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유럽 대륙의 모든 골프장 중 넘버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코스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 시니어가 디자인한 많은 코스 중에서 발데라마와 소토그렌데 올드 코스가 이 지역에서는 으뜸이다. 거래처의 초청으로 3박4일간 발데라마에 머물며 세상사를 잊고 이국 친구들과 라운드, 휴식, 음악, 음식, 댄싱 그리고 와인과 보낸 그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글_김상록 / 에디터_남화영
스페인의 말라가 Malaga는 유럽의 부호가 요트를 몰고 와 며칠씩 정박하고 자신의 요트를 자랑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1~2억원 하는 작은 것부터 500억원 이상의 호화 요트까지 빽빽이 정박하고 있다. 항구 도로에는 이들 요트를 사고파는 중개업소로 성시를 이룬다. 요트 사진과 간략한 도면을 정리해 가격과 함께 업소 유리창에 붙여 놓는다. 항구를 산책하며 그 사진 속 요트를 타고 낚시하고, 샴페인을 즐기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움이 배가 되는 휴양지다. 말라가는 아름다운 골프장과 유명한 식당, 그리고 정열의 스페인 춤 플라멩고가 있는 유럽 최대의 겨울 휴양지다. 겨울에도 지중해의 온화한 기온의 영향으로 온도는 10~22도 정도를 유지한다. 춥고 밤이 긴 북구의 겨울을 피해 유럽인이 몰려오는 휴양지. 최근 유럽 금융 위기 이후 경기 하락과 함께 이곳도 예전의 붐비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골프장과 숙박시설을 패키지로 한 저렴한 상품이 나오고 있다.
남유럽의 라이더컵 개최지 발데라마 Valderrama 골프장이 있는 소토그란데 Sotogrande는 말라가에서 차로 약 1시간 달리면 닿는다. 지브롤터공항을 이용해 발데라마로 간다면 지브롤터와 스페인 국경을 건너야 하는데, 사전에 택시를 예약하거나 픽업 차량을 꼭 준비해야 한다. 지브롤터공항에서 택시를 잡는 일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당시, 골프클럽을 메고 거리를 방황하는데 소나기까지 내리니 벙커 샷이 해저드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휴양지에 골프장이 문을 연 것은 1974년이다. 처음 이름은 소토그란데 뉴 코스였고 81년 라스아베스 Las Aves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지만, 85년 다시 근처의 땅을 더 사들여 로버트 트렌트 존스 시니어가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하고 발데라마로 개칭해 개장했다. RTJ가 디자인한 많은 코스 중에서 발데라마와 소토그란데 올드 코스가 이 지역의 으뜸가는 코스다. 이곳의 특색은 역시 자연친화적이다. 지난 2012년 5월호에 소개한 스코틀랜드의 로크로몬드 Loch Lomond 자연보호 구역은 골퍼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되어 있고, 최초의 진입 지점에서 무벌타 드롭을 한다. 유럽 대륙에서는 유일하게 발데라마가 그 자연보호 구역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코르크 마개를 만드는 코르크 Cork 나무와 올리브나무가 코스 전체를 감싸고 있다. 코르크나무의 밑동은 위로 올라가면서 가는 버드나무처럼 잎이 여러 갈래로 휘어지고, 나무의 표면은 오랜 시간 풍파에 깊게 패여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추운 겨울 덕지덕지 터서 갈라진 어린 시절 손등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골프장 도착과 함께 넓은 연습장 규모에 놀랐다. 닉 팔도가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연습장으로 평가한 곳이다. 경계가 없이 넓게 펼쳐진 그린같은 페어웨이를 향해 샷을 날리며 골퍼들이 몸을 풀고 있다. 한국 골프장은 협소한 골프장 내 공간으로 인해 내부 연습장을 가지지 못한다. 좋은 골프장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는 반드시 코스 안에, 그것도 스타트와 가까운 곳에 드라이빙 레인지 Driving Range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준비 운동과 워밍업을 하고 라운드를 하는 게 건강을 위한 기본이다. 2014년 <골프다이제스트> 세계 100대 코스에 들어간 한국의 3개 코스인 안양컨트리클럽, 클럽나인브릿지 그리고 해슬리나인브릿지 모두 스타트 홀 근처에 연습장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클럽하우스는 전형적인 스페인 풍으로 2층 흰색 건물에 붉은색 지붕으로 외견상 소박함을 더한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 넓이와 충분한 공간에 놀란다. 우측 전면엔 식당이 있다. 전면을 유리로 만들어 1, 9, 10, 18번 홀, 그리고 연습장 전체를 볼 수 있는데, 유럽의 클럽하우스 중 경치가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도 유명하다. 발데라마는 유명한 프로 골퍼의 홈 코스다. 2011년 54세의 나이에 뇌암으로 고인이 된 세베 바예스테로스의 홈이다. 메이저 대회 5승에 빛나는 그는 16세에 프로 골퍼가 된 이후 줄곧 이곳에서 지냈다. 많은 대회를 치르는 코스로도 유명하다. 97년 미국과 영국이 아닌 나라에서 처음으로 라이더컵을 개최했고, 88년부터 해마다 유러피언PGA투어의 볼보마스터즈, 아멕스, 안달루시아마스터즈 등 많은 대회가 열리고 있다. 유럽 대륙에서는 골프의 성지 聖地로 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지가 풍기는 경건함과 아름다움이 나를 자꾸 진지하게 만들었다.
코르크나무의 향연 영국의 오래된 골프장들은 1번 홀과 10번 홀 스타트가 클럽하우스 가까이에 있는 곳이 드물다. 1번 홀부터 출발해서 18번 홀에서 클럽하우스로 돌아오는 홀 배치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곳은 역사가 길지 않아 미국식으로 1, 9, 10, 18번 홀이 클럽하우스와 접해 있다. 그런 이유로 1번 홀 티박스에서 보이는 연습장과 다른 홀의 그린과 스타트 등으로 다소 번잡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티잉 그라운드에 오르는 순간 직사각형 공간이 너무도 반듯하고 평탄해 마치 비행장의 활주로 위에 있는 느낌이 든다. 도저히 엉뚱한 곳으로 볼이 날아가지 않을 것 같다. 2번 홀에 들어서면 거대한 코르크나무가 페어웨이 한가운데를 지배한다. 타깃을 찾기 힘들 정도로 넓게 퍼진 가지로 인해 답답함을 느낀다. 그 나무를 기점으로 우측으로 돌아가는 홀이라 더욱 어렵다. 나무 우측 그린으로 향한 길목에는 낮지만 코르크나무가 지름길을 차단하고 있다. 페어웨이는 우측이 높아 볼은 나무 좌측으로 굴러가는데, 다행히 그 나무 좌측까지 간다면 그린을 향해 충분한 시야가 확보된다. 그린의 좌측은 그린만큼 큰 벙커가 기다리고 있으니 조심하지 않으면 시작부터 낭패를 볼 수 있다.
4번 홀은 516미터 파5 홀로 핸디캡 1번이다. 이런 홀에서는 항상 마음을 가다듬고, 디자이너의 의도된 함정을 파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야디지북을 보면, 그저 긴 파5 홀 정도로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린 우측에 바짝 다가서 있는 연못, 투온 방지용 그린이 마치 표주박 손잡이처럼 입구가 좁다. 무리한 샷은 징벌을 받기 십상이다. 파4, 5번 홀(348미터)은 좌측 도그레그로 IP 지점의 넓은 페어웨이 좌우로 벙커가 있다. 페어웨이에서 올려다보는 그린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4개의 벙커와도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 벙커가 넓기도 하지만, 그린을 돌아가며 빼곡하게 감싸고 있다. 그린과 벙커 사이는 코르크나무가 근위병처럼 지키고 있으니 정확하지 않은 세컨드 샷은 더블 파를 각오해야 한다. 한두 클럽 길게 잡고 탄도를 높여 정확하게 그린을 공략해야만 그나마 스코어 카드에 파를 적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다. 파3인 6번 홀은 그린을 감싼 6개의 벙커가 마치 권총의 총알을 장전하는 구멍과 같다. 위에서 보면 꼭 그 형세다. 둥근 그린에 6개의 둥근 구멍이 돌아가며 볼을 기다린다. 얼핏 보면 모든 홀이 코르크나무 숲속에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린은 예외 없이 벙커로 둘러싸인 형상인 것 같은데 감사하게도 13번 홀은 벙커가 하나도 없다. 홀 전체에 벙커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하다. 아마도 설계자가 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코르크나무가 페어웨이를 둘러싸 드라이버 낙하지점에 따라 그린이 보이지 않는다. 왼쪽 페어웨이에서만 그린이 보인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17번 홀은 490미터의 길지 않은 파5 홀이다. 경기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그린 뒤쪽의 경사면을 따라 많은 갤러리가 운집해 경기를 관람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마치 오래된 검투경기장과도 같이 경사면이 그린을 감싸고 있어 가장 좋은 관람지가 된다. 더구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는 투온에 대한 갈등이다. 그린 앞에 포진한 연못으로 인해 레이업이냐 투온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세컨드 샷부터 흥미진진해진다. 물을 피해 좀 길게 세컨드 샷을 하려면 그린 뒤쪽 두 개의 벙커가 눈에 들어온다. 골퍼가 제일 싫어하는 내리막 벙커 샷을 해야 한다. 자칫 토핑이 되면 피했던 물로 볼이 날아가게 되니, 생각이 많게 된다. 마지막 박빙의 승부 속에서 도전이냐, 수성이냐를 두고 갈등하지 않을 수 없는 홀이다. 승부에 변수를 주는 홀인만큼 손에 땀을 쥐게 한다. 95년 이곳 말라가 출신인 히메네스가 볼보마스터즈에서 생애 첫 알바트로스를 만들면서 갤러리의 환호 속에 모자를 벗으며 그린으로 오르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7번 홀 블랙 티에 기념 명판을 세웠다. 라운드를 마치고 들어오는 18번 홀은 415미터로 가장 긴 파4다. 역시 승부를 가르는 홀답게 좌측 도그레그인데 IP 지점에 볼을 떨어뜨리지 못하면 그린을 가로막고 있는 코르크나무로 인해 재앙이 벌어질 수 있다. 18번 홀에서는 코르크나무를 피하다보면 다른 장애물인 벙커를 만날 수 있다. 아름답게 잘 정돈된 코스가 주는 감동보다는, 정신없이 무엇엔가 홀린듯한 느낌으로 라운드를 마치게 된다. 샤워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시원한 스페인산 산미구엘 맥주를 마셔야 한다’는 친구들의 성화에 단숨에 들이켠 한 잔의 맥주가 코르크나무에 꽉 막혔던 가슴을 뚫어주는 것 같았다. 코르크나무는 와인 병마개로 쓰는데, 그 병마개를 쑥 뽑아낸 느낌이었다.
Info
주소 : 11310 Sotogrande Prov de Cadiz, Spain / 스페인, 프로브카디즈 소토그란데 11310. 지브롤터공항에서 약 27Km(25분 소요), 말라가공항에서 107Km(약 1시간10분). 연락처 : valderrama.com, ++ 34 956 791 200. 코스 정보 : 18홀(파72, 7030야드). 설계 : 로버트 트렌트 존스 시니어 Robert Trent Jones Sr. 그린피 : 주중 320유로 (약 46만4000원), 주말 350유로(약 50만8000원).
Sang Rok Kim
김상록: 선박중개업체 카스마리타임 대표, 아일랜드 올드헤드, 영국 웬트워스 회원, 구력 23년 핸디캡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