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골프 클럽, 놀면 뭐하니
누구나 내가 원하는 대로 꾸미는 ‘취저(취향 저격) 골프 클럽’을 한 개쯤 가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막연하게 생각만 하던 골퍼라면 지금 당장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커스텀클럽 태그를 검색해보자. 인증 문화가 익숙한 MZ세대 골퍼와 여성 골퍼를 중심으로 커스텀 디자인 클럽에 관한 피드가 늘고 있다.
창고에서 몇 년째 출전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퍼터, 또 영광의 상처(라고 쓰고 관리 소홀이라고 읽는다) 때문에 사랑이 식어 구석에 방치된 클럽이 커스텀의 타깃이다. 커스텀 디자인업체는 때를 놓치지 않고 성형외과 광고처럼 비포-애프터 사진을 올려 골퍼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중고 시장에 내놓기도 애매한 클럽임에도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해 커스텀하는 이유는 드라마틱한 효과 때문이다.
복원 재료와 마감 기술이 좋아져 골퍼의 만족도가 더욱 높아졌다. 언제 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퍼터를 새것처럼 복원한다면 잊고 있었던 퍼터에 대한 추억이 다시 떠오를 수도 있다. 또 원하는 색상과 문구를 넣어 자신만의 헤리티지를 만들 수도 있다. 이처럼 커스텀을 통해 클럽에 대한 애정이 다시 솟아나는 효과와 자꾸 자랑하고 싶어지는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프로 골퍼들도 클럽 커스텀 대열에 합류했다. 장하나, 이보미, 이수민 프로 등 투어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도 투어 휴식기를 틈타 사용 중인 퍼터를 커스텀하고 SNS에 인증했다. 특히 이수민은 국가 대표 시절부터 사용해 투어 우승까지 함께한 낡은 퍼터를 새것처럼 복원하고 자신의 SNS에 만족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어설픈 도색 수준의 커스텀이었다면 클럽에 예민한 프로 골퍼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퍼터 커스텀 업체 루키골프의 손민호 대표는 “젊은 골퍼들은 나만의 클럽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상당하다. 오래된 퍼터를 복원하기도 하지만 새 클럽을 구매하자마자 커스텀 작업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색상과 위치를 지정해 구체적으로 주문서를 만들어오기도 한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색상은 핑크와 화이트 조합이다. 양산 클럽 브랜드에서 시도하지 않은 컬러, 화려한 컬러로 커스텀한 퍼터는 만족도가 가장 높다”고 말하며 커스텀 트렌드에 관해 설명했다.
■ 드라이버 커스텀, 쉽고 편하게 가능하다
골퍼들은 시각에 예민하다. 특히 드라이버 클럽은 내려다보았을 때 디자인에 만족감과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헤드 크라운이다. 골프 클럽 중 눈에 보이는 면적이 가장 넓다. 크라운의 색상, 그래픽에 따라 전혀 다른 클럽으로 보이기도 한다.
2014년 등장한 드라이버 커스텀 스킨은 마음에 드는 디자인 스킨을 선택해 집에서 간단하게 셀프 커스텀할 수 있어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다. 부착한 스킨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질리면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다. 5분 투자로 전혀 다른 드라이버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클럽 헤드 크라운 전체를 감싸는 풀 스킨과 퍼터 사이트 라인처럼 얼라인먼트 기능을 더한 라인 스킨, 클럽 페이스와 크라운의 경계를 보호해주는 립 스킨 등이 인기다. 골프스킨 이철승 대표는 “드라이버나 우드, 하이브리드 크라운에 스킨을 붙이면 다른 디자인 클럽으로 보인다.
기존 흠집도 모두 가려 새로운 클럽을 산 느낌을 받는다. 스킨의 무게도 가벼워 성능 문제도 없다. 원하는 그림이나 사진으로 제작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나만의 디자인과 클럽 보호를 모두 원한다면 커스텀 스킨을 시도해보라”며 커스텀 스킨의 장점을 어필했다.
■숨어 있는 멋
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취향을 드러내는 시대다. 진정한 멋쟁이는 겉옷 못지않게 속옷에도 많은 관심을 둔다. 골프 그립은 속옷 같은 존재다. 진정한 스타일리시 골퍼라면 잘 보이지 않는 그립조차 내 취향대로 꾸미고 싶을 것이다.
몇 년 전 투명 그립이 출시되어 커스텀 그립이 잠깐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소재가 좋지 못해 투명도가 떨어지고 빨리 경화되는 단점이 있어 반짝 스타가 되고 말았다. 이후 한동안 불투명 소재로 만든 그립만 생산되며 그립의 색상, 패턴만 변경 가능했다. 최근 소재가 업그레이드된 투명 그립을 다시 출시하면서 골퍼들이 관심을 두고 있다.
국산 그립 제조업체 씨탑 그립은 원하는 디자인의 양면테이프를 선택해 샤프트에 감은 후 투명 그립을 장착하는 방식이다. 샤프트에 감긴 양면테이프 컬러와 디자인을 투명 그립 외부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클럽 종류별로 다른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고, 천연고무로 제작해 경화 현상이 거의 없어 투명한 그립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한다.
씨탑골프 남상선 대표는 “오랫동안 투명도를 유지하는 그립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양한 디자인을 원하는 젊은 골퍼의 니즈에 맞춰 더욱 개성 있는 커스텀 그립 디자인을 개발하겠다”라며 커스텀 디자인을 확대할 뜻을 내비쳤다.
국내 커스텀 디자인 골프 시장은 시작 단계다. 클럽으로 시작된 커스텀 디자인 문화는 골프 장갑, 골프화, 골프백 등 영역을 점차 넓혀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니셜을 새긴 커스텀 볼 마커는 선물용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창의적인 디자이너들도 커스텀 골프 시장에 관심을 보여 골퍼들이 주목하고 있다. 오랜 시간 쉬고 있는 소중했던 클럽을 나만의 디자인으로 재탄생시키는 것도 골프를 즐기면서 느낄 수 있는 재미 요소다.
사진=김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