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튀는 전쟁: 후원사 VS. 소속사

2020-02-28     고형승 기자

여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골프업계의 스토브리그도 점점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이 시기의 에이전트는 협상 테이블에서 큰 변수가 발생하지 않고 선수가 만족할 만한 합당한 가격으로 계약이 잘 이뤄지길 바란다. 후원사 담당자는 회사 정책에 따라 그에 걸맞은 금액을 제시하고 선수와 계약을 이어갈지 포기할지 결정한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과 신경전은 골프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골수 골프 팬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스토브리그(Stove League)는 주로 프로야구에서 사용하던 용어다. 정식 명칭은 핫스토브리그(Hot Stove League)지만 줄여서 스토브리그라 한다. 시즌이 마무리된 후 팬들이 난로(Stove)에 둘러앉아 1년을 회고하고 선수와 구단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데서 비롯했다. 골프의 19번홀과 비슷한 의미였다. 스토브리그 기간은 스프링캠프(야구의 경우)를 시작하기 전까지라고 보면 된다.스토브리그를 달구던 대화 주제는 단연 선수의 몸값과 어느 팀으로 어떤 선수가 이적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그대로 가져와 선수와 구단 간 계약을 진행하는 동계 시즌을 스토브리그라 지칭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스토브리그=계약 협상 기간’이라고 이해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국내에서는 이 용어가 모든 스포츠에 쓰이고 있다. 심지어 그 범위가 개인 스포츠인 골프로까지 확대됐다. 

용어의 유래가 어찌 됐든 이제는 인기 드라마 제목으로 사용할 정도로 스토브리그에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골프계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수년 전부터 여자 프로 골프 선수를 둘러싼 계약 전쟁은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치열하고 무서울 정도다.

후원사 입장: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에이전트의 전문성 아쉬워”

국내 골프 스토브리그는 이르면 11월 초부터 시작된다. 후원사 대부분은 9~10월께(기업 규모에 따라 11월 말) 이듬해 예산을 확정한다. 기업의 골프 담당 실무자는 예산 규모와 회사 정책을 바탕으로 전략을 구체화한다. 가장 먼저 실무자가 만드는 것은 후원 선수의 평가서다. 이 평가서에는 계약 기간 골프 성적(퍼포먼스)과 계약 이행 여부(이벤트 참여도), 홍보 효과(홍보대사 역할), 이미지 제고(기업 이미지 실추 여부), 실무자 의견(선수나 부모의 태도 포함) 등이 담긴다. 

10년 이상 골프 선수를 후원해온 기업의 담당자는 “평가서를 기반으로 재계약 여부를 결정합니다. 물론 오너(회장)의 판단이 결정적이지만 예전처럼 실무자의 평가를 완전히 배제하고 밀어붙이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지 경험을 통해 터득한 부분도 있으니까요. 이른바 톱다운(위에서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방식이 통하는 경우가 있고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실무자가 선수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으니 선수 평가서를 최대한 반영하려는 회사의 움직임은 상당히 고무적이죠”라고 말했다. 

대부분 선수와 후원사 간 계약이 12월 31일까지이므로 그로부터 30~45일 이전(11월 중순이나 하순)까지 우선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재계약 여부를 적어도 한 달 전에는 선수 측에 통보해야 한다. 선수가 다른 후원사를 찾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선 협상 기간이 선수가 성적에 가장 민감한 시기(상금 랭킹이 결정되는 시기)이므로 계약에 관한 협의를 12월 초로 미루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선수는 12월 중순이 넘어가면 점점 불리해진다. 이 기간에는 빨리 움직여야 하며 계약을 가능한 한 서두르지 않으면 자칫하다가 무적 선수로 시즌을 맞이할 수도 있다. 

모 후원사 직원은 “이미 11월에 선수 평가는 마무리됩니다. 선수가 재계약을 위한 금액을 어느 정도 요구하리라는 것도 대충 눈치로 알 수 있죠. 회사 입장에서 계약을 연장할 의사가 없으면 최대한 빨리, 아주 정중하게 그런 의사를 선수 측에 전달합니다. 에이전트를 통해 계약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한솥밥 먹던 선수와 직접 이야기하려고 노력합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선수 부모로부터 폭언을 듣기도 했어요. 그때는 정말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죠. 어린 친구(선수)를 위해 우리도 그만큼 투자하고 노력했는데 그 부분은 인정하지 않고 계약금을 더 달라거나 계약을 연장해달라고 난동을 부릴 때는 정말 난감합니다. 물론 요즘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그래도 계약 시즌만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한 건 몇 년을 겪어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대기업 골프 업무 담당자 역시 스토브리그에 관해 열변을 토했다. 그의 말이다. 

“이 기간에는 아주 냉정해지려고 노력합니다. 신인 시절 계약서를 처음 쓸 때까지만 해도 ‘딸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줘 고맙다’며 상냥하게 손을 내밀던 선수 아버지가 어느새 스타가 된 딸을 등에 업고 도끼눈을 뜬 채 큰소리를 칠 때는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지 않아요? 우리가 아쉬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선수가 아쉬우면 아쉽죠. 저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일개 직원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는 선수를 후원하는 게 회사 이미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보고서 정도는 만들어서 올릴 수 있습니다. 뭔가 선수들(특히 부모가)이 크게 착각을 하는 것 같아요. 매니지먼트 회사 직원(소속사)의 역할과 우리(후원사)의 역할을 가끔 혼동하는 것 같거든요.”

수년째 이 분야에서 골프 선수를 후원해온 모 기업의 임원은 “무엇보다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는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또 계약 시기에 발생한 이슈도 무시할 수 없죠. 예를 들어 회사가 아시아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정책을 세우면 기존 선수 중 일부와 계약을 해지하고 대신 해외 선수를 후원 가능 리스트에 올려야 합니다. 경쟁사의 움직임도 예의 주시해야 하죠. 경쟁사가 영입하려는 선수와 이미지가 겹친다거나 거물급 선수를 후원한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그에 맞는 대응 전략도 수립해야 합니다. 후원 선수는 회사의 광고 모델과 같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또 언제든 회사 정책에 따라 교체할 수 있는 거죠. 냉정하게 들리더라도 그건 엄연한 사실입니다”라고 말했다. 

12월 말까지 후원 계약을 맺지 못하면 결국 손해는 선수가 고스란히 떠안는다. 기업 대부분이 이미 굵직한 선수를 영입하거나 예산에 맞춰 선수단 구성을 끝마친 시기이기 때문. 뒤늦게 예산을 책정하거나 새로 골프 시장에 뛰어든 기업은 2~3월까지 계약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선수는 동계 훈련에 집중해야 하고 후원 기업은 스타성이 떨어지는 몇몇 선수를 놓고 그나마 누가 더 나을지 고심하는 단계다. 이때 선수와 후원사가 조건을 두고 직접 맞부딪치는 일은 드물다. 중개 역할은 에이전트의 몫이다. 

골프 선수단을 운영하는 업체 직원의 말이다. 

“계약 기간 막바지로 갈수록 초조해지는 건 선수 측(에이전트와 부모)입니다. 몸값을 낮추든지 인센티브에 관한 조항이나 계약 기간을 조정하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도장을 찍으려고 하죠. 이때 칼자루는 후원사 쪽에서 잡게 됩니다. 그동안 당한 모든 일을 앙갚음하는 시기이기도 하죠(웃음). 그건 농담이고요. 솔직히 끝까지 뻣뻣하게 나오는 선수와는 계약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스토브리그 기간 내내 주목받지 못한 (인성이 좋은) 선수와 계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죠. 하지만 왜 늘 성적과 인성은 반비례하는 걸까요? 20년 넘게 이 일을 해오지만 그게 항상 의문입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대회도 주최하는 기업의 한 담당자는 계약 기간 에이전트의 안일한 태도를 맹렬히 비난했다. 

“국내에서 제대로 된 스포츠 에이전트가 몇 명이나 될까요? 이름도 생소한 수십 개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일하는 이른바 스포츠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전문가는 대부분 매니저의 역할만 할 뿐이지 에이전트로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이는 드물어요. 매니저와 에이전트는 엄연히 구분해야 합니다. 외국에서 에이전트는 계약에 주로 관여합니다. 그래서 변호사가 많죠. 한마디로 법률 대리인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매니저는 계약서에 명기된 계약 의무를 잘 이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국내 매니지먼트 회사에서는 대부분 선수의 몸값을 마음대로 책정해 여러 기업으로 자료를 보냅니다. 해당 선수에 관심 있는 회사가 접근하면 갑자기 금액을 조정하기도 하죠. 그들은 계약만 성사시키고 마치 할 일을 다 끝냈다는 듯 방관자로 돌아설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선수가 매니지먼트 회사로부터 제대로 케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겠어요? 소속사라고 하지만 신뢰도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관계인 거죠.”

후원사는 선수의 모자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업체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서브 스폰서라 불리는 여러 후원사가 존재한다. 모 선수는 메인 후원사를 비롯해 자동차, 선글라스, 벨트, 의류, 클럽, 볼, 신발 등 여덟 개 후원사를 거느린 선수도 있다. 여기에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로고까지 붙이기도 한다. 옷에 후원사 로고가 들어갈 자리가 더는 없을 정도다. 현금으로 후원하는 업체도 있지만 물건으로 협찬하는 후원사도 많다.  

스토브리그에 에이전트는 이들 후원사 간 이해관계가 상충하지 않도록 조율하고 협의해야 한다. 때에 따라 선수가 난감해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로고가 어디에 들어가고 빠져야 하는지는 후원사 담당자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다. 이런 문제로 후원사 사이에 마찰이 생겨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다. 에이전트는 단지 계약만 연결해주고 끝나는 게 아니다. 분쟁이 생길 때 조정하는 역할도 에이전트의 몫이다. 

골프 의류를 선수에게 후원하는 업체 담당자는 “요즘 매니지먼트 회사 직원이 갑질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광고를 촬영할 때 이 회사 로고는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데 왜 그렇게 안 되어 있느냐 또 저 회사 로고는 자수로 박음질해야 하는데 왜 그렇게 해주지 않느냐는 등 고압적으로 추궁할 때가 있어요. 옷의 재질에 따라 자수 처리가 안 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런데 담당자는 그런 걸 모르고 무작정 떼를 쓰는 거죠. 우리는 단지 의류를 후원하는 것뿐인데 왜 다른 회사 로고까지 신경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최근까지 선수 후원 업무를 해오던 기업의 모 임원은 국내 계약 시장의 변화된 분위기를 잘 감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성현이 해외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고진영 역시 국내 후원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2월 18일 현재)을 언급했다. 

선수의 성적이 좋아 미디어에 많이 노출될수록 홍보 효과는 커지고 그것은 매출로 연결된다. 이건 대학에서 배우는 스포츠 마케팅 책에만 쓰여 있는 내용이 됐다. 요즘 국내 후원사 임직원은 선수를 후원하는 것이 큰 효과가 없다는 결과 보고서를 책상 서랍 깊숙이 간직한 채 위(최종 결정권자)에 보고할 타이밍만 엿보고 있다. 실제로 많은 수의 후원사 직원은 골프 선수를 후원하는 것에 매우 회의적이다. 

기업이 선수를 후원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국내 골프 발전에 기여, 브랜드 이미지 업그레이드, 오너의 의지다. 후원 이유 세 가지의 주요 비율을 살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앞에서 언급한 순서의 반대라고 보면 된다. 오너의 의지가 약 80%, 브랜드 이미지 제고가 약 15%, 국내 골프 발전에 기여가 5% 미만이다. 선수 후원이 매출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물론 규모가 작은 회사라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매출과 연결되는 예도 있겠지만 그건 결코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다. 

예전처럼 후원사가 슈퍼스타 한두 명의 계약을 놓고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그 선수를 놓친다고 해서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 것도 아니고 굳이 거액을 들여 잡는다고 그만큼 매출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오너 역시 선수와 계약을 원하지 않으면 대상이 국내 넘버원이든 세계 넘버원이든 우주 넘버원이든 큰 의미가 없다. 모 임원의 말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임직원 정도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선수 후원이 회사 이미지 제고에 효과적이지도 않고 그리 유쾌한 업무가 아니라는 걸 말이죠. 오너의 관심사라 허투루 할 수 없어 직원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뿐입니다. 그런데 선수가 어마어마한 몸값만 요구한다면 오너 입장에서도 무리하게 계약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임원이나 주주의 반발을 무릅쓰기엔 리스크가 크죠. 결국 이런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고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에이전트가 필요합니다. 국내 매니지먼트 업계는 체질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더 힘든 환경과 마주할 것입니다.”

소속사 입장 “색깔이 명확하지 않은 후원사는 상대하기 어려워”

국내 골프업계에서 의미를 혼동해 섞어서 쓰고 있는 것이 바로 ‘소속사’다. 골프는 개인 스포츠이고 프로야구나 프로축구처럼 구단(언론이나 후원사에서 골프 구단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보다 골프단이라는 표현이 옳다)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선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소속사와 계약금을 주고 선수를 후원하는 후원사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아는 SM, YG, JYP 등의 연예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먼저 가수(아이돌) 지망생과 계약을 맺는다. 연습생이라는 신분으로 수년간 트레이닝(보컬, 댄스, 체력 등)을 지원하며 데뷔를 돕는다. 데뷔 이후에는 공연이나 광고 등을 통해 생긴 수익을 일정 부분 가수와 나눈다. 계약 기간(아이돌의 경우 7년이 기본이다)이 끝나면 재계약하거나 가수가 다른 기획사를 찾아 떠난다.  

이 경우 가수는 연예 기획사의 소속 가수라 칭한다. 결국 연예 기획사가 소속사라는 뜻이다. 이렇게 따져볼 때 골프 선수도 마찬가지다. 매니지먼트를 하는 곳이 바로 선수의 소속사가 된다. 국내에 골프 선수의 소속사는 30개 업체가 훌쩍 넘는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대형 연예 기획사가 분야를 확장해 스포츠 매니지먼트까지 손을 대는 경우도 있고 드라마 제작사를 모기업으로 하는 업체, 대기업이 대주주로 있는 업체, 선수의 가족이 운영하는 업체 등 그 규모와 형태가 다양하다. 

본격적인 스토브리그에 돌입하기 전 국내 스포츠 마케팅 회사 직원들은 여기저기 귀동냥으로 수집한 내부 보고용 자료를 만든다. 그 안에는 선수와 후원사의 최신 동향이 담겨 있다. 그리고 여러 매니지먼트 회사의 민감한 내용까지 쓰여 있다. 이 정보를 수집하는 기간에 소속사 담당자는 일주일에 닷새는 술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이건 너만 알아야 해’ 또는 ‘오프더레코드인데’라고 말하며 흘리는 정보를 꼼꼼히 기억하고 메모한다. 

이들의 자료 수집 능력은 국가정보원급이다. 그런 사람 앞에서 약간의 말실수라도 하면 그건 다음 날 타 회사의 윗선까지 보고가 되고 만다. 만약 그 회사가 라이벌 회사라면 아주 치명적이다.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국내 골프업계에 종사하는 대기업이나 협회, 언론사 관계자들이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매니지먼트 회사가 하는 일 없이 선수 뒤치다꺼리나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날카로운 칼끝이 자신의 목덜미 아주 가까이에서 번쩍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소름이 돋을 것이다. 

국내 굴지의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초창기부터 일해온 모 에이전트의 말이다. 

“우리나라 스포츠는 발전하는데 매니지먼트의 행태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합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스포츠는 (어떤 종목이든) 100년 전에도 그 포맷 그대로 경기를 치렀다는 겁니다. 경기장의 규모나 형태 개선, 약간의 룰 변경, 의상의 변화 정도가 일어났을까요? 실제로 그 스포츠를 둘러싼 사람이 바뀌고 의식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면서 스포츠가 대단한 발전이라도 한 것처럼 여기곤 하죠. 하지만 스포츠가 10에서 30으로 발전하는 동안 스포츠 매니지먼트 분야는 10에서 1000으로 발전했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는 이들의 생각은 다른 이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달라지고 있어요. 다만 내색하지 않을 뿐이죠.”

모 매니지먼트의 직원은 소속 선수가 현재 어떤 남자와 연애하고 있는지 부모와 어떤 갈등이 있는지 코치에게 어떤 불만이 있는지 멘탈 트레이닝을 통해 어떤 점이 개선되었는지 등 모든 것을 파악하고 분석해서 보고한다. 심지어 그 선수를 후원하는 후원사의 골프 담당 실무자가 주말에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SNS에서 주로 수집한다)까지 보고 자료를 만들어 월요일 아침마다 임원 책상에 올려놓는다. 

어떤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골프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뭔가 섬뜩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쪽 분야에서 계속 일하길 원한다면 이 정도는 슬쩍 무시하고 넘어가야 한다. 내색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매니지먼트 업체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모 에이전트의 말이다. 

“우리는 현재 어떤 아마추어 선수가 어떤 (지방) 협회를 통해 어떤 기업과 이면 계약을 한 채 장학금까지 꼬박꼬박 받고 있다는 것까지 다 알고 있어요. 부모를 통해 이미 확인한 사항이고요. 하지만 그건 일단 히든카드로 남겨놓는 겁니다.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으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 히든카드는 스토브리그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이 정보를 건넨 이의 의도는 또 하나 있다. 국내 아마추어(주니어) 골프 시장에 만연한 음성적이고 불법적인 부분을 언론이 제대로 들쑤셔줬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 있다. 말이 나온 김에 그중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이 글을 읽고 뜨끔하다면 더는 편법을 쓰지 않길 바란다. 특히 협회 발전 기금이나 장학금을 빌미로 협회 이사직을 제안한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다음에는 에디터가 직접 들쑤셔줄 테니 그때는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본격적으로 스토브리그가 시작되면 에이전트는 무척 분주하다. 그동안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매칭 작업에 들어간다. 모 에이전트의 말이다. 

“선수 등급이 나뉜다는 건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입니다. 매니지먼트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SA, A, B, C 등급으로 나뉩니다. 세계 랭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면 그 선수는 SA급입니다. 국내 상금 랭킹 10위권이나 국가 대표 에이스 정도면 A라고 볼 수 있죠. 등급은 금액의 차이기도 합니다. SA는 10억원 이상의 계약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A는 1억~5억원 정도, B는 1억원 미만, 마지막으로 C는 2000만~3000만원 사이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업체마다 기준이 다 달라요.”

에이전트의 능력은 여기서 갈리기 시작한다. 후원사는 회사의 정책상 A급 선수를 더 뽑을 의사가 없는데도 A급 선수 프로필을 들이밀고 답변만 기다리고 있어봐야 연말에 선수 아버지에게 핀잔만 들을 뿐이다. 

다양한 등급의 소속 선수를 보유한 모 매니지먼트 회사 직원은 “후원사가 어떤 선수를 필요로 하는지 정확한 니즈를 파악해야 합니다. 예산은 어느 정도 확보했는지, 기존 후원 선수 중 계약이 끝나는 선수가 몇 명 정도인지, 어느 정도 등급의 선수를 원하는지 등을 파악하고 분석해서 거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를 제시해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어이없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했다. 어떤 매니지먼트 회사의 담당자가 모 기업에 제안서를 넣어놓고 걱정하지 말라며 부모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제안서를 넣은 기업에서는 정작 그 선수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기업 방침상 올해는 선수단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매니지먼트사의 그 담당자는 계속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결국 계약 시기를 놓쳐 선수는 지금까지도 후원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말이다. 

“에이전트는 기업의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실수가 나오지 않죠. 예를 들어 얼굴이 예쁘고 스타성이 뛰어난 선수를 전통적으로 후원해온 회사에 스타성이 떨어지는 선수를 단지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추천한다면 그건 실패 확률 100%입니다. 동화 <여우와 두루미> 아시죠? 여우한테 주둥이가 긴 그릇에 음식을 담아줘봐야 관심조차 두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대신 빨대라도 있으면 꽂아보려는 노력은 하겠죠. 하지만 그것도 정말 성사시키기 어려울 겁니다.”

반대로 후원사의 불분명한 태도를 지적한 에이전트도 있었다. 그는 “선수가 원하는 기업이 있어서 제안서를 들고 들어갔어요. 담당자 역시 우리 소속 선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어요. 몇 번 더 만나서 식사도 함께 하고 술도 한잔씩 하면서 거의 될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더군요. 그래서 답변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차일피일 일정을 미루다 나중에는 제 전화까지 피하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에 회사로 찾아갔더니 ‘그동안 출장을 다녀왔다’, ‘몸이 아파서 입원했다’, ‘갑자기 회사 정책이 바뀐 것 같다’는 핑계 끝에 결국 계약은 무산됐어요”라고 말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또 다른 에이전트도 후원사의 색깔이 명확하지 않으면 상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골프는 기업에서 아무한테나 일을 맡길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일단 골프를 알아야 하고 골프를 좋아해야 합니다. 그런 건 차치하더라도 일 처리 능력이나 센스는 반드시 있어야죠. 골프는 대부분 오너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니까요. 하지만 그 자리에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을 앉혀놓으면 열에 아홉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단 명확한 기준도 없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선수 계약을 진행하는 게 문제입니다. 회사의 이미지와 전혀 맞지 않는 선수와 계약하게 되는 것이죠. 나중에 계약서를 들여다보며 남은 계약 기간을 손으로 꼽아봐도 머리만 아플 뿐입니다.”

우리나라 에이전트의 유형을 크게 다섯 가지로 분석한 이가 있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첫 번째로 선수가 아주 어릴 때부터 장학금을 주고 미리 구애해서 프로 데뷔 후까지 끌고 가는 유형이 있다고 했다. 아마추어 선수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하지 못하므로 후원회를 만들어 후원금을 전달하거나 장학금 명목으로 계약금을 대신하는 것이다. 일종의 편법이긴 하지만 의리 있는 선수 부모는 어려울 때 도와준 매니지먼트사와 끝까지 가려고 한다. 요즘 들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선수 영입 방법이다. 

두 번째는 숨은 인재를 발굴해 육성하는 타입이다. 이 유형은 매니지먼트 회사 간의 영입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주목받는 국가 대표나 상비군 출신이 아닌 아주 평범하지만 하드웨어가 좋다거나 스토리가 있는 선수를 찾아 함께 성장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갖는다. 모범적인 유형의 매니지먼트 스타일이지만 사업적으로 리스크가 많고 가장 힘든 유형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반대로 경쟁을 해서 상대 선수를 뺏어오는 유형이다. 더 많은 계약금을 받아줄 테니 자신의 회사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자는 식이다. 이 타입의 회사는 자신의 소속 선수라는 생각보다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에 결국 비슷한 방식으로 선수를 빼앗긴다. 

네 번째는 낙엽 줍기 유형이다. 스토브리그가 얼추 종료되는 3월 중순부터 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선수들만 모아 계약을 한다. 그때는 선수의 기대가 아주 밑바닥이기 때문에 계약금이 그리 높게 형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후원사도 대기업이 아닌 중견 기업이 관심을 보이는 시기다. 이때는 저렴한 비용으로 선수를 후원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큰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스타 선수를 앞세운 매니지먼트의 유형이다. 여러 선수는 필요 없고 이름만 대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알고 있는 선수와 한 식구가 되는 것이다. 오로지 그 선수만을 위한 팀을 꾸릴 정도의 몸값을 보유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매니지먼트 회사 대부분이 선수에게 받는 수수료가 10~15% 정도다. 연간 30억원의 계약금을 받는 선수라면 3억원을 매니지먼트사는 챙길 수 있고 그 외에 서브 스폰서 계약금과 광고 수익, 인센티브까지 약 8억~10억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어떤 유형의 매니지먼트 회사든 선수와 후원사 사이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면 몇 년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국내 골프업계의 생리다. 후원사와 줄다리기를 하며 힘겨루기만 해서는 안 되고 선수와도 친분만 내세워서는 안 된다. 

내줄 것과 내주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구별하고 지켜야 할 선을 잘 유지하며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매니지먼트사는 결코 자신을 둘러싼 담을 높이려 하지 않는다. 몸집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매니지먼트의 진입 장벽은 비교적 낮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쟁은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살아남는 자에게만 승전가를 부를 자격이 주어진다.  

[고형승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tom@golfdigest.co.kr]

일러스트_김중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