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질주를 즐기는 악샤이 바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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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 질주를 즐기는 악샤이 바티아
  • 인혜정 기자
  • 승인 2022.06.2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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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샤이 바티아는 많은 사람이 말릴 때 프로로 전향했다. 그리고 1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의 판단이 옳았던 것처럼 보였다. 악샤이가 자신의 투어 스토리를 털어놓는다.

최고의 주니어 선수들은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에서 열리는 US키즈월드챔피언십에서 플레이한다. 그래서 누나 레아와 내가 이 대회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아버지 소니와 어머니 레누는 우리를 데리고 LA의 집에서 노스캐롤라이나까지 비행기를 타고 갔다. 런던과 홍콩에서 성장한 부모님은 번잡한 LA보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우리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당시 아버지는 눈에 종양이 있었는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치료를 받는 게 더 나았다. 지금은 시력을 잃었지만 여전히 잘 지내신다.

내가 열 살 때 우리는 웨이크포리스트로 이주했다. 그때부터 골프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나는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고 덩치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주위에 누가 없는 것이 좋았다. 방과 후에 곧장 골프장에 갈 수 있도록 골프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 모두가 나를 골프 키즈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골프 코스에서 5분 거리에 살았다. 누나는 샬럿에 있는 퀸스대학으로 진학해서 대학 골프선수로 활동했다. 누나와 나는 함께 플레이한 적이 많았다. 함께 플레이할 아이들도 있었다. 토너먼트에 나가 나보다 나이 많은 선수들과 경쟁했다. 비거리가 긴 장타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창의적인 플레이를 해야 했다. 나는 다른 티 박스에서 플레이함으로써 먼 거리를 캐리해야 하는 상황에 대처했다. 나처럼 하는 아이들이 없을 때도 볼을 데크에 올려놓고 플레이했다.

6학년 때 더 이상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았다. 나는 자주 대회에 나갔고 주니어 골프를 주름잡기 시작했다. 워커컵에서 미국팀 대표로 플레이한 최초의 고등학생 선수가 되었다. 언제나 경쟁했고 이기는 법을 알고 있었다.

2019년 탬파에서 열린 발스파챔피언십에서 스폰서 초청을 받아 첫 PGA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열일곱 살의 아마추어 선수였고 미스 컷을 했지만 자신감이 있었다. 트랙맨 덕분에 내 플레이의 모든 양상에 관한 데이터도 가지고 있었다. 내게는 훌륭한 스윙코치 조지 갠카스가 있었다. 나는 빅토르 호블란, 콜린 모리카와, 매슈 울프 등이 프로로 전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 역시 똑같이 해야 한다고 믿었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하고 그해 말 프로로 전향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프로를 택했을 때 많은 사람이 잘못된 판단이라고 했다. 가족은 나를 지지해주었다. 부모님은 많은 것을 희생했다. 주니어 골프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아버지는 일을 그만두고 나와 함께 여행했다. 어머니는 가족을 부양하고 내 골프를 지원하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집에 있을 때도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어머니께서 일을 너무 많이 하셨기 때문이었다. 내가 프로가 되었을 때 누나가 나의 투어 활동을 도왔다. 내가 어렸기 때문에 누나가 차를 렌트하고 호텔 예약을 맡았다. 우리는 정상적인 가족의 삶을 희생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언젠가는 어머니께 꼭 보답할 것이다.

프로 첫해에 PGA투어 스폰서 초청을 받았지만 모든 대회에서 미스 컷을 기록했다. 돈을 한 푼도 벌지 못했고 투어활동을 하면서 많은 돈을 썼다. 팬데믹은 끔찍했지만 나를 구해주기도 했다. 토너먼트들이 취소됐다. 집으로 돌아가 무엇이 문제인지 따져보았다. 나는 갠카스와 함께였고 여전히 소통하고 있지만 근처에 사는 체이스 덩컨과 함께 훈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두 번째 아버지 같은 사람이다.

우리는 훈련 내용을 구성했고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샷의 종류를 늘려나갔다. 티에서는 볼을 낮게 치는 법, 드로를 구사하는 법을 배웠고 캐리 거리도 크게 늘었다. 예전에는 단 한 가지 드라이버 샷만을 구사했다. 갠카스와 내 멘털 코치인 그레그 카틴은 대회에서 패배한 뒤에도 여전히 괜찮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주니어 골프에서 나는 수많은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프로골프에서는 항상 실패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이러한 과정은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실패는 내가 학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기는 것 역시 도움이 된다.

1월 바하마에서 콘페리투어 첫 승을 거두며 이 투어에서 우승을 기록한 세 번째 10대 골퍼가 되기 전까지 많은 것이 내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대회 3주 전 나는 피클볼을 하다 어깨가 탈구됐다. 주치의는 내게 기다려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통증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대회장으로 떠나기 전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캐디인 요나스 힐야드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내 여자친구 프레슬리 슐츠는 골프를 하지 않지만 어찌 되었건 내게 와주었고 그에게 캐디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2021년 인스타그램을 통해 만났다. 나는 만난 적이 없던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는 텍사스 A&M에 있었고 발레로텍사스오픈에 와주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함께 지낸다.

그는 침착하고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비행기에 앉아 있을 때 혹은 다른 경우에 서로에게 “긴장되십니까?”라고 묻는 장난을 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웃으면서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마지막 라운드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긴장되십니까?”라고 물어대면서 밝고 가벼운 기분을 이어나갔다. 우승이 눈앞에 보이게 됐을 때 그는 분명 긴장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평생 이 대회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해줄 것이다.

우승 덕분에 올해 20개가 넘는 대회에 출전했다. 누나와 부모님은 나를 응원하고 있다. 내게는 백을 책임져주는 요나스가 있다. 프레슬리는 나와 함께 여행을 한다. 내 사촌 아네시는 내 소셜 미디어를 담당하고 있으며 대회장에 나타난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하고 있다. 내가 프로로 전향했을 때 이것이 얼마나 힘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제 다시 그때의 자신감을 회복했다. 

악샤이 바티아
활동 무대 : 콘페리투어
나이 : 20세
거주지 : 노스캐롤라이나주 웨이크포리스트

글=킬리 레빈스(Keely Lev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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