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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적토마의·취중·토크 [People :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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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승훈 / 장소 협찬_청담동 칸지다이닝(02-515-1040)

두·적토마의·취중·토크

축구계의 적토마 고정운과 야구계의 적토마 이병규가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만났다. 그들은 세 시간에 걸쳐 별명이 붙은 이유부터 골프를 시작한 배경, 은퇴 이야기 그리고 자식 자랑까지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이처럼 허물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대화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스포츠계의 저명한 인사들이 안줏거리로 올라오기도 했다. 글_고형승

2017년 1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축구계와 야구계의 전설적인 인물들과 만남을 가졌다. 1990년대 한국 축구를 이끌며 A매치 77경기에서 10골을 기록한 고정운과 1997년 LG트윈스에 입단해 지난해 은퇴를 선언하며 영원한 LG맨으로 남은 이병규가 그들이다. 축구와 야구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이름은 한 번쯤, 아니 여러 번 들어봤을 것이다. 고정운과 이병규는 여러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전북 출신(고정운은 완주, 이병규는 김제)이며 일본 축구(세레소 오사카)와 야구(주니치 드래건스)를 경험해봤으며 막내아들(고영준, 이승언)이 축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현역 시절 ‘적토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적토마 외에도 고정운은 ‘코뿔소’, 이병규는 ‘라뱅(주루나 수비할 때 동네 가게에 라면 사러 가듯 설렁설렁 뛴다고 붙은 별명)’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그들은 ‘적토마’라는 별명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한다.
또 하나 공통점이라면 그들은 골프를 사랑한다. 고정운의 큰딸은 프로 골퍼 고나래다. 두 적토마는 이번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촬영을 들어가기 전까지 그들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공통분모가 많은 두 사람이라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정운은 이병규를 ‘친구’, ‘자네’라는 호칭으로 편하게 불렀고 이병규 역시 고정운을 ‘선배님’, ‘형님’이라 부르며 깍듯하게 대했다. 술과 함께하는 그들만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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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술잔 : 적토마의 탄생 비화

골프다이제스트(이하 ‘GD’) : 두 사람은 초면인 것 같은데 굉장히 친해 보인다.
이병규(이하 ‘이’) : 운동선수는 일반인과 달라 같은 종목이 아닐지라도 ‘선배님’이라는 말이 바로 나온다. 
고정운(이하 ‘고’) : 평소 이병규 선수가 무척 궁금했다. 지금도 사람들이 나를 보면 고정운보다 적토마라고 부른다. 은퇴한 지 16년이 넘었지만 변함이 없다. 적토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야구에서 적토마라고 불리는 선수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이 : 선배가 원조 적토마 아닌가. 이런 기회에 만난 게 개인적으로도 영광이다.
GD : 적토마라는 별명은 어떻게 붙은 것인가?
고 : 1989년에 일화천마축구단에 입단했다. 축구단 마스코트가 천마다. 내 플레이 스타일이 천마와 비슷하다며 당시 <스포츠서울> 이원한 기자가 붙여준 별명이다. 그걸 계기로 우린 의형제를 맺었다.
이 : 나는 팬들이 지어줬다. 신인 때 중견수였는데 좌우로 정말 많이 뛰어다녔다. 축구처럼 계속 뛴 건 아니지만 수비 폭이 넓고 도루도 20개 이상 하니까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고 : 축구는 말과 연관이 쉽게 되는데 야구에서 말이라니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장에서 뛰어봐야 1루에서 2루로 뛰는 건데 빨라야 얼마나 빠를까 싶었다. 그러니 적토마라는 별명을 가진 선수가 있다는 데 놀랄 수밖에.
이 : 야구에도 정말 빠른 선수가 많다. (이)종범이 형 같은 경우는 정말 빠르다. 별명이 붙을 당시에는 신인이었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게 예뻐 보여서 팬들이 그렇게 부른 것 같다.
고 : 그때 <스포츠서울>에서는 나를 ‘적토마’라고 불렀고 <일간스포츠>에서는 ‘코뿔소’라고 표현했다. 아무래도 경쟁지다 보니 적토마라고 쓰기를 꺼렸던 것 같다. 프로 선수가 언론으로부터 애칭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영광이다.

두 번째 술잔 : 골프의 시작

GD : 선수 생활 할 때도 골프를 할 수 있었나?
고 : 내가 선수로 있을 때 축구 감독 중 유일하게 골프를 했던 사람이 바로 박종환 감독이었다. 일화천마축구단 감독이었다. 그때는 감독이 2000cc급 차를 타면 선수는 절대 1800cc 이상을 타면 안 되는 그런 시절이었다. 골프는 당연히 할 수 없었다.
이 : 나도 선수 시절엔 골프를 하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골프 하는지 물어보는 게 아니겠나. 골프 좀 하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GD : 그럼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골프를 시작한 것인가?
고 : 아마 큰딸(고나래)이 아니었다면 골프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선배가 부산에서 골프숍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두 딸에게 골프를 한번 해보라고 주니어용 클럽을 맞춰줬다. 2001년에 나는 은퇴를 하고 독일과 브라질로 유학을 다녀오기 위해 한창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골프를 잘 몰랐으니까 큰딸이 골프를 계속한다고 해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운동은 혼자 하는 거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하루는 딸을 가르치던 코치가 나를 부르더니 대회에 나가려면 연습 라운드 부킹도 해야 하고 부모가 직접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알고 봤더니 다른 부모들은 이미 석 달 전부터 대회장 근처에서 아이들과 합숙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이게 만만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유학 가기로 한 것도 다 취소했다. 그리고 딸을 위해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2001년 8월 13일에 은퇴 경기를 했는데 그해 겨울부터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머리를 처음으로 올려준 이가 바로 ‘왼발의 달인’이라 불리는 하석주였다.
이 : 나는 골프를 시작한 지 이제 1년 남짓이다. 처음엔 클럽을 구매만 해놓고 2년 정도 묵혀놨다. 그러다 어느 날 아내가 동네 주민들과 레슨을 받으러 간다고 하기에 따라갔다. 몇 번 쳐봤는데 은근히 잘 맞는 게 아닌가. 그날 후배 선수들에게 전화해서 바로 다음 날 라운드를 잡았다. 연습장에서 딱 한 번 볼을 쳐보고 나간 생애 첫 라운드에서 96타를 기록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골프 신동인 줄 알았다. 아무튼 그다음부터 두 달간은 일주일에 두 번씩 필드에 나갔다. 시즌이 시작되면서 더는 골프를 할 수 없었다.  

세 번째 술잔 : 축구와 야구 그리고 골프

GD : 이병규 선수는 야구할 때 왼손 타자인데 골프는 어떻게 하나?
이 : 왼손잡이용 클럽을 사용한다. 처음에 오른손잡이용 클럽으로 쳐봤는데 힘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쓰고 밥을 먹는 건 오른손으로 한다. 하지만 운동은 왼손으로 해야 한다. 못질도 왼손으로 한다.
고 : 신기하다. 하석주도 왼발잡이이고 먹는 것도 왼손으로 먹는데 골프는 오른손잡이다.
이 : 내가 일반인이었다면 아마 오른손잡이처럼 그냥 쳤을 것 같다. 하지만 야구할 때 왼손 타석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미 왼손잡이에 맞게끔 근육이 발달해 있었다. 오른손잡이용 클럽으로 샷을 해봤더니 볼이 150야드도 날아가지 않았다.
GD : 야구와 골프가 비슷하다고들 하는데 어떤가?
이 : 그건 잘못된 말인 것 같다. 정말 다르다. 골프는 투수가 잘한다. 투수는 배트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알려주면 알려주는 대로 스윙한다. 하지만 타자는 스윙 궤도가 달라서 슬라이스가 많이 난다. 그게 타자의 습관이다. 그러다 보니 골프 스윙이 치킨 윙 자세로 끝나기 일쑤다. 타자에게 골프를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스윙이 바뀌기 때문이다. 야구는 어깨가 떨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 일자로 살아 있어야 한다.
GD : 그럼 축구선수도 골프를 하지 말아야 할 포지션이 있나?
고 : 그런 건 없다. 내가 골프를 하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 만약 내가 축구 팀 감독을 한다면 골프를 무조건 하게 할 것이다. 선수들이 회복 훈련하는 데는 최고다. 운동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골프장에서 풀 수 있다면 그보다 훌륭한 회복 훈련은 없을 것이다. 예전 지도자들은 그런 걸 용납하지 못했지만 나는 오히려 권장할 것이다.
GD : 축구계와 야구계에는 어떤 선수들이 골프를 잘하나?
이 : 김재박, 선동열, 이종범 선배가 정말 골프를 잘한다. 요즘엔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했던 김선우나 서재응 이런 친구들이 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즌 중에 골프를 하는 건 정서상 맞지 않다. 하지만 미국은 정말 자유롭다. 유명한 일화가 있지 않은가. 애틀랜타브레이브스에 톰 글래빈, 존 스몰츠, 그레그 매덕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을 때 이들 세 명은 오전에 라운드하고 경기에 출전해 승리를 챙기기도 했다. 1995년에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들의 계약 조건에는 “골프 하는 걸 방해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을 정도다.
고 : 조광래, 이흥실, 최광희 감독이 잘한다. 나는 골프를 배운 지 8개월 만에 78타를 기록했는데 그게 내 베스트 스코어다.
이 : 아까도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내가 골프 신동인 줄 알았다. 아내에게 야구 은퇴하고 골프를 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한번 해봐”라고 비아냥거렸다. 진짜 농담이 아니라 골프선수를 한번 해보려고 했다. 며칠 후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란 걸 바로 깨달았다. LG트윈스 야구선수 출신인 조현이 현재 골프 아카데미를 운영 중인데 내가 골프를 하겠다고 말했더니 “네가 골프선수를 하면 내가 다시 야구선수를 할게”라고 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야구가 훨씬 쉽다는 뜻이었다.

네 번째 술잔 : 골프의 늪

GD : 골프는 어떤 의미인가?
고 : 원래 골프장이란 곳은 우리가 생각만 해도 힐링이 되는 곳 아닌가.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고. 하지만 나는 3번 우드 때문에 분노가 치밀 때가 많았다. (황)선홍이나 (하)석주나 1~2년 후배들과 라운드를 자주 나가는데 그들 앞에서 우드로 친 샷이 OB가 나면 자존심이 무척 상할 때가 많다. 산으로 사라진 볼을 찾으러 가는 척하면서 우드를 두 번이나 부러뜨린 적이 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그들과 헤어지면 바로 연습장으로 달려갔다. 운동선수는 다들 승부욕과 근성이 있으니까. 80대 타수를 기록하고 싶다면 골프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접대 골프를 하는 사람은 절대 골프가 늘 수 없다.
이 : 골프를 하면 좋은 게 하나 있다. 골프 약속이 생기면 그 전날 술을 먹지 않는다. 한창 골프에 빠져 있을 때는 설레서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빨리 일어나서 바로 가려고 옷도 아예 입고 잤다. 좋은 사람들과 5~6시간을 함께 보내며 샤워하고 밥 먹고 헤어지면 기분도 좋고 유대감이 더 생긴다. 지난해 11월에는 캐나다에서 가족과 3주를 함께 보냈다. 그때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처음으로 필드에 나갔다. 아이들도 레슨을 두 번 정도 받고 나갔는데 둘째가 제법 잘하는 것 같았다. 아내가 영상을 찍어 프로 골퍼 한희원(야구선수 손혁의 부인)에게 보냈더니 둘째가 더 낫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고 : 운동 중에는 마라톤이 가장 힘든 운동인 줄 알았다. 막상 골프를 해보니 골프처럼 어려운 운동이 없다. 체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야구도 나갈 때마다 안타를 치면 10시간을 해도 힘들지 않겠지. 축구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가 경기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특히 골프는 심경의 기복이 심하니까. 박성현이나 전인지 같은 선수는 200km를 걸어도 재미있을 것이다. 캐디도 마찬가지다. 나도 딸아이의 캐디를 몇 번 해봤는데 성적이 좋으면 골프백 무게가 200kg이어도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캐디도 함께 정신이 나가버린다. 딸이 어프로치 샷을 하고 그린 주변에 놓아둔 웨지를 두 번이나 빠뜨리고 다음 홀로 넘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 따라오던 갤러리가 챙겨줬다.
이 : 이제 은퇴도 했으니까 골프를 좀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목표가 80타다. 주위에 함께 골프 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대부분 80타는 치는 것 같다.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면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고 : 그게 중요하다. 그래도 이병규인데. 사람들에게 “골프는 야구와는 완전 딴판이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좀 그렇지 않나. 그러니 기왕 할 거면 잘해야 한다. 폼도 예뻐야 하고.
이 : 나는 드라이버는 제대로 때리면 250야드 정도 나간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직 드물다. 한번은 캐디가 귓속말로 “고객님은 그냥 아이언으로만 치세요. 아이언으로만 쳐도 다른 사람들 드라이버 샷 거리는 나오니까 그냥 무리하지 말고 아이언만 잡으세요”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캐디가 오죽이나 답답하면 그런 말을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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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술잔 : 술 이야기

고 : 나는 술을 소주로 배워서 소주가 제일 좋다. 양주보다 소주가 더 낫다.
이 : 나도 선배처럼 소주를 좋아한다.
고 : 우리 때는 술을 많이 마셨다. 그 독사 같은 박종환 감독과 일화천마축구단에 함께 있을 때의 일이다. 겨울에 강원도 쪽으로 전지훈련을 가면 저녁마다 고기를 먹었다. 선수들이 술을 마시고 싶으니까 감독 눈을 피해 주전자에 물 대신 소주를 부어 한 잔씩 마셨다. 나이가 들어서 박 감독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내가 그걸 몰랐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이 : 예전 선배들은 술을 정말 많이 마셨던 것 같다.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정삼흠 투수가 선동열 선배를 한번 이겨보려고 아침까지 술을 먹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선발투수로 맞붙었는데 선동열 선배가 15이닝을 던졌고 심지어 승리까지 챙겼다. 대단한 사람이다. 우리는 거의 방을 선배 한 명과 후배 한 명이 함께 쓴다. 그러니 후배들은 선배들 눈치가 보여 술을 마실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선배들은 가끔 방에 모여 술을 마시기도 했다. 요즘엔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분위기가 아니다. 마셔도 아주 간단히 마시고 끝내는 분위기다.
고 : 일화천마축구단이 막 창단했을 때는 별도의 숙소가 없었다. 그래서 삼정호텔에 묵었는데 삼성라이온즈 야구단이 함께 있었다. 그때 모 선수는 아침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래서 ‘야구선수들은 술을 많이 마시는구나’라는 선입견이 생겼다.
이 : 야구는 주로 야간 경기가 많으니까 새벽까지 마셔도 푹 잘 수 있다. 대부분 숙소에서 경기장으로 출발하는 시간이 오후 2~3시 정도다. 그리고 야구는 축구처럼 계속해서 뛰는 게 아니니까. 주전이 아니면 더그아웃에 앉아만 있기도 하고 또 투수는 자신이 선발이 아니면 경기에 나갈 일이 없으니 큰 무리는 아니다.
고 : 내가 선수 생활 할 때 경기에서 지는 날은 외출이나 외박이 금지였다. 야간 경기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면 10~11시쯤 된다. 술? 경기에서 졌는데 술이 가당키나 하겠나. 박종환 감독은 외출과 외박 금지를 선언하고 집으로 간다. 이장수 감독이 당시 코치였는데 그에게 우리끼리 단합 대회를 하겠다고 은밀히 부탁했다. 늦어도 새벽 3시까지는 들어오겠다는 약속하고 나가서 경기에 대한 이야기부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끼리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게 추억이다. 요즘은 그런 건 거의 없다. 프로 선수들에게 휴가를 주면 “여자 친구랑 사이판으로 5박 6일 놀러 가니까 전화하지 마세요”라는 말과 함께 사라진다. 지도자가 점점 더 힘든 직업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는 선수 40명이 모두 감독에게 맞췄다. 심지어 감독이 고스톱을 치다가 돈을 잃으면, 선수들은 3시에 출발하려고 다 버스에 타고 있는데 4시까지 기다린 적도 있었다. 지금은 감독이 선수 한 명 한 명에 다가가야 한다. 그게 또 맞는 방법이기도 하고.
이 : 다 맞는 말이다. 나는 팀에 처음 왔을 때 가족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다 챙겨주고 감싸주고 무슨 일이 있으면 모두가 관심을 가졌다. 지금도 그런 게 있지만 젊은 선수들은 자기 위주로 생활한다. 나도 그랬지만 연차가 쌓이고 고참이 되면 생각이 또 바뀐다. 이미 내가 해봤는데 그건 좋지 않은 거니까 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줘도 소용이 없다. 그러다가 30대 중반쯤 되면 선배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된다.

여섯 번째 술잔 : 은퇴에 대한 조언

GD : 이병규 선수가 지난해 은퇴를 선언했다. 두 사람 모두 은퇴할 때 느낌이 어땠나?
고 : 월드컵경기장 중 수원 월드컵경기장이 가장 먼저 생겼는데 오픈 기념행사로 올스타전을 치렀고 나는 그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가족이 그 장면을 지켜봤고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가족이 모두 떠나고 호텔 방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후배 선수들이 소주 한잔하자며 기다리고 있었다. 황선홍이 내 방에 들어오다가 그 장면을 보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20분쯤 감정을 더 추스르고 나서야 방을 나설 수 있었다.
이 : 지난해 시즌 말에 확정 엔트리가 발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엔트리에 올라가지 못했다. 딱 1년만 더 하고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그만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정말 그때는 멘붕(멘탈 붕괴)이었다. 엔트리가 발표되고 이틀 만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처음엔 내가 야구를 그만둔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공허한 마음에 잠도 오지 않아 하루 3시간도 잘 수 없었다. 일주일 동안 술만 마셨다. 3일이 지나니까 간이 더는 술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들어갔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아내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캐나다로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거기서 머리 좀 식히면서 생각을 정리하자고 했다. 하지만 캐나다에 있는 동안에도 ‘내가 이렇게 은퇴하는 건 아니지’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고 : 나도 은퇴라는 게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은퇴가 시작이었다. 14년을 선수 생활을 했는데 은퇴 이후에 대한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다. 유학만 다녀오면 어느 구단에서든 나를 불러주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감만 있었다. 어느 스포츠 종목이든 한 분야에서 명성을 떨쳤던 선수는 은퇴 이후의 계획이 뚜렷하게 세워져 있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은퇴라는 단어를 들으면 겁도 났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걸 인지하고 차분히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야구는 60~70세까지 지도자 생활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잘하면 선수 때의 이병규보다 앞으로의 이병규가 더 빛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 나 역시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은퇴를 언젠가는 할 거라는 건 알았지만 정확한 계획이 서 있지 않았다. 은퇴 시기조차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닥친 상황이 더 혼란스러웠다.
고 : 성공한 운동선수가 겪는 첫 번째 시련이기도 하다. 그동안은 큰 어려움 없이 선수 생활을 했을지 몰라도 앞으로는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20년간 선수 생활을 했으면 지금은 모든 걸 내려놓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나도 결혼하자마자 첫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훅 커버렸다. 지금 큰아이가 스물일곱 살이 됐다. 은퇴 이후에 식구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제는 뭔가를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 너무 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일곱 번째 술잔 : 두 아버지의 자식 자랑

GD : 요즘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나?
이 : 애들이랑 보내는 시간을 늘었는데 뭔가 어색해하는 것 같다. 큰아들이 야구를 하는데 최근에 하동으로 전지훈련을 갔다. 아내와 두 번 정도 다녀왔다. 작은아들은 서클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포지션은 골키퍼인데 아직은 서클 수준이니까 본격적으로 축구를 하는 건 아니다.
고 : 그러면서 축구계에 발을 들여놓는 거다. 아버지를 닮았으면 키도 크겠다.
이 : 큰아들은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데 키가 172cm에 몸무게가 72kg이다. 작은아들도 다른 애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다. 큰아들은 1루수인데 왼손잡이다. 그동안 쭉 TV로 내가 야구 하는 걸 봐왔으니 그게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스윙 폼도 나랑 똑같다. 사람들이 “이병규 아들 맞지?”라고 할 정도다. 꿈이 메이저리거라고는 하는데 아직 수비보다 타격하는 것만 좋아하는 것 같다. 야구를 잘못 배웠다.
고 : 아직 어리니까 그런 거다. 수비하는 게 누가 재미있겠나. 축구도 마찬가지다. 어느 부모가 골키퍼 시키려고 하겠는가. 무조건 공격수만 시켜달라고 하지 수비수 시키는 부모도 없다.
이 : 우리 작은아들은 자기가 알아서 골키퍼 시켜달라고 했다. 운동신경은 별로 없어 보이는데 운동하는 걸 무척 즐긴다. 요즘에는 또 복싱을 몇 번 하더니 “아빠, 나 권투선수 할래요” 이런 식이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메이웨더가 돈을 많이 번다고 복싱을 하겠단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메이웨더는 안 맞고 돈을 벌지만 너는 엄청 많이 맞을 것 같은데”라고. 작은아들이 골프는 곧잘 하는 것 같다.
고 : 골프는 시키지 않는 게 좋다. 경험자로서 조언해주는 것이다. 골프를 하면 그 한 명 때문에 온 식구가 희생해야 한다.
이 : 야구도 마찬가지다. 큰아이가 야구를 하니까 그 아이한테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다. 그래서 둘째한테 좀 미안하기도 하다. 요즘엔 아내가 큰아들을 따라다니고 내가 둘째를 따라다닌다. 아무래도 내가 야구선수 출신이니까 서로 불편하다.
고 :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큰딸이 골프를 하고 둘째 딸은 미국에서 거의 혼자 컸다. 지금 의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막내아들은 큰애랑 여섯 살 터울인데 지금 축구를 하고 있다. 대학교 3학년 올라가는데 키가 190cm다. 중앙 수비수다. 대학교 감독도 내 제자뻘이니까 내가 가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이 : 나도 그런 의도로 가지 않는다. 한번은 내가 지켜보고 있는데 안타를 치지 못하니까 서서 울어버리는 게 아닌가. 나름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다. 그다음부터 나는 야구장에 가지 않는다. 가끔 동영상을 보내오는데 4타수 4안타에 홈런까지 치는 날도 있다.
고 : 자식이 느끼기에 부모가 큰 산 같은 사람이면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하다. 큰딸도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내 앞에서는 절대로 볼을 치지 않았다.

마지막 술잔 : 앞으로의 계획

GD :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
고 :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방송에서 해설(SPOTV)을 하고 있지만 마지막은 당연히 현장에서 선수들과 함께하고 싶다. 여건만 된다면 대표 팀이나 프로 팀도 맡아보고 싶다. 지금은 축구가 너무 침체돼 있다. 어쩌면 큰 위기일지도 모르겠다. 구단도 그만큼 관심을 갖고 돈을 써야 한다.
이 : 야구계도 마찬가지다. 선배들은 은퇴하면 야구 해설을 많이 한다. 그 이유는 역시 돈이다. 요즘 코치 연봉이 5000만원 정도인데 해설은 그것의 두 배다. 해설자로 일하는 게 대우도 훨씬 좋다. 하지만 그들도 기회가 된다면 현장으로 나오고 싶어 한다. 나도 미국에 가서 지도자 연수를 받기 위해 준비 중이다.
GD :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한마디?
고 : 오늘 야구계 적토마를 만나서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이 : 오리지널 적토마를 만나게 되어 더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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