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최나연, 이제 내 어깨를 내줄게

처음으로 혼자 떠난 단 한 번의 유럽 여행. 그것은 심하게 흔들리던 최나연의 골프 인생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아니, 어쩌면 180도 돌려서 다시 끼워 넣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 여행의 강력한 힘을 체감한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2019-01-04     고형승 기자

매서운 바람이 볼을 세차게 때리던 12월 어느 날이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최나연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왜 그랬을까?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얼굴은 최나연과 다름없는데 그동안 그에게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10년 넘게 알고 지내던 최나연이 아닌 일란성쌍둥이나 복제 인간이 대신 나와서 그의 행세를 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이유를 인터뷰 말미에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운전하는 법을 잊어버리다

최나연은 아직도 지난 2년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 아프다. 어릴 때부터 그는 골프를 잘했고 쉽게만 느껴졌다. 하루나 이틀 골프가 잘 안 되더라도 열심히 연습하면 성적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러던 그가 2년 전 어느 날부터 드라이버 샷을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드라이버 입스였다. 최나연의 말이다. 

“정말 힘들었어요.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까요? 택시 기사가 운전으로 돈을 벌잖아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운전을 못하게 된 거죠.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큰 트라우마가 생겨서 못하는 거예요. 갑자기 밥줄이 끊긴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적당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제가 가장 좋아하던 골프가 싫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나마 최나연이 하루하루 버틸 수 있었던 건 사람들과 관계 때문이었다. 호주 출신의 카리 웹(Karrie Webb)과 최근 몇 년간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어느 날 최나연은 웹의 전화를 받고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함께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나란히 앉아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최나연은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러자 웹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기자들이 가끔 ‘한국 선수들의 선수 생명이 왜 짧은 것 같으냐’고 내게 질문을 해. 그럼 나는 ‘어릴 때부터 모든 걸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계속 짓눌리면서 골프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것 같다’고 답을 해주지. 그럼 결국 선수 자신도 소멸하고 마는 거야.”

최나연이 계속해서 갈피를 잡지 못하자 웹은 진심 어린 조언을 했다. 

“아직 네 나이는 어려. 서른 살이면 이제 다시 뭔가를 시작해도 될 충분한 나이라고. 자꾸 그만두고 싶다거나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차라리 잠깐 머리를 식히고 오는 게 어때?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골프와 투어는 언제나 여기에 남아 있으니 절대 서둘러 돌아올 필요는 없어. 네가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돼.”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베스 대니얼(Beth Daniel)과 멕 맬론(Meg Mallon) 역시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최나연은 그들을 ‘미국 엄마’라고 부르며 따른다. 미국 선수도 아닌 까마득한 후배를 위해 두 사람은 연습 라운드 9홀을 함께 돌며 레슨도 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몸이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마음이 준비가 되겠어. 몸을 먼저 추스르고 돌아와야 네가 마음껏 스윙할 수 있고 트라우마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최나연이 협회에 병가를 신청하는 날 그들은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대니얼과 맬런이 먼저 “안녕? 어떻게 지내?”라고 물었고 최나연은 습관처럼 “괜찮아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바로 “거짓말하지 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들은 최나연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미국 엄마들은 “왜 괜찮지도 않으면서 괜찮다고 답을 하느냐”고 했고 이어 “지금 네가 얼마나 힘든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수였던 우리는 다 알고 있어. 그러니 우리에게는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놔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대니얼과 맬런은 계속해서 따뜻한 위로와 함께 힘이 되는 말을 해줬다. 

“지금은 허리 부상과 입스가 같이 온 것이니까 어찌 됐든 부상을 먼저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게 근본적인 원인이니까 먼저 고치고 그다음에 입스 해결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 일단 한국은 바로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너를 더 궁지로 몰아넣을 환경이 만들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들의 진심 어린 조언은 최나연에게 큰 힘이 됐다. 그동안 코치나 어머니가 그만하라고 설득해도 “싫어요. 난 할 수 있어요. 내 허리는 괜찮아요. 참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고집을 피우던 그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히 강력했다. 

최나연은 통화를 마치자마자 바로 유럽행 항공권을 예매했고 3일 뒤 혼자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통해 얻은 것

최나연은 2018년 4월, LPGA 사무국에 병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홀로 유럽 여행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골프 클럽을 4개월 정도 잡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이후 그렇게 오랫동안 골프 클럽을 놓고 지낸 건 처음이었다. 불안감도 컸지만 그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유럽을 골프 클럽 없이 돌아다닌다는 것은 그에게는 아주 낯선 경험이었다. 혼자 민박집에 묵기도 했다.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과 민박집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처음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최나연에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최나연의 말이다. 

“고민을 안고 여행을 떠난 사람이 많았어요. 누가 돈을 많이 벌었는지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올랐는지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요. 모두 나름의 고민과 고충을 안고 사는 건 똑같았으니까요.”

최나연은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골프가 없으면 불안하고 인생이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생각했다. 막상 그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유럽 여행을 한 후 성숙해져서 돌아온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 해보고 싶던 것을 원 없이 해봤다. 

“4개월 동안 쉬면서 일반 사람들이 내 나이에 해볼 수 있는 것을 다 해본 것 같아요. 늦게까지 아무 계획 없이 자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친구에게 연락해서 만나기도 했어요. 또 ‘밤과 음악 사이(1990~2000년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주점)’라는 곳에 가봤는데 재미있고 옛날 생각도 났어요.”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만끽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행복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골프 없이도 살 수 있더군요. 그동안 제가 골프에 집착하면서 스스로 목을 옥죄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죠.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고 주위에 아픈 사람도 없고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도 그것이 행복이라는 걸 몰랐어요. 골프가 안 된다는 이유로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죠. 딱 한 걸음만 물러서서 바라보면 행복하다는 걸 알았을 텐데 그걸 몰랐어요.”

2년 전부터 최나연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내려놔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대회 예선에 떨어지기 위해 플레이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당연히 팬들도 잘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골프장을 찾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에 연습도 많이 하고 좋은 코치를 찾아다니며 레슨도 받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프로가 됐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일찍 한 편이죠. 어린 나이에 돈을 벌고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는 항상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슬럼프라는 건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어요. 완벽주의자로 살아왔고 그 길에서 약간만 벗어나면 슬럼프라는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죠.”

완벽주의를 깨부수다

최나연은 한 달 전쯤 미국 골프장에서 연습 라운드를 돌고 있었다. 드라이버 샷이 마음에 들지 않자 그는 홀당 티 샷을 아홉 개씩 했다. 뒤따라오는 사람도 없었고 만족할 만한 샷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드라이버 샷을 모두 페어웨이로 보내기 위해 집중했다. 라운드를 마치고 나오는 최나연에게 나이 지긋한 골프장 직원 한 명이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넌 연습 라운드를 할 때도 항상 완벽하게 플레이하려고 해. 네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할 때 4라운드 내내 모든 샷이 네 마음에 들게 완벽했어?”

그 말을 들은 최나연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직원은 “열네 번 모두 페어웨이에 볼을 올릴 수 있어? 가장 못할 때 몇 개나 페어웨이에 볼을 올렸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최나연은 “나인 홀에 두세 개 정도 올릴 때도 있어요”라고 답했다. 이를 유심히 듣고 있던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넌 페어웨이가 아니라 러프에서도 볼을 잘 치잖아. 심지어 나무 뒤에서도 볼을 쳐서 그린에 올리잖아. 기준을 낮추길 바라. 그럼 어느 날 네 볼이 다섯 번 페어웨이에 들어가면 만족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걸 기억해. 9홀 라운드를 하며 다섯 번 드라이버 샷을 미스하는 것과 쉰 번을 시도해서 마흔여덟 번을 미스할 때의 기분은 다르다는 걸.”

맞는 말이었다. 스스로 실패의 기억만 늘려가고 있었다.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굳이 헤집고 있었다. 그는 그날 이후 더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최나연의 말이다. 

“목표를 정할 때 양 자체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면 제 기대치가 낮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죠. 얼마 전에 겨울 골프를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눈이 내리는 추운 날이었어요. 당연히 잘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기대치를 내리니까 골프 자체가 편해졌어요.”

사람은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하려는 좋지 않은 습성이 있다.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 비교 대상이 과거 완벽한 시절의 자신이라면 지금의 내가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질까. 또 그 기대를 낮춘다는 게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최나연은 그 과정을 극복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제 얼굴이 편해 보인다고요? 사실 그런 이야기를 몇 번 들었어요. 완벽한 샷을 하던 과거의 저와 비교하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기로 했거든요.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가능해요.”

오랫동안 하고 싶은 골프

최나연은 한국에 와서 LPGA 메이저 챔프 박지은과 김주연을 만났다. 박지은 역시 허리 때문에 병가를 내고 재기를 꿈꾸다 결국 은퇴를 택한 케이스다.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 해줄 말도 많았을 것이다. 한희원도 최나연을 만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의 공통된 조언은 “이렇게 은퇴하지는 말라”는 것이었다. 최나연의 말이다. 

“한때 잘하던 선수가 힘들어하니까 언니들 눈에는 안쓰러웠겠죠. 정말 힘이 되고 고마웠습니다.”

최나연은 그동안 후배 선수들이 잘 따르는 걸로 유명했다. 힘든 일이 생기면 항상 먼저 그에게 연락을 하곤 했다. 조언뿐만 아니라 쓴소리를 하는 데도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그는 그동안 상대의 입장을 100% 공감하지 못한 채 교과서 같은 답만 제시해줬다는 걸 깨달았다. 

“LPGA투어에서 활동하던 (김)송희가 ‘샷을 할 수 없다’고 토로하면 저는 ‘타깃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꼭 거기로 보낸다고 생각하고 쳐봐. 그럼 공이 그쪽으로 갈 거야’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곤 했어요. 도와주고 싶어서 한 말이었지만 그건 송희에게는 답이 아니었어요. 절대.”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금세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아 더는 이와 관련한 질문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차분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입스는 정말 이상한 거예요. 그것이 완전히 ‘나’라는 사람을 지배하는 거예요. 스윙할 때 잠깐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치고 빠져나간 느낌이 들거든요. 자신이 마음먹는다고 볼을 일정하게 보낼 수 없어요. 그런 마음이 먹어지지도 않아요. 송희가 저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어떤 심경이었을지 생각해보면 정말 마음이 아파요. 오히려 ‘괜찮아’라는 한마디를 듣고 싶지 않았을까요?”

최나연은 최근 국내외 선배들에게 조언을 들으며 과거 자신이 후배들에게 해주던 조언을 곱씹고 또 곱씹어봤다. 그리고 의도는 그렇지 않았지만 정말 어리석었다는 걸 알게 됐다. 

“정말 큰 경험이었어요. 지금도 100%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겠죠. 확실한 건 누군가를 달래고 위로하는 제대로 된 방법을 배웠다는 거예요. 제 어깨를 내주는 방법을 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그 대상이 저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이번 유럽 여행은 저를 위로하기 위해 떠난 것이었어요. 아주 성공적인 여행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 계획을 살짝 들려줬다. 

“시드가 있는 한 투어 생활을 계속하고 싶어요. 열정이나 목표가 20대와 같을 수는 없겠죠. 솔직히 골프를 하지 않으면서 그동안 치열하게 서로 경쟁하던 투어가 무척 그리웠어요. 오랫동안 그 안에서 생활하면 좋겠어요.” 
 

[고형승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tom@golfdige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