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지 않은 필드의 동반자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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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지 않은 필드의 동반자 유형
  • 전민선 기자
  • 승인 2019.01.2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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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에서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유형을 파헤쳤다.

무한한 자비
여자 둘에 남자 하나. 그날의 멤버는 이랬다.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 전, 셋의 실력을 고하면 조금 잘 맞으면 90타 후반, 조금 안 맞는 날이면 100타 초반으로 도긴개긴! 그런데 이 남자 첫 홀에서 심각한 슬라이스로 OB가 나자 “죄송해요. 스타트 홀인데 한 번만 더 치고 갈 게요”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그녀들은 첫 홀인지라 기꺼이 ‘오케이’를 줬다. 그런데 이 남자, 파3 홀을 제외하곤 거의 매 홀 멀리건을 사용하는 게 아닌가. 심지어 한 번 더 쳐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스스로에게 무한한 자비를 베풀었다. 그래 놓고는 “나 이번 홀에서 파 했어!”, “나이스 버디!” 그게 진짜 자신의 스코어인냥 우쭐해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여자 둘은 속에서 천불이 났다.

그의 드라마틱한 감정 기복
그와 동반 라운드는 이번이 두 번째. 드라이버 샷이 오늘도 들쭉날쭉이다. 하지만 착한 성품을 가진 그이기에 나와 다른 동반자는 느긋하게 지켜봐 주며 팁도 주고, 멀리건도 후하게 주었다. 골프가 자기 자신과 싸움이니만큼 그는 자기가 생각한 대로 샷이 나오면 쾌재를 불렀고, 결과가 좋지 않을 때엔 미간을 찌푸렸다. 그날따라 나 역시 샷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슬슬 짜증이 날 무렵, 그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골프를 하면 사람 성격이 나온다고 했던가? 잘 맞은 어떤 홀에선 “세 번 만에 온 그린 했어요! 이번 홀에서 파를 잡을 수 있겠는데요?”라며 하얀 치아를 드러내 웃으며 남의 속도 모르고 즐거워하더니 샷이 잘 안 될 때는 잔디에 화풀이를 해대며 성깔을 부렸다.

오늘은 부활절
지인 중에 ‘Mr. 알’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가 한 명 있다. 그에게 이 별명이 붙은 건 OB가 나기만 하면 매의 눈을 피해 갈 순 없을 거라는 듯, 힘들게 공을 찾아낸 것처럼 명연기의 진수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일명 ‘알까기’다. 얼마 전에도 Mr. 알이 친 공이 오른쪽으로 슬라이스가 나 언덕 쪽으로 날아갔다. 우리는 그의 나쁜 버릇을 고쳐 줄 작정으로 공을 찾는 시늉을 했다. 그제야 그는 OB가 난 것을 인정하며 함께 페어웨이로 들어와 OB 티를 향해 걸었다. 수십 미터를 더 걸었을까? Mr. 알이 소리쳤다. “내 공 여기 있어! 나무를 맞고 튕겨서 카트 도로를 타고 내려왔나?” 우리 모두 황당해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너나 찍으세요
나는 내 얼굴 찍는 일에 관심이 없다. 그다지 흥미도 없고 힘들 뿐이다. 그래서 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것이라고는 음식과 풍경 사진 정도다. 사실 ‘셀카’뿐 아니라 사진 찍히는 것 자체가 좀 부담스럽다. 나는 그냥 그런 유형의 사람이다. 이런 내게 최악의 동반자가 있다. 매번 라운드에 나갈 때마다 단체 사진을 찍길 바라는 사람이다. 심지어 그는 최대한 코믹한 표정과 제스처를 제안한다. 캐디는 이런 그 때문에 배꼽을 잡으며 웃지만 그때마다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진다. 내 나이 어느덧 마흔 중반에 접어들었다. 어느 날은 상대를 티잉 그라운드에 눕힌 후 입에 티를 물게 하곤 볼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그는 어드레스를 취한다. 그 유치한 사진은 여전히 그의 SNS에 업로드되어 있다.

[전민선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jms@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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