 모두 여덟 명의 선수와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스티브 헐카
1972년 이후로 헐카는 150명이 넘는 선수들의 가방을 어깨에 짊어졌다.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며 선수들의 장비를 다음 투어 개최지로 이동해주는 부업도 함께 하고 있다.

샘 (킬러) 포이
45년 동안 세 명의 선수와 36승을 거뒀다. 헤일 어윈이 1979년 US오픈에서 우승할 때 그 옆에 있었다. 포이의 별명은 권투 선수로 활약할 때 얻은 것이다. 스파링 상대로 올라갔다가 실전인 것처럼 슈거 레이 로빈슨을 때려눕힌 적이 있다고 한다.

프레디 베넷
40년간 캐디 생활을 하다가 2000년에 오거스타내셔널의 캐디 마스터로 은퇴했다. 그 코스를 그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수백 명의 캐디에게 멘토 역할을 한 그의 지혜를 더 많은 후배가 배울 수 있도록 트립 보든이 <프레디와 나(Freddie & Me)>라는 감동적인 책으로 정리했다.

피터 콜먼
아홉 명의 선수와 59승을 거뒀으며, 그중 상당수는 베른하르트 랑거와 함께한 22년 동안 기록했다. 콜먼은 세베 바예스테로스 그리고 나중에 리 웨스트우드의 캐디도 맡았다.

테리 맥나마라
LPGA투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손꼽히는 안니카 소렌스탐의 캐디였던 게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소렌스탐이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그랬던 것처럼 6년 사이에 48승을 거둔다면 캐디(그러니까 여기서는 맥나마라)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게 공정한 처사다.

조 라카바
라카바는 프레드 커플스 옆에서 20년을 넘게 있었다. 잠시 더스틴 존슨의 캐디를 하다가 2011년에는 모두가 탐내는 자리를 얻었다. 바로 타이거 우즈의 캐디가 된 것이다. 최근에는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그의 이력은 캐디의 신전에 오르기에 충분하다.

윌리 애치슨
마이클 보낼랙의 캐디로 1961년 브리티시아마추어 우승을 함께 경험했다. 나중에는 샘 스니드와 게리 플레이어, 토니 레마, 톰 왓슨, 리 트레비노와 로베르토 데 빈센소와도 함께했다. 대단한 면면이 아닐 수 없다. 데 빈센소가 1967년 디오픈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때도 그 옆에 애치슨이 있었다.

리치 로버츠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어니 엘스와 함께한 20년은 불규칙한 나날이었지만, 엘스가 로버츠를 워낙 여러 번 다시 불렀기 때문에 캐디로서 지닌 그의 가치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엘스의 메이저 대회 4승은 모두 로버츠와 함께할 때 나왔다.

너새니얼 (아이언맨) 에이버리
아널드 파머가 마스터스에 처음 출전했던 1955년부터 네 번의 우승을 거둘 때마다 그의 옆을 지켰다. 감동적인 순간 : 위니 파머가 실수로 아이언맨에게 주는 수표에 0을 하나 더해서 1400달러를 줘야 할 걸 1만4000달러를 준 적이 있다. 에이버리는 그걸 현금으로 바꿀 때 고생했다며 불평했다.

린 (잔소리꾼) 스트리클러
베트남 참전 용사인 그는 커티스 스트레인지와 프레드 커플스, 크레이그 스태들러, 페인 스튜어트, 닉 프라이스와 그레그 노먼을 거치며 오랫동안 투어에서 쉰 목소리로 선수들에게 솔직한 의견을 들려줬다.

리 (투샷) 린치
늘 뚱한 표정인 그가 ‘투샷’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건 알 가이버거가 “그에게 가방을 맡기는 것은 2벌타를 받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기가 높은 캐디였다. 린치는 수많은 선수의 캐디를 거쳤고, 1977년에 가이버거가 유명한 59타를 기록할 때도 그의 가방을 맡았다.

돌푸스 (골프볼) 헐
레이먼드 플로이드는 헐을 여섯 번 해고했지만, 그때마다 그의 아내인 마리아 플로이드가 그를 다시 고용했다고 한다. 그 밖에 제리 페이트, 리 엘더, 그리고 캘빈 피트와도 함께했다.

글_가이 요콤(Guy 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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