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XG의 밥 파슨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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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XG의 밥 파슨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 인혜정 기자
  • 승인 2020.02.2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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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XG의 밥 파슨스가 골프와 해병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재향군인의 날 주말은 미국 해병대 창설 244주년 기념일이었다. 이날 총알 머리 스타일의 상병 밥 파슨스는 사병으로서 두 번째로 ‘영원한 해병’의 영예를 안았다. 그건 대단히 영광스러운 타이틀이지만(비록 모든 해병이 영원한 해병이기는 해도) 설리 설렌버거의 영웅적인 허드슨강 착륙 지점이 눈에 들어오는 뉴욕시에 정박한 항공모함 인트레피드호의 갑판에 선 파슨스는 겸손하게 상을 받았다.

“해병대는 내게 아무것도 빚진 게 없다.” 파슨스는 말했다. “나야말로 해병대에 모든 것을 빚졌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일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사업체도, 자선 활동에 전념하며 스콧데일내셔널골프클럽과 장비 회사인 PXG(파슨스 익스트림 골프)에서 시작한 꾸준한 골프 관련 행보도 그는 그 뿌리를 해병대에서 찾았다.

한때 골프계에는 해병대 출신이 많았다. 옷장 서랍마다 해병대의 푸른색 예복을 차려입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은 남자들의 사진이 넘쳐났다. 예를 들면 제이 허버트, 토니 레마, 재키 버크 2세 그리고 리 트레비노 같은 골퍼들이었다. PGA챔피언십 우승자 명단에 유일하게 라이어널과 함께 형제가 이름을 올린 것으로 유명한 제이 허버트는 이오지마로도 널리 알려져야 마땅하다. 그는 이오지마 전투에서 파편을 다리에 맞아 주먹 크기만큼 찢겨져 나갔고 저격수가 쏜 총알은 헬멧에 박혔다. 그리고 전투 중에 부상한 동료 네 명을 한 번에 한 명씩 해변으로 구출했다.
 

제이는 피로 물든 섬의 기억과 그곳에서 받은 상이군인 훈장을 나무 상자에 넣어두고 두 번 다시 열지 않았다. 1997년에 제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PGA챔피언십 3회 우승자인 데이브 마는 말했다. “제이가 오랜 세월에 걸쳐 나에게 얼마나 많은 교훈과 가르침을 주었는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는 나를 돌보는 것으로 내 아버지가 그에게 주었던 샌드 웨지의 빚을 갚았다. 제이는 단순한 챔피언 골퍼가 아니었다. 그는 인생의 챔피언이었다. 잘생기고, 춤추는 걸 좋아했다. 투어 선수들의 부인들도 그와 춤을 추기 위해 줄을 섰다. 그들은 모두 제이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아내인 바버라만을 사랑했다. 변함없이 진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해병대였다.”

마스터스 우승자 재키 버크는 라이더컵 팀의 대들보였고 최고로 손꼽히는 미국 팀 단장을 맡아 승리를 견인했다. 그의 해병대 동료들은 재키를 테드 크롤(육군 출신으로 세 개의 상이군인 훈장을 받음) 같은 선수들의 마음에 심어주었다. 그들의 특징은 개인적으로 평범한 골퍼라는 평가를 받지만 팀의 일원이 되면 전혀 다른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선수가 아닌 팀원을 선발할 것이다.” 버크는 말했다. 팀원이란 자신의 팀이 언급될 때마다 “우라”를 외치는 사람인데, 그건 ‘안녕히’ 또는 ‘다시 만날 때까지’라는 뜻이다.

인트레피드에서 열린 만찬 중에도 해병대의 다른 팀이 언급될 때마다 “우라”가 울려 퍼졌다. 현 사령관인 데이비드 H. 버거 장군과 구 사령관인 제임스 아모스(퇴역) 장군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해병대 500여 명이 은검으로 244주년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지금도 샌디에이고나 패리스 아일랜드, 캠프 레조이네나 콴티코에 정박한 항공모함 갑판 위에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해병대의 군가를 불렀다.
 
몬티주마의 궁에서 파슨스가 가장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는 볼티모어에서 자랐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밥이 여덟 살이 되던 해에 스물다섯의 쿼터백 조니 유니타스가 이끌었던 콜츠 팀이 서든데스-오버타임 우승으로 NFL 챔피언에 등극해서 온 마을이 들썩였다. 그 팀의 리더였던 디펜시브 엔드 지노 마르체티는 벌지 전투에 파병되었고 돌아와서 대학에 진학했다. 중요한 경기에서 마지막 패스를 잡아냈던 타이트 엔드 짐 머첼러는 한국전의 해병이었다. 디펜시브 태클 아트 도너번은 괌에서 해병으로 복무했다.

파슨스는 5학년 때 유급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폴리텍고등학교 시절에도 학교를 떠나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밥은 패터슨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것도 선생님들에게 해병대 입대 서류를 보여주었던 게 주효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병 훈련소로 떠나기 전에 밥은 마르체티가 하나에 15센트짜리 햄버거 가게를 열고(모두가 지노의 가게로 갔다!) 성공적인 사업가로서 행진을 시작하는 걸 봤다. 

베트남에서 파슨스의 야망은 소박했다. 다음 날 우편물을 받는 것이었다. 그는 조금 반항적이었고 이상한 것에 자부심을 느꼈는데 이를테면 선행 메달을 받지 못한 걸 자랑스러워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권위에 굴복했고 훈련을 받아들였다. 밥은 상이군인 훈장을 받고 집에 돌아왔지만 시대는 그들을 반기지 않았다. 그는 워싱턴 D.C.에 세워진 예술가 마야 린의 베트남전 기념비를 여러 번 보러 갔다. 그는 아무에게도 눈물을 보여주지 않을 목적에 늘 자정 무렵에 그곳을 찾았다. 5만8000여 명의 남녀들이 고국으로 돌아온 그를 환영해주었다.

파슨스는 국가보조금으로 볼티모어 대학에 진학했고 이번에는 우등으로 졸업했다. 지하실에서 컴퓨터 프로그램 작성법을 독학한 그는 독특한 사업을 연이어 구상한 끝에 미국의 도메인 등록 및 대여 업체인 고대디를 설립했다. 그러면서 많은 돈을 벌고 그만큼 많이 기부했다. 특히 해병대의 취지에 부합하는 곳을 후원했다. 그는 인트레피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10센트가 있는 한 해병대를 위해 5센트를 쓰겠다.”

트레비노가 어쩌면 해병대 출신의 마지막 위대한 골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조금 슬프다. “해병대는 내 인생에 일어난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다.” 리는 말했다. “내가 입대했을 때는 그곳에서 버티기에 충분히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는지 시험했다. 들어가자마자 15분 동안 턱을 얻어맞았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서 차렷 자세로 섰다. 그런 것 때문에 낙담할 사람이 아니었다. 집에서는 더 심하게 맞고 자랐다.”
 
트레비노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는데 그가 학교에 가는 것을 신경 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상당히 영리했지만 주위에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집에 있어도 아무것도 없고 학교에 가도 아무것도 없었다. 다들 농장 출신이었고, 내가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누구 하나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병대는 달랐다. “사실 나는 규율을 원했던 것이다.” 그는 말했다. “요즘 아이들도 말썽을 일으키다가 감옥에 가지만 그중에도 규율을 원하는 아이들이 많다. 규율이란 관심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지 모르겠지만 내게 부족한 게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 군대를 인생의 진로로 여기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지만 규율의 가치만은 여전하다.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인 얼은 육군 중령으로 베트남에서 13개월씩 두 차례 복무했다. 10년에 걸친 타이거의 야인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메일을 보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입대하는 게 나을 뻔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답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생을 군대에 갔더라면 어땠을까 궁금해하며 살아왔습니다. 우리 재단 행사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프로 골퍼가 되지 않았으면 뭘 했겠느냐는 것인데 그럴 때마다 저는 똑같이 대답합니다. 특수부대에 들어갔을 거라고. 어쩌면 아버지처럼 그린베레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육군특수부대 사람을 몇 명 아는데 그들이 훈련하는 걸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그들이 친구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허버트, 버크, 트레비노 그리고 파슨스라면 이런 정신이 재건을 위한 토대가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고 말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라.

글_ 톰 캘러핸(Tom Callahan) / 정리_인혜정 골프다이제스트 기자(ihj@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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