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밖에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남자,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여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정반대 성향인 둘은 이제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됐다. 평생을 약속한 강예린, 함정우(28) 얘기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코리안투어에서 활약 중인 함정우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기량을 뽐내고 있는 강예린은 오는 19일 백년가약을 맺는다. 이제 부부로서 투어 생활을 함께 한다.
둘의 만남은 지난해부터 회자됐다. 최경주인비테이셔널에서 2년 5개월 만에 우승한 함정우가 여자친구 강예린이 고교 시절 쓰던 짧은 퍼터를 빌려줬다고 공개적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 덕분이다. 그리고 결혼 소식도 알렸다.
■ 공통점이 많은 둘 “우리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지?”
두 사람은 공통점이 참 많다. 나이도 같고,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함께 뛰기도 했으며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출신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부부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함정우는 “정말 자연스럽게 사귀게 됐다. 원래 잘 알던 사이였지만 내가 전역하기 직전에 연락하면서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고 회상했다. 연인이 된 2016년, 이제 막 투어를 뛰기 시작한 둘이었다. 차가 없어서 한여름에도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평범한 대학생처럼 만났다.
강예린은 “그때 마침 내가 투어에서 홀인원 부상으로 차를 받았다. 정우는 일본에서 뛸 때였는데 차가 없어서 내가 공항에 태워다주고 집에 데려다주고 그랬다”면서 “초창기에는 원룸에 살다가, 투어를 뛰면서 오피스텔로 이사가고 지금은 아파트에 산다. 서로 고생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다 함께 했다”고 떠올렸다.
또래 학생들처럼, 김밥 같은 분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특식이라 해도 3~4만원 정도 하던 족발이 전부였다. 함정우가 우승한 뒤 ‘우리도 좋은 데 가서 먹어보자’고 최고급 일식집에 갔는데 둘 다 탈이 났다. 함정우는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고 느꼈다. 지금도 파스타 같은 것보다 국밥 같은 걸 더 자주 먹는다”고 웃었다.
■ 스윙 코치이자 멘탈 선생님이자 매니저, 그리고 자극제
우여곡절을 함께 한 만큼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도 크다. 특히 만나기 시작했을 무렵 강예린이 드라이버 입스를 겪었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세수도 못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죽어라 연습해도 마음처럼 안 됐다. 스트레스가 극심해 골프 중계도 못 봤을 정도였다.
고생하는 강예린을 든든하게 지켜줬던 이가 함정우다. 함정우는 “그땐 무슨 말을 해도 안 들린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잘 될 거야, 한 번 해보자’ 이런 거였다. 사실 서로 이해를 못했다. 나는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안 되지?’ 싶은데 예린이는 ‘못 쳐 본 적도 없으면서 날 어떻게 이해하냐’고 했다. 골프 얘기가 조금만 나와도 싸웠다”고 털어놨다.
그때 함정우는 강예린에게 자신을 가르치던 코치를 소개했다. 강예린은 그렇게 만난 염동훈 코치 덕분에 드라이버 구질을 바꿨고 입스에서도 벗어났다. 강예린이 지옥의 시드전을 치를 때도 함정우가 직접 대회장까지 가서 응원했다. 덕분에 강예린은 2021년 시드전에서 차석으로 통과했고, 2021년에는 상금 순위 48위로 시드를 유지했다.
입스로 고생하던 강예린은 함정우를 보면서 프로 생활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잘 안 풀릴 때 골프 치기가 싫어서 도피처 삼아 정우의 경기를 보러 다녔다. 2019년에 2~3개 대회 빼고 다 갔다. 정우가 1부 투어에서 경기 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으니 문득 다시 골프에 흥미가 생겼다”고 전했다. 그렇게 허리가 아팠지만 이상하게 18홀을 걷는 건 괜찮았다. 지금도 강예린은 매일 만 보 이상씩 걷는다.
함정우 역시 강예린 덕을 톡톡히 봤다. 평소 성격이 불 같았던 함정우는 경기가 맘처럼 잘 풀리지 않으면 필드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채를 가만두지 않았다. 강예린이 보기에 프로로서 할 행동은 아니라고 느꼈고, 그 이후부터 대회 중 겉으로 감정 표현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주입식 교육을 받은 덕분일까. 함정우는 지금도 경기를 하면서 스스로 ‘화내지 말아야지’ 느끼고 신중하게 행동한다. 전형적인 A형 강예린이 함정우를 만나 활발해지고 욕심이 생겼다면 B형 함정우는 한 층 차분해졌다. 둘의 긍정적인 변화는 부모님부터 지인까지 모두 인정했다. 또 함정우와 달리 강예린은 루틴을 지키며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덩달아 함정우도 자기관리를 하고 더 프로다운 면모를 갖추게 됐다.
함정우의 ‘곰돌이’ 이미지 메이킹도 강예린 작품이다. 강예린은 “옷 하나를 사도 귀여운 걸 사고 양말도 곰돌이가 그려진 걸 신으라고 추천한다”고 전했다. 강예린이 함정우의 대회 짐을 직접 싸주는데 함정우에게 잘 받는 빨간 옷을 2개씩 넣는다. 그 때문일까. 함정우가 지난해 2년 만에 우승할 때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 “미국 가면 내가 내조할게”…“강예린으로서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
함정우의 꿈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진출이다. 함정우는 “미국에 가서 10년 정도 뛰다 들어오고 싶다”고 말했다. 함정우가 미국에 가면 강예린은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강예린은 한 치 망설임 없이 “같이 갈 것이다”고 답했다. 선수 생활을 접고 함정우를 내조하겠다는 의미다.
이를 들은 함정우는 “나 때문에 선수 생활을 그만 두라는 건 절대 아니다. 혼자 가야 한다면 혼자 갈 것이다”고 해명했지만 강예린은 확고했다. 그는 “함께 있으면 재미있기도 하고, 정우를 밀어주고 싶다. 정우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함정우가 바라는 강예린은 함정우 여자친구가 아닌 ‘강예린 프로’ 그 자체다. 그는 “내 여자친구, 아내가 아니라 강예린 프로로서 뭔가 보여줬으면 좋겠다. 둘이 있으면 나 때문에 예린이가 묻히는 경향이 있다. 같이 잘 해서 같이 주목받고 싶다”고 전했다.
둘은 서로의 조력자로서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같은 날 우승하면 어떨까, 같은 스폰서 대회에서 우승하면 어떨까, 서로 우승하면 소감은 어떻게 얘기할까, 내 덕분이지, 서로에 대한 얘기는 꼭 하자, 이런 시시콜콜한 상상을 하며 희망찬 내일을 함께 그린다.
“예린이가 올해는 꼭 우승했으면 좋겠다. 작년에는 시드 유지한다고 시즌 중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계속 대회에 나갔다. 우승해서 여유 있게, 힘들면 쉬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동안 쓴 참가비 뽕은 뽑아야지! 우선 다치지 말고. 우승하면 다 내 덕이다.”
“정우가 첫 승하고 우승 세리머니를 만든 게 있다. 골프가 신사의 스포츠니까 거기에 착안해서 만들었다. 집에서 매일 세리머니 연습을 했는데 그 세리머니를 할 때까지 2년을 기다렸다. 올해는 분기별로 세리머니 하고 와.”
[사진=강예린·함정우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