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너 3세가 말하는 우즈 그리고 조던과 우정 [스폐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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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너 3세가 말하는 우즈 그리고 조던과 우정 [스폐셜 인터뷰]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2.02.0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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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에서 사람 좋기로 정평이 난 해럴드 바너 3세가 말하는 타이거 우즈와 나눈 우정, 마이클 조던과 인연, 코로나 시대의 토너먼트 그리고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흑인 선수가 더 늘어나지 않는 이유에 대한 거침없고 솔직한 인터뷰를 소개한다(골프다이제스트 2020년 9월호 게재).

바너 3세는 골프다이제스트 객원 기자인 마크 휘터커를 만나 코로나 시대의 골프 그리고 조지 플로이드(2020년 5월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 사망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폭력적인 경찰의 대응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을 넘어 세계 전역에서 벌어졌다)의 죽음으로 촉발된 시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흑인 어린이가 시립 코스에서 플레이하다가 골프에 빠지게 된 사연을 시작으로 우즈와 조던에게서 배운 교훈, 골프계가 더 포용적인 태도를 갖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한 생각까지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투어에서 사람 좋기로 유명한 그가 자신을 “자기주장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 가족 얘기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노스캐롤라이나주 개스토니아에서 자랐지만 태어난 곳은 오하이오주 애크런이다. 내가 여섯 살 때 이사 왔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아버지(해럴드 바너 2세)는 매케니 쉐보레의 영업 사원이었다. 지금까지 40년 넘게 차를 팔았다. 굉장히 오랜 세월이다. 엄마(퍼트리샤 카터)는 카로몬트 지역 병원의 수술 준비팀에서 근무한다. 그리고 두 살 터울의 여동생 제시가 있다.

●●● 골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 때문에 시작하게 됐다. 아버지가 그때 막 골프를 시작하면서 나를 코스로 끌고 간 셈이다. 아버지가 어린이 완구용 클럽을 사줬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이가 두세 살밖에 안 됐을 것이다. 그러다가 열 살 때 클럽 세트를 갖게 됐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모아놓은 것이었다. 여름쯤 온전한 세트가 생겼다.  

●●● 아버지를 따라 플레이하러 갔다고 했다. 어디로 간 건가?

개스토니아시립코스였다. 나는 거기서 열다섯 살 때까지 플레이했다. 집에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멋진 곳이다. 지금은 카토바크리크로 이름을 바꿨다.  

●●● 오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멤버십 제도가 있어서 100달러를 내면 6월 1일부터 9월 1일까지 여름 내내 플레이할 수 있었다. 걸을 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플레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플레이했고 주말에는 아버지 친구들과 자주 플레이하곤 했다.  

●●● 어떤 사람은 100달러를 그렇게 큰돈으로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집안 사정이 힘들어서 점심값 1달러 50센트가 없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시립코스에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부모님이 희생했다고 볼 수 있을까?

워낙 어릴 때라서 자세한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부모님이 그렇게 해주었다.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쓰려고 하면 그 100달러를 쓸 곳은 얼마든지 있었을 테니까.

●●● 아버지와 친구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나?

열두 살 아니면 열세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실력이 꽤 좋은 분도 있었기 때문에 플레이를 잘해야 했다. 하지만 한 번 그런 일이 일어나자 심심찮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 교습을 받은 건가 아니면 혼자서 익힌 건가?

열여섯 살 이전에는 교습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그저 플레이할 곳이 있었을 뿐이다. 언제든 골프 코스에 갈 수 있었고 늘 플레이할 수 있다. 그게 비결이었다. 코스에 매일 갈 수 있으면 혼자 힘으로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마음을 품을 수 있다. 스윙에 대해 생각했다기보다 그냥 스포츠로 접근한 것에 가깝다.  

●●● 개스토니아에 있는 포레스트뷰고등학교를 나왔다. 미식축구나 다른 운동은 하지 않았나?

전혀. 이렇게 체구가 작아서야 미식축구를 할 수 있겠나(바너의 현재 신장은 172cm)? 중학교 때 농구를 했지만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진 않았다.  

●●● 그렇다면 골프만 한 셈이다. 골퍼로서 좌절감을 느낀 적은 없나?

뭐, 조그만 흑인 꼬마가 골프를 한다고 하니까 다른 아이들이 보기에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나를 놀리거나 한 적은 없다. 그리고 골프팀의 실력도 상당히 뛰어났다. 2학년 때는 우리 팀이 리그에서 4위를 했고 3학년 때는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4학년 때는 2위를 했다.

●●● 팀과 상관없이 당신이 거둔 의미 있는 첫 번째 우승은 열여섯 살 때 빅디키인비테이셔널이었다. 재능 있는 소수 인종의 청소년 골퍼를 지원하는 장학 프로그램을 설립한 흑인 부동산 기업가를 기리는 36홀 토너먼트인 걸로 알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은 무엇인가?

여자가 30명, 남자가 60~70명 정도 참가한 대회였다. 경비를 지원해주고 올랜도에서 열렸다. 첫해에는 출전하지 못했고 그다음 해에 나갔다. 거기서 우승하면서 오하이오주 웨스트필드에서 열린 PGA주니어에 나가게 됐고 페블비치에서 열린 월마트퍼스트티에도 나갔다. 그건 퍼스트티 프로그램에서 후원한 대회였다. 하지만 나는 퍼스트티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 그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54홀 규모의 프로-주니어 베스트 볼 포맷이었다. 내 파트너인 모리스 하탈스키가 첫날 65타를 기록했기 때문에 나는 할 게 별로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은 내 플레이가 아주 환상적이었다. TV로도 중계됐다. 마지막 여섯 홀에서 네 개의 버디를 기록했다. 우리는 23언더파를 합작했다. 그다음 날 스코어카드를 봤는데 정말 근사했다.

●●● 그때 페블비치에서 처음 플레이를 해본 건가?

맞다. 처음이었다. 캘리포니아에 가본 게 처음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처음 아니면 두 번째였을 것이다.  

●●● 이스트캐롤라이나대학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건가?

그렇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니어 대회에 출전했을 때 이듬해 이스트캐롤라이나에 간다는 골퍼와 플레이를 같이 하게 됐다. 그 친구와 연습 라운드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품게 됐다. 나는 당시 우리 골프팀 감독인 프레스 맥폴에게 전화를 걸어 이스트캐롤라이나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 다른 학교도 고려했나? 아니면 다른 학교에서 당신에게 제안하기도 했나?

그렇다. 역시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벨몬트 애비 칼리지도 알아봤다. 하지만 나는 늦게야 실력을 드러냈기 때문에 장학금 혜택이 많지 않았다. 1년을 기다렸다면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커뮤니티 칼리지에 갔다가 전학하는 방식이었을 텐데,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 그렇다면 그 결정에 만족했나? 프로가 될 준비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내가 PGA투어에 진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프레스 맥폴은 내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늘 고되게 훈련을 시켰다. 그게 정말 좋았다. 진심이다. 그가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코치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우리는 통화를 자주 한다. 지금은 절친한 친구 같은 사이다. 그에게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실제로 오늘도 통화를 했다.  

●●● 2012년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프로로 전향한 건가?

맞다. 우리는 리비에라에서 열린 NCAA 1부리그 대회에 출전했다. (바너는 1라운드에서 팀 최고 스코어인 71타를 기록했지만 팀은 매치플레이에 진출하지 못했다.) 아마추어 자격으로 US오픈 지역 예선에 출전했고 노스캐롤라이나주 아마추어 대회에도 나갔다. 그게 아마추어로서 출전한 마지막 대회였다. 그런 다음 프로로 전향했고 미니투어 생활을 시작했다.  

●●● 졸업은 했나?

물론이다. 졸업하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나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대학에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걸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 물론 어느 정도 잘한다는 건 알았지만 골프로 세계를 제패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 전공은 무엇이었나?

마케팅을 전공했다. 회계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 투어 카드를 얻기까지 얼마나 걸렸나?

2012년에 프로로 전향했다. 2015년에 투어 카드를 손에 넣었다. 그러니까 3년이 걸린 것이다. 미니투어에서 1년 반을 활동했고 그다음에 웹닷컴투어 2년을 거쳐 카드를 획득했다.  

●●● 미니투어 시절에 만약 자신이 백인이었다면 뭔가 달랐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

없다. 왜냐하면 당시 돈과 관련해서 나를 도와준 사람은 전부 백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 없었지만 돈이라는 게 있었던 적이 없었던 터라 개의치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빌 윌리엄슨이라는 사람이 나를 위해 2만5000달러를 모금해주었고 그걸로 골프에서 돈을 벌기 시작할 때까지 플레이할 수 있었다. 미니투어에서 처음으로 한 시즌을 다 소화한 해에는 컷 탈락도 많이 하지 않았고 5만4000달러를 벌었다. CDW라는 회사의 이벤트도 참가했다. 거기에 참가할 수 없었던 PGA투어 선수는 5000달러를 내야 했다. 그리고 먼데이애프터더마스터스(마스터스가 끝나고 유명인이 참가하는 월요 프로암 대회)로도 2000달러를 벌었다. 그런 식으로 생계를 꾸려갔다.  

●●● 빌 윌리엄슨이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

그는 퀘일홀로의 설립 회원이고 PGA투어에서도 1년간 활동했다. 아버지 친구를 통해 그를 만났다. 내가 열다섯인가 열여섯 살 때였다. 학교를 졸업했을 때 그가 “이제 뭘 할 거냐”고 물었다. “투어에 진출할 방법을 찾고 싶어요. 그런데 자금이 조금 필요해요.” 내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가 기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자신의 돈도 보탰다. 그건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개스토니아에 있는 크리스피크림에서 만났을 때 그가 1만 달러를 약속했다. 그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아, 이 친구가 흑인이니까 돕고 싶어.’ 그는 이런 식으로 생각한 게 아니었다. 그는 나를 아무 조건 없이 도와줬다. 그에게 뭘 갚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도 빌과 일주일에 한 번씩은 통화한다. 8년 전에는 그에게 문자 보내는 법을 알려줬다.  

●●● 그러니까 그는 당신이 골퍼로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고 당신은 그에게 문자 보내는 법을 알려줬다는 건가?

맞다. 저번에는 내게 “골프 연습을 하고 있어!”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는 올해 여든아홉 살이다. 그는 훌륭한 멘토였고 특히 약혼녀(어맨다 싱글턴은 그가 이스트캐롤라이나에서 회계학 수업을 들으면서 만났다)가 오빠를 잃었을 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도 가족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 때나 찾아가서 점심을 먹거나 아침을 함께 먹는다. 그는 샬럿에 있는 멋진 곳을 빠짐없이 알고 있다. 그가 그런 곳에 나를 데려가면 나는 나중에 어맨다를 데리고 그곳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그런 것도 참 재미있다.

●●●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살면서 중요한 순간에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옆에는 늘 아버지가 함께했고 브루스(브루스 서더스는 그의 첫 번째 코치이다)에 이어 프레스도 있었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빌 윌리엄슨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얘기를 주고받으며 늘 내게 자극을 주고, 늘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아버지 같은 존재가 많이 있었다.  

●●● 투어에서 사람 좋기로 유명하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 앞에서 거론된 그런 사람들이 당신을 도와준 이유는 당신의 환경 때문이 아니라 됨됨이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이제 사람이 좋다는 의미는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뜻인 것 같다. 부모님은 항상 이 점을 강조했다.  

●●● 흑인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느낀 건 아닌가? 그냥 그런 게 본모습인가?

최소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물론 성인이 되면 인생이 훨씬 복잡해진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언제나 사람을 바르게 대하고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를 따져보는 것이다. 그 상황을 이미 경험한 사람을 보면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에 대한 ESPN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더 라스트 댄스>를 본 사람은 하나같이 “와, 나도 마이클 조던처럼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조던은 전성기에도 늘 나이 든 선배를 찾아가서 교훈을 얻곤 했다. 내가 그 프로그램에서 가장 감명을 받은 건 바로 그것이었다.

●●● 그 얘기를 듣고 보니 타이거가 생각난다. 그는 당신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나?

우상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그를 우러러본 건 분명하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아닌가. 우리 세대에게만큼은 그런 게 틀림없다. 어릴 때 그가 코스에서 펼치는 플레이를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게 가능해?’  

●●● 사람들은 그가 골프를 하고 싶어 하는 흑인 청소년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모든 청소년에게 골프가 멋진 스포츠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맞다.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주 정확한 표현이다.  

●●● 그를 처음 만난 건 언제였나?

내가 투어에 처음 진출했을 때 그는 부상 중이었다. 2017년에 워싱턴 D.C. 인근에서 그가 주최한 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플레이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개최한 토너먼트였기 때문에 현장에는 나와 있었다. 내가 티오프를 막 하려는데 그가 티잉 에어리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다가왔을 때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모른다. 사실 먹던 음식을 가방에 막 넣으려던 참이었다. 그는 참가해줘서 고맙다며 말을 걸었다. 토너먼트 주최자로서 한 말이었다. 그러고는 잠시 가벼운 잡담을 주고받았다. 그가 떠나고 나는 플레이를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의 전화번호를 받게 되었고 잘 아는 사이가 됐다.  

●●● 타이거가 투어에 진출한 모든 선수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줄 것 같지는 않은데.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라.” 이런 뜻을 보여준 거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나?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질문을 참 잘한다. 그와 플레이하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실력을 더 쌓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나는 무대 공포증 같은 건 없다. 우리가 처음으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건 리비에라의 라커 룸(2018년 제네시스오픈)이었다. 그는 농담을 아주 잘했다. “우리 언제 플레이할까요?” 나는 대놓고 물었고 2주쯤 지나 웰스파고를 앞두고 나는 또 말했다. “우리 플레이해요. 네? 못할 게 뭐야.” 그래서 우리는 TPC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연습 라운드를 두 번 했고 그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 그가 해준 최고의 조언은 무엇인가?

타이거가 내게 해준 말 중 최고를 꼽는다면 “자신만의 레이스를 뛰라”는 것이다. 나만의 여정. 그게 뭐든, 그 페이스대로 달려야 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건 정말 핵심적인 말이었다. 특히 여든 번이 넘는 우승을 거둔 사람이 해준 말이라면. 그건 내게 정말 큰 도움이 됐다.  

●●● 마이클 조던과도 사이가 각별하다던데.

나이키와 계약하기 직전이었다(2018년에 바너는 키건 브래들리와 함께 투어에서 나이키의 조던 브랜드와 계약한 두 번째 선수가 됐고 그 브랜드의 골프화와 의상을 입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쭉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와 절친한 프레드 휫필드(Fred Whitfield), 그러니까 샬럿 호니츠 구단의 사장과 상당히 가까운 사이다. 거기서부터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 둘이 만나면 이스트캐롤라이나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에 관련된 신랄한 말이 오갈 것 같은데.

조던과 내가 처음 플레이할 때 UNC의 미식축구팀이 신발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UNC 미식축구팀 선수 13명이 대학에서 지급한 에어 조던을 판매해서 출전 정지를 당했다.) 나는 우리가 이길 거라며 신이 났다. (실제로 그해 이스트캐롤라이나가 UNC를 상대로 41-19의 대승을 거뒀다.) “그건 선수들이 출전 정지를 당했을 때잖아.”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잘못이지!”

●●● 조던에게서 받은 최고의 조언은 뭔가?

조던이 내게 해준 최고의 말은 침착함과 여유에 대한 것이다. 내가 상황을 통제해야지 상황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PGA챔피언십 이후에 우리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 20분 동안 얘기를 나눴다. (베스페이지블랙에서 열린 2019년 PGA챔피언십에서 바너는 일요일에 브룩스 켑카와 맨 마지막 조로 플레이에 나섰지만 81타를 기록했다.) 나는 마음이 조금 앞섰고 나쁜 샷이 여러 번 나왔다. 그는 내게 말했다.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 마음이 앞서면 안 돼.”

●●● 타이거나 조던과 관련해서 사람들은 최고가 되려면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좋은 사람과 배치되지 않을까?

방법을 터득해야지. 그건 별로 어렵지 않다. 실수를 저지를 경우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면 된다. 이건 어려운 과학이 아니다. 뭐가 옳은지 그른지를 모르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나는 늘 옳고 그름을 잘 판단했다. 그건 인생에 커다란 이익이 된다.  

●●● 투어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투어가 상황에 잘 대처했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를 중단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솔직히 화가 난다. 신경에 거슬린다. 언론도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성공이 뭔가? 성공이 아닌 것은 뭔가?” 성공은 일단 시도하는 것이다. 우리 말고는 플레이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처럼 하는 곳은 없다. 우리는 하고 있다. 이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사는 미국 전체에 비하면 우리는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겁이 난다면 집으로 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입을 다물고 있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나는 자기주장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팬이 없는 상태에서 플레이하는 기분은 어땠나?

아무래도 다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토너먼트가 진행된다는 느낌이 든다. 진짜 토너먼트처럼 긴장이 된다. 어쨌거나 승부를 펼칠 수 있다는 건 실제로 아주 멋진 느낌이다.  

●●● 몇몇 프로는 팬이 없으니까 플레이가 더 잘 된다고 한다. 스코어를 보면 그런 주장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사실이다. 나도 팬이 없으니까 플레이가 더 잘되는 것 같다.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후 당신은 그것이 “무분별한 살인”이며 “악마 같은 행위”였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쁜 경찰보다 좋은 경찰이 더 많으며 가게와 경찰서에 불을 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뭔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사회에서는 흑인일 경우 무슨 말이든 해야만 한다. 어떤 식으로든 발언권을 가진 사람이면 특히 더 그렇다. 입을 꾹 다물고 경찰의 폭력이 이제야 처음으로 시작된 것처럼 굴면 곤란하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휴대전화 동영상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을 뿐이다.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악마는 존재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걸 믿는다. 하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여전히 악보다 선이 더 우세하다고 믿는다. 요즘 집에 틀어박혀서 TV만 보면 좋은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게 인종 문제가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지금처럼 나한테 얘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리더로서 해야 할 역할을 받아들이는 중이며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보다 훨씬 책임이 강조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확실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 적절한 행동이든 부적절한 행동이든 모두가 같은 잣대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 경찰 때문에 곤란한 적이 있었나?

경찰이 차를 세우라고 한 적이 많다. 뭐, 10대 시절에는 다들 과속을 하지 않나?

●●● 우리 아버지는 흑인으로서 경찰을 대할 때 어떻게 하라는 식으로 훈계를 많이 한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우리 아버지는 그런 적이 없다. 그 대신 전반적인 처신에 대해 당부를 많이 했다. 꼬박꼬박 존칭을 붙여야 한다는 것을 포함해서 상당히 길다. 개스턴 카운티 최고의 학교에 나를 보낸 것도 그런 가르침의 일환이다. 자녀가 성공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만들려는 부모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최고의 학교나 뭐 그런 내용이었다. 어릴 때는 부모의 의중을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 것을 알고 나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안아주고 싶어진다.  

●●● 다양성 측면에서 골프에 여러 가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타이거가 등장하고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당신과 캐머런 챔프 그리고 조지프 브램릿이 투어에서 활동하는 흑인 선수의 전부인 이유는 뭘까?

나는 이 얘기를 처음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왔다. 문제는 접근성이다. 접근성이 있다면 아이들은 플레이를 하게 된다. 어딘가로 골프를 하러 가는 것보다 농구공을 튀기는 게 훨씬 쉽다. 그런 상황이 바뀌기 전까지는 골프의 접근성을 가진 사람이 최고의 무대에서 플레이하는 걸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세운 HV3 재단에서도 그런 점에 힘을 쏟으려 한다. 저소득층 아이들도 컨트리클럽에 드나드는 아이들과 똑같은, 최소한 비슷한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하고 싶다. 그걸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정도는 알 수 있도록. 의견을 내면서 아이디어를 모으는 중이다. PGA투어 커미셔너인 제이 모너핸은 그런 점에서 아주 잘해왔다. 그와도 얘기를 나눴다. 곧 진행될 것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 골프다이제스트 독자층은 백인 남자가 압도적이다.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

계속 물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예를 들어 골프에 관심이 있는 아이를 본다면 자신이 도와줄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모두가 해야 하는 행동이었다. 어떤 경찰이 흑인 청년을 죽이지 않았더라도 모두가 서로를 도우며 살아야 했다.

* 마크 휘터커는 뉴스위크의 에디터이자 CNN의 매니징 에디터로 활약했으며 저서로는 <스모크타운: 또 다른 위대한 블랙 르네상스의 숨은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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