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그리고 회상…파3홀의 단상
  • 정기구독
기억 그리고 회상…파3홀의 단상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2.10.14 0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년 마스터스토너먼트를 개최하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 파3, 12번홀. 
매년 마스터스토너먼트를 개최하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 파3, 12번홀. 

흔히 지나온 경험을 돌이켜볼 때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떠올린다. 인생의 기억은 관점에 따라서 ‘나’라는 정체성이 있다. 골프 코스를 회상할 때 간직하고 있는 기억에도 그 코스의 정체성이 존재한다.

우리가 파3홀을 기억하는 이유다.  

4월은 마스터스토너먼트의 계절이다.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은 앨리스터 매켄지가 설계한 세계적인 명문 코스다.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오직 마스터스를 위해 문을 닫는다. 디봇 하나 허용하지 않는 철저한 코스 관리와 아름다운 자연미를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난도 높기로 유명하다. 벙커는 스물두 개에 불과하지만, 양탄자를 펼쳐놓은 듯한 페어웨이에 좁은 코스, 핀 위치에 따라 난이도가 결정되는 유리알 그린이 떠오르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난코스로 꼽히는 ‘아멘 코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시계 방향으로 숲을 끼고 도는 11번홀(파4), 12번홀(파3), 13번홀(파5)로 공략이 너무 까다로워 선수들이 ‘아멘’이라고 기도한다는 데서 유래했다. 오거스타내셔널은 익숙하다. 아멘 코너는 더 친근하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홀은 얼마나 될까. 11번홀과 13번홀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 12번홀은 기억할 것이다. 티잉 에어리어에서 바라보면 정면으로 ‘래의 크릭(Rae’s Creek)’이 흐르고 있고, 개울을 넘어 평행하게 펼쳐진 좁고 긴 그린이 있다. 이 잔인한 개울과 그린 사이로 한 개의 벙커와 그린 뒤로 두 개의 벙커가 그려지고, 개울을 건너는 ‘호건의 다리(Horgan’s Bridge)’도 놓칠 수 없는 기억으로 스친다.

물론 2020년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의 ‘10타 악몽’이 서려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바로 파3홀의 단상이다.    

‘신이 만든 코스’로 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골프링크스 7번홀.
‘신이 만든 코스’로 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골프링크스 7번홀.

파3홀은 코스 설계가의 철학과 코스의 특징을 가장 잘 담은 축소판이다. 파3홀은 18홀 가운데 주로 4개로 구성되는데 그중 하나는 시그너처 홀로 꼽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파3홀은 다른 홀보다 짧다.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 벙커와 그린의 형태 등 홀의 모든 세세한 레이아웃이 쉬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새로운 모습도 만끽할 수 있다.

파4홀이나 파5홀은 코스가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지만 티 샷 이후 세컨드 샷에 대한 근심이 앞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파3홀에는 여유와 낭만이 있다. 그늘집이 파3홀 전후로 위치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파3홀에서는 통상적으로 지연 플레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홀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개념이다.

코스 설계가 길 핸스는 이렇게 말했다. “골퍼들이 파3홀을 사랑하고 코스 설계가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파3홀은 전후반 나인홀 끝부분에 주로 배치한다. 파3홀이 초반에 나오는 코스를 설계한 적이 없다. 파3인 2번홀부터 지연 플레이가 시작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코스 설계가도 파3홀 디자인에 가장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샷 가치, 난이도, 다양성, 기억성, 심미성 등 코스 평가 기준에 부합하는 홀을 설계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고심한다.

파3홀은 전장이 너무 짧거나 길어서는 안 된다. 짧게는 100야드에서 길게는 240야드까지 조성된다. 파3홀은 원온을 해야 레귤러 온이기 때문에 정확한 샷을 요구한다. 티 샷 한 번으로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 나는 곳이다. 그린 콤플렉스로 난이도를 조절한다. 난도 높은 파3홀일수록 그린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명확하다. 그린 주위에 움푹 팬 곳이나 구릉, 깊고 긴 까다로운 벙커가 늘 있고, 곳곳에 폰드가 있거나 아일랜드 그린이 많다. 위험과 보상이 따라야 하고 운으로 공정성을 해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코스 관리 상태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도 파3홀이다. 티잉 에어리어나 그린 상태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티잉 에어리어에 매트가 깔려 있거나 잔디 상태가 엉망인 곳이라면 기억조차 할 가치가 없는 코스로 분류되는 식이다.

사람은 각각 다양한 관점으로 기억한다. 파3홀을 기억하는 방식도 골퍼마다 다르다. 모든 골퍼를 만족시키는 파3홀을 갖추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아름다운 기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회상할 수 있는 홀이어야 한다. 해안을 따라 펼쳐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3홀로 불리는 페블비치골프링크스 7번홀이나 무시무시한 힐 벙커가 도사리는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11번홀처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잡지사명 : (주)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제호명 :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2, 6층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대표전화 : 02-6096-2999  /  팩스 : 02-6096-2998
잡지등록번호 : 마포 라 00528    등록일 : 2007-12-22    발행일 : 전월 25일     발행인 : 홍원의    편집인 : 손은정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전민선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민선
Copyright © 2022 스포티비골프다이제스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ms@golfdigest.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