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계 성장한 개릭 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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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계 성장한 개릭 히고
  • 인혜정 기자
  • 승인 2022.08.0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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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젠슨 라슨

어린 시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성장할 때 아버지에게 골프를 배웠다. 아홉 살 때 우리 가족에게 비극이 닥쳤다. 사촌을 보기 위해 요하네스버그까지 차로 이동하던 중 다른 차가 우리를 덮쳤고 그 사고로 아버지는 잃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는 케이프타운 인근의 스텔렌보스로 이사했다. 나파밸리와 비슷하지만 산이 더 많은 곳이다. 내 형과 동생은 골프를 하지 않았지만 나는 10대 시절 골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뛰어난 럭비·크리켓 선수였다. 키도 208cm였다. 나는 183cm에 불과하지만 어릴 때 럭비를 했다. 작은 체구를 험한 말투와 약간의 창의력을 더한 건방진 태도로 만회했다. 열세 살 때 태클을 시도했는데 팔꿈치가 바깥으로 꺾여버렸다. 어머니는 “이제 됐다. 그만해라”라고 하셨다. 회복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려서 나는 1년 동안 골프를 할 수 없었다.

전 스윙 코치이자 평생의 멘토인 클리프 버나드를 통해 만난 게리 플레이어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게리도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다. 우리는 특별한 유대 관계를 쌓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2016년 US아마추어선수권이 오클랜드힐스(게리가 1972년 PGA챔피언십 우승을 기록함)에서 치러지기 전, 그는 내게 모든 홀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게리는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만일 내 플레이에서 개선해야 할 점을 발견하면 내게 말해줄 것이다.

열일곱 살 때 남아공에서 아마추어 1위에 올랐다. 2017년 US주니어에 출전했고 준결승에서 매슈 울프에게 패했다. 네바다대학교 라스베이거스에서 전액 장학금을 제안받았다. 대학 생활을 즐겼지만 너무나 투어에 나가고 싶었다. 1년 후 프로로 전향하기 위해 네바다대학교를 떠났고 남아공으로 돌아와 디벨롭먼트투어인 빅이지투어(Big Easy Tour)에 참가했다.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미스컷 했지만 나 자신이나 내 결정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프로 골퍼가 되고 싶었다. 두 번째 대회에서 우승했다.

챌린지투어로 옮겼다. 그리고 코로나19가 닥쳤다. 2020년 6월까지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힘든 시간이었지만 긍정적인 면에 집중했다. 내 트랙맨을 사용해 실내에서 볼을 칠 수 있는 좋은 연습시설을 가지고 있었고 투어에 참여하는 동안 보고 싶었던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투어가 다시 시작됐고 2020 포르투갈오픈에 출전했다. 내 에이전트에게 “우승할 거니까 돌아가는 티켓은 예약하지 말아요”라고 농담했다. 그리고 우승했다. 이 승리로 DP월드투어로 직행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내 모든 계획은 바뀌었다.

DP월드투어는 크게 한 단계 높은 무대였다. 나는 6개월 동안 여덟 번 미스컷 했다. 내 드라이버 샷 정확도와 일관성은 많은 훈련이 필요했다. 우승을 하면 기대치가 높아지지만 골프에서는 너무 자주 패배를 경험하기 때문에 우승하지 않고도 좋은 한 주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나는 프로 골퍼의 현실과 함께 내 기대치를 관리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러다 갑자기 세 개의 DP월드투어에 출전해 두 번의 우승을 기록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우리 가족과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약혼녀 찬드레는 내가 이긴 경기들을 보지 못했다. 내 세계 골프 랭킹은 51위까지 올랐고 오션 코스에서 치러지는 2021 PGA챔피언십 출전 자격을 얻었다. 내 평생 가장 많은 사람 앞에서 플레이한 경험이었다.

제이 모너핸 PGA투어 회장은 내게 팰머토챔피언십 출전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일요일 전반 9홀까지 내 최고의 티 샷을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버티려고 노력했다. 스크램블링을 좋아하는 나는 몇몇 뛰어난 세이브를 잡아냈다. 13번홀에서 드라이버 샷이 심하게 왼쪽으로 휘었고 다시 포워드 티로 튕겨 돌아왔지만 나는 가까스로 파를 기록했다. 라운드 초반에는 리더보드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체슨 해들리의 상황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코스는 단순해 보이지만 조금이라도 샷이 빗나가면 많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나도 다른 선수들처럼 그렇게 쉽게 안으로부터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모든 홀을 파로 막았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연장전을 위해 웜업을 하고 있을 때 내가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PGA투어 카드를 확보하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어머니도 그곳에 계셨다. 2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대회에 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자간담회 도중 게리 플레이어가 내게 전화를 해왔다. 그는 “누군가 골프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것에 대해 이보다 더 흥분한 적이 없던 것 같아”라고 말했다.

이 우승 이후 나는 찬드레와 조지아주 시아일랜드에 정착했다. 이제 그녀는 나와 함께 투어를 다니고 호주와 남아공 출신 투어 선수들과 친구가 됐다. 항상 여행을 하는 삶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았다. 

글=개릭 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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