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 가이’ 토니 피나우, "안주하지 말고 겸손하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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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 가이’ 토니 피나우, "안주하지 말고 겸손하자고 다짐했다"
  • 인혜정 기자
  • 승인 2022.10.2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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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방식으로 목표에 도달하는 것보다 더 강한 게 있을까. 투어에서 ‘나이스 가이’ 랭킹 1위로 선정된 토니 피나우가 말하는 이타적인 삶, LIV투어로 옮겨가지 않은 이유 그리고 웃으면서 킬러 본능을 유지하는 비결에 귀 기울여보자.

우리가 토니 피나우를 만나러 갔던 빅토리랜치는 유타주의 파크시티를 굽어보는 호화로운 신축 주거단지 겸 골프 코스였다. 그곳에서 그를 만나 올해로 4회째를 맞은 골프다이제스트 선정 ‘나이스 가이’ 랭킹 1위 소식을 전했을 때 그가 보여준 반응은 너무 겸손했다.

사진 촬영을 앞두고 그는 연습장에서 새 장갑의 포장을 뜯으며 이런 사치가 여전히 겸연쩍다고 말했다. 세계 랭킹 10위권 선수, 라이더컵의 일원으로 우승을 경험하고 PGA투어에서 3승을 기록 중인 선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밀턴 포하 (토니) 피나우는 파크시티에서 아름다운 산을 넘어 서쪽으로 1시간 떨어진 솔트레이크시티의 가난한 동네에서 10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켈레피는 델타항공의 야간근무 직원이었다.

그 시절에 피나우가 동생인 기퍼와 함께 조던리버 파3 코스에서 플레이를 할 때는 같은 장갑을 5년 넘게 사용했다. 소박한 출신 배경이 선한 태도의 조건이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골프장을 드나들며 자란 투어 선수들 중에도 카메라가 있건 없건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악수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피나우는 느긋하고 순한 태도로 동료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나이스 가이’가 되었다.

물론 ‘친절하다’, ‘좋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나이스’라는 말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특히 올해는 프로 골프계가 지각변동을 겪으면서 옳고 그름을 논하는 기존의 개념에도 균열이 생겼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낯선 사람에게 상냥하지 않거나 다정하게 친구의 등에 칼을 꽂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올해 서른두 살인 피나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우리의 선정 방식이 사람을 제대로 골랐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Q. 왜 본인이 우리가 선정한 ‘나이스 가이’ 1위에 올랐다고 생각하나?
A. 보고 배운 게 어디 가나 싶다. 우리 부모님은 정말 훌륭하다. 굉장히 다정하고, 하늘 무서운 줄 아는 분들이고 나를 잘 키워주었다. ‘사람들이 너에게 해주길 바라는 방식대로 사람들을 대우하라.’ 어릴 때부터 이런 생각이 몸에 뱄다.

Q. 어려서 주니어 대회에 나갔을 때는 어떤 아이였나? 
A. 나는 수줍음이 많았다. 대부분의 아이들보다 훨씬 키가 컸고 옷차림도 달랐다. 동생 기퍼와 나는 아버지에게서 게임을 배웠다. 정작 아버지는 플레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겉돌았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을 알고 난 후로는 훨씬 편해졌다. 지금도 투어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 중에는 여덟 살 때부터 플레이를 함께 했던 선수들이 있다. 잭 블레어와 스콧 핑크니 같은 친구들이다. 로리 매킬로이가 2년 내리 여름을 핑크니의 집에서 보냈기 때문에 로리하고도 잘 알게 되었다.

Q. 17세에 프로로 전향한 후 7년 동안 고생한 끝에 PGA투어에 합류했다. 당신은 그런 시기에도 항상 좋은 사람이었나?
A.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너무 힘들다. 나는 안주하지 말고 겸손하자고 다짐했다. 아이들이 태어났는데도 미니 투어에서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는 동안 겪은 스트레스와 초조함은 앞으로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부모님과 아내인 알레이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금도 탁월한 팀이 구성되어 있다. 삶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하고, 그렇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허튼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가 최종 학력이기 때문에 그 후로 책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

Q. 어떤 책들인가?
A. 나는 오직 자기 계발서만 읽는다. 제프 올슨의 <슬라이트 엣지(Slight Edge)>는 정말 공감이 가는 책이었다. 나는 한 번도 스스로 위대한 골퍼라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살다 보면 습관이 차츰 축적된다.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의 <하버드 인생학 특강(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은 가족의 중요성과 우리가 성공을 좇느라 가족을 외면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는 둘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 댁은 물론 처가도 모두 36km 반경 안에 있다.

Q. 골프는 자기중심적인 게임이다. 잘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 연습은 물론 식사와 수면까지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골퍼의 삶에서 주변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2순위로 밀릴 때가 많다.
A. “발을 딛고 있는 곳에 전념하라”는 건 우리 아버지가 항상 하시던 말씀이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는 가족에게만 온전히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골프 코스를 집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그 반대로도 하지 않는다. 코스에 나가면 골프만 생각한다. 물론 말이 쉽지만, 이런 가르침이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삶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Q. 당신은 실력 있는 농구 선수였다. 당신의 아버지도 거의 모든 것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스포츠에서 킬러 본능을 유지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게 가능한가?
A. 물론이다. 스테픈 커리를 생각해보라. 그는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지만 코트에서는 모두를 압도하며 최고의 실력을 발휘한다. 나도 그런 기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덧 열 살이 되어 골프 대회에서 성적을 내고 있는 아들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네가 어떨 때 최고의 플레이를 하는지 따져봐. 어떤 마음의 상태인지. 행복, 의지, 분노. 분노라면 어느 정도로 화가 난 건지?” 나는 상대에게 ‘나이스 샷’이라고 말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다. 그 말을 한다고 해서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뛰어난 샷을 지켜보는 걸 좋아한다. 그건 내게 좋은 기운을 준다. 물론 상대가 18번의 이글을 기록하는 걸 보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이기고 싶다. 승부가 걸린 상황에서는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 승리로 나아가는 문은 좁기 때문이다.

Q. 아들과의 대화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나?
A. 아이가 코스에서 반드시 나처럼 부드럽고 침착한 모습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의욕이 과하고,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면 플레이가 더 안 풀린다는 걸 알았다. 아들은 천성이 나보다 더 치열하다. 그건 전혀 문제 될 게 없지만 라운드의 흐름을 타려면 1번홀 티잉 에어리어에서 강도를 몇 단계 낮춰서 시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Q. 투어의 다른 선수들도 나이스 가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자원봉사자들을 대하면 어떨까 싶다. 아무래도 은퇴자들이 많다 보니 행동이 조금 느린 경향이 있다. 수천 명의 팬들이 운집하면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데 적절한 위치에 서 있지 않았다거나 러프에 빠진 자신의 볼을 곧바로 찾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원봉사자에게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곳으로 볼을 보낸 건 본인 잘못이다. 그들이 자신의 볼을 밟고 서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Q. LIV투어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어떤 제안을 받았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나?
A. 너무 구체적으로 들어가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이건 굉장히 많은 사안이 복합된 문제다. 골프계는 지금 대단히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쟁은 건전한 것이니까 PGA투어가 기존의 운영방식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예전부터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보다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걸 더 높게 평가해왔다. 많은 선수가 LIV로 넘어간 건 충격이었다. 금전적인 이익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PGA투어의 회원이라는 사실에 늘 감사하며 살아왔다. 이곳에 합류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아직도 기억난다. 어렸을 때는 1억 달러를 번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저 모든 게 걸린 퍼트를 성공하는 꿈을 꿨을 뿐이다.

Q. 대학을 졸업하는 최고의 골퍼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A. 그런 선수들은 영리하니까 PGA투어에서 플레이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경우 거기에 일정한 결과가 수반되고, 일정한 이미지가 자신을 따라다니게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본질,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과 가장 잘 맞은 선택을 하되, 그 결정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내게는 그 두 가지가 전혀 다른 선택이다.

Q. 텍사스주 유밸디의 학교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졌을 때 트위터에 글을 올린 걸로 알고 있다. 처음 그 뉴스를 어디서 들었고,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A. 콜로니얼에서 연습 라운드를 하고 있었다.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자식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그런 참담한 폭력에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가 어떤 심정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충격은 몇 주가 지나도록 가시지 않았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는다. 미국은 국가 차원에서 이런 사고의 재발을 막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이게 끔찍한 행동이라는 데에는 모두의 의견이 일치한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 나는 기도의 힘을 믿지만, 행동의 중요성도 믿는다. 법은 잘 모르지만 재단을 통해 아이들을 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아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강하고, 그들이 자라날 안전한 세계를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Q. 그렇게 낙관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세대를 분류할 때 오류와 단점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A. 내가 고향에서 자주 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몇 군데 있다. 추수감사절 때 칠면조 요리를 가져가 가족들에게 대접하면 서로 돕겠다며 아이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혼돈의 세상에 태어났지만 우리보다 더 영리하고 회복력도 강하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그들이 자연스럽게 자아를 인식한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이 아이들을 그냥 아이로만 보는 건 말도 안 된다. 앞으로의 미래가 우리가 아닌 아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건 다행인 일이다.

Q. 좌우명이 있다면?
A. 내가 삶의 지표로 삼고 싶은 단어는 ‘자비’이다. 넓게 보면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뜻이다. 정신건강과 관련된 요즘의 모든 대화를 들으면 다른 사람을 돕기 전에 자신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데, 나는 그 반대가 옳다고 믿는다. 우리 엄마(2011년에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셨다)와 아버지보다 더 만족하며 사는 분들을 나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 두 분의 삶은 나와 우리 형제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 그 자체였다.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눴을 때 나로 인해 그 사람의 하루가 조금이나마 환해졌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탁월한 골퍼가 되겠다는 이기적인 욕망보다 내 가족과 재단이 내게 더 큰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예를 들어 디오픈에서 우승을 노릴 때면 나는 태국의 일곱 살짜리 아이가 TV로 내 플레이를 지켜보다가 언젠가 디오픈에서 우승하는 꿈을 키워가는 생각을 한다. 타인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면 그 대가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기대할 수 없는 큰 기쁨으로 되돌아온다.

글=맥스 애들러(Max Ad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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