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리우, 리우의 우리 [Feature : 1608]
우리의 리우, 리우의 우리 [Feature : 1608]
사진_게티이미지(Getty Images), 박준석 KLPGA 공식 사진기자, 유러피언투어 제공
우리의 리우, 리우의 우리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이지만 올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올림픽은 골프 팬들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우리나라 팬들 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남녀 동반 메달 획득이 가능한 종목이 바로 골프이기 때문이다. 어떤 색의 메달을 목에 거느냐만 남았다. 글_고형승, 한원석
즐거운 상상을 한번 해보자. 2016 리우 올림픽 골프장에 마련된 시상대에 한국의 안병훈과 왕정훈이 올라간다. 금메달은 둘 중 누구든 상관없다. 또 금메달이 아니면 어떤가. 일주일 후에는 우리나라 여자 선수 세 명이 시상대에 오른다. 안타깝게도 시상대에 오르지 못한 나머지 한 명의 한국 선수는 4위에 올랐다. 메달을 따지 못한 그녀도 옆에서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태극기가 한꺼번에 세 개가 걸려 브라질 하늘에 나부낀다. 장관이다. 애국가가 흘러나오고 한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최경주와 박세리 감독은 조용히 눈물을 닦아낸다. 상상만으로도 뭉클하고 한편으로 짜릿하지 않은가? 1904년 세인트앤드루스 올림픽 이후 112년 만에 열린 골프 종목에서 한국의 남녀 선수들이 메달을 싹쓸이했다는 보도가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면 정말 어떤 기분일까? 골프 팬들에게는 아마 특별하고도 생소한 느낌일 게다. 살아생전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 20년 전에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이런 상상을 해보라고 했다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가능해졌다. 국제골프연맹(IGF)은 7월11일(현지 시각), 올림픽에 출전하는 남녀 골프 선수 명단을 확정 발표했다. 남녀 각각 60명씩 120명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국가별로 세계 랭킹 15위 이내는 최대 네 명까지 출전할 수 있다. 남자는 미국, 여자는 한국이 최대 네 명을 모두 채웠다. 남녀 선수 통틀어 미국이 일곱 명을 내보내면서 가장 많고 한국이 여섯 명으로 두 번째 규모다. 단순히 선수단 규모만 놓고 보면 미국과 한국의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다.
여자 선수단, 금•은•동 싹쓸이 가능할까? 남자의 경우는 112년 만에 올림픽에서 골프 경기가 열리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여자는 엄밀히 따지면 116년 만이다. 1900년에 열린 파리 올림픽 골프와 테니스, 요트 종목에 여자 선수가 출전했고 미국의 마거릿 애벗(Margaret Abbot)이 여자 선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골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녀는 올림픽 최초의 여성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이번 리우 올림픽 골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여자 선수는 애벗에 이어 116년 만에 두 번째가 된다. 여자의 경우는 L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을 끝으로 올림픽 출전 선수 명단이 최종 확정됐다. 7월11일 발표된 세계 랭킹 기준으로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를 비롯해 2위인 캐나다의 브룩 헨더슨, 3위 박인비 등 톱 랭커들이 모두 참가한다. 세계 랭킹 15위 이내의 선수 중 열세 명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나머지 두 명은 한국의 장하나와 유소연이다. 15위 이내는 각 나라에서 최대 네 명까지 출전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은 이미 상위 네 명으로 채운 터였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출전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최근 국내 언론에서는 이번 올림픽 골프의 여자 대회를 두고 한국 선수와 한국계 선수가 대결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누가 봐도 일리 있는 분석이다. 현재 금메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는 세계 랭킹 1위의 리디아 고다. 최근 그녀는 LPGA투어 마라톤클래식에서 연장 접전 끝에 우승하며 시즌 4승째를 올렸다. 무려 39주 연속 세계 랭킹 1위(7월18일 현재)를 고수하고 있다. 그만큼 페이스가 좋다. 언론이 주목하는 또 다른 한국계 선수로는 올림픽 골프 랭킹 12위의 이민지(호주)와 15위의 노무라 하루쿄(일본) 그리고 21위의 오수현(호주)을 들 수 있다. 이민지는 올해 4월에 열린 LPGA투어 롯데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통산 2승째를 챙겼고 한국인 어머니를 둔 노무라 하루쿄는 ISPS한다호주여자오픈과 스윙잉스커츠LPGA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호주에 이민 가 호주 국가 대표를 지낸 바 있는 오수현 역시 지난해 RACV레이디스마스터스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올해 열린 킹스밀챔피언십에서 2위에 오르는 등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전력이 막강하다 보니 당연히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로 분류되고 있다. 이에 맞서는 한국 대표 4인방을 살펴보자.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선수들이다. 박세리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LPGA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 박인비와 ‘역전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김세영, 올림픽 골프 랭킹 6위의 양희영 그리고 국내를 평정하고 미국 무대에서 활약 중인 전인지까지. 그 면면이 화려하다. 세계 랭킹 3위의 박인비는 LPGA투어에서만 통산 17승을 챙긴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하지만 올해 잦은 부상으로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 랭킹도 2위에서 3위로 밀렸다. 페이스만 보자면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다. 왼쪽 엄지손가락 부상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한 달가량 투어를 쉬면서 재활에 전념했다. US여자오픈이 열리는 기간에도 박인비는 조용히 국내에 머물며 회복의 경과를 지켜봤다. 그녀는 US여자오픈 최종 라운드가 끝나기 두 시간 전에 “올림픽 출전은 오래된 내 꿈이다”면서 “이번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비록 부상으로 인해 최근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맏언니인 박인비가 한국 선수단에 합류했다는 것만으로도 무게감이 달라졌다. 리우 올림픽의 가장 강력한 다크호스로 거론되고 있는 선수는 김세영을 꼽을 수 있다. 올해 열린 JTBC파운더스컵과 마이어LPGA클래식에서 우승하며 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들 중 이번 시즌 유일하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장점은 강한 멘탈과 강력한 드라이버 샷이다. LPGA투어 통산 5승 중 3승을 연장 승부 끝에 거둔 것은 그녀가 얼마나 두둑한 배짱을 가졌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김세영은 “사실 LPGA투어에 진출한 이유 중 하나가 올림픽에 나가고 싶어서다”라고 말하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주니어 시절 국가 대표를 지냈지만, 아시안게임 대신 올림픽을 택한 건 최고의 무대에서 경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연 그녀가 올림픽에서도 대회 마지막 날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빨간색 바지를 입고 플레이할 것인지도 흥미롭게 지켜볼 대목이다. 세계 랭킹 7위의 양희영은 2013년 KEB하나은행챔피언십과 2015년 혼다LPGA타일랜드에서 우승하며 LPGA투어 통산 2승을 거뒀다. 올해도 우승은 없지만 여섯 번의 톱10 진입에 성공하며 꾸준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양희영은 “올림픽이 정말 기대가 된다”며 “한국을 대표해 올림픽에 나간다는 건 굉장한 일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2015년 US여자오픈 우승자 전인지는 한국 골프 드림팀의 막내로 대회에 출전한다.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상금 랭킹 1위에 오른 전인지는 올해 무대를 옮겨간 LPGA투어에서 신인상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시즌 초반 부상으로 한 달의 공백이 있었지만, 성공적인 재활을 통해 투어에 복귀했다. 올림픽 출전을 놓고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펼친 그녀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면서 “기회를 얻은 만큼 올림픽 무대에서 즐길 것이다”라고 했다. 한국과 한국계 선수들뿐만 아니라 여자 선수들은 상위 랭커들이 대부분 참가하기 때문에 메달 획득을 향한 경쟁이 그 어떤 대회보다 치열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 선수들을 위협한 대표적인 선수로는 올해만 2승을 거둔 브룩 헨더슨과 시즌 초반에 열린 혼다LPGA타일랜드에서 우승한 세계 랭킹 4위의 렉시 톰프슨(미국) 그리고 5월에만 3승을 챙긴 태국의 아리야 주타누간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외에도 미국의 스테이시 루이스, 중국의 펑산산, 노르웨이의 수잔 페테르센도 한국 선수들의 메달 획득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 골프 랭킹 여자 부문
순위 |
선수명 |
국가명 |
순위 |
선수명 |
국가명 |
1 | 리디아 고 | 뉴질랜드 | 16 | 찰리 헐(Charley Hull) | 영국 |
2 | 브룩 헨더슨(Brooke M. Henderson) | 캐나다 | 17 | 테레사 루(Teresa Lu) | 대만 |
3 | 박인비 | 대한민국 | 18 | 캔디 쿵(Candie Kung) | 대만 |
4 | 렉시 톰프슨(Lexi Thompson) | 미국 | 19 | 포르나농 패틀럼(Pornanong Phatlum) | 태국 |
5 | 김세영 | 대한민국 | 20 | 카를로타 시간다(Carlota Ciganda) | 스페인 |
6 | 양희영 | 대한민국 | 21 | 오수현 | 호주 |
7 | 아리야 주타누간(Ariya Jutanugarn) | 태국 | 22 | 오야마 시호(Shiho Oyama) | 일본 |
8 | 전인지 | 대한민국 | 23 | 아자하라 무노스(Azahara Munoz) | 스페인 |
9 | 스테이시 루이스(Stacy Lewis) | 미국 | 24 | 린시유(Xiyu Lin) | 중국 |
10 | 안나 노르드크비스트(Anna Nordqvist | 스웨덴 | 25 | 산드라 갈(Sandra Gal) | 독일 |
11 | 펑산산(ShanShan Feng) | 중국 | 26 | 카린 이셰르(Karine Icher) | 프랑스 |
12 | 이민지 | 호주 | 27 | 카트리오나 매슈(Catriona Matthew) | 영국 |
13 | 제리나 필러(Gerina Piller) | 미국 | 28 | 카롤리네 마손(Caroline Masson) | 독일 |
14 | 수잔 페테르센(Suzann Pettersen) | 노르웨이 | 29 | 니콜 브로크 라르센(Nicole Broch Larsen) | 덴마크 |
15 | 노무라 하루쿄(Haru Nomurakyo) | 일본 | 30 | 페르닐라 린드베리(Pernilla Lindberg) | 스웨덴 |
순위 |
선수명 |
국가명 |
순위 |
선수명 |
국가명 |
31 | 알레나 샤프(Alena Sharp) | 캐나다 | 46 | 클라라 스필코바(Klara Spilkova) | 영국 |
32 | 가비 로페스(Gaby Lopez) | 멕시코 | 47 | 크리스티네 볼프(Christine Wolf) | 대만 |
33 | 마리아호 유리베(Mariajo Uribe) | 콜롬비아 | 48 | 줄리아 세르가스(Giulia Sergas) | 대만 |
34 | 난나 코르츠 매드센(Nanna Koerstz Madsen) | 덴마크 | 49 | 마리아 베르체노바(Maria Verchenova) | 태국 |
35 | 크리스텔 부엘리용(Christel Boeljon) | 네덜란드 | 50 | 레오나 맥과이어(Leona Maguire) | 스페인 |
36 | 파울라 레토(Paula Reto) | 남아프리카공화국 | 51 | 앤 반 담(Anne Van Dam) | 호주 |
37 | 글라디스 노세라(Gwladys Nocera) | 프랑스 | 52 | 얼베인 발렌주엘라(Albane Valenzuela) | 일본 |
38 | 훌리에타 그라나다(Julieta Granada) | 파라과이 | 53 | 알레한드라 라네자(Alejandra Llaneza) | 스페인 |
39 | 켈리 탄(Kelly Tan) | 말레이시아 | 54 | 클로에 라킨(Chloe Leurquin) | 중국 |
40 | 마리안느 스카프노르드(Marianne Skarpnord) | 노르웨이 | 55 | 파비엔 인 앨번(Fabienne In-Albon) | 독일 |
41 | 애슐리 사이먼(Ashleigh Simon) | 남아프리카공화국 | 56 | 티파니 첸(Tiffany Chan) | 프랑스 |
42 | 레티샤 벡(Laetitia Beck) | 이스라엘 | 57 | 미셸 고(Michelle Koh) | 영국 |
43 | 줄리아 몰리나로(Giulia Molinaro) | 이탈리아 | 58 | 아디티 어쇼크(Aditi Ashok) | 독일 |
44 | 우슬라 위크스톰(Ursula Wikstrom) | 노르웨이 | 59 | 미리엄 날(Miriam Nagl) | 덴마크 |
45 | 누라 태미넨(Noora Tamminen) | 일본 | 60 | 캐서린 브리스토(Cathryn Bristow) | 스웨덴 |
남자 선수단, 메달 획득 가능할까? 올림픽 골프 출전 명단을 보면 남자는 그리 강한 필드가 아니다. 올림픽 코스는 그 누구도 플레이해보지 않은 생소한 곳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메달 획득의 기회가 있고 반대로 누가 더 유리하다고도 할 수 없다. 올림픽 랭킹 상위 20위권에 드는 선수들은 메이저 투어에서의 우승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다. 그 누구도 빼놓을 수 없는 우승 후보다. 하지만 최근 경기력이 상승세인 선수가 기회가 더 있는 건 사실이다. 올림픽이 열리는 골프장은 길 핸스가 설계했다. 그가 리노베이션한 코스가 WGC-캐딜락챔피언십이 열리는 도럴의 블루몬스터코스다. 그의 코스 디자인을 경험한 선수, 특히 그 코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가 조금은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올림픽 랭킹 1위, 세계 랭킹 5위의 버바 왓슨(미국)은 강력한 우승 후보다. 왓슨은 2014년과 2016년에 WGC-캐딜락챔피언십에서 2위에 올랐다. 길 핸스의 디자인에 최적화된 선수 중 한 명이다. 또 그 누구보다 올림픽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선수다. 그런 그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왓슨은 스트로크 게인드 티-투-그린에서 1.496점을 받아 5위에 올라 있다. 쉽게 표현하자면 다른 선수보다 퍼팅하기 전까지 1.4타 정도 앞선다는 말이다. PGA투어 선수 중 티 샷과 어프로치 능력이 전반적으로 톱5에 든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코스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는 데 이견이 없다. 왓슨은 일찌감치 자신의 SNS에 “리우 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활약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올린 바 있었다. 그는 “올림픽에 100% 출전하겠다”고 출전 의사를 밝혔다. 미국 랭킹 1위였던 더스틴 존슨이 올림픽 출전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세 번째 선수가 된 패트릭 리드는 메달 획득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는 2014년 WGC-캐딜락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다. 길 핸스의 코스에서 우승한 그에게 어쩌면 맞는 코스 디자인일 수 있다. 경기력도 되찾은 듯하다. 디오픈 바로 이전에 열린 애버딘애셋매니지먼트에서 공동 10위에 올랐다. 디오픈에서도 공동 12위에 오르는 등 최근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또 한 가지. 리드는 올해 21개 대회에서 아홉 차례나 톱10에 들었다. 투어에서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헨리크 스텐손(스웨덴)은 디오픈에서 우승했다. 최근 들어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다. 애버딘애셋매니지먼트에서도 공동 13위를 기록했다. 현재의 경기력이 올림픽까지 이어진다면 훌륭한 성적을 내긴 충분해 보인다. 저스틴 로즈(영국),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우승 후보다. 마스터스 우승자 대니 윌렛(영국)과 메이저 대회 우승자 마르틴 카이머(독일)도 메달권에 근접한 선수들이다. 그렇다면 한국 선수들의 메달 가능성은? 전혀 없지는 않다. 안병훈은 출전 선수 가운데 올림픽 랭킹 10위에 올라 있다. 왕정훈은 26위다. 이들은 골프를 대표하는 두 개의 투어에서 경험이 많다.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도 해봤다. 심지어 그들을 제치고 우승도 했다. 그러므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순 없다. 안병훈은 금메달을 꼭 따야 하는 이유가 두 가지다. 부모가 이루지 못한 금메달의 꿈을 대신 이뤄야 한다. 아버지 안재형은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에서 남자 복식 동메달에 그쳤고 어머니 자오즈민 역시 중국 대표로 출전해 여자 복식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올림픽의 피가 흐르는 안병훈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은 어쩌면 막중한 책임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나라 선수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병역의무 면제라는 특혜다. 그건 왕정훈도 마찬가지다. 선수 생활에서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이는 부분을 이번 기회에 해치울 수 있다. 군 복무 면제가 걸려 있으면 예부터 우리나라 선수들은 슈퍼 파워를 발휘한다.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안병훈이 올릭픽 출전권을 딴 것은 아마도 2015년 유러피언투어 루키 시즌 때 BMW PGA챔피언십 우승부터였을 것이다.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세계 랭킹 130위가 그의 가장 높은 순위였다. 우승과 함께 바로 세계 랭킹이 54위까지 올랐다.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였다. 그는 계속해서 꾸준한 성적을 거두면서 터키시에어라인오픈에서 47위, DP월드투어챔피언십과 타일랜드골프챔피언십에서 공동 4위를 기록하면 세계 랭킹 28위로 시즌을 마쳤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출전권은 이미 떼어놓은 당상이었다. 그리고 그는 2015년 신한동해오픈에서도 올림픽 출전을 위해 준비할 것이라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이미 그때부터 목표는 확실했기 때문에 그가 출전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안병훈은 2016년 WGC-델매치플레이에서 16강까지 올라가면서 활약했지만 결국 목 부상으로 기권했다. 마스터스에 초청을 받아 처음 출전했다. 한 달가량 쉰 다음 취리히클래식에서 공동 2위의 성적으로 세계 랭킹을 24위까지 끌어올렸다. 한국 선수로는 가장 높은 랭킹으로 올림픽 출전권은 100% 확정이었다. 안병훈은 “올림픽 출전이 처음 목표였다. 안 될 것 같다가 결국 나가게 됐다. 꼭 메달을 땄으면 좋겠다. 그러나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올림픽도 일단 일반 대회 경기하러 간다는 생각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왕정훈은 올해 초만 해도 올림픽 출전이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김경태가 세계 랭킹이 70위로 한참 앞서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수민도 올림픽 출전을 위해 노력 중이었다. 시즌 초반 김경태가 일본투어에서 3승을 거두면서 세계 랭킹을 37위까지 끌어 올렸다. 하지만 그에게 올림픽 출전 티켓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이수민도 선전인터내셔널에서 우승하며 세계 랭킹 75위로 한국 선수 중에 세 번째로 높은 순위였다. 왕정훈이 유러피언투어 트로피하산2대회에서 우승하고 연이어 아프라시아뱅크모리셔스오픈에서 우승하면서 70위까지 랭킹을 올렸다. 왕정훈이 퀸스컵에서 공동 3위에 오르면서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사이 이수민의 부진이 계속되어 순위가 뒤바뀌었다. 게다가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하면 자력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왕정훈도 애타게 원하던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다. 결국, 올림픽 출전이 결정되는 11일에 세계 랭킹 76위로 한국 선수 중엔 3위에 이름을 올렸다가 김경태의 올림픽 출전 포기로 기회를 잡게 됐다. 그는 디오픈이 열리는 주 월요일 새벽에 잠을 자다가 소속사 대표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했다. 대신 현지까지 취재를 온 언론 대응 방법에 대한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문자에는 올림픽 출전에 관한 태도 결정이 담겨 있었다. 문자를 보고 어리둥절해 하던 왕정훈은 소속사 대표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올림픽 가요?” 그제야 소속사 대표는 “올림픽 가자!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왕정훈은 평소 그렇게 바라던 올림픽 출전권을 얻었고 기회를 잡게 됐다. 그는 “일생일대의 행운이 내게 찾아왔다”며 “최선을 다해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겠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올림픽 골프 랭킹 남자 부문
순위 |
선수명 |
국가명 |
순위 |
선수명 |
국가명 |
1 | 버바 왓슨(Bubba Watson) | 미국 | 16 | 베른트 비스베르거(Bernd Wiesberger) | 오스트리아 |
2 | 헨리크 스텐손(Henrik Stenson) | 스웨덴 | 17 | 마르틴 카이머(Martin Kaymer) | 독일 |
3 | 리키 파울러(Rickie Fowler) | 미국 | 18 | 키라덱 아피반랏(Kiradech Aphibarnrat) | 태국 |
4 | 대니 윌렛(Danny Willett) | 영국 | 19 | 프란체스코 몰리나리(Francesco Molinari) | 이탈리아 |
5 | 저스틴 로즈(Justin Rose) | 영국 | 20 | 아니르반 라히리(Anirban Lahiri) | 인도 |
6 | 세르히오 가르시아(Sergio Garcia) | 스페인 | 21 | 토르비외른 올레센(Thorbjørn Olesen) | 덴마크 |
7 | 패트릭 리드(Patrick Reed) | 미국 | 22 | 주스트 루이튼(Joost Luiten) | 네덜란드 |
8 | 맷 쿠처(Matt Kuchar) | 미국 | 23 | 토마스 피터르스(Thomas Pieters) | 벨기에 |
9 | 라파 카브레라 벨로(Rafa Cabrera Bello) | 스페인 | 24 | 야코 반 질(Jaco Van Zyl) | 남아프리카공화국 |
10 | 안병훈 | 대한민국 | 25 | 파비안 고메즈(Fabian Gomez) | 아르헨티나 |
11 | 통차이 자이디(Thongchai Jaidee) | 태국 | 26 | 왕정훈 | 대한민국 |
12 | 대니 리(이진명) | 뉴질랜드 | 27 | 스콧 헨드(Scott Hend) | 호주 |
13 | 에밀리아노 그리요(Emiliano Grillo) | 아르헨티나 | 28 | 마커스 프레이저(Marcus Fraser) | 호주 |
14 | 데이비드 링그머스(David Lingmerth) | 스웨덴 | 29 | 브랜던 스톤(Brandon Stone) | 남아프리카공화국 |
15 | 소렌 켈센(Soren Kjeldsen) | 덴마크 | 30 | 이케다 유타(Yuta Ikeda) | 일본 |
순위 |
선수명 |
국가명 |
순위 |
선수명 |
국가명 |
31 | 가타야마 신고(Shingo Katayama) | 일본 | 46 | 대니 치아(Danny Chia) | 말레이시아 |
32 | 그레고리 보르디(Gregory Bourdy) | 프랑스 | 47 | 미코 일로넨(Mikko Ilonen) | 핀란드 |
33 | 쥘리앵 쿠스네(Julien Quesne) | 프랑스 | 48 | 조나단 베거스(Jhonattan Vegas) | 베네수엘라 |
34 | 니콜라스 콜사르트(Nicolas Colsaerts) | 벨기에 | 49 | 필리페 아길라(Felipe Aguilar) | 칠레 |
35 | 리카르도 구베이아(Ricardo Gouveia) | 포르투갈 | 50 | 판쳉청(Cheng Tsung Pan) | 대만 |
36 | 데이비드 헌(David Hearn) | 캐나다 | 51 | 아딜손 다 실바(Adilson da Silva) | 브라질 |
37 | 우아(Wu Ashun) | 중국 | 52 | 시머스 파워(Seamus Power) | 아일랜드 |
38 | 미구엘 타부에나(Miguel Tabuena) | 필리핀 | 53 | 에스펜 코프스타드(Espen Kofstad) | 노르웨이 |
39 | 리하오통(Hao Tong Li) | 중국 | 54 | 루페 카코(Roope Kakko) | 핀란드 |
40 | 알렉스 체카(Alex Cejka) | 독일 | 55 | 니노 베르타시오(Nino Bertasio) | 이탈리아 |
41 | 그레임 드레트(Graham DeLaet) | 캐나다 | 56 | 시디커 라만(Siddikur Rahman) | 방글라데시 |
42 | 파브리지오 자노티(Fabrizio Zanotti) | 파라과이 | 57 | 카밀로 비예가스(Camilo Villegas) | 콜롬비아 |
43 | 파드리그 해링턴(Pa´draig Harrington) | 아일랜드 | 58 | 린웬탕(Wen-Tang Lin) | 대만 |
44 | 라이언 폭스(Ryan Fox) | 뉴질랜드 | 59 | 앙겔로 퀴(Angelo Que) | 필리핀 |
45 | SSP 츠와레시아(SSP Chawrasia) | 인도 | 60 | 게빈 카일 그린(Gavin Kyle Green) | 말레이시아 |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한동안 대표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둘러싼 루머가 담긴 일명 ‘찌라시’까지 돌며 국내 골프계가 시끄러웠다. 물론 골프 팬들에게까지 퍼진 내용은 아니지만, 일부 내용은 어디선가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루머 중 하나는 여자 선수들이 지카 바이러스 때문에 올림픽 출전을 기피한다는 것이었다. 박인비는 결혼도 했고 아직 애도 없기 때문에 특히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상반기에 일부러 좋지 않은 성적을 내면서 순위를 떨어뜨리고 부진한 모습을 계속 보였다는 다소 어이없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또 박인비를 둘러싼 루머로는 US여자오픈을 지켜보다가 같은 소속사 후배 선수인 유소연의 성적이 좋아 한국 선수 중 다섯 번째 순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커지면 그때 양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다른 루머는 그녀의 후원사인 KB국민은행이 그녀를 올림픽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플랜을 이미 다 만들어놨기 때문에 출전을 강행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루머는 박인비가 올림픽 출전 의사를 밝히자 잠잠해졌다. 그녀의 소속사인 갤럭시아SM의 한 관계자는 “이번 출전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박인비 자신이 한 것이지 부모나 후원사의 회유나 압박이 있었던 건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관계자는 “일주일간 부상을 치료하면서 추이를 지켜본 후 스스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US여자오픈 우승자가 결정되기 이미 두 시간 전에 올림픽 출전에 대한 보도 자료를 내보냈다. 그로 인해 혹시라도 사소한 오해가 생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박인비는 “바이러스 문제나 치안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며 “브라질 정부가 출전 선수들을 위해서 질병 관리와 치안에 만전을 기해주길 기대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남자 선수 중에도 이와 유사한 유형의 소문이 아직도 돌고 있는 선수가 있다. 올림픽 출전 선수 명단 발표를 하루 남겨놓고 포기 의사를 밝힌 김경태를 둘러싼 내용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문이고 누구 하나 확실히 그렇다고 대답해준 사람은 없다. 소문은 김경태에게 압력 아닌 압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김경태는 한 달 전에 출전을 포기한 상태였고 단지 발표 시기를 놓고 조율 중이었다는 내용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왕정훈의 소속사인 ISM 측이 모리셔스 우승 직후 대한골프협회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고 왕정훈을 출전 준비시키라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이미 그때부터 김경태의 출전 포기는 결정된 상황이었다. 다만 왕정훈은 이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그의 소속사는 준비 잘하고 있으라는 말만 전했을 뿐이다. 어차피 당시 왕정훈은 자력으로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모든 신경을 대회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결국 군 복무 문제가 걸려 있는 것으로 예상한다. 김경태는 국가 대표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이미 군 면제를 받았다. 결국, 김경태에게는 올림픽 출전이 명예에 국한될 뿐 메달을 따더라도 특별한(군 면제에 버금가는) 혜택은 없다. 올림픽에서는 꼭 금메달이 아니어도 어떤 색깔의 메달이든 상관없이 메달만 따면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 이제 내용이 정리되는가? 올림픽은 각 나라의 골프협회가 임의로 선수를 선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대신 압력을 넣어서 출전을 포기하게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세계 톱 랭커들이 대거 빠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확률은 높아진다. 왜 마다하겠는가. 외국 선수들이 이미 언론을 통해 좋은 핑곗거리의 교본도 만들어줬다. 지카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공식적인 견해를 밝히고 출전을 포기하면 된다. 물론 이 모든 내용이 소문에 불과하지만, 김경태가 그토록 바라던 올림픽 출전을 포기했다는 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