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캐디] 17번이나 해고된 '극한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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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커버 캐디] 17번이나 해고된 '극한직업'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0.04.29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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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한다는 것은 복권에 당첨될 수 있는 기회다."

프로 골프 대회에서 캐디백을 멘다는 것은 쉴 틈 없이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의 20년간 캐디로 일하다 보니 이제 완전히 지쳤다. 그렇다고 열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미국프로골프(PGA)와 하위 투어에서 18명의 선수와 함께 일할 수 있었는데 그중 네 명은 장기 계약이었다. 나는 17번이나 해고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내 동료들 사이에서는 꽤 적은 축에 속한다.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에서 일하는 것 말고 이런 이직률을 보이는 다른 직업이 있다면 한번 대봐라.

대개의 경우 파트너십은 원만하게 얼굴을 맞댄 상태에서 깨진다. 스스로 판단하건대 내가 일했던 거의 모든 선수들과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헤어질 때 양쪽 모두 격렬한 감정이 있었다 할지라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이 일은 비즈니스이고 그들은 사업적 측면에서 결정을 내린 것이니까. 또 누구도 완전히 인연을 끊으려 하지는 않으니까. 내가 1년 안에 투어에 복귀시킨 두 명은 한 달 만에 나를 해고했다. 그중 한 명은 다섯 시즌 만에 탈락했다. 

냉정하게 갈라선 일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 나는 내가 담당한 선수에게 71번째 홀에서 8번 아이언 샷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는 9번 아이언을 들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단호하지만 정중하게 그에게 한 클럽 더 길게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9번 아이언으로 샷을 했다. 그의 볼은 그린에 미치지 못했고 그는 이를 다시 그린에 올리는 데 실패했다. 이 홀의 보기로 우리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스코어카드에 서명한 직후 나를 해고했다. 누군가 “나에 대해 믿음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봐, 나도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때 9번 아이언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믿음.

또 다른 선수는 내가 다른 선수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나를 쫓아냈다. 그는 우리가 거의 우승할 뻔한 대회가 끝난 다음 주 문자로 해고 통보를 남겼다. 그는 캐디 킬러로 알려진 선수였기 때문에 너무 마음 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불경스러운 말로 가득한 답 문자를 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1개 사단 병력이 필요했다. 

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걸까? 간단히 말하면 우리의 해고는 선수의 플레이가 잘 안 풀릴 때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피해인 것이다. 스윙을 바꾸는 것보다 우리를 갈아치우는 편이 쉽다. 선수의 나이가 어리고 그의 에이전트나 부모가 그의 결정에 지나치게 많이 관여할 때 특히 더욱 그렇다.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 어린 바비’가 미스 컷을 한 원인은 나 때문이지, 그가 열두 살 난 아이의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 아닌 거다.

다른 경우 선수들은 그저 다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6~7일 동안 때로는 하루 7시간 동안 선수와 함께 지낸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오프코스 행사에도 참여하지만 그냥 밖에서 노는 일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담당했던 대부분의 선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가끔 서로가 지겨워지기도 한다. 특히 플레이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해고를 당할 때는 현재 맡은 선수가 없다는 사실을 다른 캐디, 선수, 토너먼트의 경기 위원들 사이에 널리 퍼뜨린다. 자존심을 내세울 문제가 아니다. 최악의 사태는 백을 메지 않은 채 혹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희망을 안고 대회장에 나가는 것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하는 심연의 암흑이다. 그땐 주어진 일이라면 어떤 것도,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선수가 캐디를 돌아가며 고용한다는 평판을 갖고 있더라도 매주 일을 한다는 것은 복권에 당첨될 수 있는 기회다. 그냥 복권을 던져버릴 수는 없다.

새로 메는 백은 언제나 임시직이다. 적어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대처해야 한다. 아주 작은 동전 하나에 해당하는 성공이라도 거둘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미스 퍼트와 잘못 친 샷 하나하나를 다룬다. 

물론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캐디가 일을 취소하기로 결정할 때도 있다. 결국 우리는 여전히 사람이다보니 그 같은 모욕을 감내할 수 있을 따름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캐디를 때려치운 친구의 사연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웹닷컴에서 아주 잘나가는 선수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 어린 친구는 샷이 짧을 때마다 자신의 캐디를 타박했다. 함께 출전한 세 번째 대회에서 내 친구는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자 자신의 선수에게 어디에 퍼터를 놓으면 되는지 알려준 다음 걸어서 코스를 떠나버렸다. 아마도 뿌듯한 감정도 느꼈을 것이다. 마침내 캐디가 이겼다고.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자동차 열쇠가 골프백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였다. 다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글_조엘 빌 / 정리_서민교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min@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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