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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택, 300야드는 기본이지! [People :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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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양정윤

김홍택, 300야드는 기본이지!

아이돌 그룹의 멤버처럼 잘생겼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호쾌한 드라이버 샷을 주무기로 올해 국내 프로 골프 무대에 등장한 새로운 얼굴을 만나봤다. 글_고형승

처음엔 야구였다. 야구를 했던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야구선수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다. 그다음은 태권도였다. 태권도 3단을 땄지만 그것도 이내 시들해졌다. 초등학교 5학년에서 6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아버지는 골프를 취미로 배워보라고 제안했다. 말이 취미였지 방과 후 무조건 골프 연습장으로 향했다. 역시 내가 좋아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소심한 성격이던 나는 하기 싫어도 내 주장을 선뜻 내세우지 못했다. 매번 볼도 잘 맞지 않으니 재미가 있었겠는가.

중·고등학교 때 성적은 그저 그랬다. 아, 골프 성적을 말하는 거다. 청소년골프협회에서 주관하는 조그마한 대회에서 몇 번 우승한 것이 고작이었고 중고골프연맹이 주관하는 대회에서 예선을 통과하면 정말 잘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골프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한 시점 말이다. 처음엔 억지로 했지만 지금은 골프를 시작한 걸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다른 직업을 선택했더라도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했을 것이고 몇 번의 좌절을 경험했을 테니.

중학교 3학년 때 키는 지금과 비슷했지만 몸무게는 85kg이 넘었다.어느 날 집에서 팔굽혀펴기를 해봤는데 하나도 하지 못했다. 운동선수가 팔굽혀펴기 하나를 못한다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다. 처음엔 무릎을 꿇고 10개 하는 걸 목표로 했다. 조금씩 숫자를 늘렸고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밤마다 팔굽혀펴기를 했다. 1년 만에 쉬지 않고 100개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3년을 했더니 체중은 자연스럽게 빠지고 샷의 비거리는 늘었다. 나는 키는 작았지만 거리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340야드를 날렸다.

주니어 선수 시절 내 퍼팅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퍼팅 연습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평소 자신 있어 하던 샷에 더 집중했다. 집안 사정이 골프를 할 만큼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골프장에서 연습한다는 건 나에게 사치에 가까웠다. 골프장 한 번 나갈 비용이면 스크린 골프를 10번 할 수 있었다. 그린 적중률 80~90% 이상이었던 샷을 더 완벽하게 구사하면 되리라 판단했다. 퍼팅 연습은 자연스럽게 등한시하게 되었고 내 스코어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단점이 보완되지 않으니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준회원이 됐고 그 이듬해에는 정회원 선발전을 통과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가평에 있는 썬힐골프클럽에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그때가 2012년이었다. 약 1년 반 동안 캐디 일도 병행하면서 돈을 벌었다. 당시 골프존에서 개최하는 스크린 골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 특전으로 난생처음 한국오픈에 출전했다. 성적은 좋지 않았다. 바로 다음 주에 입대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도무지 대회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내 첫 1부투어 경험이었다.

군대에서는 골프 클럽을 잡아보지 못했다. 휴가 나오면 잠깐 연습하는 게 전부였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니 친구들과 만나도 특별히 할 일이 없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연습장에서 볼을 때리는 게 내 휴가였다. 군대에서는 턱걸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양팔로 몸을 끌어당겨 철봉 위로 올라가는 걸 해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적어도 턱걸이를 한 번에 20~30개는 할 수 있어야 가능한 동작이었다. 매일 한 세트에 10회씩 100개를 하면서 근력을 키웠다. 6개월이 지나자 철봉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2015년 7월에 제대했다. 말년 휴가 때 스크린 골프 대회 예선전을 치르고 전역하는 주에 열리는 본선 대회에 바로 참가했다. 그리고 3위에 올랐다. 한 달 후 열린 윈터시즌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그해 다섯 개 대회에 출전했는데 모두 5위권에 들었다. 지난해에도 스크린 골프 매치플레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내가 스크린 골프 대회를 병행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스크린 골프가 골프냐’라며 비판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스크린 골프가 실제 필드에서 치러지는 대회와 다르다는 걸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내게 스크린 골프는 조금 다른 의미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내 자신감을 키워주는 수단이다. 대회가 열리는 코스를 저렴한 비용으로 미리 둘러볼 수도 있으며 스크린 골프에서 스코어가 좋으면 실제 필드에서도 좋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20언더파를 기록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스크린 골프는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좋은 성적을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지난해 KPGA 챌린지투어(2부투어) 6차 대회에서 우승할 때도 스크린 골프에서 충분한 연습을 하고 출전했다. 요즘도 볼이 갑자기 맞지 않으면 스크린 골프를 하면서 감각을 되찾는다. 그러면 자신감이 회복되고 그걸 바탕으로 필드에서 안정감 있는 샷을 구사하게 된다.

운동선수라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나는 다치는 걸 무엇보다 싫어한다. 스윙하다가 신체의 특정 부위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치료를 받는 게 아니라 스윙을 바꾼다. 몸에서 보내오는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같은 스윙을 고집하면 오히려 그건 역효과다. 치료를 받으면 당장은 스윙하는 데 무리가 없겠지만 절대 그 스윙으로 오래갈 수 없다. 스윙할 때 통증이 느껴지면 아버지와 상의해 바로 스윙을 내 몸에 알맞게 바꾼다. 아버지는 나를 위해 골프 티칭, 피트니스, 클럽 피팅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처음 골프를 배울 때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는 최고의 코치이자 트레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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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내 성격은 원래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 낯선 사람과 말할 때 식은땀이 날 정도였으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면서 성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 복무를 하면서 더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말하는 외향적이란 남들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예전 성격에 비해 나아졌다는 뜻이다. 아직도 소심한 부분이 남아 있다. 하지만 플레이 스타일은 좀 다르다. 드라이버 샷에 의존하는 타입이라 최대한 멀리 보내 어프로치 샷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플레이 스타일은 꽤 공격적이다.

내겐 퍼팅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벙커 샷 입스를 극복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중요한 테스트에서 벙커에 볼이 빠졌다. 그때 토핑이 나면서 그린을 훌쩍 넘어갔다. 그다음부터 볼이 벙커에 들어가기만 하면 손이 떨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네 번 만에 벙커에서 나온 경우도 있었다. 군 복무를 마칠 때쯤 손 떨림 현상은 없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볼 뒤 모래를 일정한 간격으로 때려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지금도 붙이는 것보다 탈출이 목적인 샷을 하게 된다. 이번에 태국으로 전지훈련을 가는데 그곳에서 벙커 샷 연습을 집중적으로 할 예정이다.

지난해 2부투어에서 상금 랭킹 7위에 오르며 1부투어 출전권을 확보했다. 올해 상반기에 좋은 성적을 내야만 하반기 다른 대회에도 많이 참가할 수 있다. 2부투어와 1부투어는 코스 난이도가 확실히 다르다. 1부투어에서 활동 중인 선배 선수들과 코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면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르다. 나는 경험이 많지 않은 신인이기 때문에 대회에 출전하면서 그들이 무엇을 잘하는지 유심히 지켜볼 요량이다. 그리고 어떻게 준비해야 투어에 쉽게 적응하고 훌륭한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나는 올해 나갈 수 있는 모든 대회에 참가하려고 한다. 그것이 1부투어든, 2부투어든, 스크린 골프 대회든 상관없다. 스케줄만 겹치지 않는다면 모두 참가해 우승을 노릴 것이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될 놈은 된다’고 생각한다. 또 ‘어차피 붙을 볼은 어떻게 치든 붙는다’고 믿는다. 반대로 ‘어차피 나갈 볼이면 어떻게 치든 나간다’는 생각이 있다. 부담감을 없앨 수 있는 나만의 주문이다. 나는 라운드 초반에 보기를 범하면 희한하게도 그날은 경기가 잘 풀린다. 보기가 나온다고 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하든 어차피 보기가 나왔을 것이다. 그다음부터 집중하고 경기에 임하면 된다. 그럼 어차피 버디가 나올 홀도 있으니까.

스물여덟 살 이전에는 PGA투어에 진출하는 게 내 목표다. 미국에 진출하면 가장 먼저 만나보고 싶은 선수가 바로 버바 왓슨이다. 그의 플레이는 무척 자유분방하다. 무언가에 얽매여 플레이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그의 그런 플레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나도 골프에서는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편이다. 남들이 좋아하는 건 하고 싶지 않다. 또 남들이 많이 하는 건 그대로 따라 하기 싫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타이거 우즈보다는 레티프 구센을 더 좋아한다.

나는 체격이 작기 때문에 운동선수로 잘 보지 않는다. 반소매를 입을 때만 팔근육이 도드라져 보여 운동하는 줄 안다. 체격은 작아도 비거리가 많이 나가는 선수로 기억해주면 좋겠다. 특히 몸 관리를 철저히 하는 이유는 골프를 오래 하고 싶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아이와 대회에 함께 출전해보는 게 꿈이다. 그 전에 결혼부터 해야겠지만 말이다.

 

Kim Hong Taek 김홍택
나이 24세 신장 173cm
프로 데뷔 2011년
학교 부용초-동남중-동남고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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