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또 다른 나, 백규정 [People:1412]

내 안의 또 다른 나, 백규정 [People:1412]

2014-12-22     김기찬
 

사진_곽외섭 / 헤어메이크업_파크뷰칼라빈by서일주 / 스타일리스트_최은혜

 

올해 말 그대로 ‘다사다난 多事多難’ 했던 백규정. 열아홉 살인 그녀는 올해 한국LPGA투어에 데뷔해 국내에서 3승을 거두었고, 미국LPGA투어인 하나•외환은행챔피언십까지 정상에 오르면서 미국 직행 티켓을 얻었으며, 생애 한 번 밖에 없는 신인상까지 받으면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이런 과정 속에서 다양한 구설 口舌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시즌 내내 말 못할 고민도 있었고, 속앓이도 심했다. 시즌이 끝나가던 11월 중순 그녀를 만나 말 못했던 고민과 속마음, 그리고 어떤 꿈을 꾸고,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이번에는 ‘청취자’의 자세로 들어봤다. 글_고형승

 

 

사실 백규정과의 인터뷰는 세 달에 걸쳐 진행했다. 지난 9월에 인터뷰를 했을 때 그녀는 많이 지쳐 있었고, 표정도 어두웠다. 루키로 2번(인터뷰 당시)이나 우승컵을 들어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구설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론은 그녀에게 냉담했다. 백규정은 눈물을 글썽이며 인터뷰를 했었다. 그때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사를 준비했지만 보류했었다. '각종 구설에 대한 그녀의 항변'이 주요 내용이었는데, 그 항변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공산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냉담함 속에서도 그녀는 차분히 대회에 임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그 이후 그녀는 한국에서 열린 미국LPGA투어에서 쟁쟁한 선수들을 물리치며 정상에 올랐다. '성적'과 '재능'이 그녀에 대한 냉담한 여론을 돌리는 데 가장 크게 일조했다. 다시 그녀와 인터뷰를 위해 마주앉은 것은 올 시즌 단 하나의 대회를 남겨둔 지난 11월 초순이었다.

 

 



다사다난했던 2014년 프로 골퍼도 공인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루머가 생길 수도 있고, ‘아니면 말고’식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행동에 제약을 받기도 한다. 프로 골퍼는 ‘볼만 잘 치면 되는’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갔다. 이제는 팬덤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모든 언론이 집중 조명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떠돌고, 유저는 그 정보를 즐긴다. 비단 프로 골퍼에게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 물어보고 싶었던 것은 딱 하나였다. ‘2014년이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이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백규정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루키로서 맞이했던 첫 해에 4승(미국LPGA투어 1승, 한국LPGA투어 3승)을 거뒀고, 평생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는 신인상까지 획득했지만 구설수에 오르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기 때문이다. 백규정과 관련된 구설의 배경은 3가지였다. 어드바이스 규정 위반 벌타에 대한 항변, 마커였던 선수의 스코어카드 오기에 따른 실격, 선배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 생긴 갈등이었다. 이 상황이 구설이 된 것은 앞뒤가 잘려나가고 일부분만 부각됐기 때문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판단을 내리기에도 무리가 있었고, 반박은 또 다른 반박을 불러올 상황이었다. “이런저런 구설에 시달리는 것이 처음이라 마음이 정말 편치 않았어요. 대중에게 골프 선수는 중계를 통해 볼을 치는 몇 초의 순간과 기사를 통해 알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이미 매체를 통해 저에 대한 이미지가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점이 정말 안타까웠죠. 처음 갖게 되는 인상을 지우거나 바꾸기는 정말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들어갈 것입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것을 여과 없이 그대로 골프팬과 대중이 믿게 만들었다는 것은 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미숙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두운 터널을 막 빠져 나온 것처럼 그녀의 얼굴 한켠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한편으로는 애잔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그녀는 이제 열아홉이다. 그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꽤 무거웠을 것이다. “올해 정말 많이 배웠어요. 프로 골퍼라면 골프 이외에도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많다는 걸요.” 그녀의 어두운 표정도 도마 위에 올랐었다. “아마 제주도에서 열렸던 삼다수마스터즈였을 거예요. 더운 날씨에 감기 몸살까지 겹치는 바람에 마지막 날 컨디션이 최악이었어요. 경기까지 잘 풀리지 않으니 너무 서럽더라고요. 짜증나고 힘든 모습을 팬 앞에서 보였던 것 같아요. 정말 그런 모습까지는 보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부분이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그녀는 실수를 통해서 배워나가는 중이고, 큰 대가를 치르면서 ‘프로페셔널’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저는 항상 미스가 났을 때 비로소 게임이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하죠. 실수를 통해 배우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것을 여과 없이 그대로 대중이 믿게 만들었다는 것은 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미숙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

 

일기에 적었던 꿈 명랑했던 소녀가 상상했던 자신의 미래는 항상 유쾌하고 밝은 일만 가득했을 것이다. 그녀는 구체적으로 어떤 꿈을 꿨었을까? “얼마 전에 제가 4년 전에 썼던 일기장을 본 적이 있었어요. 그걸 보곤 깜짝 놀랐죠. 거기에는 스카이72골프장에서 열렸던 KB국민은행 대회에 아마추어로 참가했을 때의 생각과 느낌이 자세히 담겨있었습니다.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아서 일찍 티오프를 하고 나인 홀을 끝냈을 때쯤이었나 봐요. (안)신애 언니랑 (이)보미 언니가 첫 홀에서 플레이를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보게 됐던 거죠. 그때 엄청난 갤러리의 함성과 박수 소리를 들으며 ‘몇 년 후에는 꼭 저 갤러리를 내 갤러리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걸 써놓았던 거예요. 4년이 지나고 그 골프장에서 수많은 갤러리 앞에서 우승을 했으니 그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죠. 저는 그 내용이 들어있는 일기 바로 뒤에 지금의 감정을 써 넣었습니다.” 백규정은 하나•외환은행챔피언십 우승으로 30만달러(3억2000만원)의 상금을 벌었고, 미국LPGA투어 시드를 확보했으며, 세계 랭킹은 20계단이나 뛰어오를 수 있었다. “그건 꿈이었죠. 언젠가는 미국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상상해오곤 했으니까요. 그 시기가 앞당겨지게 되니까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저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내가 선수로서의 자질이 없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밤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했어요. 여느 선수처럼 매번 대회에 참가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긴장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게 됐던 거죠. 코치인 이안 츠릭이나 멘탈을 담당해주시는 조수경 박사님, 그리고 함께 투어 생활을 하고 있는 언니들이 많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만 그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됐죠. 불안했던 마음은 점점 사라졌고, 몇 번의 우승을 통해 자신감까지 얻었던 것 같아요.” 그녀는 “이제 조금은 알겠다”고 했다. 꿈을 이루기 위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건 과정 중의 하나라는 것을 말이다. 힘들 때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그냥 묵묵히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갔으며, 자신에게 온 기회를 확실히 잡았다. 그게 올해의 성적에 그대로 투영돼있다. 과장되지 않은 그녀의 현재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다른 꿈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꿈은 세계 랭킹 1위가 될 수도 있고,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 자신이 행복해지는 거예요. 저는 행복해지기 위해 골프를 합니다. 오랫동안 즐겁게 골프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시 일기장을 펼쳤을 때 스스로 부끄럽지 않았으면 해요.”.

 

Kyu Jung Baek

백규정 : 나이 19세 신장 175cm 소속 CJ오쇼핑

우승 4승 넥센•세인트나인마스터즈, 롯데칸타타여자오픈,

메트라이프•한국경제KLPGA챔피언십, 하나•외환은행챔피언십(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