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처럼 용품부터 TV 중계에 이르기까지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스포츠도 드물다. 하물며 아마추어 골퍼도 자신의 핸디캡을 관리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휴대전화로 골프 부킹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프로 선수는 아직도 자신의 스코어를 종이에 적고 있다.
소파에 앉아 프로 골프 대회 중계를 TV로 시청하면 그 안에서 다양하고 상당한 분량의 정보를 접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골프장을 직접 찾는 것보다 편해졌고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앉은자리에서 얻을 수 있으므로 만족도가 꽤 높아졌다.
골프 중계에는 최첨단 기기가 동원된다. 드론은 물론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는 기계나 지형의 고저를 파악하는 거리측정기, 볼의 방향이나 볼 스피드를 분석하는 레이더 추적기(볼 트래커) 등이 그것이다.
국내 골프 대회 중계를 수년간 해온 김동호 SBS골프 PD는 골프의 공간적인 제약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골프라는 스포츠의 특성상 선수가 계속 이동하므로 와이어 캠(공중에서 카메라가 줄을 따라 이동하는 방식)이나 RC카 캠(미니 자동차에 카메라를 부착하는 방식) 등 특수 장비를 이용할 때도 있습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송수신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는 올해부터 골프장 18개 홀을 모두 3D 그래픽으로 제작하고 그 위에 선수 위치를 입력해 실시간으로 정확한 거리를 보여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골프를 둘러싼 환경은 첨단이라는 단어를 계속 갈아치우며 발전하고 있다. 아마추어 골퍼인 당신도 골프 라운드에 관한 기억을 한번 떠올려보자.
먼저 30~40% 저렴하게 올라온 티 타임 정보를 골프 부킹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확인하고 친구에게 스마트폰으로 공유한다. 라운드 당일 골프장까지 가장 빠른 길을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한다. 골프장 가는 도중에 예약 문자가 다시 한번 알림 메시지로 도착한다. 체크인을 마친 후 옷을 갈아입고 연습 그린으로 향한다. 그린 한쪽에는 현재의 온도와 습도 그리고 그린 스피드가 전자식 숫자로 쓰여 있다.
카트에 오른 후 캐디는 전자식 스코어카드에 플레이어의 이름을 입력한다. 또 숫자만 찍어서 플레이어의 스코어를 저장한다. 심지어 사진도 찍어 고객의 휴대전화로 보내주거나 그늘집 메뉴까지 확인해 바로 예약 전송한다. 경기가 끝난 후 스코어카드를 출력해볼 수 있으며 스코어 관리 애플리케이션에서 언제든지 확인할 수도 있다.
이렇게 편리한 환경에서 골프를 즐기는 21세기에 프로 대회에서만큼은 아직도 선수들이 종이에 자신의 스코어를 적고 있다. 도대체 왜 프로 대회에서는 종이 스코어카드를 고집하는 것일까.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특별한 이유는 없다. 주니어 선수 시절부터 늘 해오던 아주 루틴과 같은 행위다. 자신의 볼임을 확인하기 위해 별도의 마크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크게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그것이 불편하다고 느낄 겨를도 없었다.
누군가 휴대하기 편하고 사용하기에도 복잡하지 않은 기기를 개발해 골프 규칙을 담당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의 승인을 얻는다면 그때부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국내에서 발표된 <디지털 골프 스코어 카드 개발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 자료에 따르면 스코어카드 기록 오기 등 사소한 실수로 실격되는 사례를 방지하고 IT를 접목한 골프 디지털 스코어카드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이 시대의 요구에 맞는 형태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검증 결과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사용의 간편성과 출력 기능 그리고 데이터의 관리 기능이 필요하며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디자인이 심플해야 하고 기능성과 내구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논문이 발표된 지도 이미 7년이 지났다. 우리나라처럼 IT와 골프가 강국인 나라가 주도적으로 이것을 개발하고 문화를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은 에디터의 개인적인 아이디어다. 현재 자신의 휴대전화를 선수가 경기장에 들고 들어가는 것은 규칙 위반이 아니다. 자신의 휴대전화에 스코어카드와 야디지북 기능이 들어간 특정 애플리케이션을 모든 선수가 다운로드를 받는다. 조 편성이 발표되면 해당 협회는 이것을 애플리케이션에 적용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플레이어와 마커(같은 조에서 플레이어의 스코어를 입력하는 또 다른 플레이어)가 지정된다.
플레이어는 매 홀 홀아웃한 후 자신의 스코어를 터치해서 입력한다. 마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스코어와 동일하다면 ‘확인(OK)’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스코어가 맞지 않다고 판단되면 ‘취소(Cancel)’ 버튼을 누른 후 플레이어와 정확한 스코어를 재확인한다. 플레이어가 입력하고 마커가 동의한 이 스코어는 리얼 타임 스코어링에 노출된다. 방송사도 이 데이터를 받아 바로 중계 화면에 노출할 수 있다.
이렇게 시스템이 바뀐다면 현재 홀마다 혹은 조마다 스코어 체크를 위해 따라다니는 인력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 그들(조 마커 혹은 홀 마커)은 대부분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벌타 상황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실시간 스코어 집계의 혼선을 막을 수 있다. 불필요한 인쇄물도 줄일 수 있다. 스코어카드, 야디지북, 핀 위치 등 모든 것이 하나의 기계에서 확인 가능하다.
요즘은 플레이어가 아닌 캐디가 대부분 스코어카드를 쓰기 때문에 선수의 경기 흐름에 방해가 된다는 이도 있다. 하지만 원래 스코어에 관한 책임은 선수가 지는 것 아니던가. 그리고 이렇게 방식을 바꾼다고 해도 캐디에게 맡기는 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경기 속도를 높이고 스코어 오기로 실격당하는 억울함을 방지할 수 있다.
김동호 SBS골프 PD는 이 아이디어에 관해 “중계하는 입장에서 그렇게만 된다면 최고”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보완해야 할 문제도 생길 것이라고 꼬집었다.
“날씨라는 변수가 있어요. 좋지 않은 날씨에 기기의 고장이 발생할 수도 있고 혹은 통신 문제로 입력되지 않으면 그 순간 모든 플레이가 중단되어야 합니다. 그런 부분만 기술적으로 해결하고 선수들의 협조만 잘 이뤄진다면 그건 정말 편리한 시스템이 될 것입니다.”
어떤가. 앞으로 몇 년 안에 프로 대회에서 선수들이 종이가 아닌 전자 기기에 자신의 스코어를 입력하는 모습이 중계될 것 같지 않은가. IT 강국이라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모습을 먼저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형승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tom@golfdige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