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모 임종 못 지켜 LPGA 떠나고 싶었던 고진영 “할머니, 손녀 잘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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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 임종 못 지켜 LPGA 떠나고 싶었던 고진영 “할머니, 손녀 잘했죠?”
  • 주미희 기자
  • 승인 2021.11.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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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에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셨고 저는 미국에서 대회를 준비하던 상황이라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았어요. '큰 손녀인 내가 할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이게 맞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골프에 대한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골프를 한 이유가 제가 행복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거든요. '이렇게 골프를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어 골프 사춘기가 심하게 찾아왔어요."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시즌 4승이자 한국인 통산 200승째를 올린 고진영(26)이 우승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세계 랭킹 1위로 올 시즌을 호기롭게 시작한 고진영의 시즌 초반 성적은 의외로 좋지 않았다. 3월 LPGA 드라이브 온 챔피언십에서는 2년 7개월 만에 컷 탈락했고 시즌 시작한 지 5개월이 되어가는 6월까지 우승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 3월 할머니 정순덕 씨가 별세하면서 고진영은 그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큰 타격을 받았다. 처음으로 LPGA 투어에서 뛰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이후 한국에 들어와 할머니 빈소를 찾은 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후 7월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클래식에서 시즌 첫 우승을 차지했고 "이 우승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한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메달 획득을 노렸지만 공동 9위를 기록한 도쿄 올림픽을 끝낸 뒤에는 6주간 휴식을 취했다. 그 기간 신체적, 정신적으로 재정비했고 각성한 듯했다. 고진영은 도쿄 올림픽 이후 최종전인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까지 7개 대회에서 4번 우승했고 공동 6위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시즌 최종전인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을 앞둔 고진영은 "할머니가 하늘에서 내가 우승을 많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실 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열심히 했고 이후 4개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진영은 지난 22일 끝난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마지막 날 9언더파 63타로 라이프 베스트 스코어를 작성하며 2년 연속 우승했고 시즌 5승에 올해의 선수, 상금 1위를 확정하는 등 센세이셔널한 시즌을 보냈다.

시즌 5승째를 거두며 여자 골프 사상 최다 우승 상금인 150만 달러(약 17억8000만원)를 획득한 것은 감정적인 혼란을 겪으면서도 한 해를 헤쳐나간 것, 또한 5월부터 괴롭혔던 왼쪽 손목 부상과 싸운 것에 대한 보상이다.

미국 골프채널은 고진영이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 주간 동안 몇 개의 칩 샷과 퍼트를 제외하고는 일주일 내내 전체적인 워밍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매일 티타임 30분 전에 코스에 도착했고 1번홀 티잉 구역에 인접한 쇼트게임 구역에서 짧게 연습. 테이핑, 아이싱, 진통제를 먹어가며 통증을 참으며 경기했다고 한다. 그게 경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고진영은 3라운드에서 초반 7연속 버디로 6언더파 66타를 치며 공동 선두에 올라 최종 라운드에 진출했고 최종 라운드에서 전반 9개 홀에서 버디만 6개를 낚아 우승 기세를 잡았다.

캐디 데이비드 브루커는 1라운드 11번홀에서 아파서 울며 경기하는 고진영을 보고 기권을 권유했지만 했지만 고진영은 끝까지 경기를 치러냈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63홀 연속 그린 적중 행진을 이어갔다. 골프채널에 따르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가장 최근 50홀 연속 그린 적중 기록을 세운 가장 선수는 1995년 마이크 하이넌(미국)이다. 인상적인 볼 스트라이킹 외에도 퍼팅 감각까지 최고조였다.

고진영은 최종 라운드에서 세 가지 샷에 주목했다. 첫 번째는 3번홀(파4)에서의 7번 아이언이다. 고진영은 7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핀 1.8m 거리에 붙여 버디를 잡아, 먼저 치고 나간 하타오카와 공동 선두를 만들었다. 두 번째 중요한 샷은 8번홀(파3) 9번 아이언 티 샷이다. 컨트롤 샷을 해 핀 1.5m 거리에 보내 버디를 잡은 고진영은 2위 하타오카에 3타를 앞섰다.

가장 중요한 샷은 17번홀(파5) 두 번째 샷이었다. 6번 아이언으로 2온에 성공한 뒤 2퍼트로 버디를 잡아냈다. 하타오카도 이 홀에서 버디를 더해 2타 차를 유지했다.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고진영이 파를 기록했고 하타오카가 버디를 잡아 1타 차까지 따라붙었기 때문에 17번홀 버디가 매우 중요했다.

LPGA 투어에 데뷔한 뒤 4년 동안 통산 12승을 기록한 고진영은 한국 선수 최초로 올해의 선수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또한 3년 연속 상금 1위에 올랐다. 4년 만에 LPGA 투어 명예의 전당 포인트를 17점 쌓은 그는 명예의 전당 입성에 필요한 27점까지 10점을 남겼다.

할머니의 별세는 고진영이 올해 다시는 우승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모든 걸 극복해야 하는 것도 고진영의 몫이었고 고진영은 그걸 해냈다.

2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고진영은 "지난달 우승했던 커그니전트 파운더스컵 최종 라운드 전날 꿈에 할머니가 나오셨다. 꿈속에서는 엄청나게 기뻐했는데 일어나니 펑펑 울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꿈에 두 분이 같이 나오셔서 '아, 우승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으로 경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더 지켜봐 주시는 것 같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귀국했으니 할머니, 할아버지 빈소를 찾을 거라는 그는 "'손녀가 너무 잘했는데 어떻게 보셨냐'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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