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X] 예의를 지켜주길 부탁드립니다!
  • 정기구독
[미스터 X] 예의를 지켜주길 부탁드립니다!
  • 인혜정 기자
  • 승인 2019.05.15 10: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골프 대회에 참가할 때면 아내는 물론 어린 두 아이도 동행한다. 우리에겐 철칙이 한 가지 있다. 선수 만찬 외에 아이들을 절대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것.

라운드를 마치고 인터뷰가 진행되는 곳에 단 5분도 나오는 걸 원치 않는다. 어쩌면 내가 철이 들었다는 뜻일지도 모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비속어가 선수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심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클럽하우스나 호텔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선수는 나뿐만은 아니다.

관중에게 주먹을 날리는 상상도 해봤다. 어느 해인가 피닉스오픈의 토요일에는 정말 그럴 뻔했다. 한낮이었으니 이론적으로는 아직 만취할 시간은 아니었지만 티잉 그라운드에서 내려오는데 웬 남자가 당시 3개월밖에 안 된 딸에게 저속한 말을 외쳤다. 보통은 못들은 척 지나쳐 가지만 그날은 걸음을 멈췄다. 피가 솟구쳐 새빨개진 얼굴로 갤러리를 바라봤다. “지금 말한 사람 누굽니까?” 찍소리도 없었다.

최소한 평균 수준의 도덕과 품격을 갖췄다는 사람들이 왜 그런 인간을 보호해주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날 라운드가 후반에 접어들었을 때 셰리프가 우리 그룹에 합류했다.

나는 그에게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만약 내가 2번 아이언으로 그 남자의 중요 부위를 후려쳤다면 어떻게 되는 거였냐고 물어봤다. 셰리프는 둘을 떼어놓은 다음 우리 모두를 경찰서로 데려갔겠지만 나를 형사 고발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그 멍청이가 한 말이 그 정도로 심했다.

대부분, 내가 플레이할 때 보안요원이 동행하는 일은 없다. 경찰의 호위를 받는 건 거물급 선수와 한 조가 되거나 일요일 막판에 플레이에 나설 때뿐이다. 배지를 차고 무장을 한 사람이 두 명 정도 있다고 해서 소란이 제지되는 건 아니다.

지난해 초, 제이슨 데이와 플레이하고 있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세 명이 로프를 넘어와 우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캐디들이 그 사이로 들어왔고 우리를 따라오던 순찰요원 두 명의 걸음도 빨라졌다.

그 불량배들은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만 단번에 약에 취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데이를 겨냥한 혐오 발언을 중얼거리고 그의 부인도 언급했다. 대체 투어에서 제일 사람 좋은 축에 속하는 제이슨을 왜 표적으로 삼는지 모르겠지만 프로 골퍼를 욕하고 조롱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 입장권 값에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데이는 침착한 태도로 순찰요원에게 “저 사람들은 이제 집에 갈 때가 된 것 같네요”라고만 말했다. 지난 봄에 저스틴 토머스가 팜비치에서 우승할 때는 어떤 팬이 막판에 몸을 날리는 걸 전 세계가 지켜봤다. 하지만 그런 일은 매주 벌어진다.

투어의 보안요원들은 정말 훌륭하다. 각종 문제와 협박을 사전에 처리해 우리가 보거나 듣는 일이 없도록 한다. 하지만 멍청한 팬 한 명이 신경을 건드릴 수 있다. 버디 세 개를 연속으로 기록하고 관람석 옆을 지나가는데 음료수가 머리 위로 쏟아진다. 리듬이 흐트러진다. 내가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터득하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젊은 친구 중에는 우리 투어의 분위기가 미식축구나 농구처럼 되는 걸 좋아하는 선수도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그걸 재미있다고 여기고 거기서 에너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골프는 조금 특별했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람이다. 우리는 평범한 스타디움에서 플레이하는 게 아니고 일반적인 입장권을 구입해도 최고의 스타를 2~3m 앞에서 볼 수 있다. 그런 접근성에는 약간의 정중함을 지불해야 마땅하다.

언제쯤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할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쁜 말을 어떻게든 알게 될 10대 초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그때가 되면 학교를 빠지기 힘들어질 테고 여름방학에 골프 대회나 따라다니는 걸 좋아할지도 의문이다. 그건 안타까운 노릇이다. 아이들이 아빠가 선전하는 모습을 지켜본 기억을 간직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기억을 갖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아이들을 노출할 생각은 없다.

글_미스터 X / 정리_인혜정 골프다이제스트 기자(ihj@golfdigest.co.kr)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잡지사명 : (주)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제호명 :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2, 6층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사업자등록번호: 516-86-00829    대표전화 : 02-6096-2999
잡지등록번호 : 마포 라 00528    등록일 : 2007-12-22    발행일 : 전월 25일     발행인 : 홍원의    편집인 : 전민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전민선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민선
Copyright © 2024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ms@golfdigest.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