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전인지의 행복해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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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전인지의 행복해질 시간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1.04.20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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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는 누군가에게는 아픔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의미를 준다.

어두운 터널에서 헤매던 전인지는 코로나19 시계태엽 속으로 들어가 생각을 감았다. 째깍째깍. 시곗바늘은 아팠던 20시를 지나 미소를 되찾은 21시에 멈췄다. 휴식 같은 일상에 행복을 담은 전인지의 타임 테이블로 들어가자.

●●● 코로나19로 지나간 지난해는 생활 방식이 바뀌고 대회도 불규칙적으로 열리면서 정신없이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엄청 큰 감정 변화가 있었던 해는 아닌 것 같다. 집중을 못했다고 해야 할까. 그래, 그랬다.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말하기 조심스럽다. 대회가 계속 취소되면서 나에게는 어쩌면 터닝 포인트가 된 시간이었다. 골프를 잠깐 내려놓으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골프에 대한 소중함이나 내 마음속에 있는 열정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런 시간.  

●●● 올 초 한국에 들어올 때는 기분이 좋았다. 공항에서 바로 집으로 가서 씻자마자 침대로 점프했다. 이번이 두 번째 자가 격리였다. 첫 번째 자가 격리 때보다는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시간별로 나눠서 바쁘게 하루를 썼다. 집순이는 아니라서 답답할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더라. 스케줄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으니까. 쉬다가 밥 먹고 싶으면 요리를 하거나 먹고 싶은 것을 시켜 먹었다. 운동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취미 생활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최근 몇 가지 재밌는 취미가 생겼다. 운동화 커스텀은 2년 전부터 시작했다. 엄마 생신 선물을 고민할 때였다. 해바라기를 좋아하신다. 커스텀 운동화를 선물하려고 물감과 키트를 샀는데 미술을 배운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그리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미술을 전공한 친구들이 소질이 있다고 칭찬해줘서 자신감이 생겼다. 물건에 나만의 느낌을 담아서 선물하면 주변 사람들이 기뻐하더라. 그 모습이 나도 좋다. 비즈 공예는 늘 갖고 다니며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KPMG위민스PGA챔피언십을 마친 뒤 한국에 들어왔을 때 시작했다. 자가 격리를 하면서 쉬는 동안 해보니까 재밌더라. 많이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좋다. 키트가 작아서 들고 다니기도 편해 미국에도 가져가 틈틈이 만들어 선물로 주고 있다.

●●● 요리도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됐다. 레시피는 보지 않는 스타일이다. 이걸 보면 요리 자체를 좋아하는 것보다 그냥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만들어 먹기도 했고, 미국에서는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 만들어 먹기도 했지만, 정말 먹고살려고 했던 것 같다. 맛있는 한국 음식을 외국인 친구에게 만들어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떡볶이, 닭볶음탕, 제육볶음, 김치찌개를 즐겨 한다. 외국인들은 만둣국과 잡채, 불고기는 진짜 다 좋아한다. 한번은 국물이 너무 먹고 싶은데 주위에 한인 마트가 없어서 곰탕 엑기스에 라비올리를 넣어 먹었는데 은근히 조합이 좋았다. 요리를 할 때 새로운 것에 두려움 없이 도전해서 먹는 편이다.

●●● <나 혼자 산다>에서 섭외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문제는 그때 내가 혼자 살고 있지 않았다(웃음). 최근 미국 댈러스에 집을 샀다. 아직 그 집에서 잠을 자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혼자 호텔 생활을 하거나 자가 격리 기간을 보낸 경험 빼고는 내 집에서 혼자 지내는 건 처음이다. 기대되기도 하지만 크게 다를 게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대회 때문에 집을 떠나 돌아다닐 테니까. 집이 생겼는데 집에 갈 수가 없다.  

●●● 원래 시계에는 관심이 많지 않았다. 어릴 때는 좋은 시계를 살 수 없기도 했고 지금처럼 큰 관심사도 아니었다. 태그호이어와 인연을 맺고 처음으로 명품 시계를 찼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정말 기쁘고 좋아서 시계를 계속 차고 있었다(웃음). 특히 골프 에디션으로 출시된 커넥티드는 스마트 워치라서 연습할 때나 일상생활에서 항상 차고 있다. 하나둘 시계를 모으면서 지금은 시계 장식장도 있다. 약속이 있으면 시계를 먼저 고르고 그다음 어울리는 옷을 매치할 정도다. 이젠 팔목에 시계가 없으면 너무 허전하다.

●●● 스마트 워치는 골프 연습할 때 정말 유용하다. 대회 때 착용하지 못해 아쉽지만, 연습할 때 자주 활용한다. 거리를 판단할 때 도움을 받는 것도 편하고 좋지만, 대회 코스를 복기할 때 정말 유용하게 쓴다. GPS 맵으로 보니까 위험 요소를 모르고 지나친 것을 많이 알게 된다. 내가 갔던 코스의 샷 하나하나를 저장할 수 있어서 미스 샷에 대한 기억을 더듬을 수 있다. 다양한 컬러의 스트랩 중에서 주로 하얀색과 녹색 계열을 좋아하는 편이다.

●●● 전인지 부활했다? 또 표정이 밝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제 달라진 건 확실히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코스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차이가 느껴진다. 열정이 다시 생겼다고 해야 할까. ‘성적은 생각하지 말자. 분명히 마음가짐이 좋아졌으니까 다른 해가 될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으로 플레이했다. 그런 생각 때문에 TV 화면에 비친 내 모습도 그렇게 보인 것 같다. 미국 대회장에 있는 현지 외국 기자들도 내 표정이나 제스처, 말하는 것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부분이 보인다고 말씀해주셔서 나도 신기했다. 완전히 좋아지지 않았지만, 이렇게 조금 바뀌기만 해도 좋게 봐주시는구나.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힘들다고 투정 부리거나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같이 많이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스윙의 문제는 아니었다. 스윙은 정말 좋아지고 있었다. 프로 선수는 대회 때 스코어로 연결시켜야 한다. 그런데 왜 안되지? 자꾸 조급해지고 답답해지는 마음이 부담감으로 연결돼 꼬리를 물었다.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때 스스로 무너졌다. 이제 안되는 건가 싶었다. 자존감과 자신감을 깎아내리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주위에서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조언도 긍정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마음의 짐처럼 느껴졌다. 나도 알고 있고 잘하고 있는데 왜 나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걸까. 의심했다. 멘탈 트레이닝은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받아왔다.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더라. 도와주려는 사람에게 가시 돋친 말을 하기도 했다. 입도, 마음도 닫고 계속 땅을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 골프를 하러 나가는 아침이 정말 힘들었다. 지난해는 정말 많이 답답했다. 감정적으로 기복도 심했다. 예전에는 ‘오늘 어떻게 경기를 풀어나갈까’ 생각하면서 준비할 때도 설다. 나에게는 정말 큰 부분이었다. 대회가 열리는 나흘의 시간도 잘 가고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없어졌던 시간이었다. ‘안 그래야지,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오늘은 또 어떤 힘든 일이 다가올까’ 무거운 마음만 들었다. 늘 짓눌린 기분이었고, 하루를 잘 보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 다시 일어선 건 팀원들 덕분이다. 나를 위해 있어주는 팀원들이 포기하지 않고 내가 일어날 수 있게 도와줬다. 멘탈 노트를 펴고 다시 공부했다. 정말 하기 싫었지만 팀원들을 생각하며 억지로 하긴 했다. 그렇게 내려놓지 않고 했던 것들이 나를 좋아지게 만들고 있었다. 그땐 좋아지고 있는 지 전혀 몰랐다. 긴 터널에서 어둠만 보이다가 빛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다 보니 어느 순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 20대 초반에는 웃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그때는 즐겁게 대회에 나가고 싶었다. 이런 나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선수가 즐겁게만 하면 되냐고. 성적을 내고 우승하려면 더 악착같이 해야 된다고. 난 즐겁게 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을 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힘들어도 스스로 최면을 걸곤 했다. 이런 내 모습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언젠가부터 그런 얘기를 하는 것조차 싫었다. 즐겁고 신나게 골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지금은 다시 그때 마음을 형식적으로라도 가지려고 하고 있다. 작은 것부터 변화를 주면서 해보자. 그때와 100% 똑같은 마음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변하고 있는 모습에 감사하다. 이렇게 힘든 우울이라는 터널을 빠져나와서….  

●●● 지금은 목표를 하나씩 만드니까 골프도 행복해졌다. 스스로 작은 부분이라도 목표를 세우고 새롭게 도전하는 마음이 생긴 것, 그 자체로 행복하다. 지금은 쌓인 감정이 복받쳐 올라 정리도 안된 채 말하는 것 같아 부끄럽다. 당연히 다시 우승을 하고 싶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다. 미국에 돌아가 잘해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다. 바로 대회 모드로 돌아가 골프를 즐기고 싶다.

●●● 필드와 일상의 나는 확실히 다른 게 있다. 필드 위에서는 조용한 이미지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차분하면서 조용하고 잘 웃는 이미지로 봐주시는 것 같다. 그 모습이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다. 코스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내 모습이다. 다만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때는 장난도 많이 하고 까불까불한 면도 많다. 경기 중에는 집중하느라 보여줄 기회가 없을 뿐이다. 그래서 세리머니를 크게 하고 쇼트 퍼트를 실수했을 때 엄청 아쉬워하기도 하는 제스처를 해볼까도 했는데 그게 더 연기하는 모습이라서 어색하더라. 억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나오는 제스처가 더 나은 것 같다. 팬들은 선수들의 다른 모습을 궁금해하는 것 같다. 코스 밖에서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보여드리고 싶다. 조금 더 재미있고 애교도 있다(웃음).

●●● 올해 각오는 보답이다. 나를 믿고 기다려주시는 팬들과 스폰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옆에서 지지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성적으로 보답해드리고 싶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다시 우승을 거둘 수 있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원하는 게 다 이뤄지기만 하면 재미가 없지 않을까. 

● 전인지의 커스텀 운동화 : 스카이 라인 

이 커스텀 운동화는 모두 스카이 라인이다. 한쪽 면은 한국이다. 보랏빛은 내가 한국에서 좋아하는 선셋 느낌이다. 회색빛 두 번째 면은 런던이다. 영국에서 대회를 할 때 쉬는 날 느낀 런던의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그렇게 남아 있더라. 세 번째 면의 오스트리아는 한번쯤 정말 가고 싶은 곳이라서 맑고 파란 하늘로 표현했다. 빨간빛이 도는 마지막 면은 필리핀이다. 가본 적은 없다. 커스텀 그림을 그릴 때 필리핀 친구가 있었는데, 그림에 재능이 많은 건축가다. 그림을 그릴 때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친구를 떠올리며 그렸는데 더운 이미지가 떠올랐다. 커스텀을 시작한 직후 운동화인데 솔직히 이건 진짜 잘한 것 같다. 이후 창작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 

* 프로 데뷔 2012년 / 프로 통산 14승, LPGA투어 3승(메이저 2승), KLPGA투어 9승(메이저 3승), JLPGA투어 2승(메이저 2승)

[서민교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min@golfdigest.co.kr]

[사진=조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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