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다고요? [Feature : 1701]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다고요? [Feature : 1701]
2017-01-06 김기찬
일러스트_셔터스톡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다고요? 필드 위에서 연인이 아닌 다른 이성과 불꽃 튀는 이들이 있느냐고요? 한마디로 ‘그(그녀)는 지금 바람 피우는 게 틀림없어!’라고 100%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을 모아 각색했다. “이봐, 내 감이 정확하지?” 글_전민선
섹시미 철철 넘치는 명장면
오늘 함께할 고객의 백을 체크하는데 저 멀리 나의 카트를 향해 걸어오는 한 여성 회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더운 여름이라지만 너무 시원하게 입으셨다. 타이트한 화이트 컬러 슬리브리스에 딱 붙는 화이트 컬러 팬츠를 매치했다. 그런데 의상 컬러에 언더웨어 컬러까진 미처 체크하지 못했는지 브라가 비치는 시스루 골프 룩이 참으로 아찔하기까지 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앳된 얼굴이라 누군가의 딸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몇 개의 홀을 지나면서 불륜 남녀라는 의심이 확신이 되어갔다. 그 젊은 아가씨는 카트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으며 카트에 둘만 있을 땐 남자에게 몸짓으로 온갖 교태를 부렸다. 이건 뭐,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그러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 비에 홀딱 젖은 그녀의 상의는 몸에 더 찰싹 달라붙어 시스루 룩의종결자로 등극할 수 있을 만큼 섹시함(?)을 장착했다. 캐디백에 우산이 ‘떡하니’ 꽂혀 있음에도… 내겐 마치 의도된 행동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아래로 내려봤다. 아무리 팬티 라인을 찾아봐도 그 흔적이 없다. ‘뭐야! 속옷을 안 입은 거야?’ 근무 중임에도 이 궁금증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 궁금증은 또 한 차례 내린 소나기로 해결됐다. 그녀는 민망한 팬티 라인에 대한 걱정에서 진정 해방되고 싶었는지 T 모양의 팬티를 입고 있었다.
대담한 한 남자, 한 여자의 만남
“프로님, 에이밍 잘됐나요?” 여자가 동반자 겸 레슨 프로이면서 스승(?)인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는 친절하게 “이제 굿 샷만 날리면 돼요!”라고 대답했다. 이제는 그린 주변. 그녀가 어프로치 샷을 토핑으로 인해 미스하자 조심스레 그가 다가갔다. 손목을 거의 쓰지 않고 클럽을 목표 방향으로 던진다는 기분으로 샷을 하라는 조언과 함께 자연스럽게 손목을 잡았다. 그런데 이 둘, 스킨십(?)의 강도가 점점 짙어진다. 레슨하는 척 자연스럽게 어깨와 힙에 손을 대더니 여자의 바지 뒷주머니에 슬그머니 손을 꽂는 대담한 행동도 이어졌다. 이때 나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민망한 듯 그녀는 그에게 조심하라는 듯 살짝 눈을 흘겼다. 그 후 몇 홀은 잠잠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숲속으로 날아간 그녀의 볼을 찾으려고 뒤적거리다 찾아내 기쁜 마음에 뒤돌아보니 그녀가 그에게 다가가 기습 뽀뽀를 하고는 도망가는 게 아닌가! 그러다 그늘집에서 잠시 쉬는데 뒤 팀이 도착해 내게 하는 말. “저 둘 부부 아니지?”
꿈꾸어왔던 둘만의 완벽한 순간
2인 플레이를 나간 날이었다. 티 박스에서 여자가 공을 치고 나면 페어웨이 우드를 쥐여줬다. 그린 주변 50m까지는 그 클럽 하나로 소화해냈다. 남자는 간혹 여자 클럽을 빌려 쓰기도 했고 장타자인 까닭에 클럽을 바꿔줄 일조차 딱히 없었다. 어프로치는 둘 다 샌드 웨지를 사용했다.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을 곁들이는 이유는 굳이 내가 클럽을 바꿔주기 위해 페어웨이에서 종횡무진 활약할 일이 없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이들은 둘이 같이 걷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되레 나를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것 같았으니까. 그 남자에게 남은 거리에 맞춰 자신의 클럽을 가져다주는 것이 나의 일임에도 그는 극구 사양하기 바빴고, 그린에서 볼을 닦아주려고 하면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결국 나는 18홀 카트 운전을 하고 티 박스에서 잠시 내려 드라이버를 건네고 홀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 일 말고는 한 일이 없었다. 캐디피를 받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말이다. “오늘 같은 날은 처음입니다. 매일이 오늘 같다면 일할 만하겠네요.’’
이러다 진짜 닭 되겠어요
1번홀 티 박스. “자기, 내가 티 꽂아줄게. 우리 자기는 스윙이 참 예뻐!”, “어머 정말?” 그리고 페어웨이. “오빠 나 팔이 너무 아파.”, “우리 애기 팔 아파요?” 그녀 앞에서는 닭살 돋는 멘트가 절로 튀어나오는 모양이다.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기란 어려운 법이거늘! 아무래도 오늘은 온몸에 에어캡 같은 닭살이 톡톡 돋는 걸 각오해야지 싶었다. 팔이 아프다던 그녀, 잔디 제대로 파면서 산에다 볼을 보낸다. “언니, 내 볼 찾을 수 있죠?” 당신이 직접 찾으라고 말하고 싶지만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미친 듯이 웃어대는데, 그 남자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주고 싶었다. 그린에서는 이 둘, <사랑과 영혼> 주인공인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공이 홀에 들어가면 둘이 껴안고 환호를 터트리고, 안 들어가면 내 탓을 해대며 따뜻한 포옹이 백 마디 위로보다 효과적이라는 듯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스킨십을 한다. 몇 번이고 오바이트를 쏟아내고 싶은 걸 꾹 참고 18번홀에서 클럽하우스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앙칼진 목소리. “꺄악! 언니 카트 세워요. 내 모자!”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이렇게 바람 부는 날, 화보 촬영하러 나왔어? 여기가 해변이야? 누가 그런 모자 쓰래?’ 헐레벌떡 뛰어가 5번 아이언으로 그녀의 모자를 구했다. 밥 벌어먹기 참 힘들다며 수만 번 되뇐 그런 날이었다.
너희만 모르는 이야기
등장부터 심상찮은 커플이 오늘 내가 모시게 될 고객이라니! 팔짱을 끼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이 연인은 딱 봐도 ‘현재 바람 피우는 중’이다. 제아무리 최강 금실을 자랑하는 부부일지라도 같은 티셔츠까지 맞춰 입고 등장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역시 내 예상은 적중했다. 코스에 나가기가 무섭게 이 둘,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 홀 밀착 스킨십과 각종 애정 행각(?)을 벌였다. 나는 투명 인간이 된 지 오래. 심지어는 공을 찾으러 간다며 둘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나는 못 볼 꼴을 볼까 싶어 볼을 찾는 시늉만 할 뿐 그들이 향한 곳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 일을 하면서 눈치 100단이 됐으니까. 가까스로 닭살 라운드가 끝나고 클럽을 정리하는데 그 남자 왈. “내 클럽이 당신 백에 있어! 큰일 날 뻔했네.” 그 즉시 나는 기다렸다는 듯 복수(?)의 한마디를 날렸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클럽이 바뀌면 큰일 나세요? 부부시니까 괜찮지 않으세요? 다시 클럽 체크해드리겠습니다.” 그 둘의 얼굴은 어느덧 벌겋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