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캐디’에서 ‘선수’로…김재민 “군대 선임 잘 만난 덕분이죠”
라운드를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들어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12오버파 84타. 성적은 최하위지만, 웃는 표정이 밝다. 지난해에는 캐디로, 올해는 선수로 출전한 김재민(30) 얘기다.
‘김재민 프로’는 생소하다. 2022년 대상과 상금왕을 거머쥔 김영수 캐디가 더 익숙할 것이다. 지난해 제네시스챔피언십에서 김영수가 데뷔 11년 만에 첫 승을 차지했을 때 옆에 있던 이가 김재민이다.
당시 김영수와 김재민의 특별한 인연이 화제를 모았다. 아마추어 때 ‘골프 천재’로 불렸지만, 프로 데뷔 후 부상으로 고생하던 김영수는 해군 입대를 택했다. 여기서 만난 귀인이 후임이었던 김재민이다. 그는 유학생이었던 김재민에게 캐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장기적인 목표는 함께 프로 무대에서 뛰자는 것이었다.
그동안 취미로 골프를 즐겼던 김재민은 김영수의 캐디로 프로 무대를 밟았다. 선수를 향해 환호하는 갤러리, 사인해주는 프로 선수의 모습에 매료됐다. 김영수를 따라다니며 운동하고 훈련해 2021년 프로 테스트를 통과했다.
메인 스폰서 제네시스는 디펜딩 챔피언 김영수와 캐디 김재민의 소식을 접했고, 올해 김재민을 추천 선수로서 대회에 초대했다. 김영수도 흔쾌히 김재민을 응원했다. 김영수 스폰서인 더큰병원도 김재민을 도왔다. 모두의 배려 덕분에 김재민의 코리안투어 데뷔전이 성사됐다.
김재민은 “제네시스에서 내게 좋은 기회를 줘서 코리안투어에 데뷔하게 됐다. 너무 영광이고 감사하다. 경기 초반에 엄청 긴장해서 안 좋은 위치로 많이 갔는데, 다 경험이라 생각한다. 군대 선임 잘 만나서 너무 좋은 경험했다”고 전했다.
지난주에 대회 출전이 최종 결정됐다. 현대해상 최경주인비테이셔널에서 여느 때와 같이 김영수 캐디를 맡았던 김재민은 일을 마치고 꾸준히 연습하며 대회를 준비했다.
그는 “캐디 할 때와는 다르더라. 내가 직접 하면서 걸으니까 체력적인 문제도 있고 쉬운 게 아니다. 이 코스는 전장도 길고, 다른 선수들은 그린 스피드가 느리다고 하는데 내게는 빨랐다”고 웃었다.
이어 “(김)영수 형은 다 좋은 경험이니까 부담 없이 하라고 했다. 나는 여기서 잃을 게 없지 않나”고 덧붙였다.
프로로 투어에 나서겠다는 의지도 있다. 올해 김영수와 DP월드투어를 누볐지만,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당장 다음 주에 열릴 코리안투어 시드전에 출전할 예정이다. 그는 “우리가 이별한다면 서로 좋은 결말이지 않을까. 언제든 형을 도와줄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되면 당연히 도울 것이다”고 말했다.
김재민은 “대회 결과가 어떻든 다 내게 좋은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부족한 부분은 더 연습하면 되지 않나. 내게 좋은 과정이 될 것 같다”고 이를 악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