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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주의 아주 특별한 날 [People :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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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승훈

홍진주의 아주 특별한 날

어느 해보다 길고 치열했던 시즌을 막 끝내고 화려한 외출을 준비하는 프로 골퍼 홍진주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멀리 떨어져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다 보니 수많은 기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자, 지금부터 10년 만에 우승컵을 다시 품에 안은 홍진주의 특별한 날을 함께해보자. 글_고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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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에 위치한 헤어숍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피곤한 듯 연신 하품을 해대다가 이내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정말 의도치는 않았지만, 얼핏 보이는 화면에는 사진이 쉴 새 없이 지나갔다. 아마도 얼마 전 가족과 함께 다녀온 해외에서 찍은 사진이겠거니 싶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그를 곁눈질로 슬쩍슬쩍 보고 있자니 왠지 그러고 있는 모습이 더 민망해 고개를 아예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아, 민낯이 어색하다거나 이상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 모습 자체로도 아름다웠다. 사실 아름답다는 말을 아무에게나 붙이지는 않지만, 그에게는 그런 초특급 칭찬 단어가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를 대표하는 미녀 골퍼 중 한 명 아닌가.
국가 상비군을 거쳐 2003년 2부투어에서 활동할 때까지만 해도, 아니 루키 시즌인 2004년까지만 해도 그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했다. 자신의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05년에 KLPGA 대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드레서상을 수상하며 ‘홍진주’라는 이름 석 자를 팬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짧은 커트 머리에 어깨를 훤히 드러낸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그는 그야말로 미디어 친화적인 비주얼을 뽐내며 골프 관계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홍진주는 예쁘지만, 성적은 그저 그런 아주 평범한 선수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아마 골프를 좀 안다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그의 존재감이 베스트 드레서상을 받기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데 베팅했던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06년이 어떤 해인가. 신지애라는 무서운 신예가 나타나 대상과 신인상은 물론 전 부문을 싹쓸이한 해였다. 거기에 박희영, 최나연, 안선주에 이르기까지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릴 만한 선수들이 즐비했으니 그런 예상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게 또 한 명의 예쁜 선수를 떠나보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하늘은 홍진주의 성공을 바라는 몇몇 마니아들(매니지먼트 업체나 용품 회사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의 간절한 바람을 저버리지 않았다. 2006년 SK엔크린솔룩스인비테이셔널에서 생애 첫 우승을 거두더니 같은 해에 열린 LPGA투어 코오롱-하나은행챔피언십 트로피까지 수집하며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안타깝게도 이후 10년간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정말 찰나의 성공을 맛본 것이다. 그가 첫 우승을 맛보기 전 많은 이들이 예상한 것처럼 그저 그런 선수 중 한 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직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입술조차 바르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 보고 있으려니 고추냉이를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코끝이 찡해짐을 느꼈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과거 그 마니아 중 한 명도 그랬으리라. 그 누구도 자신을 봐주지 않았던 이국땅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터덜터덜 돌아올 때의 심정이 어땠을까. 또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상황에서 다시 투어에 발을 들여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두려움을 느꼈을까. 그리고 10년 만에 다시 우승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의 심경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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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투어 2016시즌이 거의 마무리되어갈 무렵 열린 팬텀클래식에서 홍진주는 허윤경, 장수연과의 세 홀 연장 승부 끝에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10년 만의 우승이었다. 그는 “마지막 퍼팅을 남겨놓았을 때부터 울컥했어요. 퍼트하기 위해 어드레스에 들어갔을 때도 이미 눈물이 가득 고여 있어서 볼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라고 당시의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날이 어두워져 라이트까지 켜고 진행된 경기였지만 수많은 갤러리와 후배 선수들이 남아 그의 우승을 끝까지 지켜봤다. 그리고 경기장 한쪽에는 엄마를 응원하던 아들 (박)은재도 있었다.
2시간쯤 지났을 때 얼추 머리 손질까지 끝나가는 듯 보였다(아니, 그런데 누구는 20분 만에 어떻게 올림머리까지 했다는 거지? 여기도 강남 어디쯤인 것 같은데). 주위로 왔다 갔다 하던 어린 선수들이 인사를 건넸다. 시종일관 아무런 표정이 없던 그는 이내 밝게 웃으며 응대했다. 그날은 KLPGA 대상 시상식이 열리는 날이라 그 헤어숍에는 선수들로 북적였다. 다른 선수들은 이미 시상식장으로 이동했지만 맨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후배들이 먼저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양보한 건가? 궁금증이 밀려왔지만,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시상식 시작 30분을 남겨놓고야 부랴부랴 드레스를 챙겨 숍을 나서는 그를 볼 수 있었다. 홍진주에게는 정말 오랜만에 참석하는 시상식이었을 게다. 수상자로서는 2005년 베스트 드레서상을 받았을 때가 처음이었고 2006년 인기상을 받은 게 마지막이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대상 시상식의 MC로 참여했다. 하얀색 드레스로 갈아입은 그는 언론의 급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도 여유 있게 응대하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런 게 바로 연륜이지.
시상식장에서 홍진주의 옆자리는 골프 여제 박인비였다. 그가 과거 국가 상비군 때 박인비는 주니어 상비군이었다. 그런데 둘 사이의 분위기가 서먹해 보이는 건 착각이었을까?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홍진주는 그 자리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박인비뿐만 아니라 박세리, 전인지, 박성현 등 각 투어를 대표하는 선수들과 한자리에 있으려니 어련했을까. 그러고 보면 그도 외모에서 느껴지는 ‘센 언니’ 포스와는 다르게 낯을 좀 가리는 것 같다. 평소 사람들이 붐비는 복잡한 곳은 싫어한다고 하니 더욱 그랬을 터. 그런데도 갤러리가 많은 대회장에서 플레이하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홍진주는 시상식에서 국내 특별상을 수상했는데 그해 우승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국내 특별상을 받은 선수들을 대표해 소감을 말하는데 역대 대상 시상식 MC다웠다. 그리고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개인적으로는 아이 가진 유부녀가 너무 예쁜 것도 문제라고 본다. 반칙 아닌가. 분명 그는 이 언급에 대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유부녀이기 이전에 프로 골퍼라고요!”
아들 은재가 뒤늦게 시상식장에 나타나자 그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밝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려 반겼다. 처음에는 드레스를 입은 엄마의 모습이 낯설었는지 쭈뼛거리더니 다정하게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눈을 맞추자 엄마의 품에 쏙 안겼다. 아직은 엄마의 품이 가장 좋고 따뜻할 나이다. 홍진주는 그런 아들을 떼어놓고 매주 대회에 참가해왔기에 지금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이튿날 다시 그를 따라다녔을 때는 느낌이 또 달랐다. 잠실에 위치한 모 백화점에 골프웨어를 입고 나타난 홍진주는 전문직 종사자에 더 가까워 보였다. 사실 프로 골퍼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전문직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날은 자신의 후원 업체에서 행사를 열어 고객 대상 레슨을 진행하는 날이었다. 2시간가량 여러 명의 레슨을 해준 뒤 백화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오랜만에 아이쇼핑을 즐겼다. 모처럼 찾아온 여유를 제대로 즐기는 듯 보였다.
자신의 의류를 후원해주는 매장에서 한참을 살펴보던 홍진주는 담당 직원에게 귀여운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아니, 이렇게 예쁜 옷이 많은데 왜 저한테는 이상한 옷만 보내주는 거예요?”(웃음) 그러다가 건너편에 있던 우리(에디터와 사진기자)를 발견하곤 멋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잠깐 카메라를 봐달라는 사진기자의 주문에 밝게 웃으며 손까지 흔들었다. 잠깐 자리를 옮겨 한 컷만 찍자고 부탁하니 주저 없이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그동안 홍진주를 여러 번 인터뷰해봤지만 이렇게 멀찍이 떨어져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한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 다소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나 어딘지 모르게 새침데기 같은 이미지는 어쩌면 우리가 대회장에서 잠깐씩 마주치는 것만으로 그를 마음대로 예단해온 건 아니었나 싶다. 이틀 동안 그와 함께하며 머릿속으로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추억 여행에 흠뻑 빠졌더니 어느덧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INTERVIEW

우리는 이틀간의 파파라치 생활을 정리하고 홍진주가 속해 있는 매니지먼트 회사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갔다. 그의 소속사는 주로 해외에서 활동 중인 야구 선수들을 매니지먼트하는 회사인데 집과 같은 편안한 곳이라는 게 지인의 전언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1시간가량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속내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골프다이제스트 : 어제 대상 시상식은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홍진주 : MC를 봤을 때가 더 떨렸던 것 같다. 생방송에서 실수하면 안 되니까. 기분은 정말 좋았다. 특히 함께 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승자들과 함께했다는 것 자체가 큰 추억이고 영광이었다. 또 (박)세리 언니도 오랜만에 만났고 (박)인비나 (전)인지도 있지 않았나. 특히 (박)성현이와는 미국으로 가기 전 함께할 수 있어 좋았다. 골프의 신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볼 기회가 흔치는 않으니까 말이다.

1년을 뒤돌아봤을 때 어떤 느낌인가?
매년 의미를 부여하면 어느 해가 의미가 없겠는가. 하지만 나에게 2016년은 정말 큰 의미가 있는 해였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은퇴하면 어떤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찰나였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2~3년 후의 일이라도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럴 때 우승이라는 선물을 받게 됐고 은퇴 전 또 하나의 커리어를 쌓은 것 같아 좋았다. 은퇴하더라도 더 양질의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복귀한 후 우승 없이 은퇴했다면 아마 많은 후회가 남았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우승했는데 울컥하던가?
(허)윤경이가 퍼트에 실패하고 난 후부터는 우승을 확신했다. 그때 갑자기 울컥했다. 눈물이 맺히니까 볼의 하얀 형태만 보였다. 주변에서는 빨리 가자는 갤러리의 소리가 들렸다. 캐디가 “침착해라”라고 말을 건넸고 한 템포 쉬고 들어가 퍼트에 성공했다.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감동적이고 울컥했던 것 같다.

아들 은재는 엄마가 우승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던가?
처음엔 정확하게는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세뇌를 시켰다. 이제는 트로피를 가리키면서 “저거 어디서 난 거야?”라고 물어보면 은재는 “엄마가 골프로 일등 해서 받은 거야”라고 답한다. 평상시 함께 TV로 골프 중계도 보고 되지도 않는 스윙을 가르쳐주곤 했다. 그래서 골프가 뭔지는 아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건 은재가 일등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까 싶다.

남편의 반응은 어땠나?
아무 말 안 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까 ‘잘했다’는 말도 없었던 것 같다. 남편은 그런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예전에 우승이 없는 이유가 자신 때문은 아닐까라는 말을 넌지시 했던 기억이 있다. 미안함이 컸던 것 같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몰래 울었던 걸 알고 있다.

여자 선수들은 결혼과 출산 이후에 성적은 물론 체력도 급격히 떨어지는 것 같은데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가?
당연하다. 출산 이후 몸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신체의 변화는 몸을 움직여야 하는 운동선수들에게는 분명히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몸이 좋아진 것 같다. 비거리도 줄지 않았다. 아이언은 오히려 많이 늘었다. 체격이 큰 편이라 부상만 없다면 앞으로 2~3년까지는 괜찮을 것 같다.

육아에도 신경 써야 할 텐데, 시즌 중에는 어떻게 하나?
월요일엔 무조건 쉰다. 은재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 쉬거나 간단한 운동을 하러 간다. 되도록 아이와 밥 한 끼라도 더 먹으려고 노력한다. 또 대회장은 최대한 늦게 간다. 물론 몸이 정말 힘들 때는 오히려 빨리 갈 때도 있다.(웃음) 집에 있으면 아이 때문에 쉬지 못하니까. 요새는 정말 말을 안 듣는다. 아이와 친구처럼 싸우기도 하고 삐친 척하기도 하면서 티격태격한다. 그러면 남편은 애나 엄마나 똑같다고 놀리곤 한다. 남편에겐 그런 우리가 유치해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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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 대한 애정의 변화가 좀 생겼나?
아직도 남편과는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애정의 크기는 아무래도 아이한테 많이 옮겨간 것 같다. 남편은 좀 서운해하는 것 같은데. 어쩌겠나, 엄마는 어쩔 수 없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주로 무엇을 하나?
매일은 아니지만 일기를 쓴다. 생각을 정리하는 수준이다. 책도 가끔 보는데 요즘은 쓰러지면 바로 잠이 드는 터라 책 한 권 읽기가 어렵다. 또 집에 있으면 아이와 놀아줘야 하니까 책을 들고 있을 시간도 없다. 시즌 중에는 하루에 10~20분 보는 게 전부다. 전지훈련 가면 책을 많이 읽게 된다. 그때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드라마를 자주 본다. 공유가 나오는 <도깨비>가 정말 재미있다.

2016년에는 이른바 중견 프로들이 우승하면서 후배 선수들에게 앞으로 가야 할 또 하나의 길을 보여준 것 같은데?
나와 (안)시현이가 서른 개 넘는 투어 환경에서 살아남고 나란히 우승도 했다. 후배들이 본보기가 됐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렇게 생각해주면 정말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 또한 우리가 하나의 짐을 지고 가는 느낌이 든다.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후배들이 많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하고 행실도 바르게 해야 할 것 같다. 오히려 책임감이 강해지는 느낌이다.

후배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5년 전, 10년 전과는 느낌이 다를 것 같다. 어떤가?
이제는 내가 이모뻘이다. 후배들 모두 귀엽다. 예전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는 선수에게 쏘아붙이고 말았는데 그게 나에게 마이너스라는 걸 알게 됐다. 이제는 무작정 뭐라고 하기보다는 해줄 말은 따끔하게 해주고 대신 그렇게 말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 친구의 이야기도 들어본다. 아무래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런 마인드도 자연스레 생기는 것 같다. 친한 후배들은 가끔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그런 것은 아니다. 골프는 개인 운동이다 보니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게 아무래도 자신의 치부나 약점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눈여겨본 후배가 있다면?
(박)성현이나 (고)진영이는 워낙 월등한 선수들이다 보니 차치하고라도 20~30위권에 있는 선수들은 누구라도 우승할 수 있다. KLPGA투어는 선수층이 워낙 두껍고 모두 실력이 뛰어나니까 누가 더 낫고 누가 못하다는 기준이 모호하다. 개인적으로는 박결 선수가 예쁜 것 같다. 그냥 예쁘다.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말도 예쁘게 하고 천생 여자 같았다. 내 기준이니까.(웃음)

원래 성격이 직설적인가?
전혀 직설적이지 않다. (이때 그가 너무나 단호하게 말하는 바람에 서로 웃고 말았다. 그게 직설적인 거라고!) 풍기는 이미지만 봐서는 차갑다거나 무서울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나도 선배들을 보면서 인사할 때조차 무서울 때가 있었다.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스타일도 아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반응할까에 대해 나름 고민하기도 한다.

대회장에서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면?
우리나라 대회는 18홀 코스에서만 치러지는 게 아니다. 36홀 코스에서 치러질 때는 다른 코스에 손님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럴 경우 라커룸을 함께 써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대회 당일 아침에 선수는 최대한 집중해야 하는데 사인을 해달라 사진을 찍자는 요청이 들어오면 당혹스럽다. 선수는 대회 전 자신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배려가 없다면 양질의 퍼포먼스를 팬들에게 보여줄 수도 없다.

2016시즌에 고비가 있었다면?
여름에 더위를 먹었다. 기관지염까지 걸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때는 ‘아,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내가 살아야겠기에 반도핑위원회에 서류를 모두 올리고 약을 복용했다. 대구에서 열린 대회는 중도에 기권했는데 기침하느라 플레이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함께 플레이한 선수들에게도 정말 미안했다.

가장 아쉬운 대회가 있었다면?
하이트진로챔피언십이다.  우승을 놓쳐서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우승이야 (고)진영이가 워낙 압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바라지도 않았다. 마지막 날 2위로 가고 있다가 15번홀부터 세 홀 연속으로 더블보기를 기록했다.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세 홀에서 모두 보기만 해도 2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지키지 못하고 공동 9위로 대회를 마쳤다.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것에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충격이 이틀은 갔던 것 같다.

만약 2017년에 LPGA투어 대회(하나은행챔피언십)에서 또 한 번 우승하게 된다면 미국 무대에 다시 도전할 의향이 있나?
안 간다. 절대. 아마 우승하면 복수했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미국에서 시드를 잃고 돌아온 것에 대한 복수 말이다.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갈 일은 없다. 한국이 좋다. 남편도 허락하고 아이의 조기 교육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싫다. 아직까지는. 물론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은퇴 이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해봤나?
누워 있으면 생각이 매일 바뀐다. 장사를 해야 하나? 영업이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다. 공부를 더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남편이 반대를 심하게 한다. 만약 내가 학교에 다니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많아질 것 같으니 반대하는 것 같다. 내가 부탁하는 것도 많아질 것이고 또 귀찮게 이것저것 물어볼 게 뻔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모르는 건 무조건 남편에게 물어보는 스타일이다. 정작 남편이 원치도 않는 공부를 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미리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요즘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떤가?
보통 SNS에 정치적인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되도록 그런 글은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정말 민감한 부분인 것 같다. 물론 나도 생각이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왜 생각이 없겠는가. 하지만 정치적인 발언은 잘해야 본전인 것 같다. 정치적인 의견을 펼칠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남편과 단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욕할 게 있으면 같이 욕도 한다. 공인으로서 발언 한 번 잘못하면 매장당하는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KLPGA투어가 정체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 거라고 보나?
물론 선수들이 임하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투어가 세계 최고의 투어다’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협회가 먼저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나라는 여타 선진국보다 스포츠 시장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생활체육부터 활성화되어야 한다. 모든 스포츠가 함께 성장해야 골프도 발전을 꾀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이 여유를 갖고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야겠지만 말이다. 이게 어떻게 보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경제나 정치가 안정화를 찾아야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되고 투자도 이어질 것이고 결국에는 KLPGA투어도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게 될 거라고 본다. 국민이나 정부의 관심없이는 글로벌 투어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의 계획은?
2016년에 갑자기 우승하는 바람에 목표 하나가 사라졌다. 은퇴하기 전 우승하는 게 목표였다. 2016시즌이 끝나고 나니 일주일 정도는 견딜 수 없는 허탈함이 밀려왔다. 마음을 잘 추스르고 그다음 목표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이미 우승을 하면서 시드권은 확보된 상태이기 때문에 상금 랭킹 30위권을 유지하자는 목표를 새롭게 잡았다. 요즘에는 30위권에 들기 위해서는 2억원 이상 획득해야 가능하다. 결코 만만한 목표가 아니다. 그건 톱10에 꾸준히 진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눈물이 맺히니까 볼의 하얀 형태만 보였다. 주변에서는 빨리 가자는 갤러리의 소리가 들렸다. 캐디가 “침착해라”라고 말을 건넸고 한 템포 쉬고 들어가 퍼트에 성공했다.

 

Hong Jin Joo 홍진주
나이 34세
신장 174cm
KLPGA 입회 2003년
소속 리코스포츠에이전시
후원 대방건설
우승 국내 2승, 해외 1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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