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식 칼럼] 품격 있는 벙커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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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식 칼럼] 품격 있는 벙커의 조건
  • 서민교 기자
  • 승인 2022.10.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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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오픈이 열린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17번홀 벙커 모습.
▲ 디오픈이 열린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17번홀 벙커 모습.

골프 코스에서 벙커는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때론 두려운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결국 벙커도 즐거움을 더하는 요소로 자리잡아야 한다. 

벙커가 없는 골프장이거나 출중한 실력으로 벙커를 모두 피해 방해가 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면, 18홀 라운드 후 벙커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골퍼는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주말 골퍼가 난도 높은 벙커에 빠져 곤혹을 치른 경우에는 그 잔상이 깊게 남아 간혹 골프에 대한 회의마저 생길 수 있다. 벙커 샷의 기술이 빈약한 골퍼들은 벙커 내 모래만 봐도 두렵겠지만, 기량이 좋은 골퍼들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골퍼 각자 샷의 기량에 따라 벙커를 대하는 느낌과 결과도 달라진다. 이런 변별력이 바로 벙커가 필요한 이유다.

이렇게 골퍼의 기량 차에 따른 변별력이 다르게 나타나듯 각 벙커도 탈출할 때 어려움의 정도가 제각각이다. 모든 벙커의 리커버리 샷이 동일하다면 굳이 벙커를 만들 이유가 없다. 벙커는 각 골퍼의 기량을 가급적 객관적이고 공평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야 한다.

현대 골프에서 벙커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전적으로는 골퍼의 공을 잡아주거나 공격 방향을 지시하고 샷 옵션으로 위험과 보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때론 코스를 치장하고 꾸미는 데도 사용하며, 전체적인 균형감을 유지하기 위해 샷 가치와 전혀 관계없는 부분에 벙커를 설치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벙커의 모양도 발전하고 다양해졌다. 골프 발원 초창기에서 보이던 양이나 목동 피난처의 깊은 벙커를 조성하기도 하며, 벙커의 사면(Banks)을 높게 만들어 탈출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또 사면을 벙커 모래로 만들어 그 면이 티잉 에어리어에서도 보이게 하는 페이스트 벙커(Faced Bunker)도 도입하고 있다. 이런 벙커들은 코스를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각적 효과가 탁월하고 다른 코스에 없는 독특한 벙커가 있다 하더라도 벙커 자체의 중요한 기본적 기능과 효과는 충실해야 한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벙커를 균형감 있게 코스에 배치해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해도 의미 없는 벙커가 있거나 샷 옵션을 저해하는 벙커카 있다면 좋은 코스로 보기 어렵다.

벙커 위치에 따른 샷 가치의 변화가 적용되어 있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영국 스코틀랜드 골프장의 유명한 높은 소드월 벙커는 자연적인 태생으로 간주하더라도 이를 본떠 만든 벙커들이 페널티 가치(Penalty Values)를 무시하고 설치되어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현대 골프에서 벙커는 그 자체로 골프의 즐거움마저 잃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페어웨이 벙커보다는 어프로치 지역에 있는 벙커가 리커버리 확률이 낮아야 하며, 이들보다는 그린 사이드 벙커의 리커버리가 더 어렵게 되어야 한다.

페어웨이 가운데로 간 티 샷 공이 벙커에서 빠져나오는 데 두세 번의 샷이 필요하다면 변별력이 높다고 볼 수 없고, 골프가 즐거울 수도 없다. 또 장타자가 넘길 수 있게 위치한 벙커 역시 불공평하다. 벙커 턱이 높아 그곳에 공이 박혀버려 페널티를 감수해야만 하는 벙커도 달갑지 않다.

벙커의 모양이 예쁘고 공사비가 비싼 벙커 턱을 갖고 있다고 해서 품격 있는 벙커이며, 품격 있는 골프장이 되는 것이 아니다. 또 불필요한 위치의 벙커나 위험한 지역의 벙커, 불공평한 벙커 등은 골프를 불쾌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개성 있고 적재적소에 위치하며, 골프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줄 제각각 다른 난이도의 벙커가 다양하게 존재하는 골프장이 좋은 골프장이다. 

◇ 리베티드(Revetted) 혹은 엘리베이티드 소드월(Elevated Sod Wall) 벙커 : 벙커 턱을 잔디 뗏장을 켜켜이 쌓아 조성한 벙커.

◇ 듀라(Dura) 벙커 : 잔디의 소실을 막기 위해 ‘듀라’라는 제품의 막을 이용해 쌓아 올린 벙커. 일종의 인조 잔디로 층층이 쌓아 벙커 턱을 만들어 우천 등 자연적 소실을 막는 최신 벙커 조성 공법. 

* 강명식은 외과 전문의로 한국미드아마골프연맹 부회장을 지냈으며, 골프다이제스트 골프 코스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골프 소설 <레드재킷>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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