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는 1년 동안 클라레 저그에 무엇을 따라 마셨을까
골프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 트로피에 캐머런 스미스가 따라 마시지 않은 음료는 대체 뭘까? 글_ 에빈 프리스트(Evin Priest) / 일러스트_린던 헤이스(Lyndon Hayes)
콘크리트 벽과 완벽하게 손질된 버뮤다그래스가 눈을 사로잡는 폰테베드라비치 인근의 집에서 그가 집무실로 사용하는 방에 들어가면 플로리다의 해안 도로를 내다보는 묵직한 참나무 책상 위에 클라레 저그가 놓여 있다. 순은으로 제작된 이 트로피의 주둥이 부분은 백조의 부리 모양이며, 손잡이는 낮은음자리표를 닮았다. 그것은 각종 대회의 트로피들과 클럽이 빼곡한 타이틀리스트 스태프 백, 그리고 잡지 표지를 넣은 액자들로 장식된 멋진 이 집무실에서도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 방으로 들어서는 올해 스물아홉 살의 캐머런 스미스에게서는 디오픈 챔피언의 면모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호주 맥주인 포엑스(XXXX) 골드의 로고가 박힌 흰색 티셔츠에 브리즈번 브롱코스 럭비팀의 모자를 쓴 스미스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클라레 저그를 들어 올렸지만, 속으로는 환하게 웃고 있다는 게 눈빛에 역력했다.
클라레 저그의 높이는 512mm이고 무게는 2450g이다. ‘벨트’를 수여하던 관례가 영 톰 모리스에서 끝난 후 처음으로 클라레 저그를 받은 사람은 1873년 오픈 우승자인 톰 키드였다. 1928년에 복제본을 만들고 원본 트로피는 박물관에 보존했다. 그 후로 세베 바예스테로스와 잭 니클라우스, 톰 왓슨, 타이거 우즈를 비롯한 여러 선수들이 그걸 들어 올리면서 클라레 저그는 스포츠계에서 가장 유명한 트로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캐머런 스미스는 새로운 저그가 만들어진 이후 95년 동안 그것을 차지한 59명의 챔피언 가운데 한 명이다. 다른 모든 디오픈 챔피언처럼 스미스도 저그를 1년 동안 간직하다가 151번째 디오픈이 로열리버풀에서 열리면 대회를 주최하는 R&A에 그걸 반납할 예정이다. 그 대신 복제본을 받게 되며, 디오픈 챔피언은 복제본을 3개까지 더 구입할 수 있다.
스미스는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린 제150회 디오픈의 최종 라운드를 로리 매킬로이와 빅토르 호블란에게 4타 뒤진 채 시작했다. 2014년 디오픈을 포함해 4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보유한 매킬로이는 마권업체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았을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가장 큰 응원을 받았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흐릿하다.” 스미스는 저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해마다 저그에 이름을 새기는 개리 하비(Garry Harvey)는 어쩐지 스미스의 이름을 새겨 넣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캐머런 스미스에 대해서는 헤어스타일이 골퍼치고는 조금 우스꽝스럽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DP월드투어에서 활동했으며, 로열리덤에서 열렸던 1979년 디오픈에 참가한 바 있는 하비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스미스가 내내 미소를 지으면서 플레이를 즐기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로리는 그 상황에 대해 약간 걱정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스미스가 마지막 날 적어낸 8언더파는 우승자가 작성한 네 번째 라운드 최저타 타이 기록이며, 총 20언더파 268타의 최종 합계 역시 타이거 우즈가 2000년에 세운 기록을 1타 차로 밀어내며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린 서른 번의 디오픈 사상 최저타 스코어로 등극했다.
“최근에야 TV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청했다.” 스미스는 말했다. “회색빛 하늘을 보고 갈매기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소름이 돋았다.”
스미스와 저그의 여정은 일요일 밤부터 시작되었다. 스미스가 악명 높은 그린 옆 벙커를 돌아가는 과감한 퍼트로 파 세이브에 성공한 로드 홀 바로 오른쪽의 올드 코스 호텔에서 열린 축하 파티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그다음 날 아침 숙취에 시달릴 만큼 술을 마셨다.
호주의 술집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야구 모자를 거꾸로 쓰고 골드 메달(디오픈 챔피언에게 수여하는 또 하나의 트로피)을 핀으로 셔츠에 고정한 스미스는 저그에 과연 맥주를 몇 병이나 담을 수 있는지 알아내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알고 보니 이탈리아 라거 맥주인 비라 모레티를 두 병 담을 수 있었다.
같은 호주 출신인 애덤 스콧 같은 투어 프로들도 참석했지만 캐디들의 수가 더 많았다. 다들 스미스 그리고 저그와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스미스는 새벽 1시를 조금 넘겼을 때 파티장을 떠났다.
“내 렌트카는 다음 날 아침까지도 올드 코스의 캐디용 주차장에 있었다.” 스미스의 오랜 캐디인 뉴질랜드 출신의 샘 핀폴드가 말했다. “나는 마을을 통과해 18번홀의 페어웨이를 곧장 가로질러 주차장으로 갔다. 거대한 노란색의 리더보드에는 그때까지도 ‘축하합니다, 캐머런 스미스!’라는 글자가 걸려 있었다. 그걸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처음에 스미스는 에든버러에서 시카고로 가는 비행기의 기내 선반에 저그의 운송 케이스를 넣을 수 없다가 한참 시도한 끝에야 제대로 된 각도를 찾아냈다. 시카고에서는 넷젯의 전세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미스는 에이전트인 버드 마틴, 핀폴드, PGA투어 프로인 빌리 호셜, 그리고 키스 미첼의 캐디인 존 리만티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잭슨빌로 향했다.
“2015년에는 잭 존슨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그때 다들 저그에 술을 담아 마셨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호셜은 말했다. 하지만 2년 전에 결국 포기했다. “2021년 콜린 모리카와가 우승했을 때 나는 그와 함께 호텔 바에 있었고, 내가 언제 우승하게 될지 모르는데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싶었다.” 호셜은 말했다. “그리고 1년 후에 캐머런이 우승했고, 또 한 번 그 트로피에 술을 담아 마셨다.”
스미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같은 호주 출신이며 PGA투어에서 6승을 기록 중인 마크 리슈먼은 아직까지도 저그에 술을 담아 마시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리슈먼은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렸던 2015년 디오픈의 마지막 라운드에서 공동 선두까지 올라갔다가 루이 우스트히즌을 포함한 플레이오프에서 존슨에게 무릎을 꿇었다.
“캐머런이 정말 자랑스럽다.” 리슈먼은 말했다. “하지만 저그를 거의 품에 안았다가 내 이름을 새기지 못한 2015년의 기억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저그는 너무나 많은 추억을 소환하는데, 대부분 긍정적이지만 어느 정도는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다. 나는 아직도 언젠가는 챔피언으로서 거기에 술을 담아 마시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리슈먼은 현재 맷 존스, 제드 모건과 함께 LIV의 호주 팀인 리퍼GC에서 스미스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디오픈 직후 스미스는 골프계의 몇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LIV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고 알렸다. R&A의 최고책임자인 마틴 슬럼버스도 그의 전화를 받았다.
“정말 좋은 대화였고, 전화를 끊었을 때 내 결정에 대해 찝찝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스미스는 말했다. “슬럼버스 씨는 진정한 신사이고, 내게 챔피언으로서 디오픈에 참가하는 걸 언제나 환영한다고 말해주었다.”
스미스는 세인트앤드루스에서 경합한 결전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상태에서 매킬로이와도 최고의 스타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새로 도입한 2000달러 규모의 ‘지정’ 대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캐머런에게 PGA투어가 시도하는 계획에 대해 떠도는 얘기들을 알려주고 싶었다.” 매킬로이는 말했다. “나는 그가 모든 정보를 고려하길 원했다.”
스미스가 PGA투어 소속으로 플레이한 마지막 라운드는 이스트레이크에서 열린 페덱스컵이었고, 그때 그의 옆에는 호셜이 있었다. “18번홀을 걸어 내려갈 때 나는 캐머런의 어깨를 감싸 안고 이렇게 말했다. ‘친구,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네가 어떻게 결정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나를 응원하고 지지할 거야.’” 호셜은 말했다.
팬들과 언론, 심지어 골프계를 주름잡았던 왕년의 스타들도 스미스의 LIV 골프 진출에 다양한 강도의 독설을 퍼부었다. “그게 무슨 투어냐?” 게리 플레이어는 컷 탈락이 없는 대회에 대해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심지어 프레디 커플스마저도 펀치를 몇 번이나 날렸는데, 첫 번째는 트위터에 쓴 이런 글이었다. “생일과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모든 친구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PGA투어에서 돈을 버느라 바빴습니다.” PGA투어의 랩어라운드 일정 때문에 “호주에 사는 가족과 친지의 결혼식과 생일에 참석할 수 없는 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한 스미스의 말을 비꼰 것이었다.
2023년 마스터스를 얼마 남겨놓지 않았을 때 커플스는 PGA투어챔피언스의 한 대회를 앞둔 어느 조찬 자리에서 다시 한번 이렇게 말했다. “그런 핑계가 우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 선수가 자녀 다섯 명에 손주 마흔 명을 뒀으며 그 어떤 행사에도 빠진 적이 없기 때문인데, 그 사람은 바로 잭 니클라우스였다.”
스미스는 맞대응하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현명한 충고를 해주었고, 팀이 만류했다.” 스미스는 말했다. “내 에이전트인 버드는 내가 그 상황을 잘 헤쳐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골프계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스미스는 또한 디오픈 챔피언으로서 논란거리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나는 디오픈 챔피언에게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때론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참아야 할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내게 그렇게 가르치셨다. 다만 몇몇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특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동료 프로들이 왜 그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호셜은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PGA투어를 떠난 선수들이 뒤돌아서서 악담을 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캐머런은 결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는 기품을 갖춘 사람이고, 정직한 사람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갈등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걸린 일이 너무 많았고, 생각할 것도 너무 많았다.” 스미스는 작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몇 달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끊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지만 저그와 함께한 1년 사이에 그런 불안감이 많이 해소되었다. 스미스는 거기에 어떤 음료들을 담아서 마셔봤느냐는 질문에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는 말했다. “아침에는 거기에 에스프레소를 담아 마시고, 밤에는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마셨다.”
카페인은 스미스의 집안 내력이다. 그의 삼촌인 트레버는 브리즈번 외곽의 브렌데일이라는 곳에서 퓨어샷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트레버 삼촌이 저그에 플랫화이트(에스프레소에 스팀 밀크를 올린 것)를 담아주었고, 스미스는 원두 가루를 담은 필터를 저그 위쪽에 걸고 끓는 물을 부어 푸어오버 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그때 나는 혼자서 클라레 저그에 푸어오버 커피를 담아 마시면서 계속 뒤를 흘끔거리며 해안 도로 쪽을 바라봤다.” 스미스는 말했다. “나는 혼자 웃으면서 이건 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뒤를 돌아본 건 잭(현재 그의 비서 업무를 봐주고 있는 스미스의 어린 시절 친구인 잭 윌코시)이나 샤넬(스미스의 약혼녀인 샤넬 나움)이 방에 들어와서 대체 뭘 하는 짓이냐고 물어볼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다양한 것이 저그에 담겼다. 1995년에는 존 데일리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거기에 담아 먹었다. 2008년에는 디오픈 2승 챔피언인 파드라그 해링턴의 아들이 무당벌레들을 저그에 담았다. 2009년 스튜어트 싱크는 여러 차례에 걸쳐 거기에 오렌지 주스와 바비큐 소스를 담았다. 2015년에는 아이오와에서 자란 존슨이 거기에 옥수수를 담아 먹었다.
스미스가 가지고 있던 동안에도 온갖 술이 거기에 담겼다. 물론 이 트로피는 애초에 클라레(영국에서 보르도산 레드 와인을 일컫는 말) 한 병을 담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스미스는 호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레드 와인인 펜폴즈 그레인지라는 700달러짜리 시라즈를 거기에 담아 마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고급 테킬라도 종종 거기에 담겼다. 8월 중순, 스미스는 2016년에 플로리다로 이사 온 후 자주 가는 단골집 가운데 하나가 된, 잭슨빌 비치의 유명한 레스토랑인 타코루에서 생일 파티를 했다. “우리는 파르티다 로블레 피노를 저그에 부었고, 헤라두라 더블 배럴 마르가리타와 도스 에퀴스 맥주도 잔뜩 부었다.” 그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돈 니콜은 말했다.
“타코루의 그 생일 파티는 저그와 함께 보낸 밤 중에서도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골프를 사랑하는 그곳 사람들에게 이 역사적인 트로피를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2001년의 데이비드 듀발 이후 잭슨빌에 터전을 잡은 상태에서 디오픈 우승을 차지한 첫 번째 선수다.
11월에 호주오픈과 호주PGA챔피언십 출전을 위해 플로리다에서 호주까지 9000마일을 날아가야 했던 스미스는 윌코시에게 ‘저그 보안팀장’이라는 새로운 직함을 부여했다. 윌코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LA 국제공항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X-레이를 통해 클라레 저그의 윤곽을 본 교통안전청(TSA) 직원이 운송용 케이스 안의 실물을 보자고 나선 것이다. 골프 팬이라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이미지였건만 컴퓨터 화면만 주시하는 성실한 TSA 직원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흰 장갑을 낀 또 다른 직원은 폭발물 탐지를 했다. “그 직원은 저그를 들고도 그게 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윌코시는 말했다.
스미스가 옆에서 덧붙였다. “우리 뒤에 서 있던 탑승객 두어 명이 X-레이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설마 진짜 클라레 저그야?’ 그때부터 보안팀 직원들의 실물 확인 시간이 시작되었다.”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한 스미스는 대합실에서 팬들과 취재진에게 둘러싸였다. 그렉 노먼이 두 번째 디오픈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던 1993년 이후 호주까지 클라레 저그를 들고 온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저그는 곧 스미스가 어린 시절 플레이를 했던 완티마컨트리클럽으로 향했다. 완티마는 사실상 컨트리클럽이라기보다 노동자 계층의 일반 골퍼들이 드나드는 코스이며, 브리즈번에서 북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다. 회원들은 그곳을 ‘완거스타 내셔널’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코스는 대체로 평평한 편이며, 단단하고 빠른 페어웨이 양쪽으로는 호주 고무나무가 도열해 있다. 그린은 작고 까다롭다. 정문에서 멀지 않은 클럽하우스 안에는 스미스의 행보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고, 2014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CIMB클래식에서 그가 PGA투어에 데뷔했을 때 입었던 사인 셔츠도 전시되어 있다.
완티마는 스미스와 회원 200명이 참석한 환영 행사를 마련했다. 스미스는 45분 정도의 질의응답 시간을 마친 후 저그에 포엑스 골드 맥주를 담아 회원들에게 돌렸다. “어떤 회원은 저그를 마치 아기 안듯이 안기도 했다.” 완티마의 총지배인 제이슨 패터슨은 말했다.
“브리즈번 북쪽에 있는 작은 컨트리클럽의 클럽하우스에 클라레 저그가 등장한 건 정말 멋진 사건이었다.” 스미스는 말했다. 며칠 후 로열퀸즐랜드에서 호주PGA챔피언십이 열렸을 때 브리즈번 시장은 스미스에게 도시를 상징하는 행운의 열쇠를 증정했다.
스미스는 DP월드투어가 공동 주최하는 호주PGA챔피언십에서 3타 차로 우승하며 2022년 다섯 번째 승전보를 울렸다. 그는 그때의 우승이 가장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때까지 스미스의 플레이를 직접 보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현장에 함께한 가족과 친지들 중에는 그의 할머니도 있었다.
할머니는 암 투병을 하며 여러 차례 화학 치료를 받았지만, ‘팀 스미스’라는 글자가 찍힌 맞춤 티셔츠를 입고 72홀을 함께 걸으며 손자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다들 무리하지 마시라고 말렸지만, 할머니는 매일 코스에 나왔다. 그 모습이 내게 힘을 주었다.” 스미스는 말했다. 할머니는 있는 힘을 다해 클라레 저그와 그 주에 스미스가 받은 호주PGA의 조 커크우드 컵을 들어 올렸다. “많은 사람이 클라레 저그를 안았지만, 내 고향에서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걸 품에 안은 모습은 정말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스미스는 말했다.
스미스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디오픈의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거물들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톰 왓슨(1982-1983), 피터 톰슨(1954-1955-1956), 아널드 파머(1961-1962) 그리고 리 트레비노(1971-1972). 그 반열에 오르기를 바라는 스미스의 손이 자신의 이름에 닿았다. 그는 잠시 손을 멈춘 채 7월에 저그를 슬럼버스에게 돌려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울컥할 것 같다.” 스미스는 말했다. “한 해 동안 이 저그와 함께 지낸 시간은 너무나 특별했다. 복제본이 어느 정도는 마음을 달래주겠지만, 진본을 갖는 것에는 비할 수 없다. 이걸 돌려주게 되면 반환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그 주에 더 힘이 나서 플레이를 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