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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의 홀로서기 [People : 1702]

김하늘의 홀로서기

올해로 일본 진출 3년째를 맞이하는 김하늘을 연초에 만나봤다. 이번 인터뷰가 그동안 우리가 그에게 가지고 있던 이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부모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난 그에게도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글_고형승

어떤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받는 느낌을 ‘이미지(심상)’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이미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그 단어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서 쓰는 경우는 드물다. 이미지는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으로부터 발현되는 하나의 현상이다. 따라서 같은 사람에게 느끼는 이미지가 각기 다를 수 있다. 그건 옳고 그름이 없다. 그냥 다름만 있을 뿐이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에게 박 대통령은 ‘불쌍한 사람’, ‘억울하게 당한 사람’, ‘우리나라를 발전시킨 박정희의 딸’이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잘못된 것(물론 드러난 사실을 부정하고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 느끼고 있는 일반 감정과 다른 것이다. 뭐, 너무나 극단적인 사례까지 든 게 아닌가 싶지만 그렇단 얘기다.
결국 에디터가 강조하고자 한 바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바꾸기란 그만큼 어렵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다. 미사여구를 총동원해 누군가와의 인터뷰 내용을 지면에 펼쳐 보여도 한번 각인된 이미지가 변하는 건 무척 드문 일이다. 특히 10년 이상 한 분야에서 이름을 알려온 사람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인터뷰는 상대를 일방적으로 미화해서도 안 되고 사실을 왜곡해서도 안 된다. 그저 그 또는 그녀의 이야기를 담담히 독자에게 전달해주면 그만이다. 그래야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대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판단해볼 수 있다. 만약 다름이 느껴진다면 이미지를 바꾸는 게 아니라 기존 이미지에 또 하나의 이미지를 추가하면 된다. 어차피 인간이 컴퓨터처럼 기억을 포맷시키기 힘든 이상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없앤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골프를 하는 사람이라면 프로 골퍼 김하늘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2006년 프로에 데뷔한 김하늘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8년동안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활약하다가 2015년에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로 진출했다. 우리나라에서 김하늘의 이미지는 극명하게 갈린다. 웃는 모습을 보면서는 ‘미소 천사’와 ‘하회탈’이라고, 상대에게 하는 행동을 보며 ‘한없이 착해 보인다’와 ‘X가지가 없어 보인다’라고 한다. 또 평소 말투를 보며 ‘여성스럽다’와 ‘털털해 보인다’라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상반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일까? 앞서 설명했듯이, 어떤 사람(사물)이라도 보는 시선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느낄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들이 평가했던 모든 것이 그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다양한 모습과 감정을 소유한 동물이니까. 대중 앞에서 보이는 게 100% 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대중 앞에서 가감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성격을 가졌기에 그것이 때론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그도 공인이다. 다소 억울하더라도 대중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에디터 역시 김하늘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있었고 이번 인터뷰를 통해 또 다른 이미지를 발견해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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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건디 터틀넥 니트 톱은 꼼뜨와 데 꼬또니에, 시계는 모리스 라크로아, 스커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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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브리스 톱, 쇼츠와 맨투맨 티셔츠는 모두 르꼬끄 스포르티브,
스니커즈는 렉켄, 삭스와 아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프로 9년 차 신인에게 닥친 가혹한 시련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하늘의 주위에는 부모가 늘 함께였다. 남동생이 골프를 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군 복무를 하기 전까지는 그도 한 세트였다. 네 명이 함께 다니는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 명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그 이유가 궁금하기까지 했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김하늘을 만났을 때는 혼자였다. 매니저도 없이 헤어숍에 앉아 있는 그를 발견하곤 의아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김하늘은 지난해 JLPGA투어 마지막 대회이자 메이저 대회인 LPGA투어챔피언십리코컵에서 우승하며 투어 3승째를 거뒀다. 상금 랭킹 4위로 시즌을 마친 그는 일본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 진출 2년 만에 투어의 흥행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인기 스타로 성장했다. 국내에 있을 때도 이미 2007년 신인상을 받고 2011년부터 2년 연속 상금 랭킹 1위에 오르는 등 최고 스타의 반열에 오른 그였다. 국내 투어에서만 메이저 대회 1승을 포함해 8승을 거뒀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김하늘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첫해는 정말 힘들었어요. 실력만 키우면 투어에 적응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때 함께 일본으로 진출한 (배)희경이와 (정)재은이랑만 어울려 다녔어요.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매일 가족처럼 만나던 반가운 얼굴들(협회 직원, 방송 스태프, 기자)을 볼 수 없으니 무척 외로웠어요. 지금도 그건 변함이 없는 것 같아요.”
김하늘을 어렵게 만들었던 건 또 있었다. 역시 2015년 상반기의 일이다. 캐디와 트러블이 있었다. 대회 도중 초반 다섯 홀에서 6오버파를 기록하자 그의 아버지는 캐디에게 잠깐 바꾸자고 했다. 캐디를 하면서 딸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려던 심산이었던 게다. 한국에서는 대회 도중이라도 언제든지 캐디를 바꿀 수 있으니 그들은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일본도 특별히 그런 부분에 제한을 두는 건 아니지만 반드시 협회나 경기위원에게 알려야 한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다음 라운드는 원래 하던 캐디에게 다시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미 그는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터였다.
“캐디와 선수들 사이에 소문이 난 거예요. 사전에 양해를 구하거나 협회에 알리지도 않고 라운드 도중 마음대로 캐디를 갈아치운 예의 없는 선수가 된 거죠. 그런 오해의 시선이 정말 따갑고 불편하고 몹시 힘들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그 캐디와 오해도 풀고 다른 선수들 역시 커뮤니케이션상의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됐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 힘든 시기였음이 틀림없어요.”
투어에 적응하기도 힘든 마당에 그런 일까지 터졌으니 김하늘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일본 선수들이 모여 수군거리다가 자신을 바라보기라도 할 때면 혹시나 자신을 욕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친구인 신지애가 저녁 식사를 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함께 밥을 먹으며 ‘너무 힘들어서 하기 싫어’라고 했더니 지애는 ‘네가 보기에 나는 어때?’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너만큼만 하면 정말 좋겠어’라고 대답했죠. 그러자 지애는 ‘네가 볼 때 좋아 보일지 몰라도 나도 힘들고 하기 싫을 때가 많아’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들으니 마치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지는 거예요. 정말 많은 생각이 오갔어요. 저는 제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모두 각자 위치에서 힘들게 적응하고 버티고 있었던 거죠.”
김하늘은 그때부터 망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부딪쳐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대회를 앞두고 연습 라운드를 할 때도 일본 선수들만 있는 조에 무작정 이름을 올렸다. 비록 긴 대화는 하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자신을 알리고 친구를 사귀다 보면 투어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원래 일본 선수들이 낯을 좀 가리는 편이에요. 왜냐면 일본 선수 중에는 영어를 잘하는 선수가 거의 없거든요. ‘너 몇 살이야?’ 정도는 영어로 묻고 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어려워해요. 알아듣기는 하지만 영어로 말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죠.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것 같으면 아예 말을 섞지 않아요. 후지타 히카리라는 선수가 있는데 그 선수가 있는 연습 라운드 조에 슬쩍 이름을 올렸어요. 일본어로 더듬더듬 제 소개를 하고 신지애와 이보미의 친구라고 했죠. 그제야 저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관심을 갖더라고요. 처음엔 신인이 나이가 많은 것에 놀라는 눈치였어요.”

 

고생 끝에 맛본 달콤한 우승 열매

언어나 문화가 다른 나라의 투어에서 어느 정도 적응은 한 것처럼 보였지만 성적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김하늘은 결단을 내릴 때가 됐음을 인지했다. 9월에 열린 KLPGA투어 한화금융클래식 참가를 위해 한국에 들어오면서 가족은 도요스(도쿄 긴자에서 20분 거리)에 마련한 집까지 정리했다. 그때가 일본여자선수권대회를 한 주 앞둔 상황이었다. “미리 신청서를 내놓은 두 개 대회만 더 뛰고 일본 투어를 접으려고 했습니다. 부모님께는 두 개 대회만 치르고 올 거니까 캐디와 둘만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동안은 아버지 가 항상 옆에서 연습에 대한 조언도 해주셨는데 모든 걸 혼자서 해야 했죠. 일본여자선수권대회에서 공동 5위에 올랐는데 그게 투어 진출 후 첫 톱10 진입이었어요. 그리고 바로 이어진 먼싱웨어레이디스도카이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죠. 그때부터 부모님께서는 일본으로 오지 못하셨어요.(웃음)”
김하늘은 아주 자연스럽게 부모로부터 독립하게 됐다. 일본 집도 정리한 터라 그 뒤로는 호텔 생활을 했다. 이제는 오히려 그 생활이 더 편하단다. 프로 데뷔 후 항상 부모로부터 보살핌과 챙김을 받아오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에 뒤늦은 독립을 했다.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연습 스케줄도 조정하고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 상태는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잖아요. 그동안은 몸이 힘들어도 아버지가 연습하러 나가자고 하면 따르곤 했어요. 항상 갇혀 있고 뭔가 닫혀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었죠. 이제는 삶에 여유가 생겼어요. 사고에 변화가 생기니 시야도 더 넓어지고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곤 하죠. 그럴수록 일본이 친숙하게 느껴지고 투어 적응 역시 더 빨라졌습니다.” 물론 다른 이들에 비하면 늦은 감이 있지만 김하늘은 부모로부터 몸만이 아닌 정신까지 독립을 이뤄냈다. 그건 그의 플레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지난해 2승을 거둘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독립이 아주 늦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한 게 어디예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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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한 톱은 , 플라워 패턴의 레더 블루종과 스커트는 모두 롱샴.

김하늘, 메이저 챔프 자리에 오르다

지난해 김하늘은 시즌 네 번째 대회인 악사레이디스골프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LPGA투어챔피언십리코컵까지 품에 안으며 투어 적응을 완벽히 끝냈다.
“그 대회는 모처럼 부모님이 오신 대회였어요. 동생도 군대에서 제대하고 왔고요. 오랜만에 온 가족이 대회장에 모인 시기였습니다. 마지막 대회였고 가족끼리 여행 왔다고 생각하고 재미있게 플레이했어요. 정말 부담 없는 플레이를 펼쳤던 것 같아요. 마음이 편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게임이 잘 풀렸어요.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한 이후 부모님이 계실 때 우승한 대회라 의미가 무척 남달랐어요.”
이제 일본에서 그의 위상은 이보미 못지않다. 편의점이나 호텔 로비에서도 (골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알아보고 아는 척을 하는 정도다. 골프 잡지의 표지를 이미 수차례 장식했다. 김하늘과 이보미는 JLPGA투어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가 됐다. 재미있는 건 그들의 팬이 갈린다는 점이다. 귀여운 이미지를 선호하는 팬들은 이보미를 응원하고 시크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좋아하는 팬들은 김하늘을 따라다닌다. 일본 팬들에게 김하늘의 이미지는 ‘예쁘고 스타일리시하다’는 것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골수 팬들이 있습니다. 최근엔 팬 카페가 유료로 운영된다는 말을 듣고 그 시스템을 없애달라고 매니지먼트 측에 요청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그룹 ‘아라시’의 유료 팬보다 더 비싸다는 말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저를 좋아해서 가입하는 건데 돈을 받는다는 건 좀 아니잖아요. 이미 가입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돌려주라고 했어요. 사과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제가 직접 나서겠다고도 했고요.”
이제 김하늘도 어느덧 서른 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은퇴나 결혼도 고려해야 할 나이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 전에 그는 올해 한 가지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고 했다. 자신이 우승한 대회의 디펜딩 챔피언이 되는 것. 10년 넘게 프로 무대에서 활동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한 해 걸러서 우승한 적은 있지만 연달아 우승한 적이 없어요. 작년에 유독 보미와 지애가 2년 연속 우승을 많이 했어요. 그 모습을 보니 정말 부럽더라고요. 올해는 꼭 2년 연속 우승하는 대회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은퇴는 솔직히 아직 막연한 느낌이 들고요. 결혼이오? 열심히 소개팅은 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네요. 제가 주로 일본에 있으니까 자주 만날 수도 없고. 지금은 결혼 상대를 만난다기보다는 그냥 골프를 하지 않는 일반인 친구를 사귄다는 느낌으로 편안하게 만나보고 싶습니다.”
요즘 김하늘이 빠져 있는 건 다름아닌 인스타그램이다. 팬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SNS를 이용한다고 했다. “팬들은 TV에 나오는 모습이나 인터뷰를 통해 나오는 기사로만 저를 알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건 제 이미지가 왜곡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재미있고 유쾌한 성격이라는 걸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인스타그램에 웃기거나 재미있는 사진 또는 제가 망가지는 동영상을 올리곤 해요. 스키 타다가 넘어지는 거라든지, 춤추는 거라든지, 운동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든지, 아주 평범한 김하늘의 모습을 올리곤 합니다. 친구들은 ‘제발 그런 사진 좀 올리지 말라’고 핀잔을 주는데 오히려 저는 그게 더 재미있습니다. 예쁘게 꾸며진 김하늘보다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친 김하늘은 “오랜만에 정말 즐거웠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이내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코미디빅리그> 방청을 하러 가게 됐다며 들뜬 모습으로 말이다.

사진_공영규 / 스타일리스트_김미미 / 헤어 & 메이크업_파크뷰칼라빈 by 서일주

 

Kim Ha Neul 김하늘
나이 29세 신장 169cm
소속 리한스포츠 후원 하이트진로
우승 11승(국내 8승, 일본 3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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