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링스 영암, 착각의 편견을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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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링스 영암, 착각의 편견을 깨다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0.07.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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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저렴한 골프장, 사우스링스영암. 혹자는 “값싼 공 치러 멀리도 간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나 겪어보기 전에는 상상만 할 뿐이다. 잠깐 착각의 늪에 빠져보자. 세계적인 설계가 카일 필립스와 짐 앵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스코틀랜드 링크스 코스에서 자유로운 동남아 골프를 즐긴다고 상상하라. 

자, 이제 눈을 뜨고 당신의 깨진 편견을 확인하라.

골프는 고독한 여행이다. 이른 새벽 굽이친 도로를 따라 달려 자연 속으로 다가가면 심장이 뛴다. 맛부터 다른 공기를 들이마시고 나면 차분한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이내 푸르른 잔디가 펼쳐진 필드가 얼핏 돌린 고갯짓에 스며든 순간 다시 설렘이 찾아온다. 잠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만끽하고 나면 비로소 코스가 눈에 들어온다. 이젠 자신과 싸움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땅끝마을을 향해 남쪽으로 내달리다 발길이 닿는 곳이 전라남도 영암이다. 해남까지 4.3km에 이르는 바다를 막아 조성한 광활한 호수, 영암호를 만나면 넓은 하늘과 마주한다. 숨겨둔 미지의 세계를 벗겨내듯 낯선 풍경이 시선을 훔친다. 삼림이 빼곡한 상상 속 파크랜드는 사라지고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초지가 펼쳐진다. 막 공항에 도착해 스코틀랜드 해안가 어딘가에 떨어진 듯한 착각 속에 귓가에는 김광석의 ‘광야에서’가 맴돈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이 도전적인 링크스 코스 앞에서.

▲ 골프의 본질을 더듬다 

태양과 바다가 넘실대는 고장에 자리 잡은 45홀 사우스링스영암은 지난해 11월 말 짐앵 코스 27홀을 개장한 뒤 올해 3월 카일필립스 코스 18홀이 열렸다. 팬데믹의 광기가 훑고 간 시기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바다였던 영암호 일대 매립지를 다듬고 메워 골프 코스를 조성했다. 

배경도 근사하다. 정부의 국토 균형 발전 마스터플랜에 의해 아시아 최대 관광·레저 기업 도시를 개발하는 ‘솔라시도’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곳은 정통 스코틀랜드의 링크스 코스를 새롭게 재해석해 자연 친화적이면서 창조적이고 도전적이다. 코스 곳곳이 생태 습지에 토착 수종이 담겨 있고 수로가 열렸다. 이 일대는 먹이가 풍부한 개펄과 따뜻한 기온을 품어 겨울 철새 100여 종 30여만 마리가 서식하고 이동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국내 골프장으로는 보기 드문 환경 조건을 갖춘 것이 출발점이다. 

자연에 덧씌운 건 골프 대중화의 바람이다. 영암에 터를 잡은 이유도 대규모 골프 단지 조성을 위한 잰걸음이다. 겨울이면 해외로 떠나는 골퍼의 발길을 잡을 합리적인 이용료는 세심한 배려다. 사우스링스는 진정한 퍼블릭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거품을 걷어냈다. 여전히 캐디 문화에 길들어 ‘황제 골프’를 탐닉하는 골퍼에게는 권하지 않지만 본연의 골프 자체를 즐길 준비가 돼 있는 골퍼라면 ‘셀프 골프’ 문화를 완벽히 누릴 수 있다. 최근 치솟고 있는 캐디피와 카트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일단 모든 코스, 모든 티 타임에 캐디가 없다. 5인승 카트 대신 저렴한 2인승 카트만 있고 2인 플레이가 가능하다. 해외 골프장처럼 카트를 스스로 운전해 페어웨이로 진입할 수도 있다. 단, 페어웨이를 훼손하지 않는 카트 운행은 필수 매너다. 클럽하우스의 레스토랑도 편의성에 무게를 뒀다. 직원 대신 로봇이 서빙을 하고 대부분 셀프서비스로 운영한다. 언택트(Untact) 시대의 맞춤형 골프장인 셈이다. 

최근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낸 국내 골프장 이용료(그린피+카트비+캐디피) 현황 자료에 따르면 사우스링스영암이 주중 11만5000원, 토요일 13만5000원으로 전국 골프장 중 가장 저렴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렇다고 코스 관리가 엉망이라고 생각하면 편견일 뿐이다. 가성비를 높이며 코스 조성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사계절 푸름을 간직할 최고급 양잔디 벤트그래스를 코스 전체에 식재한 것만해도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다. 

최근에는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지 못하는 주니어 골퍼와 프로 골퍼 지망생의 연습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훌륭한 코스에서 연습할 수 있는 최적의 전지훈련지다. 그린 스피드도 약 3m/s를 유지할 정도로 빨라 연습하기 안성맞춤이다. 내년에는 미완의 18홀 코스를 추가로 조성하고 빌리지 형태의 대규모 주택단지와 정원, 산책로 등이 들어설 전망이다. 

▲ 세계적인 두 거장의 하모니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두 설계가의 작품을 한곳에서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골퍼의 축복이다. 링크스 코스의 세계적인 권위자 카일 필립스와 독창적인 설계를 추구하는 짐 앵, 두 거장이 빚어낸 하모니는 스코틀랜드풍의 거칠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한 것이 돋보인다. 

링크스 코스의 특징은 분명하다. 페어웨이를 지키지 못하면 억센 러프를 각오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은 일찌감치 찾기를 포기해야 한다. 다양한 깊이와 길이의 항아리 벙커가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다. 해안가에 자리해 바람에 맞서야 한다. 페어웨이와 그린도 단단하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사우스링스는 홀을 둘러싸고 수로가 길게 늘어져 있어 물을 피하거나 건너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때로는 전략적이고 때로는 도전적인 코스 매니지먼트가 좋은 스코어를 낼 수 있는 비결이다. 

카일 필립스는 5대륙 30여 개국에서 세계 100대 코스를 탄생시킨 천재 설계가로 불린다. 대표적인 곳이 스코틀랜드의 킹스반스, 아부다비 야스링크스로 꼽히고 국내에서는 남해의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도 그의 작품이다. 사우스링스의 18홀 카일필립스 코스는 그가 자신이 설계한 작품 중 다섯 손가락에 꼽는 곳으로 아웃(A)-인(B) 코스로 나뉜다. 긴 수로를 따라 조성된 18홀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다양한 굴곡을 준 설계로 남성적 이미지와 다이내믹한 도전 정신이 스며 있다. 특히 평지에 조성된 코스지만 18개 홀이 코스 숲에 둘러싸인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A 코스가 손목시계 방향으로 도는 느낌이라면 B 코스는 삼각 모양의 탁상시계를 반대 방향으로 도는 코스다. 

클럽하우스로부터 가장 먼 15번홀부터 18번홀까지 일렬로 이어진 마지막 네 홀은 오른쪽에 맞닿은 영암호를 따라 일렬로 펼쳐져 도전 욕구를 부른다. 특히 시그너처 홀인 15번홀(파5)은 티잉 구역에서 바라봤을 때 호수가 앞을 가로막아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는 홀이다. 자신의 샷을 믿고 드라이버 샷을 날려야 하지만 페어웨이부터 그린까지 오른쪽으로 밀리면 호수 쪽으로 바운스가 나도록 설계되어 있어 위험하다. 짧은 16번홀(파4)과 까다로운 17번홀(파3)에서 욕심을 버리고 마지막 긴 18번홀(파4) 에서 참았던 욕구를 쏟아내야 한다. 단, 그린 주변에 벙커가 숨어 있으니 집중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 

2000년대 가장 주목해야 할 설계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짐 앵이 설계한 27홀 짐앵 코스는 A·B·C 코스 모두 그의 독창적인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다양한 길이와 깊이의 벙커, 굴곡 있는 그린으로 쇼트 게임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설계는 자연 지형의 독특한 재해석을 엿보는 것이 묘미다. 국내에는 전북 장수컨트리클럽을 설계해 잘 알려져 있다. 

짐앵 코스는 전체적으로 여성적인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지만 홀마다 호수가 곁에 있어 결코 만만치 않은 코스다. 첫 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스스로 전략을 짜고 집중해야 살아남는다. 

F1 경기장을 바라보는 A 코스는 플레이 도중 굉음과 함께 레이스를 펼쳐야 할 수도 있다. 양쪽으로 호수가 있는 A 코스 3번홀(파4)과 8번홀(파5)은 심리적으로 부담스럽다. 특히 8번홀은 2온을 노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만 그린 바로 앞까지 물이 들어차 있어 3온 전략이 안전하다. 

B 코스는 물과 벌이는 전쟁이다. B 코스 4번홀(파5)은 티잉 구역에서 갈대밭에 가려진 시야 탓에 티 샷이 부담스럽다. 랜딩 지점 벙커도 골칫거리다. 무리한 3온 공략보다는 타수를 잃지 않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B 코스에서 가장 도전적인 6번홀(파5)은 왼쪽으로 휘어진 도그레그 홀로 호수와 갈대에 둘러싸인 그린을 2온으로 노리다 낭패를 볼 수 있다. 쇼트 게임도 까다로워 안정적인 3온을 위한 그린 오른쪽 공간을 공략해야 한다. 

짐앵 코스의 시그너처 홀은 C 코스의 8번홀(파3)이다. 짧은 아일랜드 홀로 물을 건너더라도 2단 포대 그린이 기다리고 있다. 그린 주변 여유 공간이 거의 없는 데다 그린 왼쪽에 숨은 벙커도 조심해야 한다. 핀 위치에 따라 전략적으로 공략해야 하는 홀이다 카트를 세우고 그린으로 걸어가는 기분은 짜릿하다. 

올여름 밀린 여행은 남도 음식이 넘치는 사우스링스영암으로 떠나길 권한다. 편견은 깨고 후회는 남기지 말자. 좋으면 추억이고 나쁘면 경험인 것이다. 

[서민교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min@golfdigest.co.kr]

[사진=윤석우(드론 촬영), 김시형(골프 코스), 사우스링스영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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