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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의 3가지 변화 [People :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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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공영규
헤어&메이크업_파크뷰칼라빈by서일주

김경태는 지난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서 두 번째 상금왕을 차지하며 세계 랭킹을 350위에서 60위까지 끌어올렸다. 2015년을 ‘괴물 김경태’답게 보낸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글_인혜정

김경태는 명민하고 예의가 바르다. 말투는 또박또박하고 나긋나긋한 데 비해 행동에서는 단단함이 느껴진다. 그의 바른 이미지는 10년간 선수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비켜나간 적이 없다. 사적인 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도마 위에 오른 적도 없다. 그의 성격처럼 슬럼프도 조용히 극복했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건재함을 다시 알렸다.
지난해 그는 JGTO에서 5년 만에 상금 랭킹 1위(1억6598만엔)를 탈환하며 한국 선수 최초로 두 번째 상금왕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6월 태국에서 열린 싱하코퍼레이션타일랜드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10월 마지막 주까지 5승을 쓸어 담으며 다시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실 그는 상금왕에 오르기까지 부담이 컸다. 그가 시즌 중반에 참가해 우승한 대회 상금 규모는 하반기에 열리는 대회 상금의 절반이었다. 상반기에 2000만엔이라면 하반기에 4000만엔으로 금액 차이가 크다. 만약 10월 이후에 열린 대회에서 두 번 이상 우승하는 선수가 있다면 김경태는 다승을 해놓고도 상금왕을 놓치칠 수도 있었다.
“상금왕 찬스에 놓인 선수가 두 명이었다. 이 두 선수가 남은 두 개 대회에서 우승하고 내가 10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 상금왕을 놓쳤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개되지 않았고 마지막 전 대회에서 상금왕을 확정 지었다.”
그는 지난해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결혼하고 아들을 얻었고, 오랜 기간 익숙하던 스윙을 버렸으며, 단짝이던 캐디까지 교체했다. 이 세 가지 변화는 복합적으로 그의 경기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생활 패턴에 아직도 적응 하고 있는 그가 3년 만에 골프다이제스트와 마주했다. 그리고 왜 그런 변화를 겪어야 했는지 말문을 열었다.

결혼을 통해 한 템포 쉬어가는 법을 배웠다. 항상 골프에 얽매여 있던 나에게 가정은 자유를 줬다. 지난해 1월, 결혼하고 경기 시즌이 시작되는 4월 전까지 동계 훈련을 떠나지 않았다. 항상 시즌을 마치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느라 바빴는데 동계 훈련을 가지 않은 건 중학교 1학년 이후로 처음이었다. 국내에 머물면서 아내와 함께 여행을 즐겼고 체력을 단련했다. 만약 혼자 집에 있었다면 골프에만 집착했을 것이다. 자유 시간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또 다른 변화를 계획했다.

투어 생활보다 가정 생활이 힘들다. 골프를 한 지는 20년이 지났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지는 2년밖에 안 된 초보자다. 모든 게 처음이니 실수투성이다. 특히 아들 ‘재현’이가 태어나면서 생활 패턴이 아이 중심으로 바뀌다 보니 더 서툰 점이 많다. 아직까지 아이의 대변 기저귀를 교체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투어 생활이 더 쉽다고 느꼈다. 또한 절제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항상 떠올린다. 이제는 나를 중심으로 가정이 움직이니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당구를 치거나 늦잠을 자는 것은 오래전 일이 돼버렸다.

재현이는 우리 가족의 큰 관심사다.아들의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셨다. 재현이가 갓 태어났을 때 기억난다. 온몸이 시커멨다. 한두 살 된 아이처럼 머리털이 수북했고 온몸은 털로 덮여 있었다. 나중에 몸의 털은 모두 빠졌지만 다행히 눈썹은 짱구처럼 진하게 남아 있었다. 그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것만 닮아서 태어났구나. 사실 내가 연한 눈썹으로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이다.

아들이 보는 프로그램이 딱 두 개가 있다. 애니메이션과 골프 경기 방송이 나오면 가만히 앉아서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럴 때마다 ‘불안하게 쟤가 왜 저걸 보지?’라는 생각을 한다. 아들은 평범한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나는 먼저 나서서 아들에게 골프를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 골프를 한다면 두 번 정도는 말릴 생각이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이름 때문에 부담을 안고 선수 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주변에서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아내 덕분에 체력이 향상되었다. 경기 전까지 집에서 거의 아내가 해준 밥을 먹었다. 아내의 음식 솜씨가 좋아서 그런지 맛있다. 건강한 식단과 함께 매일 체력 단련 운동을 병행하다 보니 금세 몸이 회복되고 마음이 맑아졌다. 이 두 가지를 갖추니 연습하는 데 집중이 더 잘되더라.

운동의 중요성을 3년 전부터 느꼈다. 근육이 빠지면 잔근육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상이 오더라. 나는 유연성 향상을 위한 트레이닝과 스트레칭 위주로 운동을 한다. 또한 경기 후반까지 체력 유지를 위해 스쿼트로 하체를 단련하는 데 집중했다.

변화의 적기를 찾았다. 결혼하고 나서 다양한 면이 보이기 시작했고 심리적인 여유가 생겼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어떻게 하면 잘될까’라는 궁리를 했다. 당시에 ‘초심(初心)’과 ‘긴장’이 필요했다. 스윙 기술은 물론이고 일본투어에서 5년을 함께한 캐디까지 과감하게 교체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내 선수 생활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큰 결심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때가 변화의 적기라고 생각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초심’과 ‘긴장’이 필요했다.

스윙을 바꿔 기술적으로 탄탄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캐디를 교체하며 투어 생활의 긴장감을 찾았다.”

스윙을 교정하는 데 큰 자신감이 필요했다. 2008년에 스윙을 교정하면서 스윙이 망가져 2년 동안 고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스윙으로 앞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모중경 선배를 찾아가 급히 도움을 청했다. 중경이 형과는 아시안투어도 함께 다녔고 부치하먼스쿨도 동행하던 절친한 사이다. 내 스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예전부터 조언을 구했다.

중경이 형은 석 달간 내 스윙을 집중적으로 봐줬다. 처음에는 ‘이 스윙으로 시작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크게 바꿨다. 지난해 첫 경기가 4월 둘째 주부터 시작했는데 나는 3월 말까지 바꾼 스윙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주일에 네 번씩 라운드를 나가 점검을 받았다.

 

처음에는 클럽 위치, 그립, 백스윙을 수정했다. 우선 어드레스를 다시 잡았다. 약간 닫아놓은 클럽을 스퀘어로 놓았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리고 백스윙과 다운스윙 때 많이 꺾이던 손목을 바로잡았다. 스트롱 그립에 손목까지 많이 꺾어 스윙하던 습관이 있었다. 오랜 시간 압력을 받아온 손목은 통증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이번 교정을 계기로 손목을 펴니 백스윙 톱에서 헤드가 닫히는 효과를 봤고 통증도 줄었다. 또 백스윙 때 오른팔을 약간 몸에 붙이는 스타일이었다. 팔을 몸으로부터 많이 벌리면 공을 못 쳤는데 그 공간을 뒀다. 올라가던 오른쪽 어깨도 잡고 리버스 피봇이 나타나는 문제도 해결했다. 백스윙을 하는 동안 이미 8가지를 신경 써야 했다.

 

스윙이 끝날 때까지 세 가지 문제를 더하니 문제는 총 11가지로 늘어났다. 다운스윙 때는 왼쪽 허리를 목표 방향으로 보내면서 왼쪽 어깨를 얕게 내려야 한다. 이때 왼팔은 꺾이지 않게 스윙하는 데 집중했다. 짧은 스윙을 하면서 다양한 점을 신경 써야 하니 정신이 없었다. 생각하기도 전에 공은 이미 날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는 백스윙 때 쓸데없는 동작을 없애니 백스윙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다행히 지금은 몇 가지 부분만 신경 쓰면 될 정도로 바뀐 스윙에 적응했다. 하지만 20년 이상 하던 스윙이라 순식간에 바꾸는 건 무리다. 아직도 몸보다 팔이 늦게 움직이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스윙 교정으로 롱게임이 좋아졌다. 티 샷이 정확해지면서 페어웨이에서 공격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 것.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내 드라이버 비거리에 관한 이야기다. 대부분 언론에서 내 비거리에 대해 설명할 때 왜 ‘정교한 샷을 소유한 단타자’라고 강조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항상 비거리 부문에서 중•상위를 기록했다. 드라이버 비거리 290야드를 기록하는데 같은 거리를 내는 다른 선수들은 단타자라는 언급이 전혀 없더라. 그 선수들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선수들이다.

미들 퍼트 향상이 관건이다. 운이 좋아도 원하는 순간에 미들 퍼트를 성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과거에는 미들 퍼트를 못 넣어도 내 장기인 숏퍼트로 만회했다. 숏퍼트로 스코어를 막다 보니 항상 2~4언더파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날이 많았다. 스코어는 꾸준했지만 한 방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5~10m 사이의 미들 퍼트를 자주 성공하며 7~9언더파까지 몰아 치기를 여러 번 했고 그러다 보니 우승권 진입이 쉬워졌다.

 

일본인 캐디 ‘와타루’는 나보다 두 살 위로 나이도 비슷하고 성격도 잘 맞았다. 와타루는 캐디일 뿐만 아니라 운전부터 기상 시간까지 모든 걸 관리해줬다. 특히 나는 경기 때마다 새벽 2~3시쯤 수면을 취하는 습관이 있다. 아침에 못 일어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알람 소리를 들어도 다시 끄고 잔다. 그러면 와타루가 전화를 해주고, 그래도 못 일어나면 방으로 직접 깨우러 온다. 대회 날인데도 이런 일을 반복했다. 언젠가 스스로 해이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디와 문제는 없었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한해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정리가 필요했다. 기존에는 나 스스로 캐디와의 거리를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그런 부분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 전문 캐디를 두지 않고 대회 때마다 임시로 캐디를 고용했다. 다섯 번의 우승에서 지난해 첫 대회의 캐디는 하우스캐디였고 두 번째는 가시와기, 그리고 나머지 대회에서는 각각 시마나카와 이시즈카와 함께했다. 운전도 스스로 하고 아침에도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습관을 갖게 됐다.

캐디와 크게 상의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성격 자체가 캐디와 상의했다가 실수라도 발생하면 그 문제에 대해 대회가 끝날 때까지 집착하는 편이다. 그래서 애초부터 경기적인 부분은 의존하지 않는다.

내 생활에 뚜렷한 주관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뭐든지 묻어가는 스타일이다. 경기가 끝나고 연습하고 싶어도 함께 다니는 선후배들이 저녁에 어떤 일을 제안하면 군말 없이 따라가는 편이다. 사회생활도 그렇지 않은가? 남들이 하는 일을 함께 따라가는 게 가장 편하지 않나. 내 주관대로 하려고 해봤자 마음도 불편하고 잘 안 되더라. 그런데 이 부분도 과감하게 정리했다. 경기하러 다닐 때도 마음 맞는 선수 두 명과 함께하고 계획된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려고 한다.

3

이제는 미련 없이 미국투어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설사 미국에서 자신감을 잃고 헤맨다고 하더라도

분명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올해 가장 큰 목표는 미국 진출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너는 일본이 잘 맞는데 굳이 미국에 왜 가려고 하느냐는 조언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이것 역시 타이밍인 것 같다. 국내에서 두 번, 일본에서 두 번 총 네 번의 상금왕을 거두면서 두 곳에서 목표를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미련 없이 미국투어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설사 미국에서 자신감을 잃고 헤맨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있어 분명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11년과 2012년에 미국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지만 좋은 경험으로 남아 있다. 2011년에는 미국투어에 진출해야겠다는 생각은 1%도 없었다. 당시 손의 감각이 좋고 높은 상금 랭킹으로 메이저 대회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한번 경험을 쌓으면서 도전하자는 생각으로 대회에 출전한다는 의미가 더 컸다. 2012년에는 마음먹고 시드를 치렀지만 쓴맛을 봤다. 사실 12개 대회에서 시드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 부담감도 만만치 않았다.

만약 4년 전 미국 진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손의 감각만 가지고 살아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젠가 문제가 터질 스윙이었다. 올해 나는 서른 살인 데 20대 때만큼 손의 감각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스윙 기술을 보완하며 전반적인 기량은 더 탄탄해졌다.

올림픽 출전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 내가 메달을 얻는다면 남자 골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추어 때 겪어본 아시안 게임의 경험을 살려 도전할 것이다. 올림픽 출전이 거의 확정된 선수는 현재 세계 랭킹 29위인 안병훈이다. 나는 59위로 그 뒤의 후보에 올라 있는데 아직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물론 세 번째 후보(노승열, 214위)와 150위 이상 차이가 나지만, 나도 지난 시즌에 350위로 출발해 여기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지난해 가장 아쉬운 부분은 세계 랭킹 포인트가 모자라 마스터스 출전권을 얻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 세 개 대회 중 두 번째 대회에서 세계 랭킹 포인트를 1점대로 받고 두 개 대회는 20위 밖이라 점수를 얻지 못했다. 5승을 거둔 뒤 하반기에 긴장이 약간 풀린 것이 원인이었다. 그때 조금 더 정신을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상금왕에 가까워질수록 안도했다. 하지만 아직 기회가 있다. 마스터스가 열리기 2주 전까지 세계 랭킹 50위권에 들면 출전할 수 있다. 마스터스 전에 나는 네 개 대회에 참가할 예정인데 그중 세 개 대회는 세계 랭킹 포인트가 높아 기대해볼 만한다.

 

JGTO 연도별 상금 순위

연도

순위

상금(¥)

2008

49위

2억2749만원(21,992,250엔)

2009

9위

8억62만원(77,399,270엔)

2010

1위

18억7334만원(181,103,799엔)

2011

12위

7억3497만원(71,052,728엔)

2012

9위

7억9205만원(76,570,535엔)

2013

20위

5억3433만원(51,656,204엔)

2014

35위

3억1874만원(30,814,350엔)

2015

1위

17억1691만원(165,981,625엔)

✽순위는 국제 메이저 대회 포함

Kim Kyung-Tae

김경태 : 나이 30세 소속 신한금융그룹
우승 국내 4승 : SBS토마토저축은행오픈, GS칼텍스매경오픈, 삼능애플시티오픈(2007), GS칼텍스매경오픈(2011)
해외 10승 : 다이아몬드컵, 일본오픈골프선수권대회, 마이나비ABC챔피언십(2010), 세가세미컵(2011), 후지산케이클래식(2012), 싱하코퍼레이션타일랜드오픈, 뮤제플래티넘오픈, 후지산케이클래식, 아시아퍼시픽챔피언십미쓰비시다이아몬드컵, 마이나비ABC챔피언십(2015)
경력 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2006),
코리안투어 상금 랭킹 1위•대상•덕춘상•명출상 5관왕(2007), JGTO 상금 랭킹 1위(2010), 코리안투어 상금 랭킹 1위(2011), JGTO 상금 랭킹 1위(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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