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속의 골프 [Digest : 1708]
상상속의 골프 Golf In Year 2050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미리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물론 상상이 모두 현실로 나타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상상을 하면서 배시시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행위가 재미를 동반하는 일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상상이 창의적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미래의 골프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아 상상력을 발휘해봤다. 글_고형승
미국의 장수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The Simpsons)>을 아는가. 1989년 12월에 처음으로 방영된 이 애니메이션은 올해 29시즌(22부작)을 앞두고 있다. 폭스TV에서 일요일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심슨 가족>은 미국에서만 평균 700만 가구가 시청할 정도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을 대표하는 아버지 호머 심슨과 어머니 마지, 큰아들 바트와 둘째 리사 그리고 막내딸 매기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다. <심슨 가족>은 그동안 정치적인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풍자와 해학을 담아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들도 다양한 모습으로 자주 등장했다. 민주당 지지자인 작가 맷 그레이닝은 공화당 출신의 대통령들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이 <심슨 가족>이 “미래를 예언했다”는 말이 전 세계 네티즌 사이에 돌며 화제가 됐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17년 전에 말이다. 2000년 3월, 방영된 ‘미래로 간 바트(Bart to the Future)’에서 아들 바트는 2030년의 미국으로 가게 된다. 바트는 평소 천재적인 두뇌와 탁월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던 자신의 동생 리사가 대통령이 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문제의 내용이 나온 부분은 이것이다. 리사 대통령 앞에서 국가 재정 상황에 대해 브리핑하던 한 백악관 보좌관이 전 대통령인 트럼프의 잘못으로 나라가 파산 지경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무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논란이 일자 작가 맷 그레이닝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것은 미국을 향한 경고였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이 얼마나 끔찍해질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풍자 메시지였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가끔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대해 예상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그중 몇몇은 진짜 현실에서 구현되기도 한다. 인간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고 지금보다 나아지려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앞서 골프장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트럼프를 예로 든 이유는 우리도 <심슨 가족>의 위대한 작가처럼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미래의 골프’에 대해 서술해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실현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제법 흥미로운 일인 것 같다. 물론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겠지만 말이다. 아, 앞으로 나오는 내용은 순전히 에디터의 주관적인 상상이니 당신의 생각과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언짢게 생각하지는 말기 바란다. 참고로 우리나라 환경을 기준으로 했다.
| 환경의 변화 먼저 <심슨 가족>의 맷 그레이닝이 2030년을 예상했으니 에디터는 그보다 20년 후인 2050년을 예상해보는 게 좋겠다. 지금으로부터 33년 후 대한민국의 미래다. 2030년까지 약간씩이나마 증가하던 인구가 1억 명을 넘지 못하고 꾸준히 감소한다. 결국 2050년 현재 700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최종 조사됐다. 물론 한반도에 놓였던 군사분계선의 철조망이 철거된 지는 오래다. 통일 한국의 인구 감소는 의학의 발달로도 막을 수 없었다. 다만 2030년부터 북한 지역 곳곳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골프장과 스키장 그리고 리조트 등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젊은이들의 일자리는 많이 늘었다. 중국과 러시아 국경에 인접한 두만강 부근의 리조트는 아시아 지역을 고속 기차로 여행하는 이들의 첫 정착지이자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정착지로 꽤 유명해졌다. 특히 무산과 나진 지역은 경제 개발 특구로 지정되면서 부산이나 목포 못지않은 활기를 띠게 됐다. 기존 남한 지역의 골프장 100여 곳이 최근 10년간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지만 반대로 같은 기간 북한 지역에는 50여 곳의 새로운 골프장이 문을 열었다.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이 지역의 골프장을 찾는 일이 늘면서 5월부터 10월까지 짧은 기간 운영하고 있지만 적자는 아니다. 기업에서는 골프장보다 스키장으로 버는 돈이 더 많다. 6개월씩 나누어 두 가지 형태로 돈을 벌어들이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 새로운 포맷의 골프장 등장 이미 ‘캐디’라는 단어는 옛날 용어가 됐다. 선글라스(녹화도 가능하다)를 쓰면 자연스럽게 거리를 측정할 수 있고 별도의 측정기가 없다면 18홀 내내 옆에 졸졸 따라다니는 1인용 전기 카트 화면을 참고하면 된다. 1인용 전기 카트는 골프백을 실을 수 있으며 때에 따라 타고 이동할 수도 있다. 벨트에 조그마한 기계를 끼운 채 이동하면 카트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자동으로 따라다닌다. 수동으로 카트를 움직이고 싶을 때는 차고 있던 기계의 버튼만 누르면 된다. 카트의 화면에 자신의 스코어를 입력할 수 있으며 애매한 룰에 대한 설명도 확인이 가능하다. 플레이어의 위치나 당일 핀 위치 그리고 볼 위치까지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미국의 탑골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칩이 들어간 골프볼이 대중화됐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가 가능하므로 요즘에는 누구나 이 볼을 사용하고 있다. 골프장에서는 라운드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용 휴대폰으로 그 결과를 전송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어떻게 코스를 공략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플레이하다가 그늘집을 방문하면 지하에 별도로 마련된 바에 들러 간단히 맥주를 한잔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잠깐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그늘집이 지상과 지하가 복합된 하나의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지는 추세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처럼 팀이 밀리는 걸 걱정하는 골프장이 많이 없어졌다. 또 2~3시간 만에 라운드를 끝내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는 이들보다 온종일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골프장을 찾는 싱글족이 늘었기 때문이다. 골프장 클럽하우스가 대형 마트와 결합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몇 년 전부터 다양한 포맷의 골프장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클럽하우스 앞에 야외 수영장을 마련해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골프장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가 수영복을 입은 채 라운드하는 것도 허용하는 추세다. 가끔 비키니를 입고 라운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파란 잔디 위를 걸어 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예술이다. 격식을 차려 재킷을 걸치고 클럽하우스에 입장하던 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골프는 친숙하고 재미있는 놀이로 발전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중국의 대기업이 베이징 인근에 독특한 18홀 골프장을 짓고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른 나라 기업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중국 기업이라면 충분히 가능했겠지. 그들이 전 세계의 돈을 모두 쓸어 담고 있으니 말이다. 10년 전 착공에 들어갔는데 앞으로도 5년이 더 남았다(요즘의 건설 기술이라 그것도 15년 걸리는 것이다). 그건 바로 세계 최초의 돔 골프장이다. 열여덟 개 홀에서 모두 별도로 개폐할 수 있다고 한다. 한 홀당 들어간 건설 비용만 한화로 3000억원이다. 홀과 홀이 이어진 중간과 주변으로 호텔은 물론 각종 레스토랑과 마트, 오락 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세계는 중국으로 통한다는 요즘 말이 골프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 여자 골프의 세계 최강국은 역시 한국 1998년 박세리가 우승한 이후 50여 년간 한국 여자 골프는 세계 중심에 섰다. 그동안 신지애, 박인비, 유소연 등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한국 여자 골퍼의 수만 열 명이 훌쩍 넘는다. 펑산산의 후예라 불리는 중국 선수들이 반짝 빛을 보기는 했지만 역시 한국 선수들의 실력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박인비가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개최된 여덟 번의 올림픽에서 무려 다섯 번을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해로 일흔세 살이 된 박세리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 자리에서 내려온 지도 어느덧 14년이 흘렀다. 과거 북한 지역에서까지 대회가 열리고 중국과 베트남, 태국까지 그 영역을 확대한 KLPGA투어는 이미 그 규모가 일본을 넘어 미국과 맞먹게 커진 지 이미 오래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선수들은 KLPGA투어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지만 아직 상금 랭킹 1위 자리에 오른 적은 없다. 얼마 전 협회는 트랜스젠더 선수에 대한 입회 여부를 놓고 이사회에서 격론을 펼쳤다. 그 결과 내년부터는 입회를 허용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미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했음에도 골프에서만 전통을 핑계로 입회를 거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협회는 입회 규정에서 ‘태어날 때의 성이 여성’이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변경했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여기서 언급한 생물학적 여성은 DNA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생식기에 따른 구분”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이로써 협회는 트랜스젠더의 입회를 우회적으로 허용한 셈이 됐다. 잠깐의 침체를 겪었던 KLPGA투어가 다시 그 인기를 회복할 수 있었던 원인 중에는 걸그룹 아이돌 출신의 한 멤버가 프로 테스트를 통과한 것도 있다. 그는 2000년대 빅뱅의 멤버로 활동했던 권지용 씨가 만든 대형 기획사 출신이다. 권 회장이 야심 차게 준비해 내세운 여섯 번째 걸 그룹의 메인 보컬이었다. 그는 3집까지 활동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지만 돌연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고 골프 선수의 길을 택했다. 어린 시절부터 취미로 골프를 즐겼던 그는 은퇴 후 착실히 준비해 KLPGA 정회원 테스트를 통과했다. 아이돌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1부투어 시드권을 획득하면서 투어의 인기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아직 프로 데뷔 후 우승은 없다.
| 골프 전문 매체의 변화 불과 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문과 잡지가 없어지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종이를 넘기면서 보는 인쇄 매체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이른바 출판물이라고 부르던 게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2020년에 선보인 홀로그램(3차원 입체 영상)으로 업무를 보는 장비가 시판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5년 후 휴대폰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그것도 구시대적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자체적으로 학습하고 글까지 쓰는 시대가 도래했다. 2017년 일본에서 인공지능 ‘제로’가 쓴 소설 <현인강림>이 발간된 이후(이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지금까지의 발전은 그야말로 놀랍다. 얼마 전에는 인공지능이 작곡한 음악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제는 소설이든 음악이든 표절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인공지능이 쓰는 한 그럴 일은 절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기자라는 직업은 존재한다. 인공지능이 취재의 영역까지는 할 수 없다. 다만 몇 가지 정보만 넣어주면 전문 기자 못지않은 심도 있는 기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인터뷰 기사는 인공지능이 더 프로페셔널한 경우가 많다. 인터뷰할 상대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걸 묻고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골프 중계는 어떠한가. 예전에는 직접 카메라 감독들이 타워에 올라가 궂은 날씨와 싸우며 날아가는 볼을 잡아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카메라는 알아서 선수와 볼을 잡아낸다. 이제는 소음이 전혀 없는 소형 드론이 모든 출전 선수들을 따라다니며 샷과 표정을 잡는다. 드론의 크기가 담뱃갑만 하니 플레이에 전혀 방해되지 않는다. 프로듀서는 들어오는 화면만 보고 있다가 마음에 드는 영상을 선택해서 송출하면 된다. 이것도 인공지능이 이미 할 수 있는 부분이다.
| 미래에도 골프는 재미있을까 지금까지 2050년의 골프를 상상해봤다. 어떤가. 한편으로는 재미있을 것도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거나 씁쓸한 느낌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뭔가 인간적인 부분이 많이 결핍된 느낌을 받았을 테니까 말이다. 과연 ‘편리’를 추구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스포츠 분야에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까. 일부는 그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앞으로 100년이 흐르더라도 스포츠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즐거움(재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는 인간이 직접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고 상대와의 경쟁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니까. 미래에도 골프장은 계속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며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자연에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려는 이들도 많겠지. 또 손에 침을 묻혀가며 책장을 넘기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이 남아 있길 바란다. 그래야 에디터도 그때까지 일을 할 수 있을 테니. 골프는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재미있는 스포츠로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는 데 이견을 내고 싶지는 않다. 골프는 골프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충분히 가치 있는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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