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중독자의 징후 [Digest: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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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중독자의 징후 [Digest: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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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6.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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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중독자의 징후 [Digest:1606]

일러스트_이지오

골프와 지독한 사랑에 빠진 골퍼들의 일상을 엿보았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모를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은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조만간 나도 골프 중독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은연중 갖게 된 것이다. 글_전민선



몹쓸 얼리어답터 기질

골프와 열렬한 사랑에 빠진 지 2년 정도 된 얼리어답터 기질이 있는 A씨. 그에게는 퇴근 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있다. 다름 아닌 집 근처 골프숍에 들르는 일. 아무리 골프도 ‘장비병’ 생기기 딱 좋은 취미 생활이라지만 열네 개의 클럽을 제 마음에 들 때까지 하나둘씩 사고팔기 시작해서 도무지 끝이 없다. 하다못해 골프 티라도 하나 사가지고 나와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 A씨의 아내는 그에게 이런 말을 수도 없이 한다고. “자동차, 시계, 카메라를 사랑하는 취미를 갖고 있는 남자는 만나지 말라고 해서 당신과 결혼했는데, 골프에 미친 사람을 만날 줄이야!” 남편의 골프 사랑을 이토록 안 좋아하니 인터넷으로 구입한 골프용품 택배는 회사로 배달시킨다는 것을 아내가 알면 그에게는 어떤 특단의 조치가 취해질까?

56도 웨지 거리

점심시간 땡 하자마자 잽싸게 뛰어나가 오늘은 어떤 메뉴를 맛볼까 동료들과 논의 중이던 직장인 B씨. 그날도 어김없이 6000원짜리 점심 메뉴 중 뭘 먹을지 동료들과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점심시간에만 운영하는 밥과 반찬을 뷔페처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맛집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골목을 따라 10분 남짓 걸었을까. 슬슬 목적지가 어디 부근인지,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궁금해진 한 동료가 질문을 던졌다. B씨는 답했다. “저 앞에 OOO빌딩 보이죠?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그가 이쪽저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B씨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70야드 거리요. 그 거리는 56도 웨지로 충분하지!” 이 대답을 들은 동료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잔디가 그 잔디는 아니잖아요

주말을 맞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한강 공원으로 나간 C씨. 그날따라 운동을 하거나 개를 산책시키거나 가족들과 함께 놀러 나온 이들이 많았다. 아내와 함께 아이들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다 지친 C씨는 슬그머니 텐트 쪽으로 향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빽빽한 잔디였다. 그는 그곳에서 빈 스윙을 몇 차례 하더니 잽싸게 자동차로 발걸음을 옮겨 트렁크에 항상 싣고 다니는 캐디백에서 피칭 웨지를 꺼내 들었다. 마치 볼이 긴 러프에 잠겨 있는 양 그는 연신 클럽을 휘둘렀다. 그립을 단단히 잡는 것부터 벙커 샷을 하듯이 쓸어 치는 스윙을 하기를 몇십 분. 아내가 와서 “여보, 여기 공원이에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만하고 애들 자전거나 붙잡아줘요”라며 그의 옷자락을 잡아 당겼다.

착각의 늪

프로야구 시즌이면 TV에서는 야구 경기가 내내 중계되는 만큼 열혈 야구 팬이기도 한 D씨는 친구들과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테이블 위에 발을 올린 채 소파에 푹 파묻혀 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선수가 극적인 홈런을 터뜨렸고 팬들이 환호하는 장면이 방송을 탔다. 그러자 D씨는 “왜 저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했다. 이유인즉 이랬다. OB가 났는데 뭐가 좋다고 웃고 환호성을 지르냐는 거다. 그의 대답은 친구들을 모두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한 친구는 말했다. “야 인마, 이건 네가 좋아하는 야구잖아. 정신 차려! 요즘 골프에 빠지더니 헛소리를 하네.” D씨 역시 황당해서 웃고 말았다.

 



 

자가 진단의 부작용

E씨는 하루하루 나빠지기만 하는 병에 걸렸다. 거울이든 쇼윈도든 그의 모습이 비치는 것만 있으면 스윙을 하고 연구하는 병이다. 아내는 이런 그에게 “절대 치료할 수 없는 병이고 말기 판정을 받아 마땅하다”라며 안쓰러워하기보단 혀를 끌끌 찬다. 어느 날은 화장실 거울 앞에서 칫솔을 들고 스윙 연습을 하다 아내에게 걸리고 말았다.한심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며 아내는 말했다. “이 웬수야! 바닥에 치약 떨어졌어. 깨끗하게 닦고 나와.” 그는 순간 자기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는 스윙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빈 스윙을 해대며 자가 진단을 하고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선 순간, 에너지 넘치는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과 아이 뒤에서 무언의 압력을 넣는 아내와 마주친 F씨. “여보, 우리 딸이 수학 100점 받았대요!” 그러자 하나밖에 없는 그의 딸은 아빠에게 달려와 안기며 “아빠! 100점 받았는데 맛있는 것 사주세요”라며 애교를 풀가동시켰다. 딸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적 없는 그는 피자를 시켜주기로 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따라 들어온 아내에게 말하길,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90점대도 맞겠는데? 그 녀석, 대견하네. 누굴 닮았을까?” 그러자 아내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100점이 높아? 90점이 높아? 만점 받았다고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든 그는 바로 아내에게 사과했다. “아, 잠시 착각했어. 미안.” 그러자 아내는 방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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