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경을 위한 ‘더블 캐스트’[스페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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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경을 위한 ‘더블 캐스트’[스페셜 인터뷰]
  • 주미희 기자
  • 승인 2021.02.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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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경(21)이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촬영할 때 입을 옷을 골라 손에 든 채로. 본인에게 던질 질문지도 작성하고 게재될 사진도 선택했다. 골프다이제스트의 '부캐 특집'에 맞춰 부캐 인턴 기자로 특별히 변신한 박현경이 인터뷰하는, 프로 골퍼 박현경의 조금 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 이 인터뷰는 박현경이 직접 질문지를 만들어 질의응답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편의를 위해 기자가 질문하고 박현경이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 가장 소중한 2020년

- 1년 전 골프다이제스트와 인터뷰를 하고 딱 1년 만이다. 1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

▲ 1년 전에 똑같이 이 자리에서 인터뷰했다. 그때는 친구들과 달리 우승이 없다 보니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로 인터뷰를 하러 왔다. 2020년엔 내가 원하는 우승도 하고 똑같은 곳에 다시 와서 사진 촬영을 하고 인터뷰도 하니 새롭다. 자신감이 많이 올라왔다.

- 2승을 거둔 지난해를 돌아보자면?

▲ 1승이 목표였고 2승은 절대 생각지도 않았는데 2승을 하다 보니 얼떨떨했다. 2020년은 내가 골프를 시작한 이후 가장 소중한 해였다. 간절한 만큼 보상을 받은 해여서 은퇴할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 KLPGA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하고 펑펑 울었던 게 기억난다.

▲ (조)아연, (임)희정이를 비롯해 나 외의 루키 우승이 8승이나 나왔다. 많은 기대를 받고 데뷔했는데 그 기대에 부응을 못한 부분, 친구들보다 부족한 것이 많다는 생각에 아주 속상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랑 좀 부딪치기도 했다. 말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됐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 마음을 어떻게 다잡았나?

▲ 다잡지 못한 것 같다. 다잡는 게 이상한 거였다. 받아들이고 내가 더 발전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무리 ‘괜찮다, 괜찮다’ 해도 정말 괜찮지 않았다. 내가 친구들보다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고 어떤 부분에서 부족한지 더 분석하고 열심히 훈련해서 기량을 높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 2019년과 2020년 우승을 하기까지 가장 달라진 게 뭘까?

▲ 심리적인 부분과 스윙. 심리적인 부분에선 (고)진영 언니 도움을 많이 받았다. 거기에 이시우 코치님과 스윙을 다지는 작업을 했고 그게 잘 어우러져 한층 성장한 것 같다.

- 아이에스동서 부산오픈에선 라이벌로 불리는 임희정과 연장 대결을 벌인 끝에 우승했다.

▲ 희정이랑은 아마추어, 국가 대표 시절부터 경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연장전에서 일대일로 붙은 건 처음이었다. 다른 상대도 아니고 잘 아는 희정이가 경쟁자다 보니까 긴장은 했다. 하지만 내 샷과 퍼팅감이 워낙 좋아서 ‘그래, 어차피 50 대 50 확률인데 누구 한 명은 우승하겠지’ 이런 생각으로 나를 믿고 경기에 임했다. 라이벌 경쟁 구도가 있다는 건 좋은 것 같다. 동기부여가 된다. 안 좋은 점보다는 좋은 점이 훨씬 많을 거라 생각한다. 지난해에 잘할 수 있었던 것도 2019년에 친구들을 보면서 동기부여가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뜻대로 신인상 타고 우승했다면 간절하지 않았을 것 같다.

- 하반기 성적은 좀 아쉬웠을 텐데.

▲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퍼트 자세를 교정했는데 잘 안 되더라. 샷은 항상 상위권으로 갈 정도였는데 코스에서 눈물 날 정도로 퍼팅이 안 됐다. 퍼팅 교정은 실패라고 보면 된다(웃음). 2~3m 버디 찬스를 정말 많이 만들었는데 그걸 못 살리니까 흐름을 못 탔다. 상반기엔 그런 찬스를 거의 안 놓쳤다. 그 성공률이 떨어지니까 시즌 끝나갈 때쯤 퍼팅 자신감이 정말 없었다.


● 어린 현경이

- 골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버지(박세수 씨)가 프로 출신이어서 더 반대했을 것 같은데?

▲ 초등학교 2학년 7월 31일에 골프를 정식으로 시작했다. 아빠가 “너 골프 선수 해” 이렇게 선언하셨다. 처음엔 아빠가 하라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쳤다. 골프를 시작하고 1년 만에 첫 대회로 전국 대회에 나가 3위에 입상하면서 ‘이런 재미구나’라고 느꼈다. 그때부터 내 의지로 더 열심히 했다. 다음엔 베스트 스코어 치고 싶고 다음엔 2등 하고 싶고 1등 하고 싶고 욕심이 계속 생겼다.

- 승리욕이 강한가 보다.

▲ 없다고는 생각 안 한다. 투어에 있는 선수들 다 승리욕이 있으니까 투어를 뛴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승리욕이 밖으로 많이 표출됐다. 골프 선수를 한 지 2~3년 됐을 때? 아빠가 연습장을 하실 때였는데, 회원님들하고 1000원짜리 퍼터 내기를 하다가 졌다. 너무 화가 나서 버릇없이 내 화를 너무 표현해서 아빠한테 엄청나게 혼났다.

- 연습할 땐 어땠나?

▲ 내가 정한 건 무조건 해야 한다. 연습 볼 치는 개수, 시간은 무조건 지킨다. 초등학교 땐 하루에 볼 2000개를 안 치면 아빠가 집에 안 보냈다. 오전 8시부터 밥 먹는 시간 빼고 쉬는 시간 없이 오후 8시까지 12시간 연습해야 공 2000~ 2500개를 친다. 볼 맞히는 감각에 익숙해져야 하니까. 오전 8시까지 연습장에 가야 하는데 7시 55분에 눈을 뜨는 날엔, 양치하고 옷만 입고 자전거 타고 부랴부랴 3분 만에 간다. 그럼 딱 8시 컷이다. 2년 동안 한 번도 지각한 적 없다(웃음).

- 아마추어, 국가 대표 때부터 워낙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강력한 신인상 후보여서 그게 더 부담됐을 수도 있을 것 같다.

▲ 부담 많이 됐다(웃음). ‘내 가치를 높이 평가해주시는 것에 대해 부응해야 하는데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솔직히 시즌 중반 지나고 나서 신인상은 포기했다. 2019년은 많이 조급했다. 쫓기고 조급해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우승하고 나니 그 마음이 없어졌다.

● 나를 만들어준 사람들

- 고진영 덕후로 유명하다.

▲ 그런가(웃음). 진영 언니는 2020년의 나를 만들어준 세 명 중 한 명이다. 아빠(가족), 이시우 코치님, 진영 언니. 처음 우승할 때도 언니가 얘기해준 대로 생각하면서 쳤다. 언니가 “보기를 해도 감사하고 버디를 해도 감사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보기를 했는데 어떻게 감사하냐고 물어봤는데 “더블보기 안 한 것에 감사해야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말을 많이 해주신다.

- 앞에서 고진영에게 심리적인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를 했다.

▲ 언니 덕분에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언니가 항상 “현경아, 언니가 봤을 때 넌 충분히 잘할 수 있어”라는 말을 많이 해주셨다. 언니가 날 믿어주고 자신감을 키워준 덕분에 힘이 됐다. 훈련 때 언니가 “너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다”고도 했다.

- 아빠한텐 어떤 딸인가?

▲ 살가운 딸은 아니다. 약간 ‘츤데레’(웃음). 좀 투덜거리다가도 챙기는 스타일이다. 집을 사는 데 첫 우승 상금을 모두 보탰다. 지난해 6월에 이사하려고 집 계약을 했는데 우승 상금 정도의 금액을 대출받았다. 5월에 첫 우승을 하고 우승 상금을 받아서 바로 대출을 취소해 대출 없이 이사할 수 있게 됐다. 뿌듯했다.

- 2021년은 어떻게 보내고 싶나?

▲ 지난해만큼의 퍼포먼스를 못 보여드릴까 봐 벌써 걱정되기도 하고 2년 연속 좋은 결과를 낼지 어떨지 기대되기도 한다. 해마다 1승 이상 하는 걸 목표로 잡고 있다. 한 번도 대상 타이틀 욕심을 내본 적이 없는데 올해는 대상에 가까이 가고 싶다. 지난해에 기복 있는 해를 보내다 보니 꾸준한 것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 최종적으론 어떤 골프 선수가 되고 싶은지?

▲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선수가 되고 싶다. 그리고 골프를 안 치는 분들도 알 정도로 전 국민에게 내 이름을 알리고 싶다. 그런 목표를 가져야 은퇴할 때까지 열심히 할 것 같다. 골프는 경기력이 될 때까지 하고 싶다. 30대 중반 정도로 예상한다.


● 어바웃 현경

-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은?

▲ 웃는 모습. 사람들이 웃을 때 예쁘다는 말 많이 해준다(웃음). 내가 예쁘다는 생각은 안 하는데 그냥 못생기진 않은 것 같다. 예쁘다기보다는 귀여운 얼굴에 가깝다고 들었다. 웃을 때 예쁜 게 복인 것 같다.

- 내가 즐거울 때는?

▲ 훈련이 잘될 때. 내가 원하는 대로 연습, 훈련이 이뤄질 때 진짜 재밌다. 본격적인 훈련은 1월 말부터 한 달 동안 한다. 동계 훈련이 2021년의 나를 어떻게 만들어줄지도 기대된다. 일관성 있는 스윙과 퍼팅을 가장 신경 쓰고 있다. 하반기에 퍼팅 때문에 정말 애를 많이 먹었다. 샷이 아무리 좋아도 퍼팅이 안 되면 성적이 안 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 내가 잘하는 것은?

▲ 골프라고 하면 너무 거만한데 솔직히 골프 말고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운동신경이 전혀 없어서 골프 잘하는 게 신기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에너지가 있다고도 한다(웃음).

- 내게 부족한 것은?

▲ 부모님께 살갑지 못한 것. 돌아보면 ‘말 예쁘게 할걸’ 후회하는데 앞에 가면 그게 잘 안 된다. 밖에선 잘하는데 가족 앞에선 쑥스러워서 표현을 잘 못한다.

- 내가 들었을 때 기분 좋은 칭찬은?

▲ 눈웃음이 예쁘다는 말. 배우 남보라 씨를 닮았다는 얘기도 들어봤다. 또 훈련 열심히 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도 기분이 좋다.

- 주변인들이 말하는 나는 어떤 사람?

▲ 어른들한테 밝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동료들한텐 애교 많다는 얘기도 들었다. 아빠가 이중인격자라고 한다(웃음).

- 골프 선수를 안 했다면 뭘 했을까?

▲ 양궁을 해보고 싶었다. 우리나라가 양궁 강국이지 않나. 선수들은 재밌지 않겠지만 재밌어 보였고 기보배 선수가 멋있었다. 양궁 카페 가서 해본 적은 있는데 가관이었다. 골프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웃음).

- 놀 땐 뭘하나?

▲ 원래 골프 외에 하는 게 없었는데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아무 데도 못 가다 보니 영화를 보는 취미가 생겼다. 최근에 <어바웃 타임>을 봤고 로맨스 영화를 좋아한다. 인생 영화는 <노트북>. 진영 언니랑 미국에서 훈련할 때 같이 처음 봤고 인상 깊어서 최근에 또 봤다.

● 부캐 특집으로 인턴 기자를 체험한 소감

“내가 나를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고 신기했다. 보통 골프웨어를 입고 촬영하는 일이 훨씬 많고 골프다이제스트에 와야 사복을 입고 촬영한다. 인턴 기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색다를 것 같아서 해보겠다고 했는데 재밌었다. 부캐를 통해서 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인지, 나는 나의 어떤 모습을 좋아하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번 특집을 통해 진짜 박현경을 돌아보았다.”

[주미희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chuchu@golfdigest.co.kr]

[사진=조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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