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식 칼럼] 애증의 벙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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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식 칼럼] 애증의 벙커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2.10.0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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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번째 디오픈이 열린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15번홀 벙커 모습.
▲ 150번째 디오픈이 열린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15번홀 벙커 모습.

벙커는 두려운 존재만이 아니다. 벙커는 샷 가치를 만들어내는 가장 쉬운 요소 중 하나다. 

벙커에 대한 아마추어 골퍼 대부분의 기억은 아마도 좋은 기억보다 처참한 기억이 더 많을 거다. 이런 골칫덩어리 벙커를 코스에서 없애버리면 어떨까. 벙커 샷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골퍼는 환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러프의 연장선처럼 잔디밭으로만 되어 있다면 코스의 단조로움은 감수해야겠다. 골퍼에게 벙커라는 곳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벙커는 매우 중요한 코스 요소다. 코스 설계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먼저 벙커의 기능을 살펴보자. 벙커는 공이 나가는 것을 잡아주는 역할, 거리를 알려주는 역할, 공격 라인을 지시하는 역할 등 여러 가지 순기능을 갖고 있다. 이런 기능만 보면 매우 고마운 벙커다. 하지만 골퍼의 기억 속에 한두 가지 자리 잡고 있는 벙커의 흑역사로 보면 벙커는 달갑지 않은 구조물이다. 골퍼에게 벙커는 호감보다는 굴욕의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바로 골프다.

얼마 전 모 골프장에 갔다. 오랜만에 찾은 골프장은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코스의 중요한 요소마다 위치해 있던 벙커가 보이지 않았고, 모두 메워져 있었다. 요즘 골프장이 호황이다 보니 골프장의 새로운 주인이 한 팀이라도 더 받기 위해 라운드 시간을 단축할 목적으로 그랬단다. 슬픈 일이다.

골퍼가 생각하듯 코스 내 벙커는 단순히 우리 기억 속에 애증이 교차하는 그런 곳만은 아니다. 초기 골프에서 양들이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가 벙커의 기원이라고 하며, 자연환경 변화로 생긴 구조물이라고 한다. 인공적 배치가 아닌 자연에 의한 배치였던 곳이 벙커다. 이런 기원에서 출발한 현대의 벙커는 다양한 구조 및 형태로 발전했고, 현대 골프에서 벙커는 페어웨이만큼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다.

코스 설계가에게 벙커는 샷 가치를 만들어내는 가장 쉬운 요소 중 하나다. 벙커의 위치, 크기, 깊이, 턱(banks)의 경사도, 모래의 종류, 벙커 주위의 잔디 종류 등은 모두 코스의 샷 가치와 난이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구조물이다. 벙커의 모양에 따라 코스 설계가의 특성이 바로 나타나기도 하며, 위대한 설계가는 독특한 벙커 디자인으로 찬사를 받기도 한다.  

또 벙커가 예전의 단순한 기능을 넘어 홀의 전체적 균형감을 유지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벙커의 배치는 그 홀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하여 골퍼의 심미적 만족도를 높이는 중요한 기능도 한다. 물론 이에 따른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전혀 필요 없는 곳에 위치한 벙커나 안전상 문제가 많은 벙커, 기후에 맞지 않은 과도한 벙커 설계, 초기 설계 의도와 전혀 다른 변화의 방치 등이 있겠다. 벙커는 있으나 관리 잘못으로 인한 기능 상실도 부작용의 일부다. 이렇듯 벙커는 코스에서 꼭 필요한 요소가 되었고, 이를 제대로 관리해야만 그 코스의 특성을 살릴 수 있다.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골프 코스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벙커 하나가 그 코스를 대변하기도 하고, 현대 코스에서는 모든 샷 가치에 벙커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단순히 라운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벙커를 없애거나 허투루 벙커를 관리한다면 코스의 모든 샷 가치는 망가져버리고 무의미해진다. 벙커 관리는 페어웨이 잔디 관리만큼 중요하며 코스 설계가의 의도대로 유지·보전해야 한다. 

* 강명식은 외과 전문의로 한국미드아마골프연맹 부회장을 지냈으며, 골프다이제스트 골프 코스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골프 소설 <레드재킷>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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