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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순간을 맞이하다 [People :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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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승훈 / 헤어&메이크업_파크뷰칼라빈by서일주

소중한 순간을 맞이하다

15년째 KLPGA투어에서 경기위원으로 활동 중인 박경희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올림픽에 초청받았다. 그녀를 만나 초청받게 된 배경과 경기위원이 된 사연 그리고 올림픽에 초청받은 소감에 대해 들어봤다. 글_고형승

해 2월27일에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나는 메일 계정을 남편과 함께 사용한다. 국제골프연맹(IGF : International Golf Federation)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그런데 여러 서류와 함께 신용카드 번호를 쓰라고 되어 있는 게 아닌가. 남편은 스팸 메일인 것 같다며 한쪽으로 치워버렸다. 나흘쯤 후였나? LPGA에서 인터내셔널크라운에 경기위원으로 초청하겠다는 메일이 또 왔다. 초청장의 마지막 구절이 어디서 본 것처럼 낯이 익었다. 남편에게 IGF라는 곳에서 보내온 메일을 다시 한 번 봐야겠다고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올림픽에 나를 초청하겠다고 명기되어 있었다. 아뿔싸!


나는 2002년부터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에서 경기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올림픽 참가 여부는 혼자 독단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2~3주를 비워야 하는데 기존에 KLPGA투어 출장이 잡혀 있으니 이를 먼저 알려야 했다. 그리고 올림픽에 경기위원으로 초청하는 것인지 협회 직원으로 초청하는 것인지 내용도 명확하지 않았다. IGF 담당자에게 더욱 자세하고 명확한 사항을 보내달라고 요구했고 KLPGA로도 별도의 공문을 발송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IGF 측에서는 “협회로 보낼 사항은 아니다. 당신을 경기위원으로 올림픽에 초청하는 것이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말 궁금한 건 그들이 나를 어떻게 알고 그런 메일을 보냈는지였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여러 루트를 통해 알게 됐다고 하는데 참 신기한 일이다. 그동안 LPGA에서 주관하는 국내 대회(KEB하나은행챔피언십)에서 10년 넘게 경기위원으로 참여했고 2010년부터는 LAGT(Ladies Asian Golf Tour)의 경기위원을 했는데 아마 그쪽을 통해 정보가 넘어간 것 같다. KLPGA투어를 비롯해 여러 해외 대회에서의 경험이 풍부하고 일단 영어로 룰 판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나를 초청한 이유인 듯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3월 초, 유럽과 중국 그리고 한국이 공동 주관하는 월드레이디스챔피언십 출장을 위해 중국 미션힐스로 떠났다. 현장에는 유럽에서 온 경기위원들도 있었는데 그들을 비롯해 중국 경기위원들까지 “이번에 리우에는 누가 가느냐?”고 물었다. 내가 초청받았지만,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IGF의 초청 내용에 따르면 숙식은 제공하지만, 항공료는 개인이 부담하거나 내가 속해 있는 협회에서 부담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협회가 출장을 허락해줄지 또는 비용을 부담해줄 것인지 결정이 나지 않았던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했다. 답변과 서류를 보내야 하는 기한은 다가오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왔다.


현장에 있던 외국 경기위원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들은 “한국 선수들이 가장 많이 출전해서 확률상 한국 선수가 메달을 딸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경기위원이 한 명도 가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나를 부추겼다. IGF에서는 3월15일까지 모든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지만, 중국에서 귀국하는 날짜가 바로 그날이었다. 배우자도 함께 초청했기 때문에 남편과 상의했다. 평생을 살면서 언제 한번 브라질 땅을 밟아보겠느냐며 결단을 내리자고 했다. 협회에 상황을 알리고 일단 서류를 먼저 보내겠다고 했다. 나중에 출장만 조정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사진은 한국에서 공수하고 서류를 만들어 부랴부랴 우편으로 보냈다. 6월27일, 협회로부터 이사회를 통해 내 항공료를 지원해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가게 됐다는 건 아주 잘된 일이다.


나는 25년간 영국에서 살았다. 남편이 공부하기 위해 갔을 때가 큰아들이 한 살 때였다. 작은아들은 아직 태어나기 전이었다.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골프장을 남편과 가끔 가다가 골프의 매력에 푹 빠졌다. 골프장 회원권을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입했다. 회원권이라고 해봐야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두세 번 정도 라운드를 하는 비용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주말에는 남편과 36홀씩 플레이하곤 했다. 1995년에 남편은 한국 대학으로 들어오게 됐는데 한국에서 골프를 한다는 건 우리 수준에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시어머니가 영국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학 때마다 남편과 방문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나를 이끌고 집에서 5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영국 골프 전문 대학으로 향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골프를 좋아하던 내가 더는 골프를 할 수 없게 된 게 안타까웠나 보다. 우리가 방문할 때가 원서를 나눠주고 학교를 소개하는 기간이었다. 남편이 미리 알아본 것이다. 학교가 운영하는 골프장까지 둘러보고 오는 길에 골프매니지먼트학과에 지원해보라고 했다. 마흔 살이 넘은 나이에 무슨 공부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열여덟 열아홉 살의 어린애들과 어떻게 공부를 함께 하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원서를 넣고 인터뷰를 하고 결국 합격까지 했다. 그때가 2000년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큰아들은 자신이 도와주겠다면서 내게 힘을 실어줬다. 2년간 공부를 하고 골프를 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자식과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과, 그것도 골프로는 실력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나는 상황에서 그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건 정말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과 다름없었다. 처음 1년은 무척 생소하고 어렵고 외로웠다. 하지만 2년째가 되자 어린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도움을 주고 밥도 함께 먹었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골프를 했다. 한번은 골프 관련 업체에서 200시간을 일하는 현장실습을 나가야 하는데 지도 교수가 나를 불렀다. 그는 “케이(내 영어 이름이다), 너는 어차피 나중에 한국에서 일해야 하니 한국에서 현장 실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나 역시 남편도 한국에 있었고 그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 지인을 통해 KLPGA를 소개받았고 내가 졸업한 2002년부터 경기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일당이 1만원이었다. 대회 기간 3일 동안 일하면 3만원을 받았다. 그것도 현금이 아닌 상품권으로. 그야말로 경기위원은 자원봉사의 개념이었다. 지금은 유류비와 톨게이트비까지 지급해줄 정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물론 아직도 경기위원 사례비만으로 생활할 수는 없다. 작년부터 팀장까지는 연봉제로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경기위원들은 나가는 날짜로 수당을 받고 있다.


KLPGA에서 15년째 일하면서 고마운 마음이 많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올림픽에 초청을 받을 수 있었겠나. 시대를 잘 타고난 것도 같다. 이번 올림픽은 나에게 영광이고 기대가 되는 이벤트다. 반면 떨리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한국어 제정집으로 공부해왔지만, 이제는 영어로 된 규칙집을 적어도 세 번은 읽고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국 경기위원장이 나에게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이 중요하다. 경기위원으로 초청을 받아서 나가는 건 개국 이래 네가 처음이다. 그게 중요한 사실이다. 만약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게 된다면 너는 그 순간을 함께한 첫 한국인 경기위원이 된다. 사진을 찍어서 가보로 남겨야 한다.”


아쉬운 건 일본인 경기위원도 세 명이나 가는데 가장 많은 선수단을 보내는 우리나라에서는 나 혼자만 간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책임도 막중하다. PGA투어와 R&A의 저명한 경기위원들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우고 기록해서 KLPGA투어의 경기위원들에게 잘 전달할 것이다. 2020년에 또 이런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언제 어떤 대회를 가더라도 자신 있게 그들과 일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배워오겠다. 그리고 우리 후배 경기위원들도 언젠가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더는 바랄 것이 없다.

Park Kyong Hee

박경희 : 나이 61세
학교 영국 메리스트우드 칼리지
경력 KLPGA투어 경기위원(2002년~현재) / LAGT 경기위원(2010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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