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왼손잡이야’ 한국 골프의 소외된 소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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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왼손잡이야’ 한국 골프의 소외된 소수자들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2.01.2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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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시형
사진=김시형

왼손잡이는 비주류의 상징이다. 한국 골프에서 그들은 철저히 소외된 소수자들이다. 

뉴턴, 아인슈타인, 다빈치, 미켈란젤로, 피카소, 베토벤, 괴테, 나폴레옹….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왼손으로 기록한 인물들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왼손잡이들이 세계 역사를 바꿔왔다. 하지만 왼손잡이들은 차별의 역사를 가진 마이너리티(Minority, 소수자)였다. 기원전 3000년경에는 ‘오른쪽’이라는 단어는 있었지만 ‘왼쪽’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불길하고 나쁜 의미로 쓰였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야구와 권투에서 왼손잡이를 의미하는 사우스포(Southpaw)의 ‘포(paw)’는 손을 비하하는 단어다.

전 세계적으로 평균 10% 정도로 알려진 왼손잡이 비율은 미국이 15%, 일본이 12% 정도로 평균을 웃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왼손잡이 비율은 약 5% 수준으로 매우 낮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한국은 오른손잡이를 위한 세상이다. 왼손잡이는 일상 생활을 하면서 불편한 것투성이다. 필기를 할 때는 손에 잉크 묻을 각오를 해야 하고 가위질은 물론 문손잡이를 돌려 여는 것조차 불편하다. 한국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억지로라도 오른손잡이 훈련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다.

그러나 스포츠에서는 사회적으로 푸대접을 받는 왼손잡이가 유리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야구와 탁구, 권투 등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종목에서는 왼손잡이가 각광을 받는다. 야구에서는 유독 왼손 투수와 타자가 많다.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잡아온다는 말이 생길 정도다. 국내 야구 스타 이승엽과 류현진도 모두 왼손잡이다. 농구에서도 유리한 경우가 많다. 농구 대통령으로 불린 허재와 천재 가드로 한 시대를 풍미한 김승현도 왼손잡이다. 미국프로농구(NBA) 득점왕 출신 제임스 하든은 “만약 내가 오른손잡이였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라고 왼손잡이가 늘 환영받는 건 아니다. 폴로나 필드하키는 선수 안전을 위해 왼손잡이 자세로 스틱을 잡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골프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미국의 대표적인 왼손잡이 골퍼로 필 미컬슨과 버바 왓슨 등이 있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왼손잡이 골퍼를 찾아볼 수 없다. 약 2500명이 넘는 한국프로골프(KPGA)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를 통틀어 투어를 뛰고 있는 왼손잡이 골퍼는 K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정이연이 유일하다. 남자 선수 중에 왼손잡이 골퍼는 0명이다.

왼손잡이가 없는 건 아니다. 오직 생존을 위해 어려서부터 오른손잡이 골퍼로 철저하게 길들여진 것이다. 왼손잡이 골퍼가 전무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열악한 환경 탓이다. 왼손잡이가 사용할 수 있는 골프 연습장과 장비가 현저히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드라이빙레인지에서는 왼쪽 구석에서 벽을 바라보고 연습을 해야 하고 스크린골프장도 좌타석을 구하기 힘들다. 클럽과 장갑 등 장비의 선택 폭도 한정적이고 시타는 꿈도 못 꾼다. 또 레슨도 대부분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맞춰져 있어 혼동되고 이해가 쉽지 않다. 레슨 서적과 영상도 거꾸로 재해석해야 하는 지경이다.

국내 골프 장비업체를 대상으로 왼손잡이 골퍼를 위한 장비와 관련해 조사한 결과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타와 피팅은 제한적이었고 장비도 대부분 주문 제작을 해야 구매가 가능했다. 평균 한 달에 두세 건 정도 왼손잡이 클럽 커스텀 오더가 들어오는 수준이다 보니 왼손잡이 골퍼를 위한 서비스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한 장비업체 관계자는 “왼손잡이 골퍼를 위해 대응 방안을 마련해두고 있지만 실제로 왼손잡이 골퍼의 방문이나 구매 비율은 매우 낮은 편”이라며 “클럽 구매가 어렵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열정이 떨어지거나 아예 오른손잡이로 골프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미국 본사에는 왼손잡이 골퍼를 위한 시설이 잘 갖춰진 데 반해 우리나라는 왼손잡이가 소외되는 문화 때문에 시설 자체가 갖춰지지 않았다”면서 “시대가 바뀌고 있고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시설 확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좌완 투수 김광현은 PXG를 찾아 “골프를 좋아해서 관심이 많은데 왼손잡이 제품을 취급하는 브랜드가 많지 않아 난감한 경우가 많았다. PXG에서 주문 제작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반가운 건 글로벌 브랜드의 경우 왼손잡이 골퍼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는 것이다. 주력 제품에 한정해 최소 수량으로 확보해놓은 곳도 있지만, 대부분 제품 수량을 충분히 확보해 주문 제작 기간도 오른손잡이와 차별을 두지 않고 있다. 또 주기적으로 왼손잡이 클럽을 출시하거나 시타 타석을 마련해 피팅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곳도 있다.

타이틀리스트는 스톡 제품을 마련해두고 있지는 않지만 모든 제품을 왼손잡이 타깃용으로도 보유하고 있고 시타와 피팅을 통해 커스텀 제작이 가능하다. 핑은 드라이버부터 퍼터까지 안정적으로 재고를 확보하고 있고, 과거 왼손잡이 골퍼를 위한 렌털 서비스를 하거나 레프티 동호회에서 시타회를 열기도 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핑골프 관계자는 “미국 브랜드라서 왼손잡이 제품이 많다. 핑을 사용하는 버바 왓슨을 보고 찾아오는 왼손잡이 골퍼도 많다”고 말했다. 이승엽도 핑 드라이버와 페어웨이 우드, 하이브리드를 사용한다. 한국미즈노는 왼손잡이 골퍼를 위해 2~3년 주기로 레프티 클럽을 출시한다. 한국미즈노 홈페이지를 통해 레프티 아이언 세트인 JPX921 SEL을 서비스한다. 한국미즈노 관계자는 “한 가지 모델이 아닌 여러 라인에서 가장 퍼포먼스가 좋은 클럽을 콤보로 구성해 종합 선물 세트처럼 왼손잡이 골퍼에게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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