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점층법, 트랄리 [해외코스: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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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점층법, 트랄리 [해외코스:1408]
  • 김기찬
  • 승인 2014.08.2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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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점층법, 트랄리 [해외코스:1408]

사진_트랄리 제공

 

 

아일랜드 서해안은 마치 한국의 서해안처럼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을가졌다. 특히 대서양의 험한 바다는 겨울 북서풍과 함께 이곳 해안선을 할퀴어 마치 손가락처럼 깊은 만과 뾰족한 반도를  만들었다. 이곳에 바람과 파도가 실어온 모래가 쌓여 모래언덕이 형성되었고, 그곳에 오래 전부터 골프장이 들어섰는데, 그 수가 무려 40여 곳이 넘으니 가히  코스의 요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밸리뷰니언, 워터빌과 함께 손꼽히는 곳이 트랄리 골프클럽이다. 글_김상록

 

 



트랄리 Tralee는 1896년 9홀 코스로 시작했다. 아놀드 파머가 1984년에 재설계에 참여한 뒤 재개장했고, 1번 홀로 가는 길에 파머의 동상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코스 정도로 알고 있었다. 클럽하우스는 여느 링크스 코스처럼 소박해 멤버들이 단체 행사를 하기조차 협소한 아담한 2층 건물을 가지고 있다. 그저 시골스러운 소담한 모습이다. 워낙 이름 유명한 코스가 주변에 널렸으니 많이 알려지지 않은 트랄리는 별로인 줄 알았다. 그러나 라운드를 하면서 하찮게만 보았던 선입견이 주는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트랄리는 주변의 유명 코스 못지않게 2012년 ‘미국 제외 세계 100대 코스’에서 82위에 오른 코스다. 파머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1번 홀로 나갔다. 연습장과 나란하게 달리는 파4 홀은 어수선하다. 그러나 2번 홀 티박스에 올라가는 순간 숨이 막힐 정도로 바다가 주는 감동이 엄습한다. 596야드의 파5 홀이다.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영화 <라이언의 딸>을 촬영했다는 긴 백사장이 600여 야드 오른쪽 바다를 끼고 50여 미터 절벽 위 페어웨이와 나란하게 남서쪽으로 달린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백파 白波가 흩어지는 백사장 위를 말들이 달린다. 말발굽이 만든 발자국을 바닷물이 쓸고 지나간다. 바람에 날리는 그들의 스카프. 지금 막 그 영화를 촬영하는 것 같다. 호흡을 가다듬고 숨을 길게 들이쉰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파노라마를 가슴 속 깊이 간직하기 위해서다. 그간 도시생활에서 찌들었던 폐를 맑은 공기로 정화하는 의식은 마치 성수를 몸에 붓는 행위인 것 같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린 뒤로 트랄리베이의 전경이 펼쳐지고,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그곳부터 해발 851미터의 바우테르가움산과 835미터의 카헤르콘리산의 위용이 압도한다. 겨울이면 산봉우리에 눈이 내려 더욱 장관이라 한다. 언젠가 빵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위스키를 한 모금씩 들이키며 세찬 바람 속에서 볼을 치는 상상을 한다. 더 즐거운 홀일 수밖에 없다. 링크스 코스 인접한 곳에 이렇게 높은 산은 처음인 것 같다.

 

 



경치에 빠져 정신줄을 놓으면 자연이 선사한 응징의 벽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티박스에서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낮은 돌담이 보인다. 마치 제주도 밭의 집안 경계 돌담처럼 소담하다. ‘그 돌담 우측으로 공략하라’는 캐디의 조언을 듣고 너무 무리하게 우측을 보다간 바다와 러프 중간쯤에 박아둔 하얀 말뚝 밖으로 볼이 나가게 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팁을 주자면, 링크스 코스는 아무리 긴 홀이라도 페어웨이만 지키면 런이 많아 충분히 거리가 난다. 따라서 무리하게 러프를 넘어 공략하지 말아야 한다. 저승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난 2006년 타이거 우즈가 로얄리버풀에서 아이언만으로 티 샷해서 우승했던 기억이 새롭다. 정확한 샷이 관건이지 거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번은 194야드의 파3 홀로 별칭이 ‘디캐슬 The Castle’이다. 그린 좌측으로 흔적마저 희미한 1400년대의 타워가 있는데, 타라성 Castle Tara의 흔적이란다. 트랄리를 가장 잘 표현한 시그니처 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랄리 항구로 향하는 길목 세찬 조류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배고픈 바다가 먹잇감을 기다리며 포효하는 형국이다. 그린 우측이나 그린 뒤로 볼이 간다면 생환은 불가능하니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좌우로 숨어있는 그린 앞 3개의 벙커는 초반 라운드를 망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4, 5번 홀은 모두 파4 홀로 링크스 내부를 관통한다. 별다른 감흥은 없지만, 나머지 빛나는 홀을 위한 조연으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4번 좌측과 5번 홀 좌측 라인으로 돌담이 있는데 이는 ‘전설상의 신’이란 쿠크린 Cuchulainn이 돌을 던져 그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라 한다. 실제 가까이서 그 돌담을 보면 쿠크린의 손자국이 있다 한다. 믿고 싶지 않지만 캐디의 설명이 재미있고 고맙다. 7번 홀은 트랄리만을 바라보는 내리막 파3(157야드) 홀이다. 경관에 놀라 세세한 공략을 잊으면 대가를 치른다. 3단 그린이라 볼이 어디에 떨어지느냐가 관건이다. 캐디와 공략에 대해 상의를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전반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트랄리의 특징은 후반에 들어와 전형적인 링크스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전반부는 그저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후반부는 코스를 끼고 도는 언덕에 무성한 링크스 잔디가 마치 사자의 갈기처럼 바람에 흔들린다. 11번 홀(파5, 595야드)은 에스 S자 형태의 오르막 도그레그다. 길이는 두 번째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으로 올라가는 홀이라 넉넉한 드라이버 샷이 요구된다. 홀 별칭도 ‘파머의 꼭대기 Palmer’s Peak’. 골프장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 핸드폰이라도 꺼내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다. 티 샷보다는 세컨드 샷에 주의가 요망된다. 가파른 오르막에 그린이 보이지 않는데 그나마 S자 도그레그라 더더욱 IP 공략이 쉽지 않다. 트랄리는 파3 홀이 모두 아름답다. 13번(파3, 159야드) 홀은 약간 오르막인데, 그린 앞은 마치 원자폭탄이 터진 흔적과도 같은 깊은 분화구가 무성한 풀로 덮여있다. 그들은 이곳을 ‘아이리시 그랜드 캐년’이라 한다. 샷이 짧은 순간 찾을 생각은 잊어야 한다. 볼을 찾기 위해 그 분화구로 들어가는 일은 폭탄이 터져 화염이 자욱한 연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그린 뒤는 직벽의 언덕 깊은 러프가 기다리고 있다. 분화구에 볼을 넣지 않기 위해 긴 클럽을 잡는 엄살꾼을 응징이라도 하듯, 벽면처럼 지키고 섰다. 맞바람이 불면 도저히 가늠하기 힘든 코스이니 ‘천당과 지옥이 한끗 차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 샷을 해야 한다. 15번 홀 티박스로 걸어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파4지만 짧은 300야드 홀이니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홀에 대한 생각은 없어지고 만다. 티박스에 오르는 동안 펼쳐진 끝없는 백사장이 우리를 압도한다. 북서쪽으로 펼쳐진 백사장의 규모에도 놀라지만, 그 백사장을 둘로 가르고 있는 바닷물의 푸른색이 우리를 경탄케 한다. 투명한 그 푸른 물빛이 백사장을 얇게 덮고 있는데 그 어떤 언어로도 그 장관을 표현하기 어렵다. 300야드는 링크스 코스에서 잘 굴러가면 닿는 거리다. 그러나 아놀드 파머가 짧은 홀을 파4로 만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확하지 않으면 긴 러프가 볼을 삼킨다. 특히 슬라이스가 나는 순간 잠정구를 준비해야 한다. 아이언으로 레이업을 하면 파가 보장되지만, 드라이버로 원온을 노리는 도전자에게는 더블 파를 안기는 홀이다.

 

 



바닷새의 노래를 들어라 15번, 16번 홀 어느 하나도 소홀하게 다룰 수 없다. 16번(파3) 홀은 그린이 좌우로 여유가 없고 우측은 바로 백사장으로 이어지는 OB 지역이다. 폭이 수백 미터는 족히 될 듯한 백사장 표면으로 끝없이 밀려오는 백파의 행렬을 보노라면 태고에서 오는듯한 아련함을 느낀다. 17번 홀은 후반부에서 가장 터프한 홀로 별칭은 ‘라이언의 딸 Ryan’s Daughter’이다. 영화를 찍은 백사장은 17번 홀 티박스에서 그린 뒤, 또 2번 홀 그린까지 연결된다. 두 홀을 연결하는 오른쪽 전체가 백사장이다. 이곳에서는 파도 소리에 귀가 밝아지는 느낌이다. 바닷가 링크스에 둥지를 튼 바닷새는 그 소리가 아주 청아하고, 크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자신들의 지저귐이 파도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까봐 아주 맑고 높은 톤의 소리를 낸다. 링크스 코스에서 꼭 귀 기울여 들어보길 권한다. 가슴을 씻어내는 듯한 그 청아함을. 17번 홀은 오르막 우측 도그레그인데 IP 지점을 잡기가 어렵다. 드라이버보다는 3번 우드로 티 샷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 좌측에는 티박스에서 보이지 않는 아주 깊은 러프가 웅덩이처럼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클럽하우스를 보고 올라가는 마지막 18번 홀은 승부처로서는 김이 좀 빠진다. 아쉽다. 대신 뒷바람이 부는 날이면 투온에 이글도 가능하니, 도전하는 즐거움은 있다. 클럽하우스 2층으로 올라가 캐디와 기네스 한 잔을 나눈다. 통상 캐디는 클럽하우스 라운지나 바에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회원이 캐디를 대신해주면 그렇지 않다. 함께 라운드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마시는 맥주 한 잔은 언제나 정겹다. “다음에는 우리와 한 번 치자”는 캐디의 제안을 안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Information

트랄리골프클럽 Tralee Golf Club 코스 : 파72, 6969미터  설계 : 아놀드 파머, 1896년 개장, 1984년 재개장. 특이 사항 : 카트와 캐디 가능  주소 : 웨스트버로우 아드퍼스 트랄리 케리 아일랜드 West Barrow Ardfert Tralee Co. Kerry Ireland 홈페이지 : traleegolfclub.com 전화 : + 353 (0) 66 713 6379 위치 : 케리공항에서 35킬로미터. 자동차로 48분, 샤논 Shannon 공항에서 130킬로미터. 약 2시간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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