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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녀로 변신한 양자령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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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령’이라는 이름이 국내 골프 팬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에디터가 그녀를 처음 만났던 건 2005년의 일이었다. 당시 국내 골프용품 제조 업체에서 열었던 후원의 밤 행사에 참가했을 때였다. 그때 자령이의 나이가 열 살이었으니, 아직 유망주라고 부르기에도 일렀다. 앳된 얼굴에 예쁘고 큰 두 눈을 가진 소녀가 수줍게 인사를 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한편으로는 ‘저 친구가 그렇게 대단한 선수야?’라는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도 사실이다. KBS ‘인간극장’을 통해 태국에 살고 있는 골프 신동으로 처음 국내에 소개됐던 양자령은 지금도 그렇지만 해외에서 인지도가 더 높은 선수였다.

태국에서 리조트 사업을 하던 아버지 양길수 씨는 두 딸이 스포츠를 통해 여가를 보내고 인성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언니와 함께 테니스, 수영 등을 배웠고, 우연히 골프를 접하게 됐는데 언니보다는 자령이에게 더 맞는 운동이었다. “무언가를 하면 항상 끝을 보는 성격입니다. 책을 한 권 읽더라도 끝까지 다 읽어야지만 다른 일을 하곤 했어요. 골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 양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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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을 평정한 골프 신동

태국에서 나름 유명했던 프로에게 레슨을 받게 했다. 그때부터 또래 아이들에 비해 힘이 좋았고 그 힘을 제대로 쓸 줄 알았다. 라운드 경험이 한 번도 없었던 자령이의 첫 데뷔 무대는 다름 아닌 태국 내에서 열린 전국주니어골프대회였다. 막 일곱 살이 됐던 시기에 참가했던 대회에서 1위에 올랐다. 이후 태국은 물론 아시아, 미국, 유럽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면서 그녀의 영어 이름인 ‘줄리 Julie’를 알려왔다.

당시 함께 골프를 했던 선수들이 바로 아리야와 모리야 주타누간(태국) 자매였다. 현재 미국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자매 골퍼로 유명하다. 이들에게 자령이는 태국을 떠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거대한 산과 같았다. 주타누간 자매 외에도 수차야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그녀는 현재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골프를 하고 있다. 양자령은 열한 살까지 태국에 살았고 서른한 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태국에는 경쟁자가 더 이상 없다고 판단해 여름에는 굵직한 세계 대회에 출전하며 경험을 쌓았다. 펩시월드챔피언십은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주니어월드마스터즈에서는 2위와 40타(3라운드 합계) 이상 차이를 내며 우승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그녀 앞에 강적이 나타났다. 자령이보다 20센티미터 정도 더 컸던 알렉시스 톰슨이었다. 아홉 살 때 자령이의 드라이버 비거리가 160~170야드였는데, 렉시는 230~240야드 정도였으니, 그 차이가 어련했을까. 렉시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자령이를 꺾었던 선수는 없었지만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US키즈월드챔피언십에서 알렉시스 톰슨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자령이는 그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2라운드까지만 해도 자령이가 앞섰지만 마지막 날 승부를 건 렉시는 거의 모든 파5 홀에서 투온을 시도했다. 결국 열한 살이 되던 해에 자령이는 미국 애리조나로 이사를 결심했다. 조금 더 큰 무대에서 경험을 하고 싶었다.

 

더 넓은 세상에 첫발을 내딛다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 : American Junior Golf Association)에서 주관하는 대회는 열두 살이 넘어야 나갈 수 있었는데 당시에는 열한 살이라 나갈 수 없었다. 결국 그녀가 택했던 방법은 마치 무림의 절대 고수를 찾아 다니면서 하나씩 꺾는 것처럼, 미국에 실력이 좋다는 선수들은 모두 수소문해서 만나 하나씩 쓰러뜨렸다. 초등학생이 미국을 횡단하며 소위 ‘맞장 배틀’을 치렀던 것이다. 미국PGA투어 프리 퀄리파잉(먼데이퀄리파잉을 치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대회)에도 출전했다. 한국LPGA투어에 초청을 받아서 나가기도 했다.

이후 AJGA 역사상 최연소 우승(12세1개월13일)을 했고, 한 해에만 4승을 거두며 최연소 ‘올 어메리칸 멤버(All American Member)’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때 올 어메리칸에 뽑혔던 선수들이 현재 미국LPGA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는 제니 신(신지은), 비키 허스트, 알렉시스 톰슨과 같은 선수들이다. 남자 선수로는 리키 파울러, 모건 호프만 등이 당시 멤버였으니 그 면면이 화려하다.

미국을 평정하고 나니 그녀에게 더 이상 우승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경험을 더 쌓기 위해 골프의 발상지이자 세계적인 선수들을 다수 배출한 스코틀랜드로 건너갔다. 한국과 미국, 태국 무대는 경험을 해봤지만 유럽 무대에서는 아직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언니가 옥스퍼드 법대(현재 언니는 변호사다)를 들어가면서 좋은 기회가 생겼다. 그때가 자령이가 열네 살이던 2009년이었다. 스코틀랜드의 로레토 스쿨은 400년 전통을 가진 유명한 학교였다. 자령이가 오기만 한다면 규정(외국인에게 장학금을 주는 규정이 없었다)을 바꿔서라도 입학을 시키겠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학교 정관까지 바꿔가며 자령이를 받아들였고, 거기에 부응이라도 하듯 공부로 100퍼센트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기숙사에 혼자 살면서 저녁에는 골프 연습을 했다. 4년 정도를 예상하고 건너갔지만 1년 안에 모든 걸 다 이뤘다. 잉글리시아마추어챔피언십, 덴마크인터내셔널챔피언십, 웨일즈아마추어챔피언십 등 각 나라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고 독일인터내셔널아마추어대회에서 2위에 올랐다. 2010년에는 예선전을 통과해 브리티지여자오픈에 최연소로 참가했다.

아시아와 미국에 이어 유럽 무대까지 평정을 하고 나니 프로로 전향하라는 제의를 받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자령이는 공부에 대한 의지가 더 강했다. 대학을 들어가서 1년만이라도 공부하고 싶다며 아버지를 설득했고, 그런 딸의 의사를 존중해 프로 전향은 미루기로 했다. 대신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기로 결정했다.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정서도 이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남양주에 있는 광동고등학교를 2년반만에 조기 졸업하고 SAT 시험을 치러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 금융학과에 전액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골프 팀에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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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프로 무대로 진출하다

대학교 1학년 때는 NCAA(미국대학체육협회) ‘올 어메리칸’으로 뽑혔다. 1학년생이 올 어메리칸에 선정된 것은 개교 이래 처음이었다. 2학년 때는 ‘빅 12 플레이어오브더이어(Big 12 Player of the Year)’에 선정됐다. 중부 지구 최우수선수상이나 다름없는 영예로운 것이다. 5학기를 다니는 동안 운동 선수 중에 공부로 1위를 하면 받게 되는 ‘딘 오너러스’라는 상까지 받았다. 공부를 하던 중 갑자기 미국L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 응시했고, 공동 18위에 올라 올해 본격적으로 투어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학교는 휴학을 내기로 결정했지만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학업을 마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녀는 아이큐가 154일 정도로 똑똑하고 자존감도 강한 편이다. 언제든지 스스로 결정하고 그대로 실천해 옮긴다. 아버지 양 씨는 자령이가 퀄리파잉스쿨에서 거둔 성적에 대해 ‘공부벌레의 반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대회를 앞두고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갈까 싶어 수건으로 막아놓고 공부를 하는 아이예요. 아무리 중요한 대회가 있더라도 자령이에게는 공부가 우선이죠. 공부도 잘하고 골프로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아이는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라고 했다.

퀄리파잉스쿨을 마치고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양자령을 10년만에 만났다. 여전히 크고 반짝거리는 두 눈은 깊이를 더했고, 탄탄한 몸매에서는 건강미가 느껴졌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와 훌쩍 성장해버린 또 다른 양자령과 마주한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그녀와의 오랜 시간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반드시 지켜봐야 할 선수 중 한 명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는 ‘줄리’라는 이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GO Julie!

[골프다이제스트 고형승 기자 tom@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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