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의 감동 에세이…“불과 24살의 내가 오래전에 배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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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의 감동 에세이…“불과 24살의 내가 오래전에 배운 교훈”
  • 주미희 기자
  • 승인 2020.06.0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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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안니카 소렌스탐(오른쪽)으로부터 신인상을 받고 있는 이정은(왼쪽).
지난해 안니카 소렌스탐(오른쪽)으로부터 신인상을 받고 있는 이정은(왼쪽).

지난해 US 여자오픈을 제패하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신인상을 받은 이정은이 감동적인 에세이를 게재했다.

이정은은 2일 LPGA 투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어린 시절부터 프로 골퍼로 성공한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아직 남은 나의 길'이라는 제목의 글로 풀어냈다.

이정은은 "모든 삶에는 전환점이 있고 선택의 갈림길이 있다. 눈앞에 보이는 넓고 안전하며 쭉 뻗은 길을 택할지, 아니면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운 좁고 울퉁불퉁하며 굽이친 길을 선택할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그 여정이 얼마나 큰 차이였는지를 깨닫게 된다"라며 글을 시작했다.

이정은은 9세 때 골프를 시작했다. 이정은은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트럭을 운전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네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장애를 입으셨다. 당시의 어린 나는 아버지가 결정한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당시 아버지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수도, 인생을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새로운 환경에 대해 배우고 적응하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돌아봤다.

이정은의 아버지 이정은 씨는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이정은이 국내 선수 생활을 할 당시 아낌없이 뒷바라지했다.

이런 아버지의 뜻을 오롯이 느낀 딸은 "그 결정은 아버지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내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적었다.

이정은은 "사춘기를 겪는 또래 친구들처럼 12살이었던 나는 골프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떠밀려 배우는 기분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3년 동안 골프를 쉬었다. 그러다가 15살 때 다시 골프를 시작했다. 이번엔 내가 원했고 티칭 프로를 목표로 했다"고 회상했다.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이정은은 고향인 전라남도 순천에서 티칭 프로로 가계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17세 때 한 유명 감독이 학교와 골프를 병행하는 골프 아카데미 기숙사에 들어오겠냐고 제안했다.

이정은은 "그것이 나의 첫 번째 갈림길이었다"라고 떠올렸다.

이정은 가족사진
이정은 가족사진

이정은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서 멀리 떨어지기 싫었다. 사실 좀 무섭기도 했다. '내가 그곳에서 훈련할 만큼 충분한 실력일까?' '서울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까?' 두렵긴 했지만 움직이기로 했다. 내 전환점이었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순천에서 벗어나 부모님에게서 떨어져 새로운 친구들과 우정을 쌓을 수 있다는 것, 공부와 훈련을 할 수 있을 만큼 단련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보다 골프 실력도 훨씬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원래 계획이었다면 19세에 모든 것이 편안하고 친숙한 순천에서 티칭 프로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정은은 다른 방향을 선택했고, 결국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입회했다.

프로 입문 후는 승승장구였다. 2016년 신인상을 받았고, 2017년 4승을 거두며 대상, 상금왕, 최소 타수 상을 휩쓸었다. 그해 처음 US 여자오픈에 나가 5위를 기록하며 세계 무대에서의 경쟁력도 확인했다.
 
이듬해인 2018년 KLPGA 투어 메이저에서만 2승을 거두며 다시 한번 상금왕에 올랐다. LPGA 퀄리파잉 시리즈를 수석으로 통과하면서, 이정은은 인생의 또 다른 갈림길과 마주했다. 모든 것이 익숙한 한국에 남을지 모든 것이 낯선 미국으로 갈지 말이다.

이정은은 "어린 시절에 내가 더 일찍 고생스럽고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LPGA에서 뛸 수 있었을까? 아마도 2019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하거나 루이즈 서그스 롤렉스 올해의 신인상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이정은은 "지금도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편하지는 않다. 지난해 가을 롤렉스 어워즈에서 신인상 수상 연설을 하며 감정이 격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투어를 시작한 당시부터 낯설고 이국적이었던 영어 단어와 구절을 외우며 3개월 동안 연설문을 연습했다. 내게는 그 연설을 영어로 해서,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나의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는 것이 중요했다. 모든 연설을 마친 후, 압도될 만큼 큰 박수를 받았다. 눈물 나는 순간이었고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다시 우승할 때는 바라건대 정확한 표현으로 나의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이정은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쉽거나 편하진 않았다. 하지만 가치 있는 길은 늘 그렇다. 이제 24살밖에 되지 않은 내가 오래전에 배운 교훈이다"라며 감동적인 글의 마침표를 찍었다.

[주미희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chuchu@golfdigest.co.kr]

[사진=이정은, LPG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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