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김하늘, 도시여자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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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김하늘, 도시여자로 첫걸음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1.12.1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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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석우
사진=윤석우

홀연히 필드를 떠나 도시로 첫발을 내디딘 김하늘. 투어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 초년생으로 제2의 인생 첫 잔을 적시러 나선다.

스마일 퀸. 앳된 스무 살이던 김하늘에게 붙은 별명이다. 프로 데뷔 시즌부터 잘 웃었다. 티 없이 해맑게 웃는 모습이 예뻤다. 2007년 당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는 없던 밝은 캐릭터였다. 그만큼 상큼하고 신선했다. KLPGA투어에 삼촌 팬이 처음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 일본 투어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그를 만난 건 마지막 국내 은퇴 무대를 앞두고서다. 이젠 낯설지 않은 그의 웃는 모습은 여전했다. 세월이 녹아 여유가 묻어났고 씩씩해 보였다. ‘은퇴’라는 단어를 아쉬움이 아닌 ‘시작’이라는 말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쯤, 그는 설렘 가득한 미소로 성큼 다가와 반갑게 인사했다.  

◇ 용띠 자매들아, 나 미련 없다

10월이 반쯤 지났을 때다. 김하늘이 공식 은퇴를 발표했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은퇴 경기가 된 노부타그룹마스터즈GC레이디스 개막 3일 전이었다. 낌새는 있었지만 그래도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저한테는 갑작스럽지 않았어요. 2년 전부터 생각했는데 시기가 언제가 좋을까 고민만 계속하고 있었죠. 은퇴가 쉬운 결정은 아니잖아요. 투어는 떠나지만 다른 일도 많이 해보고 싶었어요. 그 타이밍이 올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는 투어 생활을 오래하고 싶은 마음이 데뷔 초부터 없었다고 털어놨다. “제가 그린 미래는 조금 더 일찍 결혼할 줄 알았거든요.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면 은퇴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런데 전혀 그런 계획대로 이뤄진 건 하나도 없고…(웃음). 그러다 보니 서른네 살이 됐고 이젠 결혼이 아니라 제2의 다음 인생을 위해서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온 거죠. 제가 그린 나이보다는 더 오래한 것 같아요.”

1988년생인 김하늘은 신지애, 박인비, 이보미, 최나연, 이정은 등 용띠 핵심 멤버다. 모두 ‘세리 키즈’ 1세대로 지난 10여 년간 세계 여자 골프를 지배한 태극 낭자들이다. 해외 언론에서도 ‘드래곤 시스터스(Dragon Sisters)’라고 소개할 정도로 유명하다. 여기에 1990년생인 유소연이 합류해 7명이 모여 ‘V157’이라는 크루를 만들었다. 이 친목 모임이 결성된 해(2018년 12월)에 7명의 승수를 모두 합한 숫자가 무려 157(신지애 54승, 박인비 27승, 이보미 25승, 유소연 17승, 최나연 15승, 김하늘 14승, 이정은 5승)이다. 미국과 일본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이들은 경쟁을 넘어 돈독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이 가운데 김하늘이 가장 먼저 필드를 떠나게 된 것. 각자 다른 투어를 뛰고 있어서 만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에 있는 시간이 늘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은퇴에 대한 생각이다.

“너희는 계속하고 싶어? 누가 먼저 하게 될까? 이런 질문을 서로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제 마음을 정리할 시간도 생기고 은퇴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더 하게 됐죠. 저는 힘에 많이 부친 상태였는데 아직 골프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저한테 묻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어?’라고. ‘나는 너희와 얘기도 많이 했고 이제 미련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움도 없고. 그래서 결정했어’라고 했죠. 모두가 너무 신기하고 믿기지 않는다고 했어요. 심지어 제 은퇴 파티를 해주고 있었는데도요.”

특히 일본 투어에서 함께 활동한 이보미는 수개월 전부터 마지막 대회 출전 전날까지 매일같이 은퇴하는 기분을 물었다. “하늘아, 한 달 남았어. 일주일 남았어. 이제 진짜 하루 남았어. 기분이 어때?” 그때만 해도 김하늘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일본 투어 마지막 대회에서 동료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고 나서야 조금씩 실감하기 시작했다. “일본 선수들이 저한테 와서 우는 거예요. 그때 정말 감동받았어요. 제가 이 친구들에게 그렇게 잘한 것 같지 않았는데 이렇게 나를 생각해준다는 생각에 ‘내가 이렇게 코스에서 사랑받는 사람이었나’ 싶더라고요. 정말 고마웠고, 그때부터 진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연습 라운드를 하면서 샷을 할 때마다 계속 울컥울컥했어요. 그런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고 느꼈죠.”

김하늘은 대회 둘째 날 경기를 마친 뒤 한국 친구들이 열어준 은퇴 깜짝 파티에서 펑펑 울었다. “제가 마지막 조였는데 친구들이 다 안 가고 기다렸다가 한 명씩 안아주면서 깜짝 축하를 해줬어요. 정말 감동이었죠. 별거 아닌 나를 위해 마음 쓰고 신경 써줬다는 게 그냥 고마웠어요. 그때 속으로 혼자 생각했죠. ‘김하늘 잘 살았네’라고요(웃음). 오히려 마지막 날 대회 끝나고는 안 울었어요. 마지막 퍼트까지 집중해서 멋있게 끝내고 싶었거든요.”  

가장 먼저 투어를 떠나는 그는 V157 멤버들에게 진한 메시지를 남겼다. “제 친구들이지만 정말 멋있지 않아요? 저희끼리 모여 있을 때도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잖아요. TV 보고 있는 거 같다고 말하면서 신기해해요. 이런 친구들이 함께 있어서 행복해요. 지금 용띠 친구들도 다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안타까워요. 제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해진다면 조금 더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얘들아, 나는 홀가분하다. 진짜 미련 없다(웃음).”

그는 춘천 라비에벨컨트리클럽에서 열린 KLPGA투어 SK쉴더스·SK텔레콤챔피언십을 고별전으로 필드를 떠났다. 이 대회에서 또 울 것 같다고 했지만 눈물 대신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웃었다. 처음처럼.  

사진=윤석우
사진=윤석우

◇ 도시로 나서는 설렘

김하늘과 진행한 사진 촬영 작업은 유쾌했다. 15년간 프로 생활을 겪으며 받은 스포트라이트 때문일까. 그는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웠다. 마이크 앞에 앉자 특유의 미소가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고 자연스러운 표정과 제스처는 매혹적인 여배우 분위기를 자아냈다. 고혹적인 눈빛과 표정을 지어달라는 짓궂은 요청에도 싱긋 웃더니 쉬이 감정을 잡았다.

도시 여자로도 당당하게 변신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듯 정장을 차려입고 도심 한복판으로 나서자 프로 골퍼 이미지는 이내 사라졌다. 직장인이 가장 붐비는 점심시간의 강남 역삼역 교차로에서도 패션모델처럼 도도한 자태를 뽐냈다. 투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두려움보다 인생 제2의 도전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설렘이 더 큰 것 같아요. 아직 두려운 건 겪어보질 못해서…(웃음). 이제는 제약이 없잖아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고 싶어요. 골프 때문에 못한 게 너무 많거든요. 체력이 닿는 한 배우고 싶은 건 다 배울 거예요.”

선수 시절 김하늘은 포기를 몰랐다. 아무리 훈련이 힘들어도 중간에 멈춘 적이 없다. 자신에게 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를 가까이 아는 사람들은 독종이라고 평한다. 자기 관리를 위해 생활 습관도 철저하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고 운동에 타협이 없다. 은퇴를 앞두고도 근육량은 늘리고 체지방만 3kg이나 뺐다. 웃음 뒤에 감춰진 그의 모습이다.

또 다른 사회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그는 욕심이 많다. 부상 위험 때문에 못했던 테니스, 스키, 웨이크보드 등 다른 스포츠는 물론 언어에도 관심이 많아 일어와 영어를 배울 계획이다. 방송인으로는 이미 데뷔했다. 최근 자신의 일상을 담은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팬들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섰다. “저 이제 유튜버 됐어요”라며 수줍게 웃는 그는 “구독자나 조회 수는 생각하지 않고 그동안 못했던 걸 많이 도전해서 보여드리려고 해요.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걸 카메라에 담다 보면 보는 사람들도 그 진심을 느끼시고 같이 좋아해주실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유튜브 외에 TV 골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김하늘의 다른 매력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골프 방송 관련해서는 한두 개 정도만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촬영하고 방송하는 걸 싫어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정말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골프 선수로 방송을 할 때는 못해도 이해를 해줬겠지만 방송인으로 촬영을 하면 더 잘해야 해서 걱정 돼요. 아무래도 스피치 학원도 다녀야 할 것 같아요.”

김하늘이 정말 하고 싶은 두 가지는 따로 있다. 모두 골프와 관련된 일로 구체적인 기획 단계다. 우선 평소 관심이 많던 골프 패션과 뷰티에 대한 정보 공유다.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골프 패션과 메이크업, 선크림 등 뷰티에 대한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워낙 관심이 많은 분야이기 때문에 직접 보여드리고 공유하고 싶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디자인에 참여하거나 사업적으로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골프 패션이나 뷰티 쪽은 누구보다 골프 선수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골프 아카데미 운영이다. 그가 가장 중점을 두고 구체화하는 사업이다. “아카데미는 제 재능을 잘 펼칠 수 있는 사업이잖아요. 투어 활동 15년을 하면서 겪었던 부분을 아마추어 골퍼와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주니어 육성보다는 일반인 대상으로 하고 싶어요. 아마추어를 가르치려면 아마추어 눈높이로 가르쳐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바뀌고 공부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준비할 게 많아요. 아카데미 이름부터 정해야 하는데 모두가 ‘스카이’를 말씀하셔서 다른 걸로 하려고요(웃음).”

김하늘과 이야기를 나누며 놀란 건 은퇴 후 플랜 리스트가 모두 사업 분야라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것만 구상하고 있고 단순히 선수 때 못했던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계획은 하나도 안 했어요. 이제 나를 내려놓고 놀고 그런 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요.”  

김하늘에게 남은 또 하나의 인생 설계는 결혼이다. 선수 시절 연애는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대신 주위에서 가만히 놔두지 않아 소개팅은 서른 번도 더 했단다. 연애 경험이 없으니 소개팅 자리에 나가서도 괜찮은 남자 선별법을 몰랐다.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으니 소개팅 성공 확률도 크게 떨어졌다. 

“소개팅이 아니면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없어서 소개팅을 했는데, 소개팅은 정말 별로인 것 같아요. 소개팅 나가는 게 프로암에 나가는 느낌이랄까? 어차피 골프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고 접점은 골프밖에 없으니까 계속 골프에 대한 것만 얘기하게 되더라고요. 상대도 미안하고 저도 듣기 싫고요. 어떤 사람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일어나 스윙 자세를 보여주기도 했어요. ‘스윙 좋으시네요’라고 하고 말았죠(웃음). 진짜 좋은 사람을 놓쳤을 수도 있지만 후회하진 않아요. 그 또한 인생 경험이니까요.”

김하늘은 왠지 남자 보는 눈이 까다로울 것 같았지만 의외로 털털했다. 굳이 이상형이라면 서로 살아가는 걸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남자다. “정말 편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돈이 너무 많거나 능력이 아주 출중하거나 얼굴이 엄청 잘생기고 이런 것보다는 그냥 같이 있으면 편한 사람이 좋아요. 의식주가 비슷한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성실하고 게으르지 않은, 화목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면 최고 아닌가요? 결혼도 내년에는 했으면 좋겠어요. 아기를 정말 좋아해서 일찍 낳고 싶었는데 그건 이미 실패했죠.”

사실 김하늘은 지금 연애 중이다. 처음에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가 바로 공개를 허락했다. “서른넷인데 지금 없다고 하면 더 이상한 거죠. 만난 지 얼마 안 됐어요. 지금 만나는 사람과는 잘 맞는 것 같아요(웃음).”

그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다고 했다. “잠들기 전에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면 하루가 편안하다는 말이었어요.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봤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한 명도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김하늘 잘 살았구나’ 생각했죠. 선수 김하늘은 남들보다 진짜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어요. 사람 김하늘로도 또 열심히 살아야죠.”

그는 일본 무대 진출 이후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슬럼프를 극복하고 다시 전성기가 찾아왔을 때였다. “연연하는 것을 놓아버리면 삶은 가슴 벅찬 도전이 된다.” 김난도의 책에 나오는 문구로, 힘들 때 힘을 주는 글귀였다. 투어를 내려놓은 그의 하늘빛 미래는 벌써 가슴 벅찬 도전이다.

◇ 이젠 말할 수 있는 ‘8문 8답’
 
Q 투어 생활 15년이다. 골프 선수 김하늘, 사람 김하늘. 잘 살았다고 생각하나?

선수 김하늘은 참 잘했다. 엄마, 아빠 말씀 진짜 잘 들었고 하지 말라는 거 진짜 안 했고. 아닌 건 안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사람 김하늘은 못한 게 많다. 20대 중반에 더 놀았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았다. 사람 김하늘은 아쉽지만 많은 걸 포기했기 때문에 선수 김하늘로 더 큰 걸 얻을 수 있었다. 사람 김하늘로는 지금부터 신나게 놀면서 하면 된다(웃음). 

Q 한일 투어 14승이다. 우승 순간은 누구나 잊지 못한다. 우승 말고 아쉬운 기억은?

난 샷 메이킹이 정말 좋은 선수였다. 버디 찬스도 정말 많이 만들고. 전성기에는 그 누구보다 아이언을 잘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퍼팅을 잘 못하는 편이었다. 짧은 퍼트 실수로 놓친 우승이 정말 많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퍼팅을 잘하는 선수였다면 훨씬 더 우승을 많이 할 수 있었을 거다. 퍼팅 연습을 조금 더 했다면 아쉬움이 없지 않았을까. 사실 퍼팅 연습을 안 한 게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난 멘탈이 강한 선수가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난 나약했다(웃음). 

Q 스스로 생각하는 최고의 전성기는 언제였나?

2008년에 3승을 했을 때는 멋모르고 한 거였다. 2011년에는 정말 잘 친 것 같다. 그때가 첫 번째 전성기다. 두 번째 전성기는 일본으로 무대를 옮긴 뒤다. 2016· 2017년 그 2년 동안은 진짜 잘 쳤다. 그때는 골프가 무르익어 알고 쳤던 것 같다. 그때가 최고조였다. 

Q 실력과 외모도 출중했지만 웃음이 무기였다. 신인 때부터 이미지 메이킹을 한 건가?

정말 신기하게 난 항상 방송 조에 들어가 있었다. 그땐 성적순으로 방송 조에 들어가지 않던 시절이다. 방송사에서 날 예뻐해주셨다. 아무래도 방송에 많이 나오니까 팬들도 많아진 것 같다. 이미지 메이킹도 잘됐다. 원래 웃음이 많기도 했지만 그땐 신인이어서 더 퓨어(순수)했던 것 같다. 투어에서 뛰는 것 자체가 행복한데 또 방송 카메라에도 많이 잡히니까 정말 고마웠다. 항상 많이 웃는 선수라고 주위에서 얘기하다 보니 나중에는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게 되더라. 그래서 힘들었던 부분도 있다. 힘들고 짜증 나는 상황에도 화를 내면 안 될 것 같았다. 

Q 지금은 친한 친구지만 신인 때는 신지애가 부담스러운 상대 아니었나?

첫날은 무조건 방송 조에서 좋은 선수들과 페어링이 되니까 매번 깨졌다. 그게 바로 (신)지애였다. 나보다 1년 빨리 프로에 데뷔했다. 지애와 계속 붙여놓으니까 처음에 계속 깨질 수밖에 없었다. 지애는 어떻게 골프를 할까, 어떻게 하면 지애를 이길 수 있을까, 아빠와 매일 고민했다. 지애의 연습법도 공략법도 따라 바꾸면서 하다 보니 점점 지애와 대결할 수 있을 정도 실력이 되더라. 지애 덕분에 내 골프가 좋아진 것 같다.  

Q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아서 시기와 질투도 많지 않았나?

데뷔 초에는 정말 많았다. 다 여자들만 있는 곳이고 개인 스포츠이다 보니 있을 수밖에 없다. 첫 우승할 때까지만 해도 그런 게 없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우승을 하고 나니 이상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말한 것과 전혀 다르게 선수들 사이에서 나쁘게 와전되니까 그런 걸 견뎌내는 게 힘들었다. 20대 초반에 겪기에는 너무 큰 상처였다. 부모님이 항상 그러셨다. 이런 시기와 질투는 네가 실력으로 눌러야 한다고. 더 이 악물고 연습했던 것 같다. 그렇게 4승, 5승을 하니까 그런 말도 없어졌다. 모든 것이 큰 경험이었고 공부가 됐다. 

Q 선수라서 말 못했던 것, 지금은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나?

갤러리 매너다. 스윙 때는 제발 카메라로 안 찍었으면 좋겠다. 담아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콘서트 가서 카메라 촬영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나도 찍고 있더라. 찍더라도 찰칵 소리가 안 나게 해서 선수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해야 한다. 내가 국내 투어에서 뛸 때만 해도 정말 심했다. 티 샷을 할 때 루틴을 세 번 풀었던 적이 있다. 결국 다시 치는데 샷이 내려오는 순간 또 찰칵 소리가 나서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으로 굴러갔다. “제발 쫌 찍지 마시라고요”라고 하면서 막 울었다. 그런 뒤에도 또 선수 탓을 하며 프로가 그런 것도 못 이겨낸다고 악플이 달리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이건 아무리 프로라고 해도 절대 극복이 안 된다. 선수들은 대회에 들어가면 정말 예민해진다. 그 샷 하나를 위해 1년을 연습한다. 한 타가 정말 소중하다. 안타깝게도 일본 투어에는 그런 갤러리가 거의 없다.   

Q 선수 시절 내내 가족이 헌신했다. 이제는 반대 아닌가?

부모님이 진짜 고생 많이 하셨다. 가족에게 제일 미안하다. 인생이 그냥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던 것 같다. 여섯 살 터울 동생은 내가 대회 나가면 아침에 혼자 일어나 밥 차려 먹고 학교에 갔다. 그런 부분이 항상 미안했다. 가족이 나를 위해 모두 희생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고 프로 인생 마무리도 잘할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사업을 잘해서 갚을 차례다. 열심히 살겠습니다(웃음).  

+나이_만 33세

+프로 데뷔_2006년

+소속사_리한스포츠

+성적_프로 통산 14승 KLPGA투어 8승 (메이저 1승) JLPGA투어 6승 (메이저 2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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