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공영규 / 헤어 & 메이크업_파크뷰칼라빈 by 서일주
본 게임은 시작됐다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그 어떤 의미로도 남아있지 않다. 김시우는 버틴 시간과 쌓아온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글_한원석
무심한 듯, 오라가 풍긴다. 하지만 인사를 건넨 순간 어쩔 수 없는, 아직 앳된 모습이다. 그도 어쩔 수 없는 게 이제 막 스물두 살의 어린 친구다. 하지만 페덱스컵 마지막 대회인 투어챔피언십까지 경험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대형 루키다. 올해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PGA투어 우승을 달성했고 준우승을 포함해 톱10 5회, 308만6369달러(약 30억원) 이상의 상금을 거둬들였다. 세계 랭킹 298위에서 시즌을 출발해 투어챔피언십 직후 55위까지 순위를 올려놨다. 1년 만에 한국을 대표하는 ‘톱 클래스’ 골퍼로 우뚝 섰다. 이런 화려한 기록을 세우고도 ‘나 김시우야’라는 식의 건방 떠는 모습, 스타 대우를 원하거나 나에게 모든 걸 맞춰달라는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었다. 김시우는 그저 묵묵히 진정성 있게 그리고 겸손함까지 더해 성숙하게 행동했다. 잘하는 사람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촬영장에서도 모두가 딱 한마디로 입을 모았다. 역시!
모든 건 경험에서 비롯됐다 PGA투어 우승에 페덱스컵 최종전까지 살아남은 신인 두 명 중 한 명이다. 올해 베스트오브더베스트와 어깨를 나란히 견줬고 10위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그럼에도 자화자찬은 없었다. 아직 1년의 경험이라 그럴 순 있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었기에 본인 자랑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웃음과 함께 “없는데요…”가 전부였다. 한참을 생각하던 김시우는 “미국에 있으면 사실 심심하다. 친구들도 보고 싶고. 그런데 다 잊고 오히려 내 할 일에만 집중을 잘한 것 같다. 외로움을 타지 않는 것, 그게 자랑거리다”라고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힘겨운 3년을 버티면서 경험을 쌓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성격도 한몫했다. 2012년은 PGA투어 풀 시드를 받을 수 있는 퀄리파잉(Q)스쿨이 마지막으로 열린 해다. 그저 마지막이니까 경험 삼아 출전했다. 김시우는 “꼭 통과하겠다는 의지보다는 단지 경험을 쌓으러 갔다. 어찌하다 보니 잘되어버렸다”며 대수롭지 않게 털어놨다. 오히려 “막상 시드를 따고 나서 당황했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때 나이가 17년 5개월 6일, 최연소 통과 기록을 깼다. 마지막 대회였으니 더 이상 깨질 수 없는 기록이 됐다. 나이 제한이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경험과 함께 자신의 실력도 검증해볼 참이었던 것뿐이다. 풀 시드를 받고도 나이 제한에 걸려 결국 여덟 개 대회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시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125위권에 들어야 한다. 모든 대회에 출전한다고 해도 125위권에 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부담? 당연히 있었다. 초초함? 두말할 필요 없다. 김시우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치른 PGA투어 첫 경기 때는 퍼팅도 떨리고 붕 떠 있는 기분으로 공을 쳤다”고 말했다. 생일이 지나 만 18세가 되면서 나간 여덟 개 대회 중 한 차례 기권, 일곱 번은 모두 컷오프 됐다. 그는 “기회도 많지 않은데 성적도 내야 했기 때문에 부담이 컸다”면서 “잘하려다 보니 더 안 되고 슬럼프로 이어졌고 결국 입스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이듬해 2부투어인 웹닷컴 퀄리파잉스쿨에 응시해 2013~2014년 시즌을 보냈다. 김시우는 “드라이버, 퍼터 뭐가 됐든 전부 입스가 왔다”고 했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럴 땐 그냥 클럽만 들어도 불안하고 손이 떨리고 갖가지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 이 와중에 시드를 따낸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입스가 남아 있어 시즌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다시 웹닷컴 퀄리파잉스쿨. 김시우는 이렇게 경험을 쌓았다. 이미 두 번의 경험이 있어 오히려 편했다고 한다. 심지어 마지막 날 79타를 치고도 35위로 무사히 통과했다. 2014~2015년 시즌에서 슬슬 숨겨진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2015년 스톤브래클래식에서 드디어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우승까지는 생각지 못했다”며 “우승 전에는 파이널 대회까지 가서 잘해보려 했다”고 당시의 전략을 설명했다.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PGA투어로의 진출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편안하게 시즌을 마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프로 골퍼는 ‘PGA투어에 도전한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김시우는 달랐다. 인터뷰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도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PGA투어는 그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힘들만한 시기도 무덤덤하게, 아무렇지 않아 했다. 김시우는 “웹닷컴투어가 많은 경험이 됐다”고 한다. 2년 동안의 고초가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된 셈이다. 기나긴 시련이 끝났다는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웹닷컴 우승과 함께 당연히 골프도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그는 “자신감을 많이 찾았다. 진짜 많이 좋아졌다. 정신적으로 편해지니 모든 게 잘 풀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제 또 무너지기 전엔 뭔가 그렇게 되려는 기운이 돈다. 몇 번 겪어봤기 때문에 그 느낌을 안다. 그럴 땐 주의하면서 플레이를 하려고 한다”는 김시우다. 제법 단단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그가 풍기는 오라가 이런 데서 확실히 느껴졌다. 어느 정도 대열에 들어섰구나.
“자신감을 많이 찾았다. 진짜 많이 좋아졌다. 정신적으로 편해지니 모든 게 잘 풀리기 시작했다”
가족은 나의 팀 이제 갓 스물을 넘긴 김시우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 상상 이상으로 컸다. 아버지가 스윙 코치다. 골프를 처음 시작할 때는 아버지가 배우던 프로가 있었다. 그에게 기초만 한 달 정도 배운 뒤로 아버지를 쫓아다니면서 공을 친 게 전부다. 간간이 유명 티칭 프로로부터 원 포인트 레슨을 받은 적은 있지만 전적으로 아버지에게 의존했다.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새 스윙 코치를 만났다. 잘 맞지 않았다. “몸에 밴 버릇이 많았기 때문에 고치려면 2~3년은 각오해야 한다. 코치와 결별했고 지금은 아버지와 연습하면서 기본적인 것만 안 바뀌도록 하려고 한다.” 자신의 스윙에 대해서도 충분히 잘 분석하고 있다. 뭐가 잘 안 되면 왜 그런지 바로 안다. 잘 안 되는 부분이 뭔지 파악해서 연습할 수 있다. 그것도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터득한 부분이기에 빛을 발한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참 영리한 골퍼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투어를 다녔다. 웹닷컴투어 때는 20~25개 대회를 어머니와 다녔다. 초반 다섯 개 정도만 아버지와 함께였다. 올해는 거의 반반이었다. 김시우는 “같이 다니면 좋기만 하다. 단점이 없다. 단지 불편하다면 일어나는 시간 정도”라며 만족스러워했다. 자신을 대신해 희생하는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게 분명하다. 내년엔 혼자 해보려고 계획 중이란다. 아버지의 조언은 버팀목이 됐다. “아직 어리니까 시간은 충분하다. 실력이 있으니 성적이 따라주지 않는 건 운이 없는 것뿐이다.” 뻔한 위로였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에 충분한 아버지의 위로였다.
동양계 신인이 나타났다 제대로 쉬지도 못한 상태에서 PGA투어 2015~2016년 시즌이 시작됐다. 슈라이너스호스피털스포칠드런오픈 공동 25위, OHL클래식 공동 17위, RSM클래식에서는 18위에 올랐다. 김시우는 “PGA투어 선수들과 기량 차이를 크게 못 느꼈다”며 자신감을 되찾은 계기를 설명했다. 그냥 강해 보이기 위한 대답도 아니었고 제스처도 아니었다. 소니오픈이 열리는 하와이에서는 일주일 전에 미리 도착해 전략을 세웠다. 그는 “한동안 쉬지 못했다. 웹닷컴은 정말로 힘들었다. 이동 거리도 길고, 주로 시골에서 열려 비행시간도 길었다”고 회상했다. PGA투어까지 뛰고 나니 힘이 더 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데만 전념했다. 소니오픈에서 공동 4위로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지만 “캐디가 라인을 봐준다”는 예상치 못한 구설에 올랐다. 신인인 데다 동양계 골퍼다.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구 어디라도 하루면 도달하는 2016년에 살고 있고, 심지어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인종차별이란 어불성설 같지만 현실이 그렇다. 최고의 투어를 자부하지만 이런 걸 문제 삼는다는 건 시기 질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규정에도 어긋나지 않는데, 다른 선수들도 그러는데, 유독 중계 때 샷 장면이 많이 잡히면서 이슈가 됐다. 김시우는 이에 대해 “잘 쳐서 그랬을 것이다. 얼라인먼트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다른 선수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문제 되지 않기에 따라 했다. 매 홀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라고 당시 상황에 대한 억울한 심정을 털어놨다. 이후로는 조심했을 뿐 다행히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바로 이어진 커리어빌더챌린지 공동 9위, 파머스 인슈어런스오픈 공동 18위, 더 이상은 누구도 시비 걸지 않았다.
욕심이 과하면 얹힌다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가 슬슬 나왔다. 초반 성적이 좋았고 이 페이스만 유지하면 가능성도 충분했다. 김시우 역시 “머릿속에 그 생각이 자리하자 잘되다가도 안 됐다. 어차피 올림픽 나가도 메달권이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포기했다. 그러면서 다시 잘 풀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록을 살펴보면 웨스트코스트 대회들이 끝나면서 플로리다 스윙을 비롯해 중부와 남부 대회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코스가 어려웠다”는 게 이유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경험하지 못한 코스니 당연히 못 칠 수밖에 없다. 내년을 위해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하지만 올림픽에 대한 부담이 컸을 가능성이 높다. 안병훈과 왕정훈이 올림픽 대표 선수로 확정되면서 마음과 샷도 바로잡혔다. 바바솔챔피언십에서 공동 2위, 캐나다오픈과 트래블러스챔피언십에서도 톱25위로 선전했다. 그리곤 윈덤챔피언십에서 드디어 생애 첫 우승을 일궈냈다. 기다림의 미학이었다. 김시우는 경쟁을 즐긴다. 골프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승부욕이 강하다. 그는 “처음에는 이기는 것에 많이 집착했고 속된 말로 목숨까지 걸었다. 지는 것 자체가 싫었다”고 했다. 중계방송에서도 종종 볼 수 있지만 잘 안 되면 화도 내고, 아쉬워하고 짜증 난 표정을 지을 때가 많다. 감정 표출이 많아 아버지에게 혼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이 고쳐진 편이다. 좀 참으면 경기가 잘 풀리는 경우도 있어 요즘은 참으려고 애쓴다. PGA투어는 이미 2016~2017년 시즌이 시작됐다. 김시우는 경험을 잘 활용할 줄 안다. 적절히 대처할 줄 알고 또 이겨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2년 차 징크스? 그에게 이미 지나간 바람이다. 아니 어쩌면 더 큰 성장통을 겪었을지 모른다. 골프가 재미있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김시우는 “내가 원하는 샷을 했거나 내가 원하는 성적을 냈을 때 느끼는 희열 때문”이라고 한다. 목표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김시우에게 중요하지 않은 대목이다. 경험은 최고의 자산이 됐다. 그간의 시간이 그에게 값진 까닭이다. 김시우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경험에 더욱 집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