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위한 배려, 레이디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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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위한 배려, 레이디 티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2.10.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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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링턴컨트리클럽 와이번 코스 6번홀. 사진_웰링턴컨트리클럽 제공
▲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는 여성 골퍼도 온전히 라운드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누려야 한다. 레이디 티에 대한 배려가 더 필요하다. 웰링턴컨트리클럽 와이번 코스 6번홀. 사진_웰링턴컨트리클럽 제공

 

골프 코스에서 티 샷을 하는 티잉 에어리어는 2~7개까지 다양한 티(Tee)로 구역이 나뉘어 있다. 기량, 성별, 나이 등 각기 다른 기준에 따라 골퍼 스스로 플레이할 티를 선택할 수 있다. 대개 컬러가 다른 티 마커로 표시한다. 골프장마다 티 마커의 위치와 컬러, 모양은 제각각이다. 전장에 따라 챔피언, 레귤러, 시니어, 레이디 티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블랙, 블루, 화이트, 골드, 레드 티 등 컬러로 표시하는 것이 가장 흔하다. 통일된 규정은 없다.

또 코스 관리와 운영을 이유로 모든 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열어두지 않는 골프장도 부지기수다. 이 가운데 최근 여성 골퍼가 급증하면서 ‘레이디 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레이디’ 혹은 ‘레드’라는 페미니즘 관점의 용어 정리를 차치하고 통상적으로 부르는 레이디 티에 올라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골프는 남성 스포츠였다. 과거에는 부자 백인 남성의 전유물로 여겼다. 골프의 성지로 불리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 있는 로열앤드에인션트골프클럽(R&A) 앞에는 ‘개 또는 여자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2007년까지 붙어 있었고, 마스터스토너먼트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은 1933년 개장 이후 80년 만인 2012년이 되어서야 ‘금녀의 벽’을 허물었다.

오거스타내셔널에 처음 입성한 여성은 미국의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 전 장관이다. 하지만 오거스타내셔널에는 여전히 레이디 티가 없다. 오직 마스터스 티와 멤버 티만 존재할 뿐이다. 레이디 티의 역사도 길지 않다. 불과 1970년대까지만 해도 챔피언과 레귤러 티, 두 종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 여성 골퍼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던 시대상의 반영이다.

여성을 위한 포워드 티를 고안한 건 앨리스 다이였다. ‘골프 코스 설계의 퍼스트 레이디’로 불린 앨리스는 세계적인 코스 설계가 피트 다이의 아내다. 앨리스는 TPC소그래스의 시그너처 홀인 17번홀을 디자인한 세계 최초의 여성 코스 설계가이기도 하다. 앨리스는 당시 남성우월주의에 빠져있던 골프 관계자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여성 골퍼를 위한 프런트 티를 개설했다. 현재 대부분 코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레이디 티의 탄생 배경이다.  

◇ 공정성을 위한 설계

레이디 티의 위치는 골프 코스마다, 또 설계가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그린에서 티잉 에어리어까지 역순으로 거리를 계산해 티 위치를 정한다. 티 샷이 떨어지는 랜딩 에어리어에서 그린까지 남은 거리가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이를테면 파4 홀을 기준으로 투어 선수가 사용하는 챔피언 티에서 드라이버 티 샷을 한 뒤 랜딩 에어리어에서 그린까지 7번 아이언으로 공략해야 한다면, 레이디 티도 드라이버 티 샷 이후 7번 아이언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파5홀에서는 드라이버 티 샷, 페어웨이 우드 세컨드 샷, 샌드웨지 풀 샷 기준 그린 공략을 할 때 거리를 고려해 남성과 여성 골퍼가 동일한 클럽으로 그린을 공략할 수 있도록 티 위치를 결정한다. 레이디 티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남성 골퍼가 주로 사용하는 화이트 티도 마찬가지다. 남성과 여성 혹은 프로와 아마추어 골퍼의 평균 비거리 차이에 대한 공정성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변수가 되는 건 여성 골퍼의 거리 편차다. 나이와 기량에 따라 여성이 남성 골퍼보다 거리 편차가 크기 때문에 홀마다 계곡 등 페널티 구역의 유무에 따라 레이디 티의 기준은 달라지기도 한다.  

레이디 티를 설치할 때 또 다른 기준이 되는 건 랜딩 에어리어를 포함해 홀이 보이는 각도다. 각각의 티 위치에 따라 코스는 완전히 달라진다. 동일한 거리에서도 좌우 이동을 통해 랜딩 에어리어를 공략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한다. 거리 편차가 심한 여성 골퍼를 배려해 벙커나 페널티 구역을 빗겨 칠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것이다. 오르막 홀의 경우는 뒤에서 볼 때 레이디 티가 페어웨이를 가리지 않는 위치에 다른 티보다 레벨을 살짝 올려 설치하기도 한다. 여성 골퍼의 오르막 티 샷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뒤에서 볼 때 레이디 티가 시야를 가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에 설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기법이다.

◇ 옴짝달싹 못하는 공간

여성 골프 인구의 증가세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레이디 티에 대한 배려가 아직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레이디 티의 면적이다. 매우 협소하다. 오래된 골프장의 경우 100제곱미터도 되지 않고 배려를 한 곳도 150제곱미터에 불과하다. 화이트 티가 일반적으로 400제곱미터 정도다. 샷을 할 때 잔디를 누르는 답압 강도의 남녀 차이도 존재하지만, 골프장 이용객의 여성 비중이 낮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 이용객이 25% 이상을 차지한다.

티잉 에어리어를 설계할 때도 기준이 있다. 100제곱미터당 1만 명이 일반적이다. 8만 명이 이용하는 골프장이라면 800제곱미터로 면적을 책정한다. 최근에는 코스 리노베이션을 할 때 레이디 티를 두 개로 설치하기도 한다. 하지만 100제곱미터 레이디 티 두 개보다는 200제곱미터 한 개가 더 효율적이다. 적어도 150제곱미터 이상, 200제곱미터가 이상적이다.

세로축보다는 가로축을 길게 늘여 설계하는 것도 좌우 각도에서 티 샷을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이다. 설계적 측면에서 티잉 에어리어 앞쪽에 위치한 레이디 티는 챔피언 티보다 공간을 활용하기에 더 용이하다. 골프장의 배려가 있다면 충분히 개선의 여지가 있다.

◇ 여성을 위한 배려

레이디 티를 설계할 때 신경을 쓰는 것 중 하나는 조경적 측면이다. 관상용 초화류나 키 작은 관목을 레이디 티 주변에 식재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골퍼가 가까이서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화이트 티 주위에 식재할 경우 여성 골퍼는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어지지만, 레이디 티는 뒤에서 치는 골퍼도 자연스럽게 조경을 누릴 수 있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다.  

카트 도로의 위치도 여성 골퍼를 배려하기 위한 고려 대상이 되기도 한다. 티잉 에어리어와 카트 도로 설계가 지형보다 우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성 골퍼는 어드레스 자세를 취할 때 등 뒤쪽에 동반자들이 있으면 자신을 향한 시선이 민망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티잉 에어리어는 카트 도로보다 높게 위치하기 때문에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성 골퍼는 더 불편한 시선을 느끼며 샷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꼭 짧은 스커트나 패션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20~30대 젊은 여성 골퍼보다 50~60대 중년 여성 골퍼가 이런 시선을 더 신경 쓴다. 이런 이유로 지형적으로 설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여성 골퍼의 앞모습을 볼 수 있게 카트 도로가 레이디 티 앞에 오도록 설계하는 경향도 있다.

골프장의 과도한 배려도 문제가 될 때가 있다. 레이디 티를 앞으로 빼놓는 경우다. 가까워질수록 랜딩 에어리어가 잘 보이고 플레이는 쉬워진다. 실제로는 여성 골퍼를 위한 배려보다 여성이 남성보다 지연 플레이가 많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용객이 증가할수록 플레이 속도는 곧 수익과 연결된다. 내장객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설계를 제멋대로 변경하는 것은 핸디캡 그 이상을 제공해 여성 골퍼가 온전히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같다. 그런 골프장에서는 눈치 볼 것 없이 시니어 티 혹은 화이트 티에서 플레이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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