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박성현, 낯선 시선과 고민 그리고 새로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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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박성현, 낯선 시선과 고민 그리고 새로운 목표
  • 고형승 기자
  • 승인 2019.02.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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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달라’ 박성현과 오랜만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박성현은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냈고 그동안 그가 느꼈을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지금부터 그를 둘러싼 다양한 골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박성현이 미국에서 고심 끝에 분양 받은 로트바일러종의 강아지 ‘아토(사진)’는 태어난 지 1년 6개월이 됐다. 최근 비행기에 실려 한국 땅을 밟은 아토가 촬영장에 나타나자 순간 정적이 흘렀다. 강아지라고 하기엔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개를 무서워하는 골프다이제스트 편집장이 이날 스튜디오에 찾아오지 못한 이유도 순전히 이 녀석 때문이다.) 촬영 틈틈이 박성현과 장난치는 모습은 영락없는 강아지였다. 박성현의 말이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 들어요. 경기를 위해 돌아다니다 보면 지칠 때가 많거든요.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강아지는 한결같이 반겨주니까 정말 좋아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라 든든해요.” 

그는 개를 두 마리 키우고 있다. 아토와 다온(래브라도레트리버)이다. 다온이는 원래 한국에서 키우던 개로 ‘다 온그린시키겠다’는 뜻의 나름대로 참신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모두 귀여운 남동생이라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이 무척 천진난만해 보였다. 재미있었던 건 다른 대화를 나눌 때보다 말의 템포가 빨라지고 다소 수다(?)스럽기까지 했다는 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에디터의 입꼬리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그리고 동시에 가슴 한쪽이 아려오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강아지와 있을 때는 장난도 치고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데 왜 사람들과 관계에서는 늘 경직되었던 걸까?’ 

물론 에디터는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 이른바 소심한 성격을 가진 박성현을 알고 있었던 터라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 어림짐작하고 있었지만 직접 그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다.  

“사실 늘 조심스러운 면이 있어요. 제가 먼저 쉽게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힘들었죠. 이상하게 아토에게는 자연스럽게 애정 표현이 이뤄지는데 사람한테는 조금 서툴고 항상 무뚝뚝하게 대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상대도 저를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거죠.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영어가 유창한 편이 아니라 미국에 처음 건너간 2017년에 박성현은 무척 힘들고 외로웠다. 내성적인 그의 성격이 프로 데뷔 이후 조금씩 나아지던 찰나 다시 찬물을 끼얹고 만 순간이었다. 다시 박성현은 움츠러들었고 사람들 앞에서 쭈뼛거리곤 했다. 미디어와 인터뷰는 고역이었고 갤러리의 시선도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마음이 안정을 찾지 못하자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도 함께 사라졌다. 언제나 밝을 수만은 없지만 늘 괴로울 수도 없는 일 아니던가. 그러던 어느 날 박성현은 개를 분양 받는 것에 관해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집을 많이 비워야 하기 때문에 개가 외로울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하지만 박성현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아토를 데리고 온 건 정말 잘한 결정인 것 같아요. 일단 제 외로움을 해소해 줬고요. 아토가 온 이후에 우승을 많이 했으니까 제 성적에도 현격한 공을 세운 셈이죠.” 

이름이 불리자 시무룩하게 엎드려 있던 아토가 박성현을 향해 커다란 몸을 일으켜 다가오더니 점프를 하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사진 촬영을 앞둔 터라 아토의 털이 옷에 묻을까 봐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그 행동이 자신과 놀아 주는 거라고 생각이 드는지 더욱 달려들었다. 그 둘의 씨름은 한동안 계속됐다.   

오해의 시선 

세계적인 골프 선수 중 몇몇은 이런저런 사유로 언론과 인터뷰를 정중히 고사한다. 대부분 카메라 울렁증이나 말주변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경우다. 하지만 미디어와 불편한 관계로 엮이는 게 싫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경우도 있다. 선수나 소속사로서는 한 매체와 인터뷰를 허락했다가 이른바 물을 먹은(?) 나머지 미디어가 득달같이 달려들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럽다.  

박성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성현과 차분히 마주 앉아 인터뷰한 매체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다. 모든 매체가 스타플레이어와 인터뷰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하다. 최근 3~4년 사이 한국 골프를 대표하는 주요 키워드 중 ‘박성현’은 절대 빠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국내를 넘어 세계 골프 랭킹 1위까지 오르자 ‘박성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항상 팬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다 보니 모두 박성현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는 쉽게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일단 심하게 낯을 가린다는 게 문제였다. 박성현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언론사 기자와 단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의 말이다.  

“저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심하면 몸이 떨릴 지경이었으니까요. 큰 문제라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밝게 인사하려고 노력해 봤습니다.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보기도 했어요. 지금은 아주 좋아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에 간 이후 다시 소극적으로 변해 버렸다는 거죠.” 

박성현을 필드에서 만난 선수나 골프 관계자 그리고 일부 팬은 그의 인상이 “차갑다”고 말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심지어 “너무 거만하게 행동하는 거 아니야?”라거나 “뜨더니 사람이 변한 것 같아”라며 직설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뜬(?) 사람에겐 늘 따라붙는 악의적 루머나 오해에서 비롯된 사례다.  

물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의 성격에서 시작된 악순환의 고리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를 자주 하지 않으니 그에 관한 갖가지 억측이 난무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자되거나 실제가 아닌 일이 눈덩이처럼 커져 사실인 양 인식되는 현상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그로서는 정말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시절 박성현은 축구부 코치가 탐낼 만큼 뛰어난 운동신경과 활발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차분한 것과 거리가 먼 딸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바꿔 보려고 어머니는 골프를 시켰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바뀌어도 너무 바뀐 것이다. 낯을 심하게 가리고 소심한 성격으로 변했다.  

“아마 축구 선수가 됐다면 제 성격은 많이 달랐을 거예요. 골프는 팀 스포츠가 아닙니다. 그래서 더 낯을 가리고 스스로 고립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프로 데뷔 후 드라이버 샷이 잘 맞지 않을 때는 더 움츠러들고 마음이 약해져 눈물도 자주 흘렸습니다.” 

그는 골프다이제스트와 인터뷰(2013년 8월호)에서 그렇게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2부투어에서 활동 중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모습의 최근 박성현을 떠올리면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박성현이 언제나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승승장구한 엘리트 골퍼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그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2부투어에서만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지금처럼 누구나 인정하는 ‘남다른’ 플레이를 매년 펼쳐 온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필드에서 늘 주눅 들고 불안에 떠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 남몰래 눈물 흘리던, 혹독하고 잔인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는 그때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정말 그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골프가 점점 재밌어지고 있어요. 내년에는 1부투어에 진출해 신인상을 받고 싶어요.” 

안타깝게도 이듬해 그는 백규정, 고진영, 김민선, 서연정 등에게 밀려 KLPGA투어 신인상 부문 8위에 그쳤다. 하지만 2년 후인 2016년, 박성현은 상금 랭킹 1위에 오르며 국내 무대를 평정했다.   

낯설고 무거운 공기 

2017년부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약하며 메이저 대회 2승(US여자오픈, KPMG위민스PGA챔피언십)을 포함해 통산 5승을 기록한 박성현은 1년에 한두 번씩 KLPGA투어에 초청받아 출전한다. 그의 말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제가 플레이하던 곳이데도 낯선 공기가 느껴져요. 그럴 땐 ‘아, 내가 이제 LPGA투어 선수가 됐구나’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모르는 선수도 늘었으니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모르는 얼굴이 많아졌다는 건 그만큼 투어가 새로운 힘을 얻었다는 뜻이니까 좋은 일이죠.” 

그는 우리나라 대회장의 공기가 더 무겁다고 강조한다. 자유로운 분위기로 골프장을 누비는 외국 선수들보다 한국 선수들은 골프를 대하는 자세가 무척 진지하다는 것이다. 그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말한다.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선수가 모이는 곳이 바로 LPGA투어입니다. 대부분 외국 선수는 대회가 끝나면 밤새 파티를 즐기기도 하죠. 한국 선수는 그보다 골프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처음엔 적응이 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내가 지금까지 너무 심각하게 골프를 해 온 건 아닌가’라며 혼란이 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외국 선수의 자유로운 모습이 좋아 보이지만 저는 아직까지 진지하고 심각하게 볼을 치는 걸 더 선호해요.”  

아직 채워야 할 게 많은 사람 

박성현은 슬럼프에 관해 무척 의연하다. 누구에게나 슬럼프가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도 약 3년간 입스로 고생하며 힘겹게 슬럼프 기간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말 한순간이죠. 아무리 볼을 잘 치던 선수도 한순간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한 번 정도는 더 슬럼프가 찾아올 수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또 분명 그걸 다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도 믿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그 기간이 훨씬 짧아지겠죠. 물론 그 기간에 정신적으로 아주 황폐해지겠지만요.” 

그는 입스의 원인을 ‘부담감’에서 찾았다. 누구든 잘하고 싶을 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잘하고 싶은 순간에 못할 수도 있다. 미치도록 잘하고 싶은 순간에 샷이 빗나가면 그것이 입스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그는 경고한다.  

“그런 힘든 시간을 겪어야 자신이 잘하고 싶을 때 잘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정말 좋은 약이었죠. 저는 아직도 배우고 채워 나가야 할 게 많은 사람입니다.”  

훈련에 관한 고민 

최근 몇 년간 선배 선수들이 은퇴를 선언하자 박성현 역시 ‘은퇴’라는 단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가 은퇴를 바로 하려고 했다는 뜻은 아니다.  

“가끔 은퇴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합니다. 정말 마음이 아플 것 같아요. 골프가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만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공허할 것 같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은 골프를 둘러싼 모든 상황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그걸 좋아하지만 선수에 따라서는 그로 인해 일찍 지치기도 할 것 같아요. 그런데 골프에 관한 애정이 컸기 때문에 그만둘 때도 그만큼 미련이 많이 남는 게 아닐까요? 마음이 아프다는 게 어쩌면 당연한 감정 같아요.” 

그는 시즌을 앞두고 갖게 될 훈련에 관해 고민하고 있었다. 매번 비슷한 훈련을 반복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식으로든 이번에는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습 시간부터 환경 그리고 스윙에 관한 생각까지 변화를 줘야만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겨울 훈련은 집중을 정말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때는 정말 예민해져요. 말수도 거의 줄어 하루에 한마디 겨우 하는 날도 있습니다. 저는 연습할 때 비슷한 성향을 가진 선수와 연습을 하곤 합니다. 서로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기 때문에 같이 연습하고 있었다는 걸 잊어버릴 때도 있어요. 정말 웃기죠? 독일의 카롤리네 마손과 자주 연습하는데 집들이 때 그를 초대해 한국 음식을 대접한 적도 있어요. 다행히 잘 먹더라고요.”  

올림픽 금메달 

박성현은 2년간 LPGA투어에서 우승을 다섯 번 하면서 그때 느낀 몰입감을 잊지 못한다.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만 보이는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타이거 우즈가 80승을 거뒀다는 건 제가 경험한 바로는 여든 번의 몰입에 성공했다는 겁니다. 그건 그보다 많은 수의 몰입을 시도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 중 아주 일부만 성공한 셈이죠. 그렇게 따져 보면 저는 아직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 경기에만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이른바 무아지경에 빠지는 버튼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 찾지 못했어요. 올해 그 버튼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그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국내에서는 아쉽게 놓친 신인상과 올해의 선수상도 받고 LPGA투어 상금 랭킹 1위에 올랐으며 메이저 대회 우승도 두 번이나 했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무엇보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어요. (박)인비 언니가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며 정말 부럽기도 하고 뭉클한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어요. 지금은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이 제 첫 번째 목표입니다.” 

박성현 
나이 : 26세
신장 : 172cm
소속 : 세마스포츠 마케팅
후원 : 솔레어리조트&카지노
우승 : 국내 10승, 해외 5승
현재 : 세계 랭킹 2위

[고형승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tom@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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