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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넌 난 놈, 리키파울러 [People: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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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월터 아이우스 주니어(Walter Ioose Jr.)

세 명의 현명한 길잡이, 두 개의 문신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인 리키 파울러.

글_제이미 디아즈(Jamie Di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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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츠데일에서 열린 프로암 대회의 갤러리 로프 밖에 있던 다나카 유타카는 대부분의 시선과 수많은 휴대폰이

자신의 손자인 리키 파울러에게 쏠려 있다는 걸 느끼며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어디선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키, 이쪽 좀 봐줘요!” 스물일곱 살의 파울러는 고개를 들더니 떠들썩한 사람들 쪽을 향해 인스타그램에 익숙한 사람답게 능숙한 포즈를 취해주었고, “됐다”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던 길을 갔다. 과연 골프계를 대표하는 밀레니얼 세대다웠다. 우연찮게도 이날은 수요일이었는데, 24년 전에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화염 절단 제철소를 운영하다 은퇴한 다나카가 당시

세 살이던 손자와 놀아주는 날로 정해놓고 인랜드엠파이어 낚시터에 갈지 아니면 순수하고 소박한 뮤리에타밸리연습장으로 골프를 배우러 갈지 선택하게 한 게 바로 수요일이었다. 파울러가 골프 장학금을 받고 오클라호마주립대에 진학하면서 중단했을 때 다나카는 핸디캡 10의 골퍼였고, 그의 손자는 62타의 스코어를 기록하며 고등학교 토너먼트를 휩쓰는 유망주였다. “좋은 시절이었다.” 일흔일곱 살의 다나카는 할리우드 카우보이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고지 사막 지역에 흔한 서부의 비음이 희미하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리키는 퍼팅 그린에서 동전을 죄 긁어갔고, 그러면서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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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는 ‘타카’로 통하는 그는 날렵하고 기운이 넘쳤다. PGA투어에서 3승을 거두고 있는 어떤 선수가 넘겨준 푸마의 로고 셔츠는 그에게도 아주 잘 맞았다. 그는 아내인 제니와 함께 1년에 여섯 번쯤 손자의 토너먼트를 보러 가는데, 리키를 따라다니는 갤러리가 늘어나면서 그것도 힘들어졌다. 이번 프로암은 그래도 또렷하게 볼 수 있었고 원하면 로프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나카는 행여 손자의 주의력을 흐트러뜨릴까 봐 로프 바깥에서 휴대용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나카는 파울러가 TPC스코츠데일의 유명한 파3인 16번홀에 도달했을 때, 선수 출입구를 통해 오싹한 동굴 같은 그곳으로 들어가 검투사의 환영을 받는 손자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특권마저 거부했다.

“상관없다.” 다나카는 말했다. “내가 정말 보고 싶은 건 내 손자가 커다란 모자에 오렌지색 옷을 입고 달려오는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이다. 리키는 아이들을 아주 잘 다루고, 그 순간이 아이들에게 단지 골프만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격려할 기회라는 걸 알고 있다.” 다나카는 파울러가 아부다비에서 우승한 다음 날 18시간에 걸쳐 1만3679km를 날아와 샌디에이고 퍼스트 티를 위해 주니어 클리닉을 개최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을 특히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이 받은 걸 되돌려줘야 진정한 골퍼다.” 다나카는 말했다.

골프 패션에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이톱 운동화에 딱 붙는 조깅용 바지를 포함시킨 주인공답게 요란한 스타일을 즐겨 입는 파울러지만 성향만큼은 ‘올드스쿨’, 구식이다. 연습 라운드 파트너이자 절친한 사이인 필 미컬슨이 지난번 라이더컵 패배 직후 주장인 톰 왓슨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을 때, 파울러는 외면받는 주장을 의연하게 감쌌다. 1월에 아부다비에서 우승한 후에는 토니 레마가 그랬던 것처럼 기자실에 샴페인을 보냈다. 그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랭킹 4위로 올라섰지만 조던 스피스와 제이슨 데이 그리고 로리 매킬로이로 이뤄진 골프계의 빅3가 이제 빅4로 재편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이렇게 반박했다. “메이저 대회 우승이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이라면 그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파울러가 지난 5년간 불참한 존디어클래식 관계자에 따르면 거절할 때도 매너와 배려가 느껴졌다고 한다. “리키는 아이들을 절대로 떠받들어 키우지 않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태도에서 그런 겸손함이 느껴진다.” 클레어 피터슨은 말했다.

 

힘들던 시기를 딛고 일어나

거기에는 어린 시절의 스승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중 첫 번째인 외할아버지 다나카는 일본에서 이민 온 아버지가 작은 양계장 사업을 하던 캘리포니아에서 추방당해 가족들과 함께 와이오밍주의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인 수용 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너무 어려서 그 생활이 힘든지도 몰랐다.” 다나카는 말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2년간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는 게 허용되지 않았고 결국 뉴욕주로 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사업을 일으켜서 우리를 다시 데려갈 수 있었지만, 지인 중에는 모든 걸 잃은 사람들도 있었다. 부모님은 그때의 일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나 역시 리키한테 단 한 번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손자가 왼팔 이두박근 안쪽에 다나카의 이름을 일본어로 새겼을 때 깜짝 놀랐다. “와, 저기는 민감한 부분인데. 아팠겠네. 그냥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웃더니 금세 감정이 북받치는 듯했다. “리키는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한 행동이고 정말 감동적이었다.”

다나카는 자신의 손자가 ‘타카와 함께 한 수요일’에 특별한 지혜를 전수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학교에 가는 날이면 오후 2시에 데려와서 함께 시간을 보낸 것뿐이다. 리키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대체로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낚시할 때도 모든 걸 다 잘했고 아무것도 낚지 못하더라도 인내심을 발휘했다. 골프에서는 우리 둘 다 초보자였지만, 리키는 볼을 맞혀냈고 집중력과 열정이 있었다. 그런 기질은 제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지, 내 덕이 아니다.”

파울러는 할아버지가 당신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늘 사람들을 바르게 대하고 삶을 사랑한다. 할아버지는 그냥 행복한 사람이다. 나도 할아버지처럼 살려고 노력한다.”

다나카는 골퍼로서 리키가 발전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했다. 파울러는 네 살 반 때 처음으로 토너먼트에 나갔고 일곱 살 때 뮤리에타 연습장의 배리 맥도널(Barry McDonnell)에게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맥도널의 집안은 할아버지인 존 길홈(John Gilholm)이 스코틀랜드 노스버릭 출신으로 매사추세츠주 뉴베드퍼드의 컨트리클럽에서 40년 동안 수석 프로를 지냈을 만큼 골프에 뿌리가 깊었다. 어릴 때 그 클럽에서 캐디를 했던 맥도널은 로스앤젤레스로 건너와서 지금은 문을 닫은 폭스힐스골프클럽의 보조 프로로 취직했는데, 내기 골프뿐만 아니라 PGA의 ‘백인 조항’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위하자 실력 있는 흑인 프로들에게 연습을 허용한 곳으로도 유명한 클럽이다. 맥도널은 독학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들이 선보이는 온갖 특이한 스윙을 지켜보면서 개성을 존중하는 교습 철학을 갖게 되었다.

맥도널은 비디오카메라는커녕 정렬용 막대조차 사용하지 않아서, 파울러가 “1995년이 아니라 1950년에 배우는 느낌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맥도널이 건너편 화원에서 가져다 심은 목련 나무 아래에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스승은 파울러를 ‘리틀 호크’라고 불렀고 그 나무는 ‘호건 나무’가 되었다.

연습장의 주인인 빌 티스들(Bill Teasdall)도 남부 캘리포니아 최고의 주니어로 촉망받다가 과도한 스윙 이론에 휩쓸려 좌초한 후 맥도널에게 골프와 인생의 지혜를 배웠다.

“배리는 리키에게 내 전철을 밟게 하지 않겠다고 말하곤 했다.” 티스들은 말했다. “그게 그가 볼을 맞히는 방식이라며 톱에서 클럽이 한 바퀴 돌아가는 것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는 늘 긍정적인 태도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좋아, 릭. 오거스타의 18번홀 티 박스야. 높은 컷 샷이 필요해. 할 수 있겠어?’ 그러면 릭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리는 내게 말했다. ‘내가 저 아이에게 하려는 건 두 가지야. 재능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과 위대한 골퍼의 정신을 길러주는 것.’”

두 번째 부분은 파울러가 곧 오르게 될 거라고 확신한 스타덤에 대비시키려는 것이었다. “배리는 리키가 특별한 선수가 되리라는 걸 예상했고 골퍼로서 많은 것을 이룰 거라고 믿었다.” 티스들은 말했다. “그는 뛰어난 선수들을 많이 봤고 그중에서도 특히 권투 선수들을 연구했다. 그는 폭스힐스에서 조 루이스와 자주 라운드를 했다. 배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 슈퍼스타나 이름만 말해보라, 어떤 비극적인 삶을 살았는지 말해줄 테니.’ 그러면서 미스터 유니버스를 지낸 자신의 친구 조지 아이퍼먼(George Eiferman)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재능은 신이 주신 것이니 겸손하라, 명성은 인간이 주는 것이니 감사하라, 자만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 주의하라.’ 리키는 이런 지혜를 모두 받아들였다. 거들먹거리는 법이 없었으며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2011년에 접어들면서 맥도널의 심장병이 악화되고 결국 5월에 세상을 떠났을 때, 2010년도 PGA투어 올해의 신인상을 수여한 파울러는 2013년까지 69개 대회에 나가 톱10에 단 열네 번 진입할 정도로 오랜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너무 힘들었다.” 파울러는 왼쪽 손목에 맥도널의 사인을 문신으로 새겼다. “마스터스 파3대회에서 내 캐디를 맡아주기로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는 단순히 내가 의지하던 사람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서 오르게 될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를 내다본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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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먼의 영향 

부치 하먼이 그의 인생에 등장한 건 2013년 말이었다. 하먼은 파울러가 미컬슨이나 더스틴 존슨과 연습 라운드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이미 서로 익숙한 사이였다. ‘내 판단의 척도는 볼’이라는 교습 철학을 지닌 하먼의 방식은 맥도널과 상당히 비슷하지만, 다년간 세계 최고 선수들의 스윙을 손본 경험 덕분에 조금은 더 복잡하고 세련된 편이었다.

정확한 다운스윙 판으로 샤프트를 끌어내리는 파울러의 타이밍은 탁월하지만 오류가 없지 않았고 그의 기술이 이 타이밍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하먼은 톱에서 나오는 고리의 크기를 줄이는 데 초점을 뒀다. 파울러의 백스윙은 조금 더 수직에 가까워지면서(그래도 왜글을 할 때 테이크어웨이를 길게 하는 버릇은 여전하고 골프 팬들에게도 익숙하다) 다운스윙 때 샤프트가 몸보다 뒤쪽으로 내려올 가능성을 크게 줄였다. 파울러가 상위권의 선수치고는 드라이버 샷과 어프로치 샷에서 지나치게 실수가 빈번한 이유는 바로 이것과 그의 공격적인 성향 때문이었다.

더 효율적인 동작을 구사하면서 파울러의 클럽 헤드 속도와 거리도 늘어났다. 예전에는 플레이가 잘 풀리지 않으면 70대 중반의 스코어를 기록하며 토너먼트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이제는 훨씬 잘 대처하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파울러는 2014년에 메이저 대회에서 네 번 모두 톱5의 성적을 거두며 도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승하지 못했고 상금 랭킹도 8위에 그쳤다. 코치로서 자신감을 불어넣는 데 일가견이 있는 하먼의 자극 덕분에 2015년에는 한 단계 뛰어오르며 플레이어스와 도이체방크 그리고 스코티시오픈에서 우승을 거뒀다. 그리고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리키는 골프를 사랑하고 대화나 농담이 재미있기 때문에 같이 있으면 즐겁다.” 하먼은 말했다. “그러다가도 레슨을 시작하면 무섭게 집중하면서 빠르게 내용을 숙지하는데 그만큼 재능이 뛰어나다는 증거다. 그는 정말로 최고가 되고 싶어 한다. 어떤 대회에서 우승했고 어떤 선수를 물리쳤는지를 보면 그게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부다비에서 그는 첫 두 라운드를 조던과 로리와 함께 했는데 내가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 ‘그 둘은 너에 대해 얘기도 하지 않더라.’ 그랬더니 조금 발끈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 존재를 의식하게 만들어주겠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는 계속 발전할 선수다.”

만약 그렇다면 파울러의 메이저 대회 우승 확률은 높다. 올해 오거스타와 오크몬트, 트룬, 발투스롤에서 열릴 메이저 대회를 준비할 때 그는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감을 북돋운다.

“나는 어린 시절의 그 연습장을 늘 생각한다.” 지금은 플로리다에 사는 파울러는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그곳을 드나들었고, 여름이면 종일 그곳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곳에서 할아버지와 함께한 시간, 배리와 보낸 시간을 생각한다. 지금도 고향을 찾을 때면 가끔 그곳에 가는데 그 나무 밑에 서면, 뭐랄까, 나쁜 샷을 할 수가 없다. 거기는 내게 특별한 곳, 오래된 학교 같은 곳이다.

리키가 지나온 과정

올해 스물일곱 살인 리키 파울러는 PGA투어에서 대회 상금으로만 2100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 오클라호마주립대 시절에는 전미 대표로 활약하며 2008년 벤호건상을 수상했으며 프로로 전향한 후의 하이라이트는 다음과 같다.

2010  두 번의 2위(메모리얼토너먼트, 웨이스트매니지먼트피닉스오픈)에 오르며 PGA투어 올해의 신인상 수상. 라이더컵 미국팀 선수로 선발.

2011 WGC-브리지스톤인비테이셔널에서 공동 2위. 피닉스에서 자신의 최저타인 62타 기록.

2012 웰스파고챔피언십에서 로리 매킬로이, D. A.포인츠와 플레이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면서 PGA투어 첫 승 기록.

2013 다섯 번의 톱10 기록.

2014 잭 니클라우스(1971, 1973), 타이거 우즈(2000, 2005)와 함께 한 시즌에 4대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톱5에 진입하는 선수가 됨. 라이더컵 출전.

2015 PGA투어의 플레이어스챔피언십, 도이체방크챔피언십 그리고 유러피언투어의 스코티시오픈 우승. 프레지던츠컵 출전.

2016 조던 스피스와 로리 매킬로이가 참가한 아부다비에서 우승을 거둠. 쾌조의 출발을 보이며 세계 랭킹 4위로 도약.

 

메이저 대회 성적

연도 

 마스터스

US오픈 

브리티시오픈 

PGA챔피언십 

2008  불참  공동 60위  불참  불참
2009  불참  Cut  불참  불참
2010  불참  불참  공동 14위  공동 58위
2011  공동 38위  Cut  공동 5위  공동 51위
2012  공동 27위  공동 41위  공동 31위  Cut
2013  공동 38위  공동 10위  Cut  공동 19위
2014  공동 5위  공동 2위  공동 2위  공동 3위
2015  공동 12위  Cut  공동 30위  공동 3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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